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197화 (1,197/1,329)

3화

김지훈이 또 한 번 서도훈과 한 팀이 됐다.

복강경을 이용한 휘플이라는 공동의 목표만이 아니라 가장 치료가 힘든 췌장 질환을 다루기에 그동안 많은 수술에서 손발을 맞췄다. 세컨으로 한수영이 참가해 전문 병원이 꾸릴 수 있는 최고의 수술 팀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수술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단지 위와 유문을 보존하는 것뿐인데 첫 시도이기 때문인지 상당히 긴장되네요.”

“뭐든 처음은 다 그런 거 아니야?”

“만일 실패하면 우리는 물론 환자에게도 큰 심리적 타격을 줄 텐데, 선생님은 이런 압박감을 어떻게 이겨 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했고, 서도훈 선생이나 나나 없는 시간 빼 충분히 준비했잖아. 편하게 생각해. 실패한다고 해도 전통적인 휘플을 하는 것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상당한 경험을 쌓았다고 해도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는 수술이 바로 휘플이었다. 더구나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부분은 심리적인 면만이 아니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서도훈이 벌써부터 온몸이 뻑뻑해지는지 어깨를 휘휘 돌렸다.

“위장 쪽 수술을 한 지 오래돼서 편하게 생각할 수가 없네요. 신현수 선생님이나 오만석 선생이 있었다면 한결 마음이 놓였을까요?”

“우리가 함께하는 것만 할까?”

“그렇죠?”

수술 방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수술실이 차례차례 차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수술 팀이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마취가 시작됐다.

조용히 수술 과정을 그리며 환자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종래에는 제거했던 위를 보존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부담을 덜려 했지만 점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유문과 연결된 십이지장을 아무리 적게 남겨도 결국 십이지장과 소장을 연결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가? 기술적 문제를 잘 해결하면 괜찮다는 확신이 서야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선입견일까?’

어떤 원인으로 수술하든 췌장액과 담즙의 배출 통로가 있는 십이지장은 통째로 제거하거나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오래전 일이고, 직접 수술한 환자가 아니었지만 십이지장 파열로 단순 봉합한 후 아물지 않아 수년 이상 입원한 사례까지 있었다. 운이 좋아 회복됐지 자칫 생명을 잃고도 남았다.

이런 예들이 의사에게 본능적인 공포를 안겨 주었다. 실제 그런 두려움이 환자나 의사에게 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술은 근본적 차이가 있었다.

‘소화액 역류가 가장 큰 문제지만 위를 남기든 제거하든 어차피 췌장과 담도를 각각 소장과 연결해야 한다. 방법의 차이에 따른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일차 목표다. 자신 있게 수술하자.’

상념에 빠진 사이 마취가 끝났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서도훈과 한수영에게 힘찬 눈길을 준 김지훈이 과감하게 복부를 열었다.

장기가 드러났다.

모든 암 수술은 종양을 제거하기 전에 원격 전이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방사선 검사로 100퍼센트 잡아낼 수 없을뿐더러 다른 장기든 복막이든 전이가 있다면 수술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모든 장기가 깨끗했다.

“진행합시다.”

유문을 보존한다고 해서 수술 과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위, 십이지장, 담도, 췌장 순으로 절제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위 제거를 생략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모든 장기를 한 덩어리로 떼어 내는 앙 블락(En Bloc) 방식은 무조건 지켜야 할 원칙이었다.

김지훈이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부인 유문을 확인했다. 역류를 방지하기 위한 괄약근으로 이뤄진 부위가 두툼하게 만져졌다.

유문과 연결된 십이지장을 가리켰다.

“서도훈 선생, 이 정도 남기면 되겠지?”

“그 정도는 돼야 소장과 안전하게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 기능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까지 역류한 소화액이 이 부분에서 정체될 텐데 버틸 수 있을까요?”

가장 우려하는 문제였다.

유문과 위 하부를 제거하면 소화액이 역류하더라도 정체되는 부분이 생기기 어렵다. 반면 유문이라는 강력한 물리적 장벽을 남기면 역류한 소화액이 위로 넘어가지 못하고 소장과 십이지장을 봉합한 부위에서 정체될 수 있었다.

단백질과 지방을 녹이는 소화액이다.

연결 부위에 허용 수준 이상의 틈이 발생하거나 유일한 방어막인 점막을 완벽하게 밀착시키지 못한다면 봉합 사이로 스며들어 조직을 녹일 것이다.

비수술적 방법을 이용한 보존 치료로는 결코 아물 수 있는 손상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일반외과에서 가장 큰 수술인 휘플을 한 상태에서 재수술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도 위와 손상 부위를 모두 자르고 소장을 다시 연결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기본적인 체력이 있다 해도 첫 수술로 지친 환자가 버텨 낼지 장담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밑도 끝도 없다. 부정적인 면은 털어 내고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자. 우리 손을 믿고 진행하면 된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십이지장과 맞닿은 유문 주변을 박리했다. 잘라야 할 부분에 주변 조직이 들러붙어 있으면 봉합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깨끗하게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후복막에 반쯤 묻혀 있던 십이지장 상부 일부가 완전히 박리됐다. 문합할 부위를 가늠한 김지훈이 약간의 여유를 두며 손을 내밀었다.

“장겸자!”

따르륵! 따가각!

십이지장 상부를 잘랐다.

이제 남은 십이지장부터 시작해 제거해야 할 장기를 한 덩어리로 제거해야 했다. 어느 하나 위험하지 않은 장기가 없었지만 상당한 경험을 쌓은 김지훈과 서도훈이었다.

“모스키토! 켈리! 타이! 컷!”

십이지장을 들어냈다.

공장으로 이행되는 부위를 잘랐다.

“보비!”

삐이이이이!

곳곳에 발생한 출혈을 잡았다.

완전히 박리된 십이지장을 수술용 천으로 감싼 후 암 전이의 통로인 림프절이 존재하는 지방조직을 따라 담낭까지 절제했다.

담도와 췌장이 남았다.

절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장기였다.

마취과도 더욱 긴장을 높여야 할 시간이었다.

“췌장 절제 들어갑니다.”

언제나 땀이 나는 과정이었다.

모스키토로 주변을 박리하는 과정, 췌장 조직을 절개하는 과정,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췌장관을 찾아 처리하는 과정까지 그야말로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다.

정도 이상의 출혈 또한 극도로 주의해야 했다.

혈액은 혈관 속에 있을 때 안전할 뿐 혈관 밖으로 나오면 하나의 이물이자 강력한 자극이었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췌장에 과도하게 피가 스며든다면 필연적으로 염증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소장과 연결한 부위가 터지고도 남았다.

“타이! 컷! 타이! 컷!”

김지훈과 서도훈이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세컨을 서며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한수영이 입술에 침을 발랐다. 췌장을 박리하고, 절개하고, 수처에 이어 타이하는 내내 김지훈과 서도훈은 환상적인 호흡을 보였다. 개개인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선생님 모두 대단하시네. 전문의라고 해서 다 같은 전문의가 아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겠지. 삼 년이다. 그 안에 따라잡아야 해.’

“한수영 선생, 집중하자.”

그 와중에 김지훈은 미세하게 흔들리는 한수영의 손을 귀신처럼 잡아냈다. 흠칫 놀란 한수영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수술에 집중했다.

‘리틀 이준영!’

췌장 두부(머리)가 몸통과 완전히 분리됐다.

곧바로 담도를 제거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췌장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기였지만 주변에 주요 혈관이 지나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지훈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사전에 충분히 대비하기도 했지만 간 이식을 하며 무수하게 혈관을 처리한 덕분이었다. 의학을 경험의 학문이라 부르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과정이었다. 수술을 하면 할수록 해부학적 지식은 물론 기술적인 면까지 발전하기 때문이었다. 손이 떨리면 안 되기에 나이에 따른 한계가 어느 정도 있지만 말이다.

하부 담도까지 모두 제거했다.

십이지장, 담낭, 담도, 췌장 머리 부분을 한꺼번에 배 밖으로 끄집어냈다. 불과 1센티미터 남짓한 암 덩어리 하나로 인해 장기 네 개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김지훈이 소장을 끌어와 길이를 가늠했다.

소장을 췌장과 담도에 연결하는 과정은 전통적 휘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절반 가까이 잘린 위와 연결하는 대신 위 유문과 연결된 십이지장을 공장과 연결하는 과정만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장점이 많았다.

일단 봉합할 부위가 대폭 줄어들어 수술 후 합병증 발생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특히 위와 유문을 남겨 기능을 보존할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장점이었다.

반면 이미 언급한 것처럼 단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십이지장과 공장을 완벽하게 연결하는 것뿐이었다.

“췌장과 소장 연결합니다.”

새로운 방식에 생각이 집중됐지만 지금이야말로 단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극도의 긴장과 부담 속에 수술 팀 모두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했다.

“수처! 타이! 컷!”

김지훈의 손은 정확했다.

서도훈은 결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한수영 선생, 췌장관 정확하게 확보됐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출혈에 대비해.”

한수영은 세컨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노란 췌장 조직과 분홍빛 공장이 연결됐다.

곧이어 담도와 공장을 연결했다.

수많은 경험이 빛을 발했다.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지만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깔끔하게 연결된 장기와 장기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좋았어. 이제 마지막 연결만 남았다.’

“수처!”

드디어 십이지장과 공장 연결이 시작됐다.

적정한 굵기의 실로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절대 점막을 빠트리면 안 되는 과정이었다. 타이 역시 조직에 손상이 가하지 않으면서도 단단하게 조여야 했다.

전문의와 전문의가 하나의 수술 팀을 이뤘다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최고의 수술 팀을 자부한다면 오히려 서로의 눈과 경험을 존중하며 십분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서도훈 선생, 점막 제대로 잡았지?”

김지훈이 수시로 확인했다.

“이 정도 힘으로 타이하면 적절하겠죠?”

서도훈 역시 수시로 조언을 구했다.

일반외과 수술의 기본 중에 기본인 소장 연결을 두고 두 명의 전문의가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손길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 수처가 남았다.

김지훈이 숨죽인 채 십이지장에 이어 공장에 바늘을 찔러 통과시켰다. 자를 때 발생한 약간의 출혈로 검붉어진 점막을 신중하게 확인한 후 서도훈을 보았다.

서도훈이 신중하게 매듭을 만들었다.

서서히 매듭을 조이며 소장과 소장이 확실하게 밀착할 때까지 힘을 빼지 않았다. 자신과 집도의의 경험과 판단을 믿고 손을 뗐다.

“컷!”

실이 잘렸다.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 끝났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괜찮아 보이지?”

“제대로 된 것 같습니다.”

“좋아. 이중 수처하고 마무리하자.”

소장의 겉면과 겉면을 당겨 기존 봉합 부위를 감쌌다. 혹시 연결 부위에 가해질지 모를 과도한 압력을 분산시켜 내용물이 새는 일을 방지할 목적이었다.

마무리까지 끝났다.

출혈이나 미진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고, 췌장 수술 시 사용하는 굵은 드레인이 수술 부위 곳곳에 박혀 있었다. 적어도 육안으로는 무척 깔끔한 수술이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잠시 십이지장과 공장 연결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위와 유문을 보존한 것은 단지 수술 부위나 크기의 차이만이 아니었다. 별다른 문제 없이 아문다면 환자의 고통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닫자.”

서도훈이 배를 닫았다.

시간에 맞춰 마취를 깨우기 시작했고, 복부 봉합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환자가 몸을 비틀며 스스로 숨을 쉬었다. 이내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졌다.

“회복실로 옮깁시다.”

일반외과에서 가장 큰 수술을 받았다.

비몽사몽 중에도 육체가 전하는 통증이 무척 심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통증 조절보다 환자가 확실하게 의식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끄으으응!”

“환자분, 눈 떠 보세요.”

환자가 힘없이 눈을 떴다.

목구멍에 박혀 호흡마저 힘들게 하는 코 줄,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 통제할 수 없는 소변과 적절한 혈액 순환을 알기 위해 넣은 소변 줄까지 온통 육신을 힘들게 할 뿐이었다.

점차 손발을 비틀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의사에겐 반가운 반응이었다.

김지훈이 다소 가벼운 발걸음으로 보호자를 만났다. 다만 일주일 정도는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말 못할 마음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문제없이 붙는다. 붙을 수밖에 없어.’

조경태 환자의 회복에 또 한 번 내민 첫걸음의 결과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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