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민정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수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원무과 업무도 제 소관 중 하나입니다.”
목덜미가 싸해졌다.
의료보험 공단에서 지급하는 돈을 훌쩍 상회하는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수납한 사실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비급여 치료는 물론 얼마 안 될 본인 부담금조차 받을 수 없는 환자라는 사실을 민정호가 모를 리 없었다.
이런 때일수록 세게 나가야 했다.
김지훈이 가슴을 활짝 폈다.
“환자가 너무 급하네요.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환자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부원장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른 걱정 마시고 수술에만 집중해 주십시오. 나머지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김지훈이 눈만 껌벅거렸다.
이학재 환자는 강호성과 다른 상황이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필요했지만 불행히도 언론이나 지역 정치가들의 이목을 끌 환자가 아니었다. 민정호가 더 잘 알 수밖에 없는 일이라 돈 문제부터 꺼낼 줄 알았건만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끝입니까?”
“무슨 말을 더 해야 합니까?”
너무 자연스러웠다.
김지훈이 웃고 말았다.
자신이 변한 것처럼 민정호도 변하고 있었다. 이런 환자가 올 때마다 매번 같은 식으로 처리할 수 없겠지만 무척 바람직한 일임은 분명했다.
두 어깨에 절로 힘이 실렸다.
마음과 마음이 모이고, 각자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이행한다면 이학재 환자도 무사히 회복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술실이다.
준비가 진행되는 내내 팔다리를 잡고 있어야 할 만큼 통제가 힘들었다. 한눈을 파는 순간 코 줄, 소변 줄은 물론 수액 줄까지 뽑고도 남았다.
때문일까?
띠띠띠! 띠띠띠!
환자의 심장이 다소 헐떡였다.
미열을 동반한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지적장애나 불안 때문이 아니었다.
패혈증 초기 증세일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바로 수술하는 게 맞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정확하게 판단했다면 이제 남은 일은 확실하게 수술하는 것뿐이었다. 사실 전신 마취하에 시행하는 수술이 가장 쉬운 치료일지도 몰랐다.
몸은 다 큰 반면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져 수술이 끝나는 순간부터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다른 환자 같았으면 난리가 나고도 남겠지만 마음 한편으로 오진이기를 바랄 정도였다.
‘암이라면 수술 후 항암 치료가 더 힘들 수밖에 없는데 차라리 원인 질환이 없었으면 좋겠다. 경철아, 네 역할이 제일 중요해.’
전공의이자 막내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미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고생하는 만큼 잘 가르치고, 수술 많이 주는 것이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고경철이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장 폐쇄가 이런 식으로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습니까? 구토와 혈변이 동시에 발생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유가 궁금해?”
“예. 무척 귀중한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김지훈이 묘한 소리를 냈다.
“내 추측으로는 장중첩증이 아닐까 싶다.”
“장중첩증이요?”
장이 장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일은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질환이었다. 나이가 안 맞는 데다 주로 소장과 대장의 연결 부위에서 발생해 위치도 맞지 않았다.
“구토와 혈변이 동시에 발생한 것을 보면 완전 폐쇄와 부분 폐쇄가 반복됐을 가능성이 있어. 이런 증상을 설명하려면 장중첩증이 가장 유력해. 악성 질환이 원인이라고 해도 출혈이 발생할 정도로 심한 염증을 유발했다면 움직임이 활발한 소장의 특성상 장이 장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일이 불가능하진 않아. 물론 환자의 병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한 가정에 불과해.”
그럴듯한 추측이었지만 김지훈도 자신할 수 없는 진단이었다. 워낙 보기 힘든 상황인지라 배를 열고 병변을 확인하기 전까지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상태기도 했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마취과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술 팀이 일제히 환자에게 집중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오늘따라 메스가 유난히 날카롭게 빛났다.
배를 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병변을 확인도 하기 전에 곳곳에서 복수가 관찰됐다. 마스크를 타고 고약한 냄새까지 전해져 복막염까지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폐쇄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나?’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이혁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환자와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는 지적장애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이유로 병력과 현 증상을 청취할 수 없는데 복막염 소견을 놓쳤다는 말은 결국 제대로 진찰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만일 수술이 늦어졌다면 범발성 복막염으로 이행됐을 것이다. 전신 상태가 불량하다 못해 수혈까지 필요한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환자나 자신에게 천만다행이었지만 결코 범하지 않았어야 할 실수였다. 혹시 태만해진 것은 아닌지 깊게 반성하던 김지훈이 입술을 꽉 물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집중만이 필요했다.
간부터 대장까지 모든 장기를 확인했다.
외견상 모두 정상이었다.
곧이어 병변 부위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공장 중간 부분 정도에서 장이 뭉쳐 있었다. 염증이 심한 데다 전반적인 점상 출혈까지 발생해 무척 약해진 상태였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뭉친 장을 풀었다.
병변이 모두 노출됐다.
이혁원과 고경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공장 속으로 공장이 말려 들어가 있었다.
장중첩증이었다.
‘추측이라고 했는데 정확하게 판단하셨네. 이런 경우 장중첩증을 의심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복막염 소견을 잡아내지 못한 것도 반성해야 돼.’
장중첩증은 하나의 증상일 수도, 최종 진단일 수도 있었다. 따라서 아이는 물론 성인의 경우 무조건 원인 질환을 확인해야 했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이중으로 겹쳐진 장을 풀었다. 말려 들어간 장을 밀어내야지 절대 잡아당기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장 속으로 말려 들어가 조여졌던 장이 모두 드러났다. 비대해진 임파선이 상당수 보일 정도로 염증이 심했고, 조직까지 손상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점상 출혈까지 여기저기에서 관찰됐다.
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절제만이 답이었다.
문제는 원인 질환과 그에 따른 절제 범위였다.
‘뭐가 유발한 거지?’
“비대해진 임파선이 원인일까요?”
“확인해 보자.”
차근차근 세세하게 장 겉면을 촉진했다.
염증과 부종으로 약해졌으면서도 두터워진 소장 내부에서 무엇인가 만져졌다. 확인을 거듭할수록 종양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소장 일부를 절개했다.
답답한 신음이 터졌다.
“종양이 확실하네요. 경계가 불분명하고, 중심부에 괴사까지 발생한 것으로 보아 악성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혁원이 눈가를 찌푸리며 자신의 소견을 피력했고, 김지훈 역시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말로만 듣던 소장암을 이렇게 볼 줄은 몰랐다.
“복막염은 왜 발생했을까?”
“대장과 다른 소장 부위가 모두 정상입니다. 미세 천공이 아닐까요?”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세포가 퍼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이 뚫려 복막염이 유발됐을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소화액과 음식물이 줄줄 쏟아져 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치명적이었다.
구멍을 따라 암세포가 퍼져 나갔을 것이다.
증상이 발현된 후 수술을 들어갔을 때 대부분 3기나 4기로 판정된다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가장 흔하게 암이 전이되는 복막이 깨끗했지만 소장암 4기나 다름없었다.
잠시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미세 천공까지 발생했지만 암 종류에 따라 수술 범위나 예후가 다 다르다.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는 병변과 주변 소장을 확실하게 절제하는 것이다. 수술에만 집중하자.’
“이혁원 선생, 절제하자. 어느 범위까지 절제하는 것이 좋겠어?”
“임파선 비대가 전이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최소 공장 전체와 회장 상부까지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장증후군이 발생하지는 않겠지?”
“삼분의 일 정도 자르는데 괜찮지 않을까요?”
소장을 지나치게 많이 자를 경우 단장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었다. 섭취한 음식물이 미처 소화되기도 전에 통과돼 심하면 영양 결핍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환자에겐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걱정 한편으로 피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개개인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였고, 예방이 가능한 상황도 아닌 탓에 달리 선택의 도리가 없었다.
‘절제 범위가 부족하면 재발할 수도 있다. 일단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범위까지 모두 절제하자.’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전기 소작기를 이용해 소장 장간막을 따라 부채꼴 모양으로 절제할 선을 그렸다. 통상 어려울 것이 없는 수술이었지만 십이지장과 맞닿은 부분을 자르고 이어야 하기 때문에 극도의 주의가 필요했다.
“보비! 켈리! 타이! 컷!”
소장에 연결된 동맥들을 차례로 잡았다.
혈류가 끊어지며 소장의 색이 변했다.
“하부 자릅니다. 장겸자!”
따르륵! 따가각!
회장 중간 부분을 잘랐다.
“십이지장과의 연결부 처리합니다.”
주변 장기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십이지장 하부를 박리한 후 잘랐다. 휘플을 하며 수없이 경험한 과정이었지만 언제나 땀으로 흠뻑 젖곤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했다.
깔끔하게 잘린 소장을 들어낸 후 십이지장 하부와 회장 중간부를 연결했다. 박리 이상으로 위험한 부분이 있었지만 김지훈의 손은 노련 그 자체였다.
마침내 주요 과정이 모두 끝났다.
미세 천공이 발생해 암세포가 퍼져 나갔을 가능성이 있었다. 배 속 장기 어딘가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원격 전이가 있을 수도 있었다.
배 속을 씻고 또 씻었다.
샅샅이 확인했다.
천만다행 어떤 전이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암세포 종류와 임파선 전이에 예후가 달렸다.’
“이혁원 선생, 마무리해.”
먼저 빠져나온 김지훈이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수술실을 나가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 수술 중 이렇게 찜찜한 적이 없었다.
일과가 끝난 후 시행한 응급 수술이기에 시행하지 못한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환자의 예후를 알 수 없었다.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가 분명한 보호자에게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알아들을지 걱정이 앞섰다.
‘제일 예후가 좋은 암이 뭐였더라?’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육종(Sarcoma)이 떠올랐다. 악성 림프종이나 소화기 분비선에서 발생하는 선암에 비해 5년 생존율이 확실히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마음이 급해졌다.
“끄으으응!”
환자가 신음을 흘렸다.
즉시 중환자실로 옮긴 후 팔다리부터 묶었다. 빠르게 수술 후 처치를 하는 이혁원과 간호사들을 보며 당직실을 찾아 비치된 교과서를 펼쳤다.
‘소장암! 소장암!’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기억이 확실했다.
암의 종류가 육종이라면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항암 치료가 필요 없다는 사실에 믿지 않는 신까지 찾았다.
‘왜 지적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게 한지 모르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나마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육종으로 나오게만 해 주십시오.’
환자를 찾았다.
진통제를 맞고 선잠이 든 상태였다.
“고경철 선생, 원래 킵을 할 이유가 없지만 사람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지? 코 줄 빠지면 다시 넣을 수 없을지도 몰라. 팔다리 묶은 끈 수시로 확인하고, 통증 호소하면 그때마다 필요한 처치해.”
“알겠습니다.”
보호자를 만났다.
고맙게도 담당 사회복지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보호자를 대신해 어떤 책임도 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어머니는 반드시 자식의 상태를 들어야 할 사람이었다.
“어머니, 수술 잘됐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 어디 있어요? 보고 싶어요.”
“지금은 자서 못 봅니다. 내일 보세요. 내일.”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아예 귀를 닫은 사람처럼 다른 말만 했지만 짜증조차 낼 수 없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설명에만 꽤 긴 시간을 들였다.
사회복지사가 먼저 인사를 했다.
“제가 차근차근 알려 드릴게요. 큰 기대는 할 수 없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퇴근하던 김지훈이 돌연 눈가를 붉혔다.
부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사실과 건강하게 태어나 준 희연이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과 건강이란 말이 새삼 다가왔다.
‘후우!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네. 조직 검사 결과가 육종으로 나오면 더 행복해질 텐데.’
육종(Sarcoma)!
그나마 작은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