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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55화 (1,255/1,329)

1화

다섯 번째 응급 수술이자 김지훈이 집도하는 두 번째 수술이 시작됐다. 곧 토요일 일과가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약정식이 열린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띠띠띠띠띠!

슈욱! 슈욱! 슈욱!

심장도, 인공호흡기 소리도 급박하게 들렸다. 보호자에게 사망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지금처럼 현실적으로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 하나를 믿고 수술에 동의했다. 반드시 살려야 한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배를 열었다.

소장과 대장이 보이는 순간 수술 팀 모두 말을 잃었다. 강력하게 의심했지만 오진이기를 바랐을 정도로 치명적인 질환이 발생했다.

대장이 시커멓게 죽었다.

대장 동맥 혈전증이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행 결장과 에스 결장만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괴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독소가 혈액에 퍼져 치료할 수 없는 패혈증을 유발하고도 남았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몰랐다.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절제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보호자를 불러 병변을 확인시켰다.

“대장이 40퍼센트 가까이 죽었습니다. 동맥 혈전으로 인한 폐쇄가 확실합니다. 괴사된 장을 모두 절제하는 수밖에 없고, 예후는 두고 봐야 합니다. 수술 진행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자식의 손이 덜덜 떨렸다.

김지훈이 곧바로 수술에 집중했다.

“동맥 잡습니다.”

대동맥에서 시작된 대장 동맥 중 하행 결장과 에스 결장에 연결된 동맥을 정확하게 잡아야 했다. 동시에 다른 동맥에도 혈전이 발생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노인의 혈관이었다.

젊음이 주었던 탄력을 잃고 딱딱해진 탓에 조작은 물론 혈전 유무를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다. 그러나 간 이식을 통해 혈관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김지훈이었다.

따르륵! 따가각!

동맥을 잡았다.

가뜩이나 까맣던 대장이 완전이 제 빛깔을 잃었다. 사전 처치가 안 된 환자였지만 대장을 절제하는 과정이 김지훈이나 오만석에게 어려울 리가 없었다.

“켈리! 수처! 타이! 컷!”

빠르게 대장을 절제해 나갔다.

평행 결장과 하행 결장의 연결이 끊어졌다.

주행 방향을 따라 에스 결장으로 접근해 직장으로 이행되는 부분까지 접근했다. 괴사된 장과 정상 장과의 경계를 확인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일단 제거하는 것이 먼저다.’

“장겸자! 멧젬(수술용 가위)!”

직장 근처에서 에스 결장을 잘랐다.

생명을 위협하던 괴사된 대장이 모두 제거됐다. 무리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진행했지만 환자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혈관을 통해 독소가 퍼져 나가는 시간이 길수록 예후가 불량해지기 때문이었다.

남은 과정은 간단했다.

변으로 가득 찬 대장을 아무런 사전 처치도 없이 잘랐다. 수술 중 충분히 소독을 했다지만 그대로 연결했다가는 감염에 이은 염증으로 100퍼센트 문합 부위가 터질 것이다.

따라서 평행 결장을 피부 밖으로 빼는 대장루를 시행하고, 직장은 막아야 했다. 전신 상태가 회복된 후 상황을 보며 이 차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 전 바이탈까지 흔들렸다.

빠르게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야 할 김지훈이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오만석과 모찬우도 엉뚱한 곳을 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담낭이 살짝 부어 있었다.

종양이 아닌 담석으로 인한 담낭염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됐지만, 담도 부위를 촉진한 결과 돌이 더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대장 괴사로 인한 절제를 응급으로 시행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고령의 노인에게 상당한 부담을 가할 수밖에 없어 추가 수술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담낭만이 아니라 담도에도 돌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에 하나 수술 후 환자 체력이 급격하게 약해지는 시기에 담도에서 염증이 발생한다면 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회복에 있어 간만큼 중요한 장기는 없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환자 바이탈 괜찮습니까?”

“시작할 때보다는 안정적입니다.”

“보호자 불러 주세요.”

‘한 시간 이상 더 걸리겠지만 경미하다고 해도 담낭염이 의심되는 이상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만일 담도염까지 발생하면 치명적이다.’

보호자가 들어올 때까지 손을 놓을 상황이 아니었다. 간호사가 새로운 기구를 준비하는 동안 직장을 막는 과정을 진행시켰다.

“수처! 타이! 컷!”

직장 수술은 위치와 구조 자체로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뻥 뚫린 직장을 봉합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변이 새면 인위적인 복막염을 일으키게 된다.

김지훈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오만석 역시 자신의 큰 손을 의식한 듯 극도로 조심하며 타이를 시행했다. 거즈로 봉합한 부위를 닦을 때마다 변이 묻어나는지 철저히 확인했다.

보호자가 들어온 지 꽤 시간이 지나서야 김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수술 모자가 땀으로 젖어 진한 초록색으로 변한 채였다.

수술이 커졌다.

정확하게 설명해야 했다.

“괴사된 대장은 모두 절제했습니다만 지금 바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상부 대장은 피부 밖으로 빼고, 하부 대장은 막아 버린 후 나중에 이 차 수술로 이어 주어야 합니다.”

사람 배 속 보는 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대장이 이미 절제된 상태였다.

보호자가 고개를 돌린 채 끄덕였다.

“다시 들어오시라고 한 이유는 담당의 염증과 담석 때문입니다. 동맥 혈전과 별개의 질환이지만 지켜볼 상황이 아닙니다.”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나았다. 고개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보호자를 설득해 부어오른 담낭을 확인시켰다.

답답한 한숨이 터졌다.

“수술 후 다시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귀중한 시간을 또 잡아먹었다. 하지만 진단이 불확실한 가운데 시행한 응급 수술이었다. 의사와 환자, 보호자와의 신뢰가 걸린 일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김지훈이 곧바로 고개를 묻었다.

‘일 초가 아까운 상황이다.’

“담낭 절제하고, T 튜브 박은 후 대장루 시행하겠습니다. 오만석 선생, 시작하자.”

과감했다.

경험은 이미 쌓을 대로 쌓았다.

담낭이 빠르게 절제됐다.

담도 주변을 박리한 후 일부분을 절개했다.

담석을 빼냈다.

정상적인 색보다 진해진 담즙이 흘러나왔다. 이미 염증이 발생했다는 징후였기에 적절한 판단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켜봤으면 큰일 날 뻔했어.’

“담도 내부 세척하고 T 튜브 넣읍시다.”

수술 팀의 호흡이 놀라웠다.

지금까지 척척 손을 맞춰 온 대로 튜브를 넣고, 대장루를 만든 후 배를 닫기까지 단 하나의 실수나 무리한 과정이 없었다.

수술이 끝났다.

환자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중환자실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떤 환자도 다를 수 없지만 이번 환자는 의식 회복이 특히 중요했다.

고령이다.

대장 동맥이 혈전으로 인해 막혔다.

운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조기에 수술했지만 대장 괴사가 급격하게 진행됐다. 그 자체로 이미 위험한 상태였다.

동반된 질환까지 있었다.

경미하다고 해도 담석으로 인한 담낭과 담도의 염증은 간에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환자 곁을 떠나지 못했다.

‘수술이 늦었으면 100퍼센트 사망했을 테지만 조금도 안심할 수 없는 환자다. 일단 깨어나는 것이 첫째고, 바이탈이 안정돼야 한다.’

각종 약제가 투여됐다.

기관에 삽입된 튜브를 통해 가래를 빼내자 자극을 받은 환자가 꿈틀거렸다. 순간 산소 포화도가 출렁일 정도로 강한 반응이었다.

좋은 징조였다.

째깍! 째깍!

실제보다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흘렀다.

환자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오만석이 소리를 질렀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환자분!”

“커억! 커억!”

순간 거친 숨을 내뱉은 환자가 눈을 떴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숨구멍을 막은 튜브를 빼려 했다. 눈빛은 멍했지만 팔다리의 힘은 노인의 힘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각 장기가 빠르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띠띠! 띠띠! 띠띠!

약간 빠르게 뛰었지만 심장박동 간격은 안정적이었고, 수술 후에 당연히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심전도 모양 역시 정상적으로 보였다.

슈욱! 슈욱!

튜브를 동해 들리는 숨소리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의식이 완전히 회복되고, 자발 호흡이 더욱 강해지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다.

김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회복이 빠르다니 놀랍네.’

모두들 한시름 놓았지만 김지훈은 예외였다.

오토바이 사고로 수술한 환자 상태가 좋지 못했다. 나이에 따라 생명의 무게가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젊은 청년이기에 안타까운 것만은 사실이었다. 한편으로 짜증 아닌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놈의 오토바이를 왜 타서 이렇게 다치나. 하긴 오토바이 잘못이 아니라 타는 사람의 과속과 부주의 때문이겠지.’

위험한 물건임은 틀림없었다.

찬찬히 확인했다.

고령의 환자보다 더 위험한 상태였다.

오만석, 모찬우, 고경철과 향후 치료에 대해 상의한 후 보호자를 만났다. 노인의 보호자나 청년의 보호자나 다르지 않았다. 걱정 가득한 얼굴과 눈물 가득한 눈가 모두 가슴 아프긴 마찬가지였다.

김지훈에게는 무척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노인 환자는 의외일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여 희망 섞인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청년 환자는 희망이란 말 자체를 꺼내기 힘들었다.

“다행히 잘 깨어나셨습니다. 고령이시기 때문에 앞으로 주의할 점이 많지만 회복 가능성을 볼 수 있겠습니다. 단, 이삼 일 정도 중환자실에서 지켜봐야 합니다. 곧 면회가 가능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호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면 청년 환자의 보호자들에겐 쉽사리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을지도 모르는 부모에게는 어떤 말도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선생님, 우리 아들은 어떻습니까?”

“손상 부위가 너무 많았습니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그나마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엄마의 울음이 터졌다.

방어 진료일 수도 있지만 사망 가능성과 각종 합병증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 의사가 짊어져야 할 책임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현실이었다.

솔직하게 말했다.

애끓는 울음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무거운 분위기만 감돌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종종 오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길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타인의 일로 생각하기에 농담처럼 던질 수 있지만 생사가 오고 가는 병원에서는 피부로 느껴지는 일이기도 했다.

생명의 무거움은 정말 차이가 없을까?

답은 명확했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질문이지만 때론 안타까움이 이성을 압도할 때가 있었다. 황혼에 다다른 나이에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노인과 수십 년의 세월을 더 살아야 하건만 희망을 보기 힘든 청년이 주는 일종의 딜레마였다.

밤을 새운 것 이상으로 피곤한 하루였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눈가를 비비던 김지훈이 화들짝 놀랐다. 오전 회진도 못 돌았는데 시간이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중요한 행사가 이미 시작됐다.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타인의 명예이자 숭고한 뜻을 기리는 자리기에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수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에 더더욱 중요했다. 최소 약정식에 얼굴은 비쳐야 하는 것이 예의였다.

‘늦었다!’

급히 병동에 연락했다.

다행히 문제가 생긴 환자가 없었다.

명색이 부원장인데 떡진 머리와 후줄근한 모습으로 참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안한 일이지만 오전 회진을 생략하기로 하고 부리나케 샤워를 했다.

‘옷도 갈아입어야 하네.’

김지훈이 허둥지둥 부원장실로 달렸다.

넥타이도 못 맨 채 회의실로 향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열심히 발을 놀리고 있는데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샤워 탓인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다리에 채찍질을 가했지만 회의실이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헉! 헉! 헉!

숨까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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