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한 주가 시작됐다.
신관 연구실로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상황에서 기쁜 소식이 연이어졌다.
신현수가 신임 이사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송재덕 교수와 김진호 교수는 각각 해당 병원 원장으로, 김지훈은 전문 병원 부원장으로 정식 발령이 났다. 사실상 서울 병원 원장을 뺀 남은 원장단 모두 유임돼 병원의 안정을 중시하는 인사 조치였다.
상대적으로 넓고, 전에는 없었던 여러 집기까지 갖춘 부원장실을 겸한 연구실을 보는 김지훈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 시간부로 직무 대행 딱지를 뗀 건가? 일이 많아져서 그렇지, 좋긴 좋네. 부원장 김지훈 박사라. 명패도 마음에 들어. 하하하!’
상큼한 출발이었다.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긴 했다.
“김 부원장, 오늘 이사장 취임식에 참석 못하지?”
“민 부원장과 함께 원장님만 다녀오시죠. 신 이사장님께 미안하다고 꼭 전해 주시고요.”
서울 병원에서 취임식이 열리는 데다 간 이식 수술이 있어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감회가 새로울 신현수에게 멀리서나마 축하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수야, 정말 축하한다. 우리의 목표 잊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송재덕 선생님, 격하게 축하드립니다. 이제 각 병원 모두 본연의 업무에만 신경 쓰면 되는구나.’
김지훈의 어깨에 힘이 넘쳤다.
간 이식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
학회 설립 때문인지 한 사람의 삶과 생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지 새삼 다가왔다.
공여자는 희생과 다름없었다.
불법적인 장기 거래를 막기 위해 제정된 일체의 보상을 금지하는 법 때문에 오로지 순수한 기증만이 가능했다. 돈으로 장기를 사고파는 일은 당연히 막아야 하겠지만 가족이 아닌 공여자를 극도로 찾기 힘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제자리걸음이라 이식할 장기가 태부족이지만, 금전적 이득이 주어지면 순수 기증이 아니라 장기 브로커들이 활개를 칠 테니 이것도 딜레마네.’
때문에 장기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식 차례의 선후를 철저히 지켜야 하며, 편법이나 불법을 막아 담당 병원에 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잘 조율해야 한다.
기증이나 공여가 결정되면 내과가 다음 과정을 맡는다. 공여자와 수혜자에게 필요한 모든 검사를 시행한 후 적합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기증은 이미 확보해 놓은 수혜자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비교하면 돼 상대적으로 간단하지만, 생체 간 이식의 경우 일치하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어느 과든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 환자나 보호자들의 불평과 불만을 접하게 된다. 이럴 때 서로 감정적이 되면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없을뿐더러 심한 경우 분란이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의사가 절대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되는 이유겠지. 환자나 보호자가 서운해하더라도 질환에 대해 설명할 때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감정은 그 후에 표현해도 늦지 않아.’
동시에 방사선과는 각종 검사를 정확하게 판독해야 한다. 만일 이식에 금기가 되는 상황을 놓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한자리에 앉아 사진만 보며 긴장과 집중을 유지하는 일이 쉬울 리도 없었다.
‘어느 면에서는 정말 대단해. 나 같으면 못한다.’
모든 검사가 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오면 비로소 일반외과에서 환자를 담당하게 된다. 유기적인 협조가 대단히 강조되는 수술이지만 관련 분야가 모두 모여 사전 준비를 하는 것도 이때가 돼야 가능했다.
물론 모든 병원이 같은 절차와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었다. 병원 고유의 특성에 맞춰 시행할 때 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술이 남았다.
일반외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 및 해당 간호사들은 평균 열 시간에 육박하는 수술 내내 고도의 집중력과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 전에 수술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만도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수술하면 끝일까?
외과 내부적으로는 킵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복 과정 내내 내과와 방사선과도 함께하며 환자 상태를 평가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일을 수행해야 한다.
더불어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교대로 24시간 내내 환자에게 집중해야 한다. 사소한 변화 하나가 수술 후 합병증이나 치명적인 거부반응을 알리는 요소일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의사가 오기 전 독자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환자가 안정된 후에는?
병동 간호사들이 바빠질 차례였다. 안정이 됐다고 해도 거부반응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었다. 다른 환자와 달리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환자가 일주일에 최소 다섯 명이었다. 숙련도를 떠나 대단히 힘든 일이었고, 반복되는 업무에 자칫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었다.
‘입원 전부터 퇴원할 때까지 모든 의료진이 달라붙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끄으으응!”
환자가 나직한 신음을 터트렸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우리도 힘들지만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힘들게 수술을 받은 환자가 가장 중요하다. 퇴원할 때까지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늦은 회진을 돌았다.
전문 병원을 표방하며 가장 주력하는 부분이 간 이식이지만, 한 사람의 삶과 목숨에 경중이 없는 이상 다른 환자 역시 그만큼 중요했다.
수술을 앞둔 췌장암 환자를 찾았다.
50세 남자 환자, 조경태.
운이 좋으면서도 나쁜 환자였다.
많은 경우에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진행된 후에야 발견되는 암이 췌장암이었다. 초반에는 소화불량 등의 일반적인 증상만 보이는 데다 말기에 가까워져도 복통이나 체중 감소 등의 소견만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빨리 발견해서 천만다행이지만, 췌장 두부(머리)에 발생한 이상 휘플을 피할 수가 없네.’
“몸은 어떠세요?”
“그럭저럭 견딜 만합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훨씬 클 것이다. 암 환자를 볼 때마다 접하는 일이었지만 의사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2기로 판정됐으니까 수술만 잘 받으시면 예후가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얼마나 살지 5년으로 따진다죠? 췌장암의 예후가 가장 나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 속에 두려움이 실려 있었다.
점점 정보가 풍부해지는 세상이었다.
건강에 관심이 커지는 만큼 각종 질환에 대한 정보를 자주 접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 귀담아듣지 말아야 할 잘못된 정보가 많아 신문이나 텔레비전, 특히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맹신하면 안 되지만 기본적인 사실은 정확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해석은 별개의 문제였다.
“5년 생존율이라는 말을 들으셨군요. 여러 관점이 있지만 암 수술 후 5년이 지날 때까지 재발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암 발병률을 갖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확률은 말 그대로 확률일 뿐이고요. 지금은 무엇보다 치료에 전념하셔야 할 때입니다.”
“알겠습니다.”
“한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습니다. 이미 설명을 드렸지만 췌장암 수술 시 위를 보존하는 수술을 시행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첫 시도를 하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예정대로 수술을 받으시겠습니까?”
조경태 환자가 잠시 김지훈을 보았다.
‘췌장과 간 쪽 수술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의사라고 했는데, 믿고 맡기는 것이 맞겠지.’
“위를 보존하면 수술 후 불편을 크게 덜 수 있다고 하셨죠? 가급적이면 고통 하나는 줄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첫 시도인 만큼 의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은 환자를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이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과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또한 자신을 치료할 의료진을 믿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김지훈이 한동안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드문 암이지만 우리 병원 수술 팀은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수술 후 합병증을 포함해 환자분이 힘들어할 만한 요소를 최소화시킬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믿고 치료에 임하시면 좋겠습니다.”
조경태 환자가 조금은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하루가 지났다.
진료를 거의 끝낸 김지훈이 전화기를 들었다.
틈날 때마다 연락을 시도했지만 수술 방에서 사는 외과 의사들과의 연락이 무척 힘든 것처럼 경기복 과장 역시 통화조차 쉽지 않았다.
간신히 연결됐다.
“안녕하십니까? 전문 병원 김지훈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이시죠?)
“전화로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간 이식 학회를 설립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직접 만나 상의드리고 싶습니다. 여러 선생님이 계시지만 과장님과 가장 먼저 논의해야 진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최대한 예의를 차렸다.
(그래요? 마침 우리도 학회 설립을 추진하려던 참이었습니다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많이 바쁘십니까?”
(시간도 시간이지만 아무래도 서울에 간 이식을 시행하는 대형 병원이 많다 보니 상의할 병원이 한두 군데가 아니네요. 어느 정도 서로의 입장이 정리된 후 만나야 하지 않을까요?)
“기본 입장은 같지 않겠습니까? 지역별로 상의하는 일은 구체적인 안이 나온 후에 해야 할 일인 것 같고요.”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경험이 무척 필요한 일입니다. 서두르다 보면 사방에서 터져 나올 불평불만을 감당하기 어려워요. 다행히 전문 병원도 우리와 생각이 같으니까 서울 지역은 일단 우리가 알아서 진행해도 별문제 없을 것 같군요.)
길만 안 막히면 서울까지 한 시간 거리였다. 서울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짧을 수 있는데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순간 주도권이란 말이 뇌리를 스쳤다.
‘원칙을 정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진행하다간 분란만 초래할 수 있다. 양보할 부분이 아니다.’
확실한 뜻을 전해야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 병원에서도 곧 부산 병원 및 다른 병원과 접촉할 예정입니다. 설립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지만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은 피했으면 합니다.”
(우리 지역 병원과 접촉을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다만 간 이식을 가장 많이 시행하고 있는 세 개 병원이 먼저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알 테니까요.”
(언제 만날 생각입니까?)
“실무를 맡을 선생님들은 이미 정했습니다. 다들 바쁘신 관계로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의견 수렴이라면 우리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수고를 덜지 않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학회 설립 제안을 두고 고민할 내용은 많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전화한 데다 예상보다 빨리 움직여 당황한 것인지 몰라도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흐음! 아주 중요한 일인데 각자 움직이면 혼란만 초래할 것 같군요. 일단 만나서 얘기하죠.)
“부산 병원에도 알리겠습니다.”
(함께 논의하면 좋지만 올라오기도 힘들 텐데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일단 우리 둘이 어느 정도 합의를 한다면 부산 병원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봅니다.)
‘양 병원이 아니라 우리 둘이?’
“죄송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삼 개 병원 중 단 한 곳만 논의에서 배제돼도 정상적인 진행이 어렵다고 봅니다. 설립만이 아니라 이후 운영도 신경 써야 하니까요. 연락하겠습니다.”
(끄응! 그렇게 하시죠. 장소는 서울이 좋을 테고, 시간은 내부적으로 상의한 후 알려 드리겠습니다. 조정이 필요하면 그때 다시 잡기로 하죠.)
통화를 마친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감이 좋지 않았다.
부산 병원을 배제한다면 전문 병원에도 그럴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서울 지역에 산재한 병원과 접촉하겠다는 말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 것도 마땅치 않았다.
‘우리 의견도 묻지 않고 시간과 장소까지 일방적으로 정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출발이 좋지 않네.’
갑갑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지만 위와 유문을 보존하는 수술이 하루 앞이었다. 적절한 휴식을 포함해 철저히 대비해야 할 때였다.
“회진 돌고, 퇴근하자.”
병동부터 시작해 마지막으로 중환자실을 들렀다. 진충기 교수는 막 간 이식 수술을 마쳤고, 손일석은 전주에 수술한 환자를 보고 있었다.
마침 잘됐다.
“손 교수, 진충기 선생님, 잠깐 시간 되시죠? 이번 주 내로 경기복 과장님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다른 병원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일은 미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통화 내용을 대략 설명했다.
“입에서 입으로 옮긴 말이 정확하지 않다지만 왠지 모르게 걸쩍지근하네. 혹시 모르니까 친분도 쌓을 겸 의향 확인 정도는 진행해도 되지 않을까?”
“그 정도는 괜찮겠지.”
그때 잠자코 듣기만 하며 얼굴을 펴지 못하던 진충기 교수가 뜻밖의 말을 했다.
“우리와 함께 만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생님도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입장이 곤란한 건 경기복 과장이나 나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학회 설립과 상관없이 언젠가 얼굴 마주쳐야 하고요. H 병원도 혼자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내심 우려하고 있었다.
김지훈의 대처 능력과 별개로 경기복 과장의 수에 말려들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사실 김지훈으로서도 혼자 만나기 찜찜한 참이었다. 다 똑같은 의사가 아닐뿐더러 어디에나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인 까닭이었다.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되지만 대비해서 나쁠 것도 없다. 여러 사람이 들어야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겠지.’
“좋습니다. 같이 만나죠.”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가를 찡그렸다.
학회는 순수 학술 단체다.
반면 민정호의 시각처럼 평생 병원이란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의사에게 학회장은 일종의 감투이자 명예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창립을 주도한 초대 학회장을 각별하게 대우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시작부터 전자보다 후자를 신경 써야 한다니 우울한 일이었다.
찝찝한 기분으로 연구실로 향하던 김지훈이 돌연 씨익 웃었다. 문 전면과 벽에 붙은 부원장실 명패가 이상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마냥 나쁜 일이 없는 것처럼 좋은 일은 좋게 받아들여야 정말 행복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