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236화 (1,236/1,329)

2화

뚝딱! 뚝딱! 쿵! 쿵!

가림막 너머 공사가 한창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활이 걸린 삶의 터전으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고와 관련된 자들이 그 속에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다. 실수든 무엇이든 간에 이번 사고를 통해 배운 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언제쯤 결론이 나려나?’

서정호는 정직한 검사였다.

정훈철 역시 잊지 않았을 것이다.

조급해할 이유가 없었다.

당면한 일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마음의 부담을 덜은 덕분인지 간 이식 준비 과정 내내 즐거웠다. 매주 반복되는 일이었고, 수술 방법에 차이도 없었지만 환자가 다른 이상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이번 환자도 별 탈 없이 퇴원시킵시다.”

논문 작성이 막바지에 달했다.

이혁원과 송진우가 밤을 새어 가며 작성한 덕에 논문 수준이 상당했다. 하지만 국제 학술지 등재가 최종 목표인 만큼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이혁원 선생, 다른 논문하고 비교 분석해서 보충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 송진우 선생도 마찬가지야.”

각자의 의견을 활발히 교환하며 보강해야 할 부분을 논의하던 중 이혁원이 슬그머니 김지훈과 송진우를 보았다. 소아외과 논문 검토가 막 끝나 가는 참이었다.

“선생님, 소아 수술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앞으로 송진우 선생이 맡으면 어떨까 합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송진우 선생, 마음 굳혔어?”

“예, 결정했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복잡한 감정에 싸인 김지훈이 턱을 괸 채 송진우만 바라보았다. 자신과 함께 간 이식 파트를 했으면 하는 마음과 누구보다 훌륭한 소아외과 써전이 될 것이란 생각 사이에서 잠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실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아쉽다고 후배의 장래를 선배가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지. 많이 고민했을 테고, 후회하게 될 선택을 할 진우도 아니다.’

오히려 격려해야 할 일이었다.

“좋아. 종합 병원이 완공되면 소아외과가 반드시 필요하니까 새로운 기회가 될 거야. 소아 수술을 할 자격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난 찬성이지만 과장님 허락이 반드시 필요해. 소아 치료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선생은 강은미 선생이 유일하니까 호흡 잘 맞춰. 나머지 부분은 이혁원 선생이 할 때와 똑같다.”

“알겠습니다.”

묘하게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다듬은 김지훈이 자리를 정리하다 말고 물었다.

“참! 결혼 선물 무엇으로 할지 정했다며?”

“예, 정했습니다.”

“그런 건 빨리빨리 나한테 얘기해야지. 자식들이 내 입장은 생각도 안 해요.”

아마도 할 말 많을 것이다.

얼굴을 보고 싶어도 못 볼 정도로 바빴던 김지훈이었다. 이혁원과 송진우 모두 이유를 알기 때문에 선배의 투정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구구절절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김지훈이 바로 일어났다.

“서도훈 선생하고 상의해야 할 일이 있어서 수술 방에 가야 하니까 그만 나가자.”

부리나케 수술 방으로 향하는 김지훈을 보던 이혁원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휘플 라파로 기구 확인하러 가시는 모양인데 정말 한가한 날이 없으시네.”

“저렇게 바쁜 와중에 강호성부터 한덕식 환자까지 다른 부분에도 신경 쓰시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산업 의학과를 만드시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왜?”

“생각의 폭이 정말 넓으신 것 같아서요.”

이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 선생님 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최고의 써전, 최고의 수술 팀 아닌가요?”

“맞아. 달리 말하면 대가가 되고 싶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대가가 뭘까? 김지훈 선생님 때문에 가끔은 의사라는 직업을 다시 생각하게 돼.”

송진우도 동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면 희한한 일이었다.

어느 병원보다 바쁜 병원이 바로 전문 병원이었다. 더구나 펠로우를 하는 동안에는 진로를 정했다고 해도 각종 수술을 모두 참여해야 했다. 매일매일 숨 돌릴 틈도 없는데 오히려 삶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있었다.

다른 이유 없었다.

김지훈이 딱 답이었다.

이경석과 손일석은 물론 이사장이 된 신현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전면에 나서지 않을 뿐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의사의 역할을 고민하게 했다.

이혁원이 웃었다.

“진우야, 우리가 원했던 병원에서 근무하는 것만큼 행운도 없겠지?”

“예. 운이 좋네요.”

결코 운이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했고, 웬만한 사람은 뛰쳐나가고도 남을 살인적 업무를 버티며 얻은 결실이었다. 언젠가 주역이 됐을 때 훌륭한 선배 의사로 우뚝 서 있을 것이다.

그 시간.

김지훈과 서도훈이 복강경 기구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수술 중 어떤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당한지 진지한 얼굴로 상의했다. 세컨을 서야 하는 나종진 역시 자신의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했다.

수술 팀은 써전만이 아니었다.

고경아 또한 숱한 수술에 참여했고, 준비 과정을 함께하며 많은 지식을 쌓았다. 도움이 된다면 모든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마땅했다.

“고 과장님, 위와 소장을 연결할 때 이 기구를 사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얼마 전에 이경석 선생님이 이 기구를 사용하셨는데 보기보다 불편하다고 하셨어요. 예전에 사용했던 기구는 어떠세요?”

“구관이 명관이라! 새로 나온 기구인데 혹시 손에 안 익어서 불편했던 거 아니에요?”

“그럴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에도 사용 방법이 까다롭고 복잡한 것 같아요. 샘플로 들어온 것이 있으니까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되지 않을까요?”

다들 눈이 초롱초롱했지만 퇴근 시간이었다.

김지훈과 고경아 입장에서는 희연이 때문에 둘 모두 남아 있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게다가 기구 선정이 아니라 환자의 동의가 가장 급한 문제였기 때문에 다시 만나 상의하기로 했다.

“벌써 퇴근 시간이네. 다들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다음번에 결정합시다.”

김지훈의 눈이 빛났다.

간만에 빨리 퇴근하는 덕도 있었지만 의사로서 이런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써전은 멀리 있을지 몰라도 최고의 수술 팀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이런 팀이 도대체 몇 개야?’

생각만으로도 기쁜 일이었다.

최신 설비와 장비를 갖췄다고 해도 사람이 받쳐 주지 못한다면 수준 높은 병원이 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먼저라는 말은 변하지 않을 진리였다.

병원을 나설 때마다 저절로 눈이 가는 곳이 있었다. 밀린 공사 때문인지 야간작업이 또 벌어지고 있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길 것이라 믿었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이 적지 않았다.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해도 위험 요소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개선이 이뤄져야 안전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임상 의사에게는 담당 분야가 아닌 데다 관심을 쏟기에 너무 높고 두꺼운 벽이었다. 이런 방면에 광범위한 지식을 가졌으면서도 특화된 기초 의학인 산업 의학과 개설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왔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일단 휘플 라파로 끝내고, 논문 완성한 후 창립총회 잘 치르고 난 뒤에야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뚝딱! 뚝딱! 쿵! 쿵!

공사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언제 조사가 끝나지?’

벌받아야 할 사람은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그것이 바로 사회정의였다.

***

시간 참 빨리 흘렀다.

휘플 라파로 예정 환자와 만났다.

김지훈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73세 남자 환자, 박재순.

나이가 너무 많았다.

고령은 개복해야 하는 전통적 휘플의 주요 사망 요인이었다. 건강해 보인다고 해도 모든 면에서 큰 수술을 견디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기에 복강경은 좋은 대안이었다.

문제는 최초 시도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 실패했을 경우였다. 개복으로 전환해 수술하게 되면 마취 시간이 길어질뿐더러 손상 부위가 넓어지고도 남았다.

도리어 더 위험할 수 있었다.

‘이거 결과가 너무 극과 극이네. 그렇다고 젊은 환자를 찾다 2기 이상 진행된 케이스를 잡아 시도하면 수술이 더 어려워질 텐데 마냥 피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

여러 위험을 충분히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복강경 수술의 문제만 남았다.

“환자분, 복강경으로 수술하게 되면 장단점이 뚜렷합니다. 더구나 위와 췌장, 담도 쪽을 따로따로 수술한 경험은 많지만 통합해 수술한 적이 없습니다. 이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셔야 합니다.”

“솔직히 어떤 수술이든 받는 것 자체가 무섭습니다. 이 나이가 돼서 그런지 더 살고 싶다는 마음보다 며칠뿐이더라도 정신 또렷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훨씬 강하고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연세가 많다는 점도 굉장히 불리한 요인입니다.”

“수술받고 급격하게 나빠지는 환자들이 있다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서 박사님께 수술은 김 박사님이 하신다는 말씀 듣고 많이 고민했고요. 기분 나쁘실지 모르지만 어떤 의사인지까지 알아봤습니다. 제 결론은 두 분을 믿고 싶다는 겁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개복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술이었다. 실제 전통적 휘플을 받고 회복되지 못해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날짜만 빨리 잡아 주세요.”

단호한 말에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환자에게 운도 따랐다.

매주 수술이 꽉 찼는데 딱 하루 시간 나는 날이 있었다. 거창하게 하늘을 찾지 않더라도 철저하게 준비해 제대로 수술하라는 의미일지도 몰랐다.

“좋습니다. 일주일 후로 잡겠습니다. 수술 동의서 작성해 주시고, 수술 전 준비를 위해 사흘 후 입원하시면 됩니다. 감기만 걸려도 연기되니까 몸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면담이 끝났다.

김지훈이 묘한 소리를 냈다.

환자가 너무 무서워해도 부담이었지만 확고하다고 해서 편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질 수도 있었다.

“너무 단호해서 겁이 다 나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무슨 말이야?”

“정신 또렷해야 한다는 말을 괜히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상당한 재력가이신 것 같은데 자식 문제가 있는 모양이에요. 얼핏 푸념처럼 재산 갖고 다투는 자식들 때문이라도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재산이 얼마나 많기에?”

“거기까지는 모릅니다만, 진료실 밖에 진 치고 있는 사람들 보셨죠?”

“그 사람들이 다 자식이야?”

“진료 때마다 아들딸 할 거 없이 다 오더라고요. 눈물을 보이긴 하는데 결국 얼마나 더 사실지 그게 제일 궁금한 것 같아 보입니다. 유언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단순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네요.”

살다 보면 돈 앞에서 부모 자식도 없는 집안을 종종 보게 된다. 유산이 많든 적든 아귀다툼을 벌이는 경우는 더욱 흔하게 접한다.

“하긴 죽는 날까지 재산 꽉 쥐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왜 나오겠어? 에휴! 그놈의 돈이 뭔지.”

넉넉하지 못한 한덕식 환자.

재력가가 분명한 박재순 환자.

완전히 다른 환경을 가졌지만 건강 앞에서는 똑같은 상황에 처했고, 처할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다음 진료는 선생님이 하셔야 하는데 혹시 비슷한 얘기가 나와도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환자분은 양반이십니다.”

“집안싸움에 끼어들 일 있어?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때려 죽여야 할 놈까지 살려 낸 우리야. 환자만 보고 치료에만 집중하면 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찜찜했다.

무조건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식이라고 애지중지하며 평생 보살펴야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감정이 있는 법이었다.

사랑이다.

어느 한쪽이든 사랑이 사라지면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있어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오후 회진을 돌기 위해 진료실을 나선 김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아 서도훈의 착각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누군 보고 싶어도 못 보는데.’

내심 못마땅했지만 아직 입원도 하지 않은 환자였다. 한 명 한 명 착실하게 살피며 마지막으로 한덕식 환자의 병실에 들어섰다.

하필이면 식사 시간이 시작됐다.

한덕식 환자가 아내와 아들의 보호자용 식사를 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건강한 사람 눈에는 둘 다 빈약한 식사였지만 췌장을 자극하지 않는 식단이 얼마나 밋밋한지 아는 사람은 이해하고도 남았다.

“아버지, 퇴원하시면 소고기 거하게 사 드릴 테니까 입맛 좀 그만 다셔요. 심지 빼려면 주는 것만 드셔야 한다잖아요.”

“네가 내 마음을 알아? 아들이란 놈이! 쯧! 퇴원하는 날 바로 삼겹살 구워. 소주는 안 되나?”

“여보!”

“퇴원 기념으로 한 잔 정도…….”

“아버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들 힘들고 지쳤지만 가족이었다.

밥 하나 가지고 티격태격하던 아들이 김지훈을 보고는 재빨리 식판을 치웠다. 때를 못 맞춘 죄는 보호자가 아니라 의사에게 있었다.

“다시 올 테니까 식사부터 하세요.”

막 돌아서려는 찰나 손일석이 벌컥 문을 열었다.

“여기 있었네. 호출 소리 못 들었어?”

당직도 아닌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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