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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23화 (1,223/1,329)

9화

드르르륵!

환자가 옮겨졌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시행해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검사와 처치에 소요된 시간마저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호흡이 너무 불안해져 앰부(Ambu:공기 주머니)를 이용해 호흡을 유지시켜야 할 정도였다. 지속적인 수혈과 수액 주입에도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 소변 줄에는 단 한 방울의 소변도 맺혀 있지 않았다.

혈액이 극심하게 모자란다는 의미건만 흉벽에 박힌 도관을 따라 흐르는 피가 멈추지 않았다. 폐로 가는 혈액마저 차단된다면 곧바로 목숨을 잃기에 계속 흘러나올 것이다.

띠띠띠띠띠띠띠!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환자나 의료진 모두 막판에 몰렸다는 의미였고, 수술 중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단 일 초라도 아끼기 위해 마취와 복부 소독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미 손을 씻고, 수술 가운을 입은 김지훈과 오만석은 마취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출혈을 잡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환자를 잃는다. 최대한 빠르게 간부터 처리한다.’

“시작하셔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김지훈이 단번에 복부를 갈랐다.

몇 방울의 피가 다였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사지말단에 더 이상 피를 보내지 않는 방어 기전이었다. 낭떠러지 끝에 섰다는 의미였다.

복막을 열었다.

온통 피로 가득했다.

“탭(수술용 천)! 셀라인! 석션!”

한 장당 100CC 이상의 혈액 손실로 계산해야 하는 탭이 쌓여 갔다. 공기와 접촉됐지만 채 굳지 않은 피가 석션을 따라 쉬지 않고 빨려 나갔다.

검붉은 색이 사라지질 않았다.

시야를 확보해야 간을 처리할 수 있었다.

퍼내다시피 피를 제거했다.

간신히 시야를 확보했다.

다른 장기 손상을 확인할 틈이 없었다. 지금은 일단 깨진 간을 먼저 처리한 후에 추가 손상을 확인하고, 대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우측 복벽을 강하게 제쳤다.

간이 드러났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우측 간이 조각조각 깨진 채 형체를 잃었다.

좌측 간은 간신히 제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충격에서 비껴 나가지 못한 듯 검붉게 변해 있었다. 일종의 타박을 입은 것이다.

결국 전체 간이 손상됐다는 의미였다.

‘최악이지만 타박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장기가 간이다. 절대 손을 늦추면 안 된다.’

“손상 부분 제거하자.”

절제랄 것도 없었다.

심하게 부서진 간을 손으로 퍼낸 후 잘린 부분만 처리하면 될 정도였다. 절제 시간을 줄였을 뿐 간단한 과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절단면이 거칠어 더욱 조심해야 했다.

“모스키토! 타이! 수처! 타이! 보비!”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혈압에도 불구하고 출혈이 지속되고 있었다.

‘아직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머뭇거리면 안 된다. 단 일 초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김지훈이 과감하게 접근했다.

끊어진 혈관을 가장 먼저 처리한 후 너덜너덜해진 간 내 담도와 조직을 묶어 지혈했다. 환자를 살리려면 간을 최대한 보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위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마침내 산산조각 난 간을 모두 제거했다.

여전히 피가 흘렀다.

심장 뛰는 소리도 똑똑하게 들렸다.

환자의 육신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간 봉합용 바늘 주세요.”

내부가 손상됐을 간을 단단히 묶어 최대한 출혈을 제어했다. 살릴 수 없는 담낭을 제거하고, 절단면까지 정확하게 정리했다.

타박을 입은 좌측 간만 남았다. 간 조직의 특성상 완벽한 지혈이 어려운 데다 조직 손상까지 입어 불안했지만 더 이상 건드릴 수 없었다.

‘간은 이것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마취과, 환자 바이탈 어떻습니까?”

“현재 80에 50 정도 잡히지만 무척 불안정합니다. 심박 수는 여전이 120회 이상입니다.”

간 출혈을 잡았다고 혈압이 급격하게 오를 상태가 아니었다. 동반 손상이 없다면 기다리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출혈 부위가 하나 더 남았다.

바로 폐다.

“흉부 도관 확인해 주세요.”

“수술 시작 후 300CC 정도 더 나왔고, 지금도 도관을 따라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소변량은?”

“거의 없습니다.”

김지훈이 잔뜩 인상을 썼다.

정말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가슴을 열어야 하나? 환자가 버틸 수 있을까? 어느 쪽이 가장 정확한 선택일까?’

“오만석 선생, 열어야 할까?”

“자연적인 지혈을 기대할 수 없는 환자입니다. 이 상태에서 소량이라도 출혈이 지속되면 범발성 혈액 응고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혈액 응고에 깊게 관여하는 장기인 간을 절제했고, 남은 간도 기능을 회복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폐출혈을 해결하지 못하면 사망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김지훈이 자신과 오만석의 판단을 믿었다.

더 이상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흉부 엽니다. 기구 빨리 준비해 주세요.”

흉벽을 여는 동안 필요한 기구가 준비됐다. 한동안 가슴을 여는 수술을 해 본 적이 없고, 오래전 일이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했다.

과감하게 늑골과 늑골 사이를 열었다.

이미 여러 군데가 부러져 강한 저항 없이 뼈 사이를 벌릴 수 있었다. 흉강에 상당량의 피가 고여 있었다. 인공호흡과 박동을 따라 흘러나온 피가 폐를 벌겋게 물들였다.

“고경철 선생, 무영등 초점 맞춰.”

공기가 차고 빠질 때마다 팽창했다 수축하기를 반복하는 폐 하부에 출혈 부위가 관찰됐다. 부러진 갈비뼈에 찔려 발생한 손상이기에 깊숙이 봉합해야 했다.

흔들리는 장기에 바늘을 찔러 넣는 일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타이 역시 정확하게 하기 힘들기 때문에 인공호흡을 중단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기계 호흡 중단하고, 앰부로 호흡 유지해 주세요. 멈추라고 하면 바로 멈춰야 합니다.”

김지훈이 수처할 부분을 확인했다.

“멈춰요.”

빠르게 봉합을 시행했고, 오만석이 곧바로 타이를 시행했다. 공기 주머니인 폐가 구겨지듯 움푹 들어갔지만 폐에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다시 앰부!”

서너 번은 더 봉합해야 할 정도로 손상 부위가 컸다. 게다가 환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흉벽을 적게 열었다.

그 탓에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출혈 부위를 잡는 김지훈과 오만석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흉부 수술에 적합한 환자 자세를 잡지도 못해 시야를 확보하며 무영등 불빛을 비춰 줘야 할 고경철은 힘에 부친 소리까지 내뱉었다.

간 처리 이상으로 악전고투였다.

호흡을 멈춘 채 봉합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만 접근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걸릴수록 환자 상태가 나빠질 것이 빤하기에 오직 출혈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타이! 컷!”

마침내 찢어진 폐를 모두 꿰맸다.

깨끗이 세척한 후 출혈 여부를 확인한 결과 거즈에 묻는 정도였다. 익숙하지 않은 장기를 수술했지만 실수를 범하지도 않았다.

“닫자. 마취과, 기계 호흡으로 바꿔도 됩니다.”

쒸이익! 쉬이익!

나직한 기계 소리 속에 흉부를 닫았다.

흉부 도관을 따라 흐르는 피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복강 내 장기의 동반 손상을 확인했고, 천운처럼 간만 손상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취과, 바이탈은 어떻습니까?”

“90에 60 정도 잡히고, 심박수는 100회 정도 됩니다. 소변도 소량 나오고 있습니다.”

방심할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김지훈, 오만석, 고경철이 한 팀을 이뤄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결과를 끌어냈다.

‘대단한 체력을 가진 환자라 다행이다.’

마취 시간이 상당히 길어졌다.

수술이 길어져 유리할 일이 없건만 김지훈이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처럼 눈가를 좁힌 채 표정마저 좋지 못했다.

오만석이 물었다.

“선생님, 이미 네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최대한 빨리 닫아야 하는데 왜 그러십니까?”

“간만 깨졌을까? 왠지 불안해.”

김지훈이 한 부분을 가리켰다.

십이지장이 있는 부위였다.

검붉게 물들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지만 천만다행 부풀어 오르거나 찢어진 부분이 관찰되지 않았다. 심각한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구조된 직후에 배부터 보았는데 바이탈이 심하게 흔들린 사람치고는 꽤 딱딱했어. 이유가 뭘까?”

“복막염이 의심된다는 소리입니까?”

“후복막에 묻힌 부분에서 터졌다면 음식물이 보이지 않아도 복막염이 발생할 수 있어. 해결하지 못하면 치명적인데 감이라 문제네.”

수없이 쌓은 경험이 주는 감각이었다.

환자 상태가 허락한다면 십이지장을 박리해 확인한다 해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워낙 큰 손상을 입은 환자였고, 수술 또한 인위적 손상과 다름없었다. 만일 잘못된 판단이라면 자칫 마취 시간만 늘려 추가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었다.

째깍! 째깍!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김지훈이 빠르게 결정했다.

‘십이지장 손상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박리로 인해 입는 손해보다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이 득이다.’

“확인하자. 마취과, 십이지장 박리합니다. 켈리! 보비! 타이! 컷!”

마취과 당직의의 긴장이 치솟았다.

수술 중 환자의 생사를 쥐고 있는 사람은 수술 팀이 아니라 마취과 의사이기 때문이었다. 바이탈을 유지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였다.

김지훈이 가장 출혈이 적게 발생하는 부분을 따라 박리를 시작했다. 췌장이나 담도의 악성 종양 수술을 가장 많이 시행한 의사답게 거침이 없었다.

‘C’ 자 모양의 십이지장이 위와 연결된 부분부터 차례로 노출됐다. 채 절반도 박리하기 전에 김지훈이 손을 멈추며 소리쳤다.

“고경철 선생, 초점 맞춰.”

무영등 불빛이 한곳으로 비춰졌다.

일순 수술 팀 모두 긴장하고 말았다.

외력에 의해 터졌다.

주변 조직까지 찢어지며 소화액 등이 복강 내로 흘러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만일 확인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으로도 섬뜩했다.

십이지장 파열을 눈으로 본 고경철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십이지장 파열의 치료 원칙은 절대 구멍 난 부위를 일차 봉합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파열된 부위에 외부와 연결된 드레인을 꽂은 후 기다렸다 이차 수술을 하거나 경우에 따라 휘플을 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고경철이 눈가를 찌푸렸다.

‘어떤 선택을 하실까? 설마 휘플을?’

경험 부족이었다.

김지훈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십이지장루 시행하자.”

응급 의학과에 강한 의욕을 보였던 오만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힐끗 김지훈을 보는 이유는 단 하나, 증상 하나로 십이지장 손상을 강력하게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다급하고 어수선했을 상황에서도 환자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니 대단하시네. 나나 환자에게 정말 다행이다.’

“알겠습니다. 폴리(소변 줄) 준비해 주세요.”

십이지장루(Duodenostomy)는 장을 외부와 연결시킨다는 수술명이다. 하지만 십이지장은 인공 항문을 만들 때처럼 장 일부를 배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장기였다.

대신 소변 줄을 통로로 이용했다.

김지훈이 파열된 부분을 통해 소변 줄 끝을 밀어 넣어 십이지장 내에 위치시켰다. 조심스럽게 봉합을 시행해 십이지장과 소변 줄 사이를 완전히 밀착시켰다.

“주사기.”

소변 줄 끝에 달린 공기 주머니에 식염수를 넣어 팽창시켰다. 십 원짜리 동전만 하게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가 소변 줄이 밖으로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켜 줄 것이다.

옆구리 복벽을 뚫어 소변이 빠져나오는 부분을 배 밖으로 끄집어냈다. 이로써 소변 줄을 이용한 십이지장루가 완성됐다.

휘플과는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간단한 과정이었지만 위험성은 대동소이했다. 아무리 꼼꼼하게 봉합했어도 소변 줄을 따라 소화액이 새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자연 치유를 바라기 힘들었고, 이차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갑갑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차 수술을 피했으면 좋겠는데.’

“마무리하자.”

오만석이 물었다.

“만일 통로가 막히지 않는다면 바로 이차 수술을 시행하실 겁니까?”

“해야지. 예전에 시기를 놓쳐 몇 년간 입원했던 환자가 있었어. 극적으로 회복되지 않았다면 결국 만성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거야.”

“주변이 지저분해 쉽지 않을 텐데 자연적으로 막혔으면 좋겠네요.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휘플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섬뜩합니다.”

“일단 폐와 남은 간이 잘 버텨야지. 불길한 생각 그만하고 빨리 끝내자.”

김지훈이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여덟 시간 가까이 걸렸다.

지금까지 수술을 버티고 있는 환자, 수술 내내 생명을 유지시킨 마취과,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수술 팀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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