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우중충한 날씨에 인적마저 사라진 공사 현장이 을씨년스러웠다. 그 탓에 더욱 한덕식 환자의 상태가 걱정된 김지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중환자실 앞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매일 아침, 이 시간이면 항상 보았던 보호자들의 눈치가 오늘따라 유난히 이상했다. 경험상 의료진에게 불만이 쌓였거나 혹은 그로 인해 이송을 결심했을 때 보이는 태도가 분명했다.
올 것이 온 모양이었다.
‘열흘이 넘도록 의식을 찾지 못하는데 어느 보호자가 내게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 회사와 어떤 말이 오가든 할 말이 없네.’
예감 적중했다.
“선생님, 코 줄만 빼고 다른 건 다 제거했던데 병원을 옮겨도 되지 않습니까? 다른 선생님 말씀으로는 숨 쉬는 것도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의사는 치료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수술이 아무리 잘됐다고 해도 정작 의식이 없다면 보호자의 눈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일 것이다.
설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신경외과 선생님이 두 차례 오셔서 아버님을 진찰했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아버님을 옮길 병원은 정하셨습니까?”
“집 근처에 있는 종합 병원으로 옮길 생각입니다. 신경외과 선생님이 근무하는 병원입니다.”
‘집 근처라면 내가 말했던 규모의 대학 병원이 없을 텐데 결국 회사 말을 따르기로 한 건가?’
“확실하게 결정한 겁니까? 어머님도 동의하신 거죠?”
“작은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모두 동의했습니다. 이송이 가능하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김지훈이 잠시 갈등에 빠졌다.
환자를 생각하면 다른 병원을 권해야 했지만 보호자의 결정을 뒤집을 권리 자체가 없었다. 한편으로 일반외과 치료가 거의 끝난 이상 신경외과 전문의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 마당이었다.
‘불안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가족의 선택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현수가 있으니까 회사도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 그나마 다행이네. 언제 가능할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환자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의사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임은 물론, 만에 하나 시간을 끌다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될지도 몰랐다.
솔직히 두려운 일이었다.
보호자의 눈빛을 보는 순간 우려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엇엔가 떠밀린 것 같으면서도 완강함이 뒤섞여 있었다.
‘조금만 더 안정되면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이라도 치료할 수 있겠지. 자의인지, 타의인지 내가 따질 일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미 늦었고, 가능하면 내일 아침 바로 이송 조치하겠습니다. 대신 아드님은 중환자실을 확실하게 확보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우리도 연락하겠습니다.”
“회사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아버지 상태에만 신경 쓰고 싶습니다.”
의사보다 보상과 과실 여부를 두고 피 터지게 싸워야 할 대상인 회사의 말을 더 믿는 것 같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돈의 위력일지도 몰랐다.
‘같은 처지였다면 나는 다른 결정을 내렸을까? 돈이 아니라 내가, 우리 병원이 치료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그럴 거야. 반드시 그래야 해.’
내심 답답하고, 불안했다.
그러나 패장은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김지훈이 바로 패장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두고 치른 전투에서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구할 희망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한덕식 환자를 찾았다.
육신은 분명 돌아오고 있었지만 정신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 갇혀 있었다. 뇌사가 아니라 해도 식물인간 상태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환자는 물론 보호자에게 평생의 고통이자 불행일 것이다.
‘환자분, 오늘이 환자분을 보는 마지막 날일 것 같습니다. 다른 병원에 가서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눈을 뜨고 가족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만석 선생, 호흡 모드는?”
“자발 호흡 위주로 세팅(Setting)했습니다.”
“별문제 없지?”
“모든 검사가 갈수록 좋아지고, CT와 MRI 모두 뇌손상 징후를 찾을 수 없는데 왜 의식이 회복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돌아오겠지.”
오만석이 눈가를 찡그렸다.
“목소리도 그렇고 기운이 너무 없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내일 이송하자.”
“내일이요?”
“보호자가 원해. 우리 능력이 부족한 탓이지, 뭐. 자발 호흡이 돌아왔다고 해도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가는 내내 앰부 배깅(Ambu Bagging) 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고경철 선생 일과 모두 취소시키고 환자 이송 맡겨. 이경석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꼭 허락받아.”
우울한 하루였다.
오만석도 어깨가 처졌다.
막상 이송을 결정하자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 직후 위험을 무릅쓰고 대학 병원으로 보냈으면 더 좋은 결과를 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산업재해라고 신경이 다른 데 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욕심을 부린 것은 아니겠지?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니겠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인생에 만약이 필요 없듯 의학은 절대 가정을 근거로 치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일이기에 한동안 떠나지 않을 괴로움이었다.
퇴근길에 보인 공사 현장이 쓴웃음을 불러왔다.
종합 병원이었다면 한덕식 환자 치료는 물론 보호자에게도 보다 확신을 갖고 대처했을 것이다. 이송에 따른 문제는 당연히 없었을 테고 말이다. 한편으로 부실 공사라 해도 인명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도 못한 주제에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왜 의식이 없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했어. 결국 오지랖이었네.’
후회만이 남았다.
멱살을 잡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김지훈의 발걸음이 무겁기 짝이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김지훈이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출근했다.
밤새 잠을 설쳐 눈이 빨갰다. 하지만 지금도 치료해야 할 환자가 많았고, 매일매일 자신을 찾아오는 이상 무거운 마음을 한시라도 빨리 떨쳐 내야 했다.
긍정적인 생각이 요구됐다.
‘이런 일이 나만 겪는 일인가? 의사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힘내자.’
응급실에 들렀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이른 시간의 연락은 대개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더구나 응급실은 조용하기까지 했다.
‘설마?’
중환자실이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대로 뛰어 올라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는 보호자에게 눈길도 주지 못하고 지나쳤다. 허둥거리는 모습에 아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
김지훈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이 심한 불안에 휩싸였다.
환자의 아내는 사색이 돼 주저앉았다.
아버지이자 남편인 환자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혹여 회사와 불미스러운 합의를 했거나, 혹은 속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중환자실에 들어섰다.
김지훈이 그대로 멈춰 숨을 몰아쉬었다.
이상스럽게 조용했다.
‘어레스트(Arrest:심장마비)가 아닌가?’
어레스트가 발생했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갖가지 기계 소리가 차가운 공간을 꽉 채우고 있을 뿐 평소와 똑같은 분위기였다.
띠! 띠! 띠! 띠! 띠!
규칙적이면서 안정적인 심박동 소리가 들렸다. 한덕식 환자에게 가까워질수록 더욱 또렷해졌고, 인공호흡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김지훈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오만석과 고경철이 보였다.
“환자분, 제 말 들려요? 들리면 눈 한 번 깜빡해 보세요. 불빛 보이시죠? 따라 보세요.”
귀를 울리는 오만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찰나 김지훈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얀 가운 사이로 보이는 발가락이 움직였다. 지난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손을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오만석 선생!”
“오셨습니까? 환자가 눈을 떴습니다.”
환자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기도에 박힌 튜브를 빼 달라는 듯, 살아 있다고 외치는 듯, 누구인지 안다는 듯 작은 눈물 한 방울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불과 하룻밤 전까지만 해도 의식이 돌아올 것이란 아무런 징후가 없었다. 환자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할 것이라 여겼지만 이젠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냉정해야 할 때였다.
“검사는?”
“환자가 눈을 뜬 후 시행한 흉부 사진, 혈액 검사 모두 좋습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이후에도 바이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김지훈이 호흡 튜브에 손을 가져갔다.
순간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힘차고 격렬했다.
당장 빼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정확한 판단은 곁에서 지켜본 의사만이 내릴 수 있었다.
“오만석 선생, 계속 진행해.”
“알겠습니다. 환자분, 튜브를 뺄 겁니다. 만일 숨 쉬는 것이 불안하면 다시 튜브를 넣어야 합니다. 제 말 알아들으면 눈 두 번 깜빡이세요.”
환자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튜브를 제거했다.
“끄으으! 으으으! 으으으!”
탁한 신음이 멈추지 않았다.
무엇인가 말하려 하고 있었다.
오만석이 급히 소리쳤다.
“지금은 숨 쉬는 일에 집중하세요.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좋습니다. 고경철 선생, 오 분 후 비지에이 다시 하자.”
초조한 시간이었다.
손가락에 끼운 산소 포화도 측정기에 표시되는 숫자가 마구 출렁거렸다. 80퍼센트 후반대까지 떨어졌지만 이내 90퍼센트 이상을 유지했다.
30분 이상 지켜보았다.
의식은 흐려지지 않았다.
추가 검사 결과는 허용 가능한 수준이었고, 갑자기 깨어나 혼란스러울 환자도 점점 안정을 찾았다. 의사의 판단일 뿐이었고, 지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속, 아내분과 아들 속 그만 썩이고 이젠 일어나세요.’
“오만석 선생이 전화하라고 했어?”
“예. 가장 먼저 들으셔야 할 것 같아서요.”
“깜짝 놀랐지만 고맙다.”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뱉었다.
오히려 이송에 문제가 생겼다.
의식이 돌아왔지만 언제 나빠질지 몰라 극도로 주의해야 할 시기였다. 장시간을 요하는 이송은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를 받아야 할 병원 의료진 역시 경과를 알지 못해 즉각적인 대처가 힘들 것이다.
‘어쨌든 정말 다행이네.’
보호자 면회를 허락했다.
면회 시간이 아니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중환자실로 향한 김지훈을 본 탓에 극도의 초조함에 휩싸여 있었다. 하필이면 환자마저 남아 있던 힘을 모두 써 버려 막 잠에 빠졌을 때였다.
“아버지! 선생님!”
아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인공호흡기 소리가 들리지 않고, 아버지의 입에 물려 있던 튜브까지 제거했건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아무 치료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더 두려운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보!”
아내가 달달 떨며 남편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김지훈이 침착하게 보호자를 보았다.
그 순간!
환자가 눈을 떴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여… 여…….”
“여보!”
아내의 온기를 느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으으으!”
“아버지!”
아버지의 눈동자는 아들을 놓치지 않았다.
의사는 분명 살아 있다고 했지만 가족의 눈에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던 아버지가 마침내 아내와 아들과 마주했다.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던 손으로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을 다시 잡고 있었다.
펑펑 숨죽인 눈물이 흘렀다.
오만석이 속삭였다.
“이송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 오히려 가장 불안한 시기일 수도 있는데 미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명하고 이틀 정도 미뤄. 난 회진 돌아야겠다.”
돌아서는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다행이다. 조금만 더 회복되면 살 수 있다.’
안도와 미련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