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김지훈이 고경아를 보았다.
“소장 처리한 후 췌장부터 연결합니다.”
탁!
필요한 기구가 손바닥에 놓였다.
공장 이하 부위만 남은 소장을 처리해 각 장기에 연결할 수 있을 정도의 길이를 확보해야 했다. 대략 20센티미터가 요구됐다.
적절한 유동성과 동시에 소장의 혈류가 충분히 유지될 수 있도록 혈관 처리에 유념해야 했다. 인체의 특징에 맞춰 외과 수술이 발전한 것인지 몰라도, 소장에 분포하는 혈관은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어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다.
김지훈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장간막을 자르고, 그 안에 분포하는 혈관을 파악한 후 곧바로 소장을 처리했다. 이내 세 개의 장기에 연결하기에 충분한 길이를 확보했다.
“서도훈 선생, 이 정도면 되겠지?”
“충분합니다.”
“오케이! 췌장과 연결하자.”
End to end anastomosis.
공장의 열린 부분 끝과 췌장의 절단면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단단문합이다. 누차 강조한 것처럼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장기를 이어 주는 과정은 극도의 주의를 요했다. 췌장이란 장기의 위험성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첫 번째 수처를 시작했다.
‘겁을 내면 손이 흔들리고, 결국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자신감을 갖자.’
기구를 통해 전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공장과 두부처럼 연약한 췌장이 주는 이질감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복강경 수술을 하며 가장 많이 한 술기가 또한 수처였다. 그러나 경험과 결과가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타이! 컷!”
두 개의 장기가 맞붙기 시작했다.
대가라 해도 조직 속에 숨은 미세혈관을 피할 재주는 없었다. 출혈이 적은 경우는 경험을 믿고 그대로 타이를 시행했지만, 조금이라도 불안하게 보이는 출혈은 재차 수처를 해야 했다.
촘촘히 꿰맨다고 무조건 안전한 것이 아니었다. 수처 간격이 너무 좁으면 오히려 조직 괴사를 일으켜 문합 부위가 터질 수 있었다.
적절한 간격을 유지해야 했다.
타이 역시 췌장의 손상을 막기 위해 지나친 압력을 가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허용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출혈에 대비해 확실한 시야가 요구됐지만 카메라를 함부로 접근시킬 수도 없었다.
수술 팀에게는 모든 요소가 강한 압박이었다.
한 바늘, 한 바늘.
소장을 뚫고 나오는 바늘이 예리하기만 했다.
췌장을 통과할 때마다 숨을 죽여야 했다.
수없이 한 타이였지만 자칫 과도한 힘에 췌장을 찢고 들어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천천히 조심조심!’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서도훈과 나종진 역시 극도의 긴장 속에서 기구를 조작했다. 집도의의 기구 조작을 방해하는 순간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상상만으로도 섬뜩할 것이다.
몇 바늘 남지 않았다.
김지훈의 손이 더욱 느려졌다.
연결의 핵심인 소장의 점막과 췌장 조직을 정확하게 잡아야 하건만 결코 쉽지 않았다. 점막을 놓쳤다고 바늘을 빼고 다시 찌를 수도 없었다.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었다.
“소장 점막 보이도록 카메라 더 접근시켜.”
좁은 공간이 더 좁아졌다.
기구를 놀릴 최소한의 여유만 남았다.
집도의의 실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었고, 김지훈은 수술 팀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정확한 수처가 적절한 타이로 이어져 마침내 마지막 바늘만 앞뒀다.
실수가 많이 발생하는 부분인 탓에 가장 잘 터지는 부분이었다. 수술 팀 모두 모니터에 눈을 박은 채 마지막 한 바늘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었다.
김지훈의 집중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예리한 바늘이 소장을 지나 췌장을 통과했다. 카메라를 바짝 접근시켜 확인한 결과 점막을 정확하게 잡았다. 타이를 한 후 남은 매듭이 단단하게 두 개의 장기를 연결하고 있었다.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라도 연결 부위에 틈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전면부에 이어 후면부까지 신중하게 살핀 결과 개복 때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소장 췌장 문합은 성공한 것이다.
“후우!”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일순 맥이 풀린 것 같았다.
김지훈도 잠시 손을 멈추고 뻣뻣한 목을 돌려 과도한 긴장을 풀었다. 적절한 긴장과 집중력이 유지되고 있을 때 다음 과정을 진행해야 마땅했다.
오랜 수술은 장애 요인이 아니었다.
“담도 연결합니다.”
End to side anastomosis.
담도의 절단면과 소장의 측면을 연결하는 단측문합술이다. 담도 직경에 맞춰 소장을 적당하게 절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물론 기구를 이용해 연결하는 과정은 별개의 어려움을 가진 문제였다.
김지훈이 소장을 잡았다.
공장 췌장 문합 부위에 압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적절한 간격을 두고 절개 부위를 결정했다. 서도훈의 동의를 확인한 후 메스로 살짝 공장을 갈랐다.
“모스키토! 멧잼!”
수술용 가위로 필요한 만큼 열었다.
소장 내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복강 내 오염이었다.
수술 팀이 재빨리 대처했다.
“거즈! 석션! 보비!”
내용물을 곧바로 제거했다.
절개면을 따라 피가 흘렀다.
절개 부위 양쪽을 장겸자로 잡고 있지만 혈류를 차단할 정도가 아니었다. 소장 벽의 출혈이 두려워 완벽하게 차단시켰다간 혈류 부족으로 담도와 붙을 수가 없었다.
적절한 수준에서 지혈시켰다.
대신 시야가 나빠지는 것을 감수해야 했지만 이미 췌장과의 연결을 성공했다. 더구나 개복을 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시작합시다.”
췌장과 완전히 반대되는 장기였다.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단한 조직에 공장을 연결해야 했다. 기구 조작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상대적으로 수월한 과정이었다.
단, 문합 부위가 터지면 췌장 부위가 터진 것과 결과가 다르지 않았다. 방심하면 실수하기 마련이었다. 더욱 신중하고 정확하게 진행시켜야 했다.
김지훈이 동일한 원칙을 견지하며 꼼꼼하게 수처를 했다. 상대적으로 시야가 좋은 데다 담낭 담도 쪽 수술은 워낙 경험이 많아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서도훈과 나종진 역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한결 편안한 눈빛을 보였다.
“수처! 타이! 컷!”
깔끔하게 끝났다.
“서도훈 선생, 어때?”
“예쁜데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김지훈이 피식 웃으며 마지막 연결을 준비했다.
유문과 공장을 단측문합 하는 과정이었고, 일반적인 장과 장의 연결은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술기였다. 하지만 췌장 이상의 중요도와 위험성을 가졌다.
세 개의 장기와 연결된 공장의 모습은 마치 물음표(?)를 옆으로 뒤집은 것과 같다. 윗부분 끝부터 췌장, 담도 순으로 연결하고, 점이 있는 부위에서 유문을 이어 준다.
결국 췌장액과 담즙은 물론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상당한 양의 위액이 모두 유문 연결부를 통과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가장 강한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어 터질 위험성이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유문 보존술을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마저 부족한 상황이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반면 수술 시간이 일곱 시간에 육박했다.
수술 팀에게도 부담이 가해질 상황이었지만 무엇보다 고령인 환자 상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을 떠나 장기 절제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김지훈이 목을 돌리며 물었다.
“마취과, 바이탈 어때요?”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진행해도 됩니다. 휴식까지요.”
역시 윤서연이었다.
“감사합니다. 오 분 정도 쉽시다.”
대여섯 시간 이상 쉬지 않고 수술하다 보면 당연히 육체적 부담이 가중된다. 더불어 수술복에 덧입은 두툼한 가운 때문에 땀으로 흠뻑 젖기 일쑤였다. 소변조차 마렵지 않을 정도로 탈수가 발생하기에 우유 한 모금도 큰 힘이 되기 마련이었다.
텁텁한 입 안에 물기가 돌았다.
짧은 시간이라 해도 귀중한 휴식이었다.
김지훈이 다시 긴장을 끌어 올렸다.
“시작합시다.”
췌장과 담도 연결부에 압력이 가해지지 않는 적당한 부분의 공장 측면을 열어 처리했다. 유문과 연결된 십이지장과 크기가 비슷한지 확인한 후 마지막 과정을 시작했다.
유문은 근육으로 이루어진 부분이었다.
바늘과 실이 통과해 흉을 만들게 되면 가장 중요한 기능인 음식 통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따라서 정확하게 십이지장의 남은 부분과 공장을 이어 주어야 했다.
“수처! 타이! 컷!”
차근차근 진행됐다.
사전에 숙지한 대로 모든 위험 요소를 피해 가며 오직 수처에만 집중했다. 특히 췌장과 담도를 연결한 부위에 쓸데없는 힘이 가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손 대신 기구일 뿐이었다.
점막과 점막을 확실하게 잡아 적절한 간격으로 봉합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집도의, 퍼스트, 세컨, 전담 간호사인 고경아까지 하나가 됐다.
띠! 띠! 띠! 띠!
슈욱! 슈욱!
규칙적인 심장 소리와 인공호흡기 소리만 나직하게 들렸다. 완벽에 가까운 집중이 유지되는 가운데 모두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바늘, 한 바늘.
발그스름한 점막이 차례차례 사라지고, 연분홍색의 소장이 단단하게 맞붙었다. 매듭만 남은 타이는 절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끝이 다가왔다.
마지막 바늘이었다.
이 한 바늘이 수술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었다. 칠십삼 세 고령의 환자에게 재수술은 치명적이기에 수술 팀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타이! 컷!”
마침내 핵심 과정이 모두 끝났다.
묘한 흥분이 감돌았다.
‘아직 기뻐할 때가 아니야.’
신중한 눈으로 유문 연결부를 확인한 김지훈이 곧바로 췌장과 담도 부분을 다시 살폈다.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고, 미흡한 부분 역시 보이지 않았다.
성공이 눈앞에 있었다.
김지훈도 내심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환자가 깨어날 때까지 수술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마무리를 하는 중에도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었다.
“서도훈 선생, 마무리해도 되겠지?”
“예. 마무리하시죠.”
확실히 들뜬 목소리였다.
‘집도하게 되면 흥분하라고 해도 흥분하지 못할 텐데 퍼스트일 때 즐겨.’
힐끗 눈길을 준 김지훈이 수술 부위 세척을 시작했다. 단지 흘러나온 피나 조직을 제거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매 순간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좋아. 잘됐다.’
심지를 넣었다.
배꼽 상방에 난 절개창을 확장해 비닐 주머니에 담긴 췌장, 담도, 담낭, 십이지장을 꺼냈다. 조그만 암 덩어리 하나 때문에 장기 네 개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이 때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확장시킨 절개창을 봉합한 후 다시 카메라를 넣어 철저하게 마지막 확인 작업을 거쳤다. 마음 같아서는 몇 번이고 반복하고 싶었지만 여덟 시간이 넘었다.
끝내야 할 때였다.
피부 절개창을 봉합했다.
윤서연이 바로 깨우기 시작했다.
“환자 병실로 올라가는 거죠?”
“예. 중환자실로 가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깨워야 했다.
사실 수술 전 중환자실에서 관찰할 필요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명확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성공 여부를 떠나 심리적 불안이 더 큰 위험 요인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오늘 밤은 병원을 떠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환자가 눈을 뜨지 못했다.
바이탈은 안정적이었지만 수술과 마취 시간만 여덟 시간 반에 육박했다. 분명 고령의 환자가 버티기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환자분, 힘내세요. 수술 잘 끝났습니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반응이 없었다.
김지훈이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점점 초조해져 중환자실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환자의 손가락이 꿈틀 움직였다. 눈을 감은 채 입가로 손을 가져가며 본능적인 괴로움을 호소했다.
숨구멍을 막은 튜브 때문이었다.
좋은 징후였다.
마침내 윤서연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호흡이 충분한지 확인한 후 튜브를 뽑았다.
“크으으! 으으!”
나직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회복실로 옮깁시다.”
김지훈이 이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동안 회복실을 지켜야겠지만, 눈을 뜨고 괴로움을 호소하는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길 필요가 없었다.
보글보글!
바이탈을 표시하는 모니터 소리와 함께 산소 공급기를 통과한 산소 방울이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자발 호흡의 강도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별일 없겠지.’
째깍! 째깍!
막 오후 여섯 시가 넘는 순간!
박재순 환자가 고개를 돌렸다.
흐릿한 시야 속에 한 사람이 보였다.
“김 박사…….”
“예. 김지훈입니다. 수술 잘 끝났습니다. 숨 크게 쉬세요. 병실 올라가셔야죠.”
환자가 더듬더듬 무언가를 찾았다.
김지훈이 환자의 손을 잡았다.
차고 창백해진 손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박재순 환자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오랜 기간의 꿈, 라파로 휘플을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