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가장 먼저 결정할 일이 있었다.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
신생아는 특히 그런 면이 강했다.
아무리 급해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수술 전후로 고령의 환자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응급으로 시행할지, 하룻밤이라도 대비할 시간을 가져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김지훈이 송진우를 보았다.
검증된 써전이지만 소아 외과 분야의 경험이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수술 실력은 물론 적절한 수술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체온은?”
“37.8도로 미열이 나고 있습니다.”
“혈액 검사는?”
“다행히 백혈구 수치가 증가한 것 이외에는 이상 소견이 없습니다. 감염의 우려가 있지만 탈수로 인해 열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마침 복부 사진이 나왔다.
소장 결손은 대부분 단순 방사선 촬영으로 진단할 수 있었다. 드물게 초음파를 시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결손 예측 부위는?”
“유문과 십이지장 첫 번째 부위 사이에서 폐쇄됐습니다. 하방 소장 폐쇄는 수술실에서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술 방법은 생각하고 있겠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좋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어. 응급으로 해야 할까? 아니면 단 하루라도 여유가 있을까? 어느 쪽으로 판단돼?”
송진우가 힐끗 아이를 보았다.
너무 작아 수술하기 불가능할 정도였지만 신생아에게 큰 문제가 되는 탈수 징후를 보여 미룰 시간이 없어 보였다. 자칫 가장 위험한 합병증인 장 천공까지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응급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근거는?”
송진우가 자신의 판단 근거를 설명했다.
김지훈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이혁원 선생, 강은미 선생, 어떻게 생각해?”
“저희 역시 응급이라고 판단합니다.”
“좋아. 나도 동의해.”
수술 팀 의견이 통일됐다.
완벽한 수술 전 처치가 요구됐다.
신생아를 수술하는 이상 외과 의사에게는 한계가 명확한 영역이었다. 성인이라고 해도 다른 과의 조언과 치료가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부탁해야 했다.
강은미에게 전적으로 맡길 일이었다.
소아과 전문의는 달랐다.
그동안 희귀 질환을 앓는 아이들의 수술을 함께 준비하며 경험까지 풍부하게 쌓았다. 전해질 균형과 탈수 교정부터 항생제 선택까지 빠르게 진행했다.
수술 방도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가장 힘든 일이 남았다.
보호자에게 마취와 수술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일가친척은커녕 남편마저 보이지 않아 더욱 하기 힘든 말을 꺼내야 했다.
“일반외과 김지훈입니다.”
“환우회에서 말씀 들어서 알고 있어요. 우리 아기는 수술만 하면 괜찮은 건가요?”
“실례지만 남편분은 어디 계십니까?”
“지금 오고 있을 거예요.”
눈물 젖은 눈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을 것이다. 생때같은 자식이 병원을 전전하다 전문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올 때까지도 말이다.
‘정말 기분이 안 좋네.’
“보호자분, 제 말 잘 듣고 동의서에 서명해 주세요. 지금 바로 수술에 들어갈 겁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 마취와 수술 모두 위험합니다.”
사망을 포함한 수술 후 합병증을 설명하는 동안 아이 엄마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두려움에 질려 덜덜 손발을 떨었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의사의 의무였다.
제 몸 추스르기도 힘든 산모였다.
주저앉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숱한 경험을 가진 김지훈도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설명을 마친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수술이 끝이 아니기에, 아이에게 엄마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희망을 주어야 했다.
“보호자분, 우리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반드시 아이를 살리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우리 아기 살려 주세요.”
무거운 분위기 속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이 올리자.”
엄마의 숨죽인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수술실이다.
신생아를 수술해야 하기에 김진호 교수가 직접 마취를 맡았다. 마취과 펠로우는 신중한 표정으로 아이와 차트를 확인하며 필요한 정보를 빠트리지 않았다.
“마취 시작합시다.”
띠띠띠띠띠띠띠!
산생아의 빠른 심장 소리는 경고가 아니라 수술을 버틸 수 있다는 신호였다. 작은 공기 주머니에 압박을 가할 때마다 오르내리는 가슴은 농도 짙은 산소를 충분히 받아들일 것이다.
곧 수술을 시작해야 한다.
김지훈이 송진우를 보았다.
경험은 어떻게 쌓아야 할까?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면 마이너부터 메이저 수술로, 쉬운 수술에서 어려운 수술을 해 가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으면 된다.
반면 소아는 달랐다.
일단 가장 흔하다는 충수돌기염부터 케이스 자체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떤 수술이라 해도 결코 난이도가 낮지 않았다.
특수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었다.
그렇다면 송진우는?
검증된 써전이었고, 비록 집도의는 아니었지만 이혁원 못지않게 경험을 쌓았다. 손의 특성 역시 섬세하고 부드러워 소아 수술에 딱 맞았다.
‘가장 적합한 수술 방법을 택한다면 진우 역시 집도하는 데 무리가 없다. 진우야, 내 질문에 머뭇거리지 마라.’
확인해야 했다.
“송진우 선생, 어떻게 수술해야 돼?”
“결손 부위를 자르고 이어 주려면 십이지장을 건드려야 합니다. 바이 패스가 좋겠습니다.”
By Pass(우회로 수술)!
“필요한 기구는?”
“루뻬 사용이 필요합니다.”
“루뻬 사용 얼마나 해 봤어?”
“익숙해진 정도는 됩니다.”
혈관 수술을 강조하며 손일석에게 배우게 한 보람이 있었다. 무엇보다 타고난 성실성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수술에 임했을 송진우였다.
“이혁원 선생은?”
“동의합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간단한 질문 속에 답이 나왔다.
‘진우는 이미 소아 외과 전문의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수술을 제한하다간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선천성 질환 중에 이보다 쉽거나 어려운 수술은 없다.’
결정을 내렸다.
“집도해.”
“예? 제가요?”
“소아 외과 한다며? 내가 퍼스트 설게.”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김지훈이 집도의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으며 강한 신뢰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얼굴이 다소 벌게진 것 같았지만 절대 불안이나 두려움이 아니었다. 약간의 흥분이자 강한 책임감이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딱 맞춰 마취가 끝났다.
김진호 교수가 미소를 머금었다.
“송진우 선생, 아이는 우리가 책임질 테니까 서두르지 말고 수술해. 김 부원장이 인정한 써전 실력 좀 보자.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송진우가 눈가에 힘을 주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작은 메스가 유난히 커 보였다.
작은 복부를 절개했다.
미처 발달하지 못한 근육 덕에 아주 쉽게 복막을 열어 복강 내 장기를 확인했다. 간과 비장을 비롯해 고형 장기 모두 정상적이었다.
소장을 확인할 차례였다.
단순 복부 촬영에서 관찰된 병변은 유문 직하방의 결손 단 한곳이었다. 모유를 먹거나 숨을 쉴 때 위로 유입된 공기가 소장으로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추가 병변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수술 팀 모두 긴장했다.
한 군데뿐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만일 다발성 소장 결손이 발생했다면 정상 부위만 남기고 모두 절제해야 했다. 소화 흡수 능력이 약한 신생아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송진우가 소장을 잡았다.
차례차례 끄집어내 병변을 찾았다.
말단 부위이자 가장 긴 회장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관건은 가장 빈발하는 부위인 십이지장과 공장 초입이었다. 십이지장에 가까워질수록 긴장이 치솟았다.
마침내 후복막에 묻혀 있는 십이지장을 제외한 모든 소장을 확인했다. 거짓말처럼 딱 한곳에만 발생한 병변에 송진우를 비롯해 수술 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지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송진우 선생, 십이지장은 확인할 필요가 없나?”
“황달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담즙이 잘 통과된다는 의미입니다. 췌장 역시 정상적으로 보이고, 촉진상으로도 결손이 의심되지 않습니다. 바이 패스만 시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좋아. 진행하자.”
“결손 부위는 그대로 놔두고, 공장 끌어 올려 위 측면에 연결하겠습니다.”
방법은 간단했다.
우회로 수술이란 말 그대로 적절한 길이의 공장을 확보한 후 위의 옆면에 이어 주면 된다. 문제는 공장은 새끼손가락 굵기밖에 안 되고, 위 역시 연약하다는 것이었다.
섬세하고, 정교한 손이 필요했다.
수술이 시작됐다.
공장과 위를 확보한 송진우가 간호사를 보았다.
“루뻬!”
모든 것이 확대돼 보였지만 절대 속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조그만 손상만 줘도 신생아의 몸은 견뎌 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시작합니다. 메스! 거즈!”
공장을 열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음식물을 접하지 못해 텅 비어 있었다. 영양실조에 가까운 상태로 인해 모든 장기 조직이 약해졌을 것이다.
송진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공장의 열린 구멍에 맞춰 위를 열었다.
신생아이기 때문에 사소해 보이는 출혈도 주의해야 했다. 반드시 남겨야 할 주요 혈관 역시 가늘어 전기 소작은 물론 수처 한 바늘마저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석션! 거즈! 보비! 수처! 타이!”
필요한 만큼 지혈을 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렇게만 가자.’
연결이 시작됐다.
루뻬로 본다고 해도 한 바늘 한 바늘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긴장을 유발했다. 더구나 작은 아이 앞에 성인 세 명이 섰다. 시야를 확보해야 하는 이혁원까지 허리조차 함부로 펴지 못했다.
아이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세상의 빛을 본 한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더한 일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었다.
“수처! 타이! 컷!”
조금씩 위와 공장이 연결됐다.
성인이었다면 불과 한 시간 언저리에 끝날 수 있는 과정이었지만, 모든 구조가 너무 작고 약해 힘들고 어렵기만 했다.
송진우의 끈기가 대단했다.
무척 불편한 자세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루뻬 뒤에 가려진 눈은 오직 수술 부위만 보았고, 기구를 쥔 손은 섬세하게 움직였다.
마지막이 가까워졌다.
가장 작은 기구를 사용했지만 아이의 장기는 더 작았다. 조금만 과도한 힘을 가해도 피멍이 들 정도로 약한 조직에 점점 손이 느려졌다.
송진우의 긴장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미 이마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불과 두 시간도 안 지났지만 허리부터 어깨까지 온몸이 아우성을 치고 있을 것이다. 집중력이 유지되는 한 참아야 했다. 힘들다고 멈춘다면 아이는 그 이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은 말없이 퍼스트 역할에만 충실했다.
‘잘하고 있어. 이 아이는 송진우 네가 살리는 거야.’
한 바늘이 남았다.
송진우가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가늘고 연약한 공장이 마침내 위와 연결됐다. 통로의 크기는 적당했고, 수처한 부위는 누가 보아도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선생님!”
“난 잘됐다고 보지만 최종 판단은 집도의 몫이야. 아이가 퇴원할 때까지 책임지면 돼.”
다시 한번 수술 부위를 살핀 송진우가 눈가를 굳혔다. 김지훈은 물론 이혁원의 눈빛이 편안하게 보였다. 집도의로서 할 일을 제대로 했다는 의미였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야 수술 팀 모두 허리를 폈다.
우두둑! 우두둑!
배 속을 씻고, 작은 드레인 하나를 박은 후 배를 닫았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남겠지만 의사에겐 한 아이를 살린 징표였다.
아이만 울면 된다.
김진호 교수의 노련함이 빛났다.
“으앙! 으아앙!”
가늘고 힘없는 울음이라 해도 이보다 반가운 소리는 없었다. 힘든 수술이 잘 끝나면 없던 힘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회복실로 향하는 송진우의 발걸음에 활기가 가득했다.
‘해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지훈도 웃고 있었다.
소아 외과 써전으로 우뚝 설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