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환자가 어떤 상황에 놓였든 의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했다. 사실 양쪽 얘기를 다 들어 보기 전에는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었다. 옳고 그름에 따라 치료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자식들이 더 문제로 보이긴 하지만 이럴 때 필요한 말이 바로 가치중립이겠지.’
오직 휘플 라파로에만 집중했다.
복강경을 이용해 여러 차례 췌장을 절제했고, 담도 쪽도 수술했건만 수술 날이 목전으로 다가오자 상당히 초조해졌다. 이번 수술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서도훈과 나종진 역시 심한 압박감에 얼굴을 펴지 못했다.
성공에 대한 부담이었다.
때문인지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환자의 심리 상태가 불안했다.
암, 그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나쁜 췌장암에 걸린 이상 결코 웃을 수 없는 나날이다. 하지만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담담히 받아들일 여유가 조금은 필요했다.
‘보호자들이 그런 여유를 줘야 하는데.’
바람과 달리 상황이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식들이 번갈아 가며 작지 않은 일 인실을 채우고 있건만, 박재순 환자는 항상 등을 돌린 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회진을 돌 때마다 냉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유일하게 자신의 품을 내주고 손을 잡는 자식은 둘째 아들뿐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만 부모의 미소를 머금는 박재순 환자의 모습은 착각이 아니었다.
‘아들 넷에 딸 둘인데 분위기 정말 차갑네. 이런 심리 상태면 수술 후 회복까지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박재순 환자를 따로 만나 물었다.
“환자분, 죄송한 말씀이지만 보호자분들이 병실에 계신 것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왜 물으시는 겁니까?”
“몸도 준비가 잘돼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당히 큰 수술이기 때문에 심리적인 면도 무척 중요합니다. 수술 전후로 내내 불안해하시면 결과가 나쁠 수 있습니다.”
한숨이 터졌다.
“선생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니 면목이 없습니다만, 오겠다는 자식을 차마 막을 수는 없네요. 다 제 업보입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제 관심은 오직 환자분이 수술 잘 받고, 무사히 퇴원하시는 겁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의외로 대화가 잘 풀렸다.
“주제넘은 말씀 하나 드리겠습니다. 모든 환자분들이 가장 긴장하는 날이 수술 당일입니다. 그날만큼은 다른 문제로 불안해하시거나 신경 쓰이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방법이 있을까요?”
“괜찮으시면 둘째 아드님과 단둘이 상의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둘째 아들과 상의를 하라고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보호자분들이 많아야만 안정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기분 나쁘시더라도 귀담아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생기를 잃었던 박재순 환자의 눈이 반짝이다 다시 어두워졌다. 김지훈은 환자의 자존심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긴장해야 했다.
별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 가정사에 함부로 끼어들었다고 해도 무방할 김지훈을 비난하는 눈초리도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와 여섯이나 되는 자식 사이에 감정적인 문제까지 겹쳐 얽히고설킨 모양이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만 의사로서 드리는 부탁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맨 처음 제가 느꼈던 삶의 의지를 끝까지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삶의 의지?’
박재순 환자는 말이 없었다.
김지훈은 내심 후회하고 있었다.
‘오지랖인가?’
아니었다.
의사는 육신 상태만이 아니라 심리, 기분, 마음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동안 숱한 위기를 겪은 환자들이 무사히 회복된 이유 중 하나가 살고자 하는 의지였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당장 한덕식 환자가 좋은 예였다.
얼마 안 되는 여유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김지훈이 조용히 말했다.
“제가 상담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들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넋두리라도 좋으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슨 말을?”
“편안해지실 수 있다면 그냥 답답한 일도 좋고, 아니면 즐겁고 행복했던 일도 좋습니다.”
박재순 환자가 물끄러미 김지훈을 보았다.
외과 의사다.
수술에만 신경 써서 잘 끝나면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 연장선이라 하지만 한평생 수술 전에 이런 대화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입원했던 친구 놈들 모두 의사 얼굴 보기 힘들다는 불평만 하던데 이런 의사도 있었네. 그래서 젊은 나이에 명의라는 소문까지 난 건가?’
왠지 마음이 편해진 박재순 환자가 물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괜찮겠습니까?”
“회진을 돌아야 하지만 삼십 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더 이상은 곤란하고요.”
“정말 아무 얘기나 해도 됩니까?”
“모레가 수술하는 날입니다. 마음이 편해지시길 바랄 뿐이니까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시고, 그냥 앉아 계셔도 좋습니다. 일단 차 한잔하시죠.”
녹차까지 내왔다.
박재순 환자가 웃고 말았다.
‘남들은 잘 부탁한다고 알게 모르게 돈까지 줬다는데, 날 수술할 의사가 차를 내오다니 이런 경우도 있었나?’
언제부터인가 둘째 아들과 함께 있을 때 말고는 웃어 본 적이 없었다.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티백 녹차 향기마저 왠지 고소했다.
김지훈이 편안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때론 맞장구를 치는 것보다 듣기만 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더구나 칠십이 넘은 노인이 젊은 의사 앞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얘기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주로 환자가 말하고, 의사는 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자리의 단초가 된 가정사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시답잖은 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토 한번 달지 않고 삼십 분의 시간을 보냈다.
“행복했던 날이 많으셨네요.”
“그렇게 들렸습니까?”
“남들이 보기에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환자분에겐 소중한 추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벌써 회진 돌 시간이 다 됐네요.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외적이고도 뜻밖의 경험이었다.
‘이런 의사도 있었네.’
박재순 환자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병실은 여전히 자식들로 꽉 차 있었다.
자신을 간병하기 위해 왔다지만 행여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까 감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탓에 둘째 아들은 오히려 병실을 지키지 못했다.
‘이젠 아비를 돈으로 보는구나. 내 자식들이지만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천불이 나.’
박재순 환자가 눈가를 굳혔다.
“이제 다들 올 필요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술 끝나고 나 안정되면 그때나 와.”
한동안 말이 이어지다 언성까지 높아졌다.
결코 들리지 말아야 할 말까지 들렸다.
“아버지, 그럼 그때까지 아무 일도 안 하시겠단 약속을 해 주세요. 우리도 이러기 싫지만 자식이 여섯인데 둘째에게 40퍼센트를 주는 건 아니죠.”
“네 어미 먼저 떠난 후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평생 날 건사해 준 둘째야.”
“대신 생활비 넉넉하게 주셨잖아요.”
“너희들에게도 그만큼 줬다.”
“알게 모르게 더 챙겨 주신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에게 알아보니까 아버지 모신 걸 참작해도 법적으로 40퍼센트는 인정이 안 된답니다. 공증도 그렇고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마세요. 자식들끼리 싸우는 꼴을 꼭 봐야겠습니까?”
박재순 환자의 얼굴이 벌게졌다.
마음이 편해질 상황이 아니었다. 말이 길어질수록 수술을 앞둔 아비에게 유산 문제를 따지는 자식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얼굴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당장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끊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부모로서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수술 후 안정될 때까지만이라도 둘째 아들과 마음 편히 있고 싶었다.
“약속하마.”
“다른 생각 하지 마세요.”
‘내가 전생에 지은 죄가 많구나.’
“약속한다고 했다. 다들 나가. 당장 안 나가면 자식이고 뭐고 없을 줄 알아.”
나직한 목소리가 도리어 서슬 퍼렇다.
자식들이 눈가를 찌푸리며 하나둘 병실을 나갔다. 문밖에 서 있던 둘째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형님, 전 욕심 없어요. 법대로 공평하게 나눌 수 있도록 아버님께 확실하게 말씀드릴 테니 이제라도 잘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널 어떻게 믿어?”
“각서라도 쓰겠습니다.”
“재산 때문에 이 난리가 난 게 언젠데 이제 와 각서가 무슨 효력이 있어? 아버지 꼬드겨서 엉뚱한 소리 나오게 하면 각오해. 가만 안 둬.”
돈이 원수였다.
췌장암에 걸리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면 이 꼴 저 꼴 보지 않고 마음 편히 눈 감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차라리 무능력한 아버지였던 편이 나았을 것이다.
잠시 후 김지훈이 회진을 돌았다.
‘둘째 아들만 있는데 얼굴이 여전히 안 좋으시네. 공연한 말을 했나?’
꼬치꼬치 캐물을 일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달렸다.
“수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금식이 쉽지 않으실 겁니다. 잘 참으시고, 감기도 걸리면 안 되니까 불편한 점 있으면 바로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김지훈이 병실을 나오려는 순간 박재순 환자가 독백하는 것처럼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편하게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셔야죠.”
반드시 그렇게 되길 바랐다.
찜찜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한덕식 환자의 십이지장루에 박힌 심지를 보다 가는 것으로 교체했다. 그동안 죽은 도통 입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싹싹 비웠다. 비록 복도를 왕복하는 것뿐이었지만 시간마다 해야 할 운동을 잊지 않았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검사했는데 어떻습니까?”
“다 좋습니다. 며칠 후 조영술 다시 시행해 괜찮으면 제일 가느다란 심지로 교체해도 되겠습니다.”
하루하루가 희망이었다.
한덕식 환자가 바닥 모를 절망을 이겨 낸 것처럼 박재순 환자도 자신의 건강에만 신경 쓴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의사의 할 일은 명확했다.
서도훈, 나종진과 함께 최종 준비에 들어갔다. 이경석은 복강경 수술이라며 얼굴을 내밀었고, 오만석은 위를 절제한다는 핑계로 함께 논의했다.
“이것으로 끝냅시다.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 성공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제 하루 조금 더 남았으니까 자신감을 갖고 수술합시다.”
팽팽한 긴장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김지훈이 툭 바윗덩어리 하나 더 던졌다.
“나종진 선생, 논문 쓰고 있지?”
“예. 과장님과 함께 작성하고 있습니다.”
“난 나종진 선생을 엄청 좋아하는 과장님과 달라. 같은 파트도 아니니까 각오해야 할 거야.”
이경석이 눈을 부라렸다.
“간담췌나 신경 쓰셔.”
“왜 이러세요? 교수 임용 때 발언권이 더 센 사람이 누군지 잊으셨습니까? 나 할 말 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일석이를 닮아 가나 가만히 있다가 왜 시비야? 종진아, 내가 더 위니까 걱정하지 마.”
“나 부원장인데.”
“그럼 부원장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종진이는 누가 심사해도 교수 임용 확정이야.”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그동안 챙겨 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경석이 형이 정말 확실하게 믿고 있구나. 좋다.’
속마음일 뿐이었다.
“나종진, 과장님 믿고 긴장 풀지 마.”
“알겠습니다.”
“김 부원장, 정말 이럴 거야?”
말 길어지면 불리했다.
휘리릭!
병원을 나서기 전 회의실을 살짝 엿보았다.
손일석과 진충기 교수를 비롯해 간 이식 파트가 모여 토론 중이었다. 아마도 다음 주에 있을 수술을 비롯해 창립총회까지 많은 부분을 다뤘을 것이다.
‘휘플 라파로 할 때까지만 봐준다고 했지? 일석아,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진충기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든 가족들에게 미안했지만 열정 넘치는 병원은 기쁨이자 자랑이었다. 대신 주말은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음 날.
박재순 환자의 표정이 다소 나아졌다.
이제야 진심으로 자신의 건강과 수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같았다. 느낌에 불과할 수도 있었고, 어떤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바람직한 일이었다.
북적이던 병실이 조용해진 탓일까?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많던 자식들은 왜 코빼기도 안 보이지?’
둘째 아들 한 명만 있어도 수술 진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사실 떼거리로 몰려와 설명을 요구할 때보다 훨씬 편한 면도 있었다.
서도훈, 나종진과 함께 오후 회진을 돌았다. 첫 시도이기에 당연한 일이었지만 박재순 환자에겐 의외의 연속이었던 모양이었다.
“신경 많이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선택하기 어려운 수술을 동의하셔서 저희가 감사하죠. 반드시 성공해 무사히 퇴원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사만의 수술이 아니었다.
고경아와도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그렇게 긴 밤이 지나갔다.
수술 당일 아침.
박재순 환자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를 바라며 회진을 돌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