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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222화 (1,222/1,329)

8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넘어 똑똑하게 전달됐다.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귀를 울릴 정도였다.

“무슨 소리야?”

우르르 창가로 달려갔다.

김지훈이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공사 현장이 누런 먼지로 자욱했다. 조명까지 어두워져 건너편 아파트 단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무엇인가 무너진 것이 틀림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사고다!”

사고로 다친 사람을 무수히 보았지만 사고를 목격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조명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종합 병원 공사 현장이었다.

충격을 받고도 남았다.

움직여야 하건만 다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멍하니 사고 현장만 바라보았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다!’

눈을 떼지 못하던 김지훈이 소리쳤다.

“현장으로 갑시다.”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면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했다. 게다가 대규모 공사 현장이었다. 119에 신고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간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응급실로 달려갔다.

필요한 것들을 챙긴 후 간호사와 함께 즉시 출발했다. 손일석과 진충기 교수는 물론 이런 상황에서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될 민정호까지 뒤를 따랐다. 현장 상황을 파악하려는지도 몰랐다.

왜애애애앵!

병원 앰뷸런스를 타고 곧장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바로 연결된 진입로가 없어 몇 분 더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길기만 했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눈앞에서 사고를 목격한 탓인지 불현듯 삼풍백화점이 생각났다. 아비규환 속 수많은 생명을 잃은 그날의 처참한 현장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제발 다친 사람이 없어야 할 텐데. 제발!’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작업자들이 밑에 있습니다.”

“몇 명이야?”

“한씨, 이씨, 김씨가 안 보입니다.”

지하층을 만들기 위해 판 거대한 구덩이가 무려 세 명이나 삼킨 모양이었다. 자욱한 먼지와 무너진 자재에 가려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든 상황으로 보였다.

김지훈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고에서 살 수 있을까? 매몰됐으면 살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불길한 생각만 들었다.

응급처치를 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환자가 세 명이라는 사실을 응급실에 알리고 의료진을 대기시키는 것뿐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이 정도 사고가 나면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크게 다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적어도 아홉 명의 의사가 필요할 수도 있었다.

“수술 방 대기시키고, 연락되는 선생에게 모두 전화해 응급실로 오라고 하세요.”

(인원이 더 필요하진 않으세요?)

“현장 처치는 내가 할 테니까 수액과 피 바로 보내고, 응급실은 준비만 철저히 해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빠르게 도착한 119 구급대원들조차 사고 현장을 보며 놀라고 말았다. 자신들이 대응할 수준의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불안해했지만 김지훈을 비롯한 의료진의 존재에 그나마 안도하는 눈치였다.

곧이어 소방대가 도착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건만 구조 작업이 순탄하지 않았다. 추가 붕괴 가능성이 높아 장비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사람이 내려가는 일은 더더욱 위험했다.

책임지고 지휘해야 할 사람마저 없어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다. 연이어 도착한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건설사 책임자로 보이는 이들이 도착할 때까지도 진척이 없었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리고 말았다.

분노라고 해도 무방했다.

‘골든아워든 골든타임이든 백날 부르짖어야 무슨 소용이 있어? 사고 후 이송이 늦는 상황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거야?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돼 수많은 목숨을 잃은 후에도 변한 게 하나도 없다니,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때마다 한 조치가 고작 땜질에 불과했나?’

천재지변처럼 막을 수 없는 사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인재가 분명했다. 더구나 누가 보아도 가장 위험한 공사 현장인데 사고에 대비한 매뉴얼 하나 없는 모양이었다.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안전 조치가 미흡했다는 사실은 불문가지의 일이었다.

대문짝처럼 크게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안. 전. 제. 일!

말뿐인 구호에 불과했다.

더한 분노가 치밀었다.

답답함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붕괴 현장 속으로 내려가는 소방대원을 보는 순간 더욱 갑갑해졌다. 그들의 직무이자 의무라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안전한 구조를 도와야 할 공사 관계자 모두 구경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동료였을 작업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소방대원을 도와 구조에 참가했다. 위험을 불사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손일석이 분통을 터트렸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구조가 시작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거야? 소방대원이 없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답은 빤했다.

돈을 향한 탐욕과 이기심이었다.

안전 불감증이었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별생각 없이 넘어갈 테고, 막상 사고가 나도 그저 재수 없는 일로 치부할 것이다. 이는 곧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였다.

당장은 잘잘못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모두들 복잡한 눈으로 구조를 기다렸다.

부러진 채 겹겹이 쌓인 자재가 언제 무너질지 몰라 추가 사고가 안 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목숨을 걸고 타인의 생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헛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함 소리가 들렸다.

“세 명 모두 찾았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추가 인원이 필요합니다.”

“매몰자는 없습니까?”

“다행히 없습니다.”

동료의 생사를 걱정하며 발을 구르고 있던 작업장 인부들이 망설이지 않고 나섰다. 강한 조명이 사방을 밝혔지만 어둠을 완전히 지우지 못해 한 걸음 한 걸음이 불안하게만 보였다.

긴장과 초조가 사고 현장을 휩쓸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문질렀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모두 저 사람들의 몫이구나. 책상머리에 앉아 궂은일을 면했어도 안전만큼은 철저하게 지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드디어 첫 번째 피해자가 구조됐다.

사고 현장에 바짝 접근해 대기하고 있던 119 구급대원이 바이탈을 점검하고, 들것에 실어 이송하는 시간이 무척 길기만 했다.

환자가 대기 장소에 도착했다.

삼풍백화점의 악몽과 어수선함이 아직도 생생했다. 의료진이라 해도 마구잡이로 달려들면 오히려 처치만 늦어질 뿐이었다.

김지훈이 외쳤다.

“손 교수, 환자 확인해. 민 부원장님, 대충 상황을 파악했으니까 손 교수와 같이 들어가서 치료에 지장 없도록 준비해 주세요. 다른 병원으로 이송이 필요하면 즉각 대처해야 합니다.”

환자의 온몸이 먼지투성이였다.

손일석이 재빨리 골절 등의 외상이 있는지 살피며 의식 상태를 확인했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끄으응!”

고통과 충격으로 눈도 뜨지 못했지만 목소리에 반응을 했다. 정확한 의식 상태 파악이 어려운 반면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이나 출혈이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내부 출혈이 걱정됐다.

일반외과 수술이 필요 없다면 동반 손상 여부에 따라 이송 여부를 결정해야 할 환자였다. 필요한 처치를 한 손일석이 민정호와 함께 119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곧이어 두 번째 환자가 구조됐다.

비슷한 상태였다.

진충기 교수가 침착하게 대처한 후 곧바로 출발했다. 다만 대퇴부 골절이 확실해 보여 빠른 정형외과 치료가 요구되는 환자였다.

김지훈이 얼굴을 펴지 못했다.

‘후우! 이런 상황에서 또 이송을 해야 한다면 환자들이 버틸까? 제길! 종합 병원이 정말 필요한데 병원 건설 중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어이가 없네. 마지막 환자 구조는 왜 이리 늦는 거야?’

한참이 지나서야 마지막 환자가 구조됐다.

제대로 걷기도 힘든 사고 현장인데 119 구급대원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빨랐다. 숨을 몰아쉬어야 할 정도로 빠르게 환자를 옮겨 왔다.

“혈압이 거의 안 잡힙니다.”

간호사가 바로 혈관을 잡았다.

수액과 피가 빠르게 주입됐다.

김지훈이 직접 혈압을 재며 바이탈을 점검했다.

‘70 언저리에서 간신히 잡힌다. 호흡이 빠르고, 안색이 차고, 창백하다. 저혈량성 쇼크가 분명해.’

어떤 손상을 입은 것일까?

상의를 벗긴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우측 옆구리가 시커멓게 멍들었다.

가볍게 압박하자 우걱우걱 갈비뼈가 움직였다. 우측 하부 갈비뼈 골절이 동반됐다면 간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다른 상처는 완전히 뒤로 미뤄야 했다.

김지훈이 순간 망설였다.

의식이 저하된 상태에서 호흡까지 약했다.

‘지금 바로 기관 내 삽관을 해야 할까? 아니야. 무리하게 시행하다가 오히려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다. 병원에 도착해 기도를 확보하는 편이 낫다.’

턱을 들어 올려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조치하고, 산소마스크를 씌운 후 곧바로 출발했다. 김지훈이 바싹 붙어 환자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왜애애애앵!

풀(Full)로 튼 수액이 빠르게 흘러 들어갔지만 120회가 넘는 심박 수가 떨어지질 않았다. 두부 외상이 없고, 동공반사를 보인다 해서 뇌손상을 배제할 수도 없었다.

몇 시간 같은 몇 분이 흘렀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손일석이 나종진과 함께 막 수술실로 향하는 순간이었고, 진충기 교수는 송진우와 대퇴부 골절 환자 곁에 붙어 마지막 처치를 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환자를 옮기며 소리쳤다.

도착하기 직전 호흡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청진상 우측 폐의 호흡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폐 손상까지 의심됐다.

“인투베이션!”

잘 준비된 응급실이었다.

즉각 필요한 조치가 취해졌고, 빠르게 기관 내 삽관을 완료했다. 불규칙하고 거친 호흡을 내뿜던 환자가 본능적인 반응을 보여 도리어 한시도 지체할 틈이 없었다.

살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오만석 선생, 저혈량성 쇼크 환자야. 추가 수혈 준비하고, 응급 검사 바로 시행하자. 브레인 CT, 복부 CT, 흉부 CT 바로 찍어. 간과 폐 손상이 의심돼.”

사고가 발생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손상 여부에 따라 골든아워가 달라질 것이다. 검사하는 시간조차 아까웠지만 무작정 배를 열고 수술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이 없었다.

일분일초가 급했다.

한수영, 모찬우, 고경철이 달라붙었다.

빠르게 필요한 조치를 취한 후 환자를 CT실로 옮겼다. 그사이 검사 결과를 확인한 김지훈이 깊은 주름을 만들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심각한 출혈을 암시하는 혈액 감소, 흉부 사진에서 관찰되는 다발성 우측 늑골 골절, 혈흉이 의심되는 폐와 횡격막 사이의 하얀 음영까지 모두 치명적인 손상을 의미했다.

“흉부 도관 준비해요.”

CT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방사선실로 달려갔다.

김지훈과 오만석이 나직한 탄식을 흘렸다.

예상대로 간이 깨졌다.

배 속이 모두 피로 가득 찼다.

우측 흉부에 혈흉까지 발생했다.

유일한 위안은 브레인 CT에서 뇌출혈이나 두개골 골절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동반 손상이 더 있다 해도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기에 혈흉과 간 손상을 해결하면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시간이 관건이었다.

“오만석 선생, 수술 방에 먼저 올라가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흉부 도관 바로 삽입하고 수술실로 올리자. 혈액하고 수액 때려 부어.”

“알겠습니다.”

“보호자는?”

“연락은 됐다고 합니다만, 다른 지역에서 공사를 위해 온 환자라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기다릴 틈이 없었다.

혹여 제기될지 모를 의사의 책임을 면하고자 한다면 대신 환자의 목숨을 내주어야 할 상황이었다. 동의서 한 장과 사람의 목숨을 바꿀 수는 없었다.

지엽적인 일에 불과했다.

김지훈이 수술 방으로 달려갔다.

손일석이 첫 번째 환자를 수술하고 있었다.

비장이 깨지고, 소장과 대장이 여러 곳 터졌다. 작지 않은 손상이었지만 손일석과 나종진에 펠로우까지 함께 수술하는 이상 무난히 회복될 것이다.

“마취과, 양방을 열어야겠습니다.”

“야간이라 인원이 부족한데 환자 급합니까?”

“기다릴 여유가 없어요.”

종합 병원이었다면 양방은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일반외과 영역의 응급 수술만 시행하는 전문 병원의 맹점이었고, 야간 대응 능력의 한계였다.

돌연 가슴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종합 병원을 건립하는데 오히려 개원 시기만 늦어지게 생겼다. 다름 아닌 인재가 원인이라는 사실에 당장이라도 공사 책임자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김지훈이 훅훅 숨을 내쉬었다.

흥분은 금물이었다.

정확하면서도 과감한 수술만이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냉정하고 차분한 상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어느 때보다 머리와 가슴을 차갑게 식혀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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