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수술이 끝났다.
띠띠띠띠! 띠띠띠띠!
환자의 심장은 여전히 헐떡였다.
인공호흡기를 뗄 상황이 아니었다.
간신히 유지되는 바이탈은 언제 흔들릴지 몰랐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전신 상태는 최악 그 자체였다. 일반 병실에서 지켜볼 수 없어 중환자실로 옮겼다.
낯선 여인과 젊은 청년 한 명이 중환자실로 향하는 환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퉁퉁 부은 얼굴,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튜브, 주렁주렁 매달린 피와 수액까지 보호자의 눈에는 모두가 공포였다.
김지훈의 눈빛이 흐려졌다.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보호자분 되십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진정하시고 제 말 잘 들으십시오. 우측 간이 모두 깨져 제거했고, 십이지장까지 파열됐습니다. 우측 폐가 찢어져 봉합한 후 현재 흉부 도관을 넣은 상태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폐를 꿰매고, 간을 제거했다는 소리에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들 역시 같은 심정이겠지만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꿋꿋하게 버텼다.
“지금은 괜찮으신 겁니까? 의식은 있으신 겁니까? 수술은 잘된 겁니까?”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워낙 중요한 장기에 손상을 입어 기다려 봐야 알 수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습니까?”
“오늘은 안 될 것 같습니다. 환자분이 안정되면 보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언제든 연락이 갈 수 있으니까 대기실을 떠나시면 안 됩니다.”
아들의 눈가가 붉어졌다.
거의 넋을 놓아 버린 어머니가 있어 차마 묻지 못했지만 단순한 당부나 절차가 아니라 언제 아버지가 사망할지 모른다는 말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힘없는 목소리가 안쓰럽기만 했다.
잠시 후, 건설사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조용히 다가와 환자 상태를 물었지만 지금은 충격을 받은 보호자에게 집중해도 부족할 판이었다.
감정이 좋지도 않았다.
“내일 오후에 시간 나면 뵙겠습니다.”
김지훈이 중환자실로 향했다.
환자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이탈도 수시로 흔들렸다.
혈액과 수액을 공급하고 있지만 좀처럼 혈압이 오르지 않았다. 심장박동이 안정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대로 가다간 무리가 오고도 남았다.
자발 호흡이 너무 미약하고, 불규칙했다. 폐를 꿰맨 상태에서 흉부 도관까지 박혀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환자를 재워 강제 호흡을 유지해야 했다.
흉부 도관을 따라 피가 보였다.
배에 박힌 드레인이 거즈를 검붉게 물들였다.
우징(Oozing)으로 판단됐고, 비록 소량이었지만 간 기능 회복과 전신 상태 호전이 늦어진다면 혈액 응고 장애가 발생하고도 남았다.
십이지장과 연결된 관도 제 기능을 할지 걱정스러웠다. 소화액이 새어 나와 주변 조직을 녹인다면 패혈증이 발생하고도 남았다.
소변량은 여전히 소량에 불과했다.
피 검사 결과도 좋지 못했다.
흉부 사진이 뿌옇게 보였다.
낮은 혈압에도 불구하고 균형이 깨지며 부종이 유발되고 있다는 징후였다. 콩팥과 폐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이뇨제까지 써야 했다.
최악이었다.
희망적인 면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환자의 생을 지킬 자신마저 사라졌다.
오만석과 고경철이 있었지만 중환자실을 떠날 수 없었다. 새벽이 가까워지며 극심한 피로까지 몰려왔다. 그러나 시시때때 울리는 경고음에 잠시도 눈을 붙일 수 없었다.
꼬박 밤을 새웠다.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손일석이었다.
“집에 안 갔어?”
“나야 외래 진료만 하면 되지만 만석이하고 경철이는 할 일이 많고, 환자가 너무 불안해서 못 갔어.”
“괜찮을 것 같아?”
“모르겠다.”
“간하고 폐를 다친 것만으로도 위험한데 십이지장까지 파열됐다며. 우리가 만능도 아니고 어떻게 모든 환자를 살리겠어?”
김지훈이 눈가를 비볐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화가 나.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 아닐까? 조금만 더 안전에 신경 썼다면 이 환자는 오늘도 가족을 위해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있었을 거야.”
“나도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일단 경찰 조사를 기다려 보자. 솔직히 모든 안전조치를 다 했지만 피할 수 없었던 사고이길 바라.”
“그런 사고가 있을까? 이 환자의 목숨과 가족이 입은 피해를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어?”
‘결국 돈으로 해결하겠지. 건설사는 물론 보호자조차 돈 받고 끝내는 일을 보기 힘든 세상이 아니잖아.’
손일석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합의금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사건이 종결되거나 형량을 줄이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국가가 피해를 보상할 수 없고,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유일한 방법이란 점도 있긴 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확실히 달랐다.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사 주체인 건설사, 감리 책임자, 관리 감독해야 할 공무원까지 사고에 책임이 있다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마땅했다.
물끄러미 환자를 보던 손일석이 혀를 찼다.
“똑같이 사고를 당했는데 두 명은 목숨에 지장이 없고, 이 환자만 사경을 헤매다니 운이라는 것이 있긴 있는 모양이야. 뭐가 갈랐을까?”
“누가 알겠어. 운이 좋았으면 애초 사고가 나지도 않았겠지. 에휴!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다.”
김지훈이 자꾸 눈을 비볐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되는 수술과 치료로 꼬박 밤을 새기에 힘든 나이가 됐다. 훨씬 일찍 수술을 끝낸 손일석조차 피로를 느끼는 참이었다.
“내가 있을 테니까 잠깐이라도 눈 붙여.”
“곧 회진 돌 시간이잖아. 하루 이틀 이랬던 것도 아니고, 점심때 한잠 자면 괜찮을 거야.”
“옛날 생각 하다 몸 다친다.”
손일석이 억지로 김지훈을 일으키려는 찰나 중환자실 간호사가 다가와 나직하게 말했다.
“부원장님, 밖에 만나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 시간에요? 누군데요?”
“보호자는 아니고 회사 사람들 같아요.”
한 번은 봐야 할 사람들이었다.
김지훈이 관계자들을 만났다.
꽤 많은 사람이 모였다.
보호자가 보이지 않아 찜찜했지만 환자 상태를 알아야 할 사람들임은 분명했다. 환자 치료에 드는 비용과 사고 처리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테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D 건설 상무이사를 맡고 있는 오상철입니다. 수술하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환자는 어떻습니까?”
“상당히 위중합니다. 아직은 어떤 것도 말씀드릴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저기 맨 끝에 있는 사람이 환자분이 소속된 회사 대표입니다. 걱정이 가장 큰 사람인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고개를 푹 숙인 채 앞으로 나왔다.
김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순서가 틀렸다.
“보호자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환자분을 걱정하신다면 치료는 우리에게 맡기고, 보호자분들부터 잘 챙기셨으면 합니다. 회진이 있어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김지훈이 망설이지 않고 뒤돌아섰다.
오상철 상무가 인상을 썼다.
‘병원에서는 의사가 왕이라는 거야? 뭐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무슨 일인지 일 층에 멈춘 채 꼼짝도 하지 않아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에휴! 힘들다.’
복도 계단에 막 들어설 무렵 관계자들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호자 눈 때문인지 대기실 앞을 피한 데다 웅웅 울리는 공간 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오 사장, 같은 집안이라고 신경 써 줬더니 도대체 공사를 어떻게 한 거야? 안전에 신경 쓰라고 몇 번을 말했어? 내게 불똥 튀기게 하지 말고 확실하게 해결해.”
“저도 억울합니다. 충분하게 주의를 줬는데, 한씨 그 사람이 제 지시를 어겼습니다.”
“그럼 과실이 한씨인지 뭔지 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 이 사장, 당신은 도대체 뭐 한 거야? 재하청을 줬으면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거 아니야? 이래서야 하청을 줄 수 있겠어? 돈 벌고 싶으면 똑바로 해.”
이 사장이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재하청을 받은 것이 분명한 오 사장이라는 사람의 절박한 말이 들렸다.
“상무님, 죄송합니다. 제가 최대한 막아 보겠습니다만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하청을 주었을 때는 끝까지 책임을 지라고 주는 거야. 이 사장하고 둘이 알아서 해. 어느 정도 도와주겠지만 도의상 하는 일이라는 사실 잊지 마. 그 이상 회사에 손실 끼치면 둘 다 문 닫을 줄 알아.”
기가 찰 노릇이었다.
헛웃음만 나왔다.
환자 걱정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원청인 건설사는 하청 업체로, 재하청 업체는 작업자에게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했다. 문득 구미 병원 근무 때 산재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해 고생했던 환자가 떠올랐다.
‘책임을 지려고 해도 부족할 판에 서로 미루기만 해? 보호자와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가슴이 부글부글 끓었다.
의사가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지만 김지훈은 부원장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직위가 아니라 민정호와 함께 종합 병원 건립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건설사 관계자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내 귀에 당신들 대화가 들리게 한 것도 죄라면 죄다.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일은 절대 못 봐.’
애써 끓는 가슴을 가라앉힌 김지훈이 지그시 관계자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환자만을 살리는 의사가 될 수 없었다.
옛말에 질병을 고치면 소의, 사람을 고치면 중의, 사회를 고치면 대의라 했다. 스스로 대의가 될 재목이 아닌 줄은 알지만 이대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당사자들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 걸렸고, 동일한 사고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는 이상 잘못이 있는 모든 사람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마땅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차근차근 공사 과정을 따졌다.
책임을 따져 보아야 할 대상이 정해졌다.
진료를 마친 김지훈이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아침에 이어 점식 식사까지 거르고 조각 잠을 청했지만 피로는 여전했고, 잠이 부족해 골치만 아팠다. 그러나 움직여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보며 없던 힘을 끌어냈다. 면회를 한 후 눈물이 마르지 않는 부인과 아들을 보며 일종의 책임감까지 느꼈다.
‘적어도 종합 병원 건설을 하는 동안 이런 피해자들이 또 나오면 안 된다.’
민정호를 만났다.
“사고 처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경찰에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치료 비용은 건설사에서 책임질 겁니다. 부원장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제대로 조사가 될까요? 흐지부지 시늉만 내다 밑에 사람 몇 명이 책임지는 것으로 끝나는 거 아닙니까?”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여하에 따라 건설사도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꼬리를 자르려 할 테니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겠죠.”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혹시 우리에게 공사 관계자들을 고발할 권한이 있습니까?”
“고발이요? 계약 주체인 이상 계약 불이행이나 성실 원칙 위배로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경찰과 행정 당국이 알아서 할 겁니다.”
“고발이나 고소가 가능한지 알아봐 주세요. 한 명이라도 더 나서야 태만하지 못할 겁니다. 특히 감리하는 회사와 관리 감독을 맡은 공무원이 공사 현장을 제때 정확하게 확인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들을 고발하시려고요?”
“세 사람이 크게 다쳤고, 그중 한 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할 일을 안 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훈철 형님에게도 연락해 사고를 크게 보도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입니다.”
민정호가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벌겋게 충혈된 눈은 피로 때문만이 아니었다. 진상건 때보다 더 분노하고 있었다. 의료 외적인 일마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각오였다.
‘병원 일만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누가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설 수 있을까? 그나저나 공무원까지 물고 들어가면 종합 병원 인허가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데 말해야 하나?’
타협할 김지훈이 아니었다.
부당한 처사라면 앞장서서 항의할 것이다. 지역 사회의 여론 역시 종합 병원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공무원 사회에 잔존하는 부적절한 내부 결속을 깨리라 믿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능력이 닿는 한 조사해 보겠습니다. 다만 민간과 관이 각각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 당시부터 안전을 강조했습니다. 안전조치가 미흡했다면 우리를 속인 것이나 다름없고, 싸움을 걸어온 겁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회진 돌 때가 됐네요. 그럼 이만!”
중환자실로 향하는 김지훈의 어깨에 강한 의지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