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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41화 (1,241/1,329)

7화

고령의 환자, 대수술을 받은 환자는 언제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최대한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환자를 병실로 옮겼다.

수술 방 앞이 보호자로 가득했다.

“아버지!”

“선생님, 수술 잘 끝난 겁니까?”

가족 인원이 너무 많은 데다 수술 결과를 설명하기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다들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까지 보였지만 정작 환자가 가장 의지하는 자식인 둘째 아들은 멀찍이 밀려나 있었다.

“일단 병실로 가신 후에 설명드리겠습니다. 수술 잘됐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보호자들의 병실 출입을 잠시 막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바이탈을 측정하는 기구까지 설치한 뒤 수술 후 첫 번째 드레싱을 했다.

피가 약간 묻어 나올 뿐이었다.

“환자분, 여기 어디인지 아시겠어요?”

“병실.”

아직도 마취 기운이 남았는지 힘없이 눈을 떴지만 정확하게 대답했다. 기타 기본적인 질문을 한 결과 환자의 의식 역시 문제없었다.

보호자를 따로 만났다.

당직실이 꽉 찼다.

수술 과정 및 경과를 설명했다.

당장은 괜찮아 보이지만 췌장과 담도를 절제하는 휘플이라는 수술의 특성상 앞으로 일주일이 고비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김지훈이 살짝 당황했다.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걱정이 돼 아예 말을 하지 못하거나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사전에 설명한 내용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연세가 많으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듭니다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전에 설명한 것처럼 큰 수술을 받은 고령의 환자는 폐렴을 포함한 합병증이 잘 발생해 주의를 요한다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한동안 대화가 오갔다.

김지훈이 좀처럼 얼굴을 펴지 못했다.

보호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특히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정신적 이상이나 치매 등에 대해 물을 때는 보호자들의 속을 알 수조차 없었다. 아예 없는 일은 아니지만 아주 특수한 합병증까지 걱정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환자분은 정신이 또렷해야 한다고 하고, 보호자들도 수술 후 극도로 드물게 발생하는 일시적 치매를 걱정하다니 도대체 뭐야? 재산을 두고 싸운다더니, 지금 막 수술을 받은 아버지에게 유언장이라도 받을 셈인가?’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만큼 보호자들의 말과 태도가 이상했다.

의사가 절대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나마 면담이 끝날 무렵 둘째 아들의 말에 다소 마음이 놓였다.

“선생님, 당분간 돌아가며 병실을 지킬 예정인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아! 미처 설명을 못했네요. 복강경으로 수술하긴 했지만 환자분이 통증이나 불편을 자주 호소하실 겁니다. 그때마다 바로 말씀하시고, 특히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리면 즉시 알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수술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야 들어야 할 말을 들었다.

다들 닮은 걸 보니 한배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을 것이다. 자식들 간에 보이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째 아들과 다른 형제들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네. 설마 이복형제? 그런 자식치고는 다들 너무 닮았는데 아닌가?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 혹시 혼외 자식? 에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쨌든 수술 전 상담을 했을 정도로 환자 심리 상태가 중요했다. 수술 후에는 심신이 지쳐 더욱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재산 문제든 뭐든 간에 빨리 정리하고 안정을 취하길 바랐다.

이상스레 걱정이 앞섰다.

결국 고경아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늘 하루 종일 수술했는데 괜찮겠어요?)

“처음 시도한 수술이라 그런지 마음이 놓일 때까지 병원에 있어야겠어요. 가급적 빨리 들어갈게요.”

(식사 꼭 챙겨요.)

허구한 날 수술을 하고, 이보다 큰 수술도 많았다. 의사 가족이라고 해서 쉽게 이해해 줄 일이 아닐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아내와 한 수술 팀이란 사실이 정말 고마웠다.

그런 아내가 또 있었다.

“서도훈 선생, 퇴근 안 해?”

“선생님은요?”

“난 집이 훨씬 가깝잖아. 걸어서 일이십 분 거리라 환자 안정되는 거 보고 들어가도 돼.”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세요. 우리 와이프가 이번 수술 같은 경우라면 며칠 안 들어와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선생님 넘어서야 한다는 말까지 하네요.”

김지훈이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믿고 이해하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서도훈에겐 어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너도 그만큼 노력했겠지. 이런 건 배워야 하는데 비법이라도 있나?’

잠시 서도훈을 보며 입을 열까 말까 고민하던 김지훈이 탁탁 손뼉을 쳤다. 가정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었고, 당면한 일이 있었다.

휘플 라파로에 대한 평가였다.

“서도훈 선생, 오늘 꼬박 아홉 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다음에는 단축시킬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솔직히 제가 집도하면 그 이상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번이라도 보고, 못 보고의 차이가 커서 더 걸리진 않을 거야. 하지만 막상 오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줄이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여. 수술 시간 문제 때문에 휘플 라파로에 대한 찬반 논란을 일으킬 것 같지 않아?”

김지훈이나 서도훈은 물론 다른 병원 췌장 파트 전문의들이 전통적 방식으로 수술하는 경우 오래 걸려야 여섯 시간 전후였다.

수술 시간을 줄이지 못한다면 무려 세 시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비교적 고령에서 발생하는 췌장암의 특성을 생각하면 분명 적지 않은 차이였다.

“세 시간 차이면 라파로의 장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으니까 수술 무용론까지 나올 수 있겠네요.”

“배제할 수 없어. 관건은 결국 경험이야.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 시간을 줄일 수 있잖아. 나중에 혹시 강한 반발에 부딪치더라도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도훈이 힐끗 눈길을 주었다.

“다음부터는 안 하실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너보다 적어서 그렇지, 나도 췌장 환자를 보는데 그럴 리가 있어? 내 환자는 내가 수술할 거니까 방심하지 마. 실력 향상에는 경쟁이 최고 아니야?”

“맞습니다. 사실 제가 문제죠. 능력도 안 되면서 욕심을 부릴까 봐 걱정이 됩니다.”

“별소리를 다 하네. 난 그런 걱정 안 한다.”

첫 시도에서 성공했다는 기쁨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라파로 휘플을 한 건 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수술을 반복하며 정확한 결과를 얻어야 어떤 수술에 더 강점이 있는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수술 복기가 이어졌다.

어느새 열 시가 됐다.

김지훈과 서도훈이 약속을 한 것처럼 동시에 일어나 박재순 환자의 병실로 향했다.

드르륵!

드레싱 카를 끌며 말이다.

환자에겐 늦은 밤이었지만 수술 첫날이기에 심지에 묻어나는 체액의 양상을 꼭 확인해야 했다. 겸사겸사 환자 상태까지 살필 기회였다.

괜히 힘썼다.

나종진이 이미 드레싱을 하고 있었다.

“나종진 선생, 어때?”

“출혈 징후는 없습니다.”

심지에 대 놓았던 거즈가 다소 발그스름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개복 때보다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출혈이 한결 적어 보여 복강경 수술의 장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김지훈이 환자를 보았다.

드레싱이 주는 자극에 깨어 있었다.

“환자분, 수술 잘됐습니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많이 아프지는 않습니까?”

“참을 만합니다.”

복강경으로 했다고 해도 장기를 빼내느라 배꼽 상방을 다소 크게 열었다. 더구나 코 줄과 소변 줄이 주는 불편함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시기였다.

인내력이 대단한 환자였다.

“억지로 참으실 필요 없습니다. 불편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금 몇 시죠?”

“열 시가 조금 넘었네요. 힘드실 텐데 단 몇 시간이라도 주무셨으면 좋겠네요.”

박재순 환자의 표정이 묘했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지훈과 서도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김지훈은 규모가 작다고 해도 대학 병원의 부원장이었다.

하루 종일 수술을 했고, 아래 의사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이 밤까지 남아 자신을 보러 왔다는 사실에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박재순 환자가 첫째 아들 뒤에서 조용히 아버지를 보고 있는 둘째 아들을 찾았다.

“침대 좀 세워 다오.”

다들 깜짝 놀랐다.

“환자분, 누워 계세요.”

“아버지! 무리하지 마세요.”

“괜찮아.”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절반쯤 세운 침대에 몸을 기댄 박재순 환자가 돌연 미소를 머금었다. 통증과 불편 속에서 지은 미소였지만 수술 당일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값졌다.

김지훈의 손을 잡았다.

“두 분 박사님을 만난 것이 내게는 정말 행운입니다. 고맙습니다.”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상스레 따스했다.

개복했다면 꼼작도 못했을 환자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했건만 이제야 라파로 휘플의 장점을 온몸으로 느꼈다. 환자가 주는 안도감과 일종의 확신에 새삼 성공했다는 희열과 흥분이 다가왔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까?’

서도훈도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의지가 대단하시고, 경과도 의외일 정도로 좋아 보이시네요. 지금은 폐렴을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숨 크게, 크게 쉬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병실에서 나왔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 곁에 바짝 붙어 있었고, 둘째 아들은 따라 나와 밤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물었다. 언뜻 유일하게 아버지를 걱정하는 자식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부원장실로 돌아와 퇴근 준비를 했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손일석이었다.

“불 켜 놓고 퇴근할 김지훈이 아니지. 하루 종일 수술하고 피곤하지도 않아? 뭐 하느라 퇴근도 못했어?”

“그러는 넌?”

“진충기 선생님하고 간 이식 파트 운영 문제로 상의할 일이 있어서 늦었지. 겸사겸사 우리 김 부원장님 완전히 밀어내자는 작당모의도 하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잘해 봐.”

“여유 넘치네. 우리는 한길만 파고 있다. 라파로 휘플이 대단한 성취기는 하지만 간 이식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

김지훈이 피식 웃다 말고 눈길을 주었다.

간만에 갖는 둘만의 자리였다.

손일석의 촉이 여전한지 궁금했다.

박재순 환자를 보며 느낀 점을 말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 이유야 빤하지, 뭐. 아버지는 웬만한 부자쯤은 귀싸대기 때릴 수 있는 재력가고, 자식들은 그 돈만 바라보고 있는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기서부터 추측인데, 둘째 아들에게 유산을 더 많이 남기려는 것 같아. 당연히 다른 자식들, 특히 첫째가 반발하겠지. 노인네는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불만을 가진 자식들은 유언장이 마음에 안 들 경우 치매나 심신미약? 뭐 그런 이유를 대며 무효화시킬 작정이 아닐까?”

“돌아가시지도 않은 분을 두고 유산 싸움을 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그런 기색이 하나도 없던데 이상하네.”

손일석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사람 속 모르는 거야. 그런데 왜 남의 가정사에 관심을 가져? 심리적 안정도 중요하지만 싸움은 구경이 원칙이야.”

“무슨 소리야?”

“불구경, 싸움 구경이 왜 가장 재미있다고 하겠어?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거야. 당사자여 봐. 지옥이자 악몽이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소리도 마찬가지야. 공연히 참견했다가는 개피만 본다.”

맞는 말이었다.

“누가 몰라서 그래? 회진 돌 때마다 어색한 분위기를 보는 것도 고역이야. 보호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그래서야 되겠어?”

“에휴! 자고로 양쪽 말 다 듣기 전에는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나 자식들이나 다 잘못한 게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김 부원장님은 치료만 열심히 하시고, 싸움은 구경만 하셔. 우리 영역 아니다.”

“알아. 환자가 걱정돼서 그래.”

“처음 시도한 라파로 휘플이 꼭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고? 정 환자 심리 상태가 걱정되면 혹시 말이 나오더라도 듣기만 해. 재산 싸움을 말할 리는 없겠지만 말이야. 뭐 좋은 일이라고 말하겠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사실 쓸데없이 심력만 소모하는 일이었다. 다만 이젠 몸만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환자를 깊게 이해해 마음까지 열었을 때 보다 의사다운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퇴근하자.”

앞장선 김지훈을 보던 손일석이 입맛을 다셨다.

‘방앗간도 아니고!’

가는 길이라며 박재순 환자와 한덕식 환자의 병실에 들르고 있었다. 모두들 자는 시간이라 고개만 슬쩍 들이밀고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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