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217화 (1,217/1,329)

3화

김지훈이 내원한 환자를 유심히 보았다.

배가 아파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했다. 사람에 따라 통증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고, 응급실에서는 무척 자주 보는 일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환자의 움직임이 어색했다.

보호자의 행색도 곤궁해 보였다.

김지훈이 바로 발길을 돌렸다.

“이혁원 선생, 이 환자 내가 볼 테니까 일 봐.”

“오늘은 불안해서 안 됩니다. 같이 보시죠.”

즉시 환자를 보았다.

17세 남자 환자. 이학재.

“환자분, 어디가 아파요?”

“배가… 배가 아파요.”

“언제부터 아팠어요? 정확히 어느 부분이 아파요?”

“배가… 배가 아파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발음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산만하게 보일 정도로 시선을 고정시키지도 못했다. 배가 너무 아파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지적장애를 가진 것이 분명했다. 안타깝게도 보호자와의 의사소통 역시 원활하지 못했다.

장애의 대물림!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

가슴이 답답했지만 환자 치료가 우선이었다. 다행히 개인 병원에서 소견서와 의뢰서를 가져와 그간의 경과를 알 수 있었다.

“평소 자주 복통을 호소했고, 이번에는 일주일 동안 투약했지만 증상이 더 악화됐다고 합니다. 진료 도중 구토까지 한 모양입니다.”

“다른 정보는?”

“의뢰한 병원에 전화해 보겠습니다만 추가 정보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지적장애에 의료보호 1종이라 사회 복지 기관이 더 잘 알지 않을까요?”

“장염이 발생한 상태에서 갑자기 장 경련이 유발됐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검사부터 하자.”

김지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일반적인 치료가 가능한 단순 질환을 언급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장애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한편으로 선천적 장애는 흔히 다른 질환을 동반하고, 기대 수명이 짧은 경우가 많아 십칠 년을 살아온 청년이라는 점을 믿고 싶었다. 유심히 살펴보아도 많이 말랐을 뿐 다른 기형이나 장애는 의심되지 않았다.

‘지적장애만 있었으면 좋겠네.’

피검사와 복부 촬영을 시행했다.

보호자가 검사의 필요성을 비롯해 의사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하기보다 누구 한 명 곁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이 훨씬 강했다.

‘정말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복지에 쓰는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사각지대를 없앨 방법이 없는 걸까? 오늘은 경황 중이라 동반한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결과가 나왔다.

빈혈이 상당히 심했다.

넉넉할 수 없는 생활에 평소 제대로 먹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일 높았지만 적혈구 수치가 너무 낮았다. 만성적으로 발생한 복통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소화 기관 어딘가에서 출혈이 발생했을지도 몰랐다.

‘위염이나 위궤양으로 인한 출혈이 제일 흔한 경우지만 그런 병을 의심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내시경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일단 영양 결핍에 의한 빈혈로 보는 것이 타당해.’

잠시 후, 복부 사진이 나왔다.

김지훈과 이혁원이 동시에 눈가를 찌푸렸다.

생각지도 못한 소견을 보였다.

“이혁원 선생, 여기쯤이면 공장이지?”

“공장 부분이 맞습니다.”

소장이 공장 부위에서 막혔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소장에서 검게 보이는 공기 음영이 관찰되면 안 된다. 그런데 십이지장에 공기가 차 방사선 검사상 검게 보였다. 분명 소장의 상부 어딘가가 막혔다는 강력한 증거이건만, 공장 다음 부분인 회장에서도 일부 공기가 관찰됐다.

완전 폐쇄가 아닌 부분 폐쇄가 강하게 의심됐다. 어느 경우라 해도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소견이 아니었다. 확실한 사실은 공장으로 추측되는 부위에 병변이 있다는 것이었다.

‘저 나이에 뭐가 발생한 거지?’

물론 두 살 이하의 아이에겐 유발 질환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수술을 요하는 질환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소장에서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장 폐쇄를 유발했을까?

김지훈이 하나하나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혁원 선생, 장 마비는 아니지?”

“장 마비라면 소장 전체에 걸쳐 확장된 소견이 보여야 하는데 하부 쪽에서는 확장이 거의 관찰되지 않습니다. 아닌 것 같습니다.”

“장염이 너무 심해서 일시적으로 장이 막혔을까?”

“염증으로 인한 임파선 부종 때문에 유발됐다면 부분 폐쇄가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폐쇄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100퍼센트 배제할 수 없지만 그보다 원인 질환이 따로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지훈이 얼굴을 찡그렸다.

유아기 이후 소장 폐쇄를 유발할 수 있는 대표적 질환은 두세 개에 불과했다. 대부분 림프종이나 선암 계열의 소화기 종양이 주요 원인이었다.

양성이 아닌 악성 질환이었다.

수술로 병변을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만일 수술을 해야 한다면 해결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보호자 동의부터 시작해 수술 전 처치마저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수술 후에는 또 어떨까?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전문 병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표방하는 부분도 아니었다.

‘종합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좋은데 어느 병원이 받아 줄까? 전원한다고 해도 보호자까지 지적장애가 있는 이상 간병 자체가 불가능할 텐데 타지에서 치료가 가능할까?’

안 될 일이었다.

난감한 상황인 것도 사실이었다.

김지훈이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장 마비가 너무 심한 경우 폐쇄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으니까 일단 지켜보자. 환자 증상 완화시키고, 한 시간 간격으로 복부 방사선 촬영해.”

“CT는 어떻게 할까요?”

질환이 있으면 보험이 되고, 없으면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물론 무조건 보험이 적용된다고 해서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점 역시 만만치 않다고 해도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분명 필요 없는 환자에게도 검사를 남발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 보험 재정과 적정 진료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의사 소견에 따라 보험 적용을 해 주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하긴 필요 없다고 검사 안 했다가 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데 그것도 답이 아니네.’

지금은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이학재 환자의 경우, 선택은 자명했다.

“말해 뭐 해? 수납할 형편이 안 돼 보이니까 방사선과에 직접 부탁해서 찍어. 원무과에는 내가 말해 둘게.”

응급실에서 마냥 시간을 보낼 형편이 아니었다. 고경철을 호출해 환자를 맡기고, 김지훈과 이혁원은 바삐 남은 일과를 소화했다.

김지훈이 일찍 회진을 돌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이학재 환자와 보호자 생각에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워낙 드문 경우라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해도 진단이 힘들 판이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호출을 받은 김지훈이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혁원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환자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이학재 환자가 심하게 토했다.

장 폐쇄를 강력히 암시하는 증세였다. 그런데 정반대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는 멜레나(Melena), 즉 타르처럼 끈적거리는 검은색의 변을 보았다.

상부 소화관 어디에선가 출혈이 있었다는 증거였지만 다량의 피가 지속적으로 소화관을 통과했다는 소리기에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장 마비든 부분 폐쇄든, 이 정도 소견이면 소화액도 통과하지 못할 텐데 이상하네.’

최종 진단을 내리기 전에 치료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임시 진단을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한 시간 간격으로 찍은 복부 사진을 확인했다.

장 마비가 아닌 장 폐쇄 소견을 점점 더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예상외로 진행 속도가 빨라 이 상태로 간다면 응급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혁원이 눈가를 문질렀다.

“거의 완전 폐쇄 소견이네요.”

“CT는?”

“막힌 부분 주변으로 장이 겹쳐 확실한 원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림프종이나 소장암이 원인이라면 CT로도 알기 어려운데 걱정입니다.”

김지훈이 고민에 잠겼다.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데다 지적장애로 인해 환자의 인내력마저 기대할 수 없었다. 증상 완화를 위한 코 줄 삽입 같은 기본적인 처치를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환자의 저항이 너무 심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켜볼 수 있을까? 구토와 혈변이 지속된다면 상태만 악화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무엇보다 소장 폐쇄의 원인의 상당수가 악성 질환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술이 답이었다.

반면 환자 상태가 극히 불량했다.

당연히 전신 상태를 충분히 호전시키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기본적인 처치마저 힘든 지적장애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시기가 관건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정규 수술을 할지, 응급 수술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다시 한번 이학재 환자의 상태와 모든 검사를 세심하게 확인한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무엇이 원인인지 모르지만 장이 점점 더 심하게 막히고 있다. 환자나 보호자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시간을 끌어야 상태만 악화될 것이 빤하다. 여기서 더 늦추면 환자만 위험해진다.’

“이혁원 선생, 지금 바로 수술하자.”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고경철 선생, 빈혈이 너무 심하니까 지금부터 수혈하자. 코 줄, 소변 줄 준비해 주세요.”

이혁원 역시 망설이지 않았다.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 분명했다.

김지훈이 직접 입원장을 작성한 후 보호자를 만났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 가며 설명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신히 납득시켰다.

“배를 째고 병을 치료할 겁니다.”

“예.”

“아드님이 많이 아파할 거예요.”

“예. 우리 아들 아플 겁니다. 고쳐 주세요. 우리 아들 울어요. 약 주세요.”

착각에 가까웠다.

알아듣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자리를 맴맴 돌고 있었다. 삐뚤빼뚤 보호자의 이름이 적힌 수술 동의서가 법적인 효력을 가질지조차 알 수 없었다.

김지훈이 한숨을 쉬고 말았다.

먹고사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이 가능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분명 담당 사회복지사가 있을 텐데 정작 가장 필요한 때에 없어 한편으로 화가 치밀었다.

개인이 아닌 국가에 대한 분노였다.

‘한 사람이 수십 명 이상 담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부분에 돈 쓰지 말고, 정말 필요한 인력부터 뽑아야 하는 거 아니야?’

직면한 현실부터 해결해야 했다.

응급실 간호사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강 선생, 수술 후 즉시 중환자실로 옮길 거니까 연락해서 베드 마련해요. 지적장애가 있어 팔다리 묶어야 한다는 말 잊지 말고요.”

“중환자실이요?”

“일반 병실에서 치료할 수 있는 환자가 아니잖아요. 수납 때문에 원무과에서 연락 오면 내가 책임진다고 말하고, 다른 환자와 똑같이 진행하세요.”

수술 준비가 시작됐다.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코 줄과 소변 줄이 주는 고통에 환자가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기본적인 처치를 끝낸 고경철과 이혁원의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걱정을 넘어 우려를 자아내는 모습이었다.

‘후우! 수술 후가 더 문제인데, 퇴원할 때까지 중환자실에서 치료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지?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수밖에 없겠어.’

“마취과에서 연락 오는 대로 올립시다.”

막 응급실을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급히 들어와 이학재 환자를 찾았다. 다급해 보이면서도 침착하게 상태를 묻는 것으로 보아 담당 사회복지사가 분명했다.

김지훈이 바로 면담했다.

추측한 대로 이학재 모자의 상황은 열악하다 못해 최악이었다. 국가에서 지급되는 얼마간의 돈이 수입의 전부였고, 사회복지사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을 지탱하기도 힘들었다.

“다른 보호자는 한 명도 없는 겁니까?”

“친척들이 있지만 돌볼 생각이 없어요. 복지 기관에서 수용하면 좋은데 그쪽도 자리가 꽉 차서 차례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에요.”

“알겠습니다. 일단 치료가 급하니까 수술부터 시행하겠습니다. 우리 병원이 모든 비용을 감당하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은 부분이 있을 겁니다. 관계 기관에서 협조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인걸요. 호성이 때도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다행이었다.

돈이 아니라 강호성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늦은 시간에도 달려와 챙겨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새삼 다시 보았다.

‘이런 분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어야 더 좋은 세상이 될 텐데 안타깝다.’

수술 방에서 연락이 왔다.

사회복지사와 다시 상의하기로 약속한 후 응급실을 나가던 김지훈이 흠칫 걸음을 멈췄다.

민정호였다.

집무실이 신관에 있어 절대 맞닥트릴 시간과 장소가 아니었다. 순간 아무 이유도 없이 수납 문제를 책임진다고 한 말이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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