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병실이 보호자로 바글바글했다.
아버지 혹은 시아버지가 다른 병도 아닌 췌장암으로 수술하는 이상 당연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박재순 환자의 눈치가 영 이상했다.
코 줄과 소변 줄이 주는 불편과 고통, 수술 전 긴장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불안과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 수술 잘 받으세요. 괜찮을 겁니다.”
장남의 말에도 눈을 감은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지훈이 묻는 말에 간단히 대답한 후 자식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람 심리 상태가 말 몇 마디로 좋아질 수 없겠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꽤 신경이 쓰였다.
‘뭔가 불안해. 작은 수술도 아닌 데다 라파로로 처음 시도하는 수술이라서 이런 기분이 드나?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개복해 수술하는 경우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점에 집중하자. 환자에겐 실패가 가장 큰 위험이다.’
어떤 환자보다 많은 가족들이 모였지만 수술 방 앞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결국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환자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수술 잘 끝낼 테니 마음 편히 가지세요. 아버님 건강이 달린 일입니다.”
‘아버님?’
환자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마취가 시작됐다.
띠! 띠! 띠! 띠!
고령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심장은 튼튼했다.
수액을 따라 정맥 마취제가 투여됐다.
빠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근이완제를 주입한 후 치아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기관 내 삽관을 시도했다. 곧바로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윤서연이 모니터 속 산소 포화도를 확인했다.
97퍼센트.
폐 기능도 만족스러웠다.
“연세에 비해 참 건강하신 분이네요. 수술 준비 다 됐으면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서도훈과 나종진이 침착하게 자리를 잡았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배꼽 위를 절개했다.
신중하게 에어팁을 꽂아 복강 내에 공기를 채운 후 카메라를 삽입했다. 모니터를 따라 칠십삼 세 노인의 장기가 보였다.
“간, 비장, 장간막, 림프절 모두 깨끗하게 보이네요. 원격 전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좋아. 진행하자.”
세 개의 구멍을 더 뚫었다.
필요한 기구를 삽입한 김지훈이 수술 팀을 보았다. 무수한 노력 끝에 여기까지 왔다. 첫 시도이기에 반드시 성공해야 했고, 수술 팀의 능력을 믿었다.
‘췌장 부분에 있어 서도훈 선생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자고, 나종진 선생은 라파로에 전념한 써전이다. 이런 팀을 꾸린 이상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수술이다.’
각오를 다졌다.
“켈리! 보비!”
대망, 즉 위와 대장을 연결하는 구조물을 자르고 췌장에 접근했다. 다소 마른 체격 덕분에 췌장의 몸통과 꼬리 부분이 선명하게 보였다.
겉보기에 말짱하지만 암 덩어리는 머리 부분에 발생했다. 예상되는 위치에서 충분한 간격을 두고 췌장을 절제해야 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복강경을 이용한 췌장 절제 경험을 쌓았다. 가장 주의해야 할 구조물인 혈관 역시 간 이식 수술을 하며 주행과 분포까지 확실하게 파악했다. 하지만 결코 쉬워지지 않는 수술이었다.
더구나 휘플이다.
암 수술의 원칙대로 췌장, 담도, 십이지장을 한 덩어리로 떼어 내야 한다. 개복을 해도 어려운 과정이건만 다시 통로를 이어 주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긴장을 불러왔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췌장 절제합니다. 보비!”
겉면에 절단 선을 표시했다.
날카로운 메스를 따라 췌장이 절개됐다.
미세 혈관이 잘리며 흐르는 피.
모니터로도 보기 힘든 가느다란 소화관.
탄탄해 보이지만 연약한 췌장 조직.
모든 요소가 난관이었다.
“모스키토! 수처! 타이! 보비!”
소장과 연결된 부위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깔끔하게 절제해야 했다. 과도한 출혈과 소화액 유출부터 조직 손상까지 문합 부위가 약해지는 요인을 절대적으로 피해야 했다.
김지훈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오직 기구와 모니터에만 집중했다.
서서히 췌장의 속살이 드러났다.
가장 주의해야 할 소화관이 노출됐다.
관 밖으로 소화액이 유출되는 순간 장기를 녹이겠지만 반대로 흐름이 막히면 췌장에 염증을 발생시킨다.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췌장염을 방지하려면 여유를 두면서도 최대한 깨끗하게 절단해야 했다.
“소화관 자릅니다. 메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술이었다.
열린 구멍을 통해 소화액이 흘러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끝부분을 묶어 유출을 방지한 후 소장과 연결할 때 열어 줘야 안전했다.
췌장 후면부가 남았다.
후복막에 묻힌 데다 간으로 가는 혈관이 바로 인접해 지나가는 부위였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후면부를 박리하며 절제를 진행했다.
시야가 좁아졌다.
한 방울의 피마저 수술을 방해했다.
췌장 머리 부분을 모두 들어내면 담도 쪽으로 박리하는 과정을 곧바로 진행해야 한다. 위험 구조물이 더욱 많아져 지금부터 수처와 보비로 지혈하는 것조차 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거즈! 이리게이션(Irrigation)! 석션!”
췌장에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퍼스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서도훈의 긴장이 고조됐다.
단순히 자르고 끝나는 수술이 아니기에 어느 한 부분 중요하지 않은 부위가 없었다. 나종진 역시 시야를 확보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마침내 후면부까지 모두 잘랐다.
젖은 거즈로 절단면을 보호하는 동시에 머리 부분에 남아 있는 소화관을 처리했다.
김지훈이 뻑뻑한 목을 돌렸다.
‘시간은 점점 단축되지만 몇 번을 해도 힘들긴 마찬가지네. 췌장은 정말 만만치 않아.’
이제 첫 번째 장기를 절제했을 뿐이었다.
휴식을 취할 타이밍도 아니었다.
“담도, 담낭 절제 들어갑니다.”
췌장 머리 부분의 상방으로 박리를 시작했다. 간 이식을 하며 수없이 본 부위기에 눈에 환했지만 복강경 수술은 예외를 허락하지 않았다.
간 문맥, 간 동맥, 췌장 동맥까지 복잡하게 주행하는 이상 단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담도가 꽤 단단한 장기라는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어차피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가느다란 혈관을 잡아도 별문제가 없다는 점이었다.
빠르게 박리가 진행됐다.
담도 밑면을 따라 췌장 소화관과 간에서 내려오는 담도가 합류하는 부위까지 노출시켰다. 주요 혈관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않았다.
“나종진 선생, 담낭 절제한다.”
담낭 절제는 이경석과 함께 엄청난 경험을 쌓은 나종진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능숙하게 카메라를 적절한 위치로 이동시켰다.
“보비! 수처! 타이!”
삐이이이이!
하얀 연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담낭이 간에서 떨어져 나왔다. 동맥 역시 클립 하나로 간단하게 잡은 후 출혈 유무만 확인했다.
“서도훈 선생, 괜찮지?”
“문제없습니다.”
“담도 자르자. 멧잼! 석션!”
담도를 자르자 황갈색 액체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담즙 역시 정상 조직에 상당한 자극을 주기에 재빨리 제거한 후 거즈로 입구를 막았다.
두 번째, 세 번째 장기가 절제됐다.
이제 복강경으로는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과정이 남았다. 유문을 보존한 상태에서 십이지장을 박리해 들어내야 한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전통적 방식에서는 위 하부를 잘라 소장과 연결시켰다. 때문에 손상이나 다름없는 수술 부위가 넓어졌고, 시간도 무척 오래 걸렸다.
반면 유문을 보존하면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복강경 기구를 이용한 십이지장과 소장 연결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준비했다. 지금은 십이지장 절제와 유문 보존에 집중해야 할 때다.’
“십이지장 절제 시작합니다.”
동시에 마취과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수혈을 하기 시작했다.
적절한 시기였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휘플이었다. 복강경으로 한다고 해서 출혈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고령이기에 바이탈이 쉽게 흔들릴 수 있어 이를 예방하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
띠! 띠! 띠! 띠!
환자의 심장 소리는 여전히 규칙적이었다.
안심하고 수술에 집중하라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고경아가 필요한 기구를 곧바로 넘겼다.
위와 십이지장 연결부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을 깨끗이 잡아야 정확하게 연결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굵은 동맥과 정맥을 잡아야 했다.
어디에 있든 혈관은 그 자체로 위험 구조물이었다. 자칫 출혈이 발생하면 주변 조직이 온통 피로 물들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여지가 없었다.
“켈리! 타이! 컷!”
혈관을 하나하나 잡았다.
장간막을 구성하는 지방조직에 둘러싸인 데다 위와 십이지장에 바짝 붙여 제거해야 하는 까닭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쉬운 과정이 없네.’
유문 근처를 모두 정리했다.
하방으로 내려가 십이지장에 연결된 혈관까지 잡아 깨끗이 다듬었다. 동시에 주변을 박리해 후복막에 묻힌 십이지장 일부를 노출시켰다.
‘이 정도면 충분히 들어가겠어.’
“장겸자!”
기구와 일자로 연결된 장겸자를 넣었다.
레버를 조작해 직각으로 만든 후 위와 십이지장을 차례로 잡고 사이를 잘랐다. 개복해 처리했을 때와 동일한 신뢰도를 보였다. 처음 나왔을 때를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기술 발전이었다.
마지막 장기의 박리를 시작했다.
작은 기구 끝으로 십이지장을 잡아야 해 제어하기 어려웠지만 이미 예상한 문제였다. 서도훈의 도움을 받아 C 자로 구부러진 십이지장을 박리해 나갔다.
순조로웠던 과정이 점점 힘들어졌다.
애초에 후복막을 따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움이 큰 과정이었다. 게다가 췌장, 담도, 담낭과 십이지장이 모두 한 덩어리로 유지되고 있는 탓에 기구 조작은 물론 시야를 확보하기 정말 쉽지 않았다.
“나종진 선생, 조금 더 아래로.”
능숙함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박리 부위에 초점을 맞출수록 전체적인 부분이 들어오지 않아 수시로 카메라 위치를 수정해야 했다.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랐다.
여기저기에서 절제된 장기가 밀려들었다. 가뜩이나 작은 기구 끝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였다. 당황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수술 팀 모두 극도의 긴장에 휩싸였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집도의가 중심을 잃으면 수술 팀 전체가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지고도 남았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됐다.
끊임없이 위험 구조물의 위치를 상기하며 다음 과정에 대비했다. 때론 과감하게, 때론 신중하게 기구를 조작해 절제할 모든 장기가 연결된 부위까지 접근했다.
김지훈은 흔들리지 않았다.
“모스키토! 타이! 컷! 보비!”
시야가 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혈이 발생해도 침착하게 대처했다. 서도훈 역시 준비된 써전답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집도의와 퍼스트의 호흡이 빛을 발했다.
시야를 책임진 나종진도 안정을 찾았다.
삐이이이이!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드디어 마지막 부분이 떨어져 나왔다.
“비닐 주머니 주세요.”
한 덩어리가 된 췌장, 담도, 담낭, 십이지장을 주머니에 담았다. 입구를 묶은 후 구석으로 밀자 수술한 부위가 환하게 드러났다.
우상복부가 텅 빈 것처럼 보였다.
불과 1센티미터 남짓의 암 덩어리가 초래한 결과였다. 살기 위해, 건강해지기 위해 한 수술이건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컸다.
김지훈이 힐끗 시계를 보았다.
네 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 정도 수술을 밥 먹듯이 해 왔지만 긴장이 과도했는지 목과 허리가 뻐근한 정도를 넘었다. 수술복은 이미 땀으로 젖은 지 오래였다.
“수술 부위 세척하고, 오 분 정도 쉽시다.”
셀라인으로 깨끗이 씻어 낸 후 미진한 부분과 출혈 여부를 살피던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집중하자. 집중!’
잠깐의 휴식으로 어느 정도 충전됐다.
이제 절제보다 훨씬 중요한 과정이 남았다.
소장을 췌장, 담도, 유문에 이어야 한다.
췌장, 유문 연결은 복강경으로 해 본 적이 없는 과정이었다. 다른 수술에서 얻은 부분적 경험을 모두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라파로 휘플을 시도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기도 했다.
수술 팀의 긴장이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