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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44화 (1,244/1,329)

10화

아무도 회복실을 떠나지 못했다.

송진우는 수술이 끝나길 기다린 강은미와 함께 수술 후 치료와 계획을 세우는 데 여념이 없었고, 이혁원은 한시도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띠띠띠띠띠띠!

심장박동이 의외로 힘찼다.

작은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다른 장기에 끼친 영향, 특히 콩팥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소변량 또한 만족스러웠다. 워낙 체중이 적게 나가 적정한 양을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충분한 것만은 분명했다.

“송진우 선생, 아이 어때?”

“옮겨도 되겠습니다.”

김지훈이 잠시 고민했다.

신생아는 물론 어린아이들의 경우 심리적 안정을 위해 회복실부터 보호자 출입을 허락해 왔다. 노심초사 수술이 잘 끝나기만을 기도했을 아이 엄마에게 설명해야 할 때이기도 했다.

‘아이는 끝까지 함께 봐야 하겠지만 지금부터는 송진우의 시간이다. 보호자에게 정확하게 설명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 만큼 뒤로 미룰 이유가 없다.’

“송진우 선생, 아이 엄마 면회 허락하고, 직접 설명해. 소아 중환자실에 대해 잘 말하고.”

“알겠습니다.”

아이 엄마가 들어왔다.

눈물부터 쏟았다.

의사 눈에는 큰 고비를 넘긴 상태지만 엄마 눈에는 여전히 아픈 자식이었다. 복부 절개창을 덮은 거즈마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함께 들어와 다행이었다.

“선생님, 수술은 잘 끝났나요?”

송진우가 침착하게 대처했다.

“결손 부위를 제거하는 것이 너무 위험해 새로운 길을 만들었습니다. 무난하게 끝났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 당분간 지켜봐야 합니다. 이삼 일 정도 소아 중환자실에서 집중적으로 치료할 예정입니다.”

“중환자실에서요?”

정기적인 희귀 질환 수술로 소아 중환자실을 설치한 지 오래였다. 심각한 상태가 아닌 경우 아이와 보호자가 함께 있는 것이 유리했다.

“일반 병실에서는 신생아를 치료하고 간호할 수 없습니다. 보호자분 중 한 분은 아이와 함께 계셔도 되니까 조금이라도 걱정을 덜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아이가 울었다.

마치 엄마를 알아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칭얼대며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취에서 잘 깨어났다는 의미였지만 부모에겐 가슴 찢어지는 소리였다.

옮겨도 좋았다.

중환자실로 들어선 부모의 눈에 두려움이 스쳤다. 성인 중환자와 격리된 공간이었지만 특유의 차가운 공기와 규칙적인 기계음에 겁을 집어먹고도 남았다.

“보호자분, 잠시 물러나 계시겠어요?”

간호사들이 처치를 시작하자 아이 엄마가 발을 동동 굴렀다. 건드리기만 해도 자지러질 것 같은 아이 상태에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송진우가 보호자들을 달랬다.

차분한 목소리에 점차 안정돼 가던 아이 아빠가 또 다른 걱정에 휩싸였다. 복잡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상의하다 말고 김지훈을 보았다.

“선생님, 잠시 따로 뵐 수 있을까요?”

“왜 그러십니까?”

“수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원장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당장 수술과 입원에 필요한 돈을 모두 구하지 못했습니다. 며칠만 주시면 나머지 돈은 반드시 마련하겠습니다.”

피로에 지친 얼굴이었다.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눈빛만은 잃지 않았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비볐다.

신생아 수술과 치료에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보험 적용이 된다고 해도 중환자실 사용 자체부터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내게 말했을까? 어려운 환자를 모두 무료로 치료할 수 없지만, 이 경우는 소아 희귀 질환인데 우리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나?’

애초 그런 생각으로 수술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확답을 주고 싶었지만 관건은 역시 민정호였다. 더불어 부원장이 된 이후 병원 경영에 어느 정도 눈을 뜬 상태였다.

억지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었다.

반드시 협의가 필요했다.

반면 부원장의 권한도 있었다.

“당장은 돈 걱정 하지 마시고, 아이에게만 집중하세요. 병원 운영진들과 최대한 상의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무료 치료도 아니고, 지불 일시를 미뤄 주겠다는 말에 불과한데 아이 아빠가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이상스레 미안하고,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이혁원이 중환자실을 나왔다.

“이혁원 선생, 퇴근하는 거야?”

“아닙니다. 병동에서 연락이 와서요.”

“누구 환잔데?”

“선생님 환자입니다.”

보호자와 돈 얘기를 나눠 봤자 서로 민망할 뿐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수술한 환자가 불편하다는데 안 가 볼 수 없었다. 고개 숙여 인사를 한 김지훈이 병동으로 함께 올라갔다.

‘무슨 일이지?’

대개는 별일 아니었지만 병동이든 어디든 연락을 받으면 항상 불안이 앞서곤 했다. 때론 사소해 보여도 큰 문제로 번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보이자 간호사가 흠칫 놀라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밤에 호출했으면 급한 일일 텐데 서두르기는커녕 곤란한 표정만 지었다.

“무슨 일이에요?”

“박재순 환자분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화장실에서 직접 소변을 보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데 보호자 한 분으로는 쉽지 않은 모양이에요.”

헛웃음이 터졌다.

생각해 보니 박재순 환자의 체격이 상당했다.

한마디로 기골이 큰 사람이었고, 그 피를 물려받았는데 둘째 아들은 왜소한 편이었다. 수액 줄과 코 줄을 달고 있는 아버지를 부축해 화장실로 가는 것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의사들도 처음 시도하는 큰 수술을 받고 난 직후라 겁이 나 도움을 청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둘째 아들이 꽤 겁이 많은 모양이네. 혁원이 이 자식은 미리 얘기를 해야지 괜히 걱정했네.’

“이혁원 선생, 알고 있었어?”

“예.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 문제도 아니고 돈 문제던데, 더 늦기 전에 퇴근하시라고 일부러 말씀 안 드렸습니다. 오늘 많이 피곤하실 것 같고요. 주변 사람 다 걱정하게 만든 전적이 한 번 있으시잖아요?”

당당했다.

‘옛날엔 이런 말도 못 꺼냈는데 많이 컸네.’

“에휴! 고맙다. 환자 보고 퇴근할게.”

“직접 가시려고요?”

“내 환자잖아. 너도 빨리 퇴근해.”

“세컨의 역할을 끝까지 다해야죠.”

투덜투덜 김지훈이 병실로 향했다.

박재순 환자와 둘째 아들이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어떻게?”

“수술이 지금 끝나서 겸사겸사 올라왔습니다. 보호자분, 아버님이 큰 수술 받으셨다고 너무 겁내실 필요 없습니다.”

말 몇 마디 하고, 둘째 아들과 가볍게 부축해 볼일을 보게 했다. 쫄쫄 소변 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근무 내내 환자 똥오줌을 받아 내는 중환자실 간호사도 있는데 의외로 민망했다.

‘여러모로 중환자실 간호사들 고생이 정말 많구나. 싫은 내색 한번 안 하다니 대단하네.’

“앞으로 안 도와줘도 되겠죠?”

“퇴근도 늦으셨는데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김지훈이 막 돌아서려는 순간 박재순 환자가 물었다. 코 줄 때문에 답답한 목소리였지만 개복한 환자에 비해 힘이 실려 있었다.

‘나이와 수술 시간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라파로로 하길 잘했어.’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퇴근이요? 일찍 퇴근하는 건 아닙니다만 오늘은 특수한 경우라 더 늦었습니다. 신생아 응급 수술인 데다 우리 병원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어서 반드시 해야 할 수술이었네요.”

“프로그램이요?”

“그런 게 있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할 이유가 없었고, 환자의 수면을 방해할 때도 아니었다. 안정 잘 취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긴 김지훈이 병실을 나와 부지런히 중환자실로 향했다.

‘애만 보고 가자.’

박재순 환자가 잠을 청하지 못했다.

병실을 지키던 딸이 집으로 간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과 둘째 아들을 보는 자식들의 차가운 눈빛이 잊히지가 않았다.

‘그 많은 재산이 다 무슨 소용일까?’

때문인지 김지훈이 생각났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의사의 일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자신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물론 모든 환자를 똑같이 대하겠지만 특별하게 생각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버지, 불편하시겠지만 이제 그만 주무세요. 다른 문제는 퇴원 후에 생각하시고, 지금은 회복이 제일 중요합니다.”

“넌 욕심도 없어? 며느리가 먼저 간 후에도 평생 내 곁을 지켰으면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지.”

“어차피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모셨을 겁니다. 아버지! 전 형제들끼리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정말 싫습니다. 고집 꺾으시고,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 그래야 마음이 더 편해지실 거예요.”

박재순 환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통제 기운이 도는지 아들의 손을 잡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사실 표현하기 힘든 묘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마음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 시간.

병원을 나서던 김지훈이 원무과에 들러 무언가를 상의한 후 퇴근했다. 응급실 문을 살짝 열고 상황을 알아보는 일 역시 잊지 않았다.

다음 날.

민정호가 먼저 찾아왔다.

“어제 신생아 응급 수술을 하셨다고요? 중환자실에 있다고 들었는데 아이는 괜찮습니까?”

“지금까지는 다행히 별문제가 없네요. 안 그래도 민 부원장님을 보려고 했습니다.”

“비용 문제 때문에 그러십니까?”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요?”

“보증금을 십 원 한 장 내지 않았는데 수술과 입원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면 빤한 일 아니겠습니까? 환자 사정 일일이 봐주다간 병원 망하는 거 순식간입니다. 소아 희귀 질환 프로그램은 언급하지 마십시오.”

“부모 말 들으니까 사정이 꽤 딱한 것 같던데, 어차피 할 수술 당겨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그럼 다음 달 소아 수술은 없는 겁니까? 부자든 가난하든 딱하지 않은 환자 없습니다.”

매몰차게 말을 끊었다.

재정 문제에 있어서는 단 한 발도 물러나지 않았던 예전의 민정호로 돌아간 것 같았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사실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하기에 보호자들에게도 지불 일시 연장만 말했을 뿐 다른 얘기는 일절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왠지 야박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돈에 둔감해서는 개업할 운명이 아닌 것이 확실하긴 했다.

“그 얘기 하려고 왔어요?”

“휘플 라파로 홍보에 대해서 상의할 겸 겸사겸사 왔습니다. 해당 환자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고 해도 병원에 큰 득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이네요. 서도훈 선생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질 테니까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세요.”

민정호가 입가를 매만졌다.

보면 볼수록 희한한 사람이었다.

많이 변했다지만 이상하게 병원 홍보에 미적지근한 김지훈이었다. 그런데 흔쾌히 동의하다니, 아마도 본인 일이 아닌 후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 분명했다.

‘원래 성격이 이러신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서로 바쁜 처지였다.

할 말 다 한 이상 각자 자신의 일을 빨리 끝내야 정시 퇴근이 가능했다. 물론 일복 터지다 못해 수시로 폭발하는 김지훈은 또 늦겠지만 말이다.

민정호가 일어났다.

한마디 툭 던졌다.

“직원 가족 대우까지는 양보하겠습니다.”

“가족 대우요?”

“30퍼센트 이상은 안 됩니다. 그럼 이만!”

김지훈이 웃고 말았다.

이런 병원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진상미와 함께 재정 문제를 꽉 틀어쥐고 있는 민정호의 결정이기에 최소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양쪽 모두 득이라면 최고의 결정이었다.

기분이 확 좋아졌다.

가장 주의해야 하는 환자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이번 주에 간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십이지장루가 확실하게 막혀야 하는 한덕식 환자, 휘플 라파로를 받은 박재순 환자, 그리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신생아까지.

한 명이 몇 명 몫을 하는 환자였다.

‘확실히 많다!’

회진을 마친 김지훈이 빡빡해진 눈가를 문질렀다. 오늘도 정시에 퇴근하긴 글렀다. 이혁원의 논문을 최종 검토해 손일석과 진충기 교수에게 넘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창립학회에서 발표하려면 자료 책자에 미리 실어야 해 단 하루도 미룰 수가 없었다.

이혁원의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더 이상 손을 댈 내용이 없었다.

국제 학술지가 요구하는 수준에 완벽하게 충족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 차 심사도 통과하지 못하고 반려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수고했어. 손 교수와 상의 끝나는 대로 영문으로 작성 시작해. 내용만이 아니라 문장도 매끄러워야 하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자.”

사실상 큰일 하나를 끝냈다.

송진우의 논문 역시 훌륭할 것이다.

매사 이렇게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지 생각지도 못한 한가함이 찾아왔다. 의사에게 가해지는 심신의 부담이 줄어들면 환자에게도 분명 득이 되는 일이었다.

째깍! 째깍!

며칠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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