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김진호 교수가 들어왔다.
환자 배정에 따른 문제겠지만 마취과 최고 실력자인 까닭에 더욱 부담이 가중됐다. 더구나 원 포트로도 가능한 담낭 절제술에 교수 두 명이 수술을 하는 마당이었다.
“마취 시작합니다. 환자분, 편히 숨 쉬세요.”
아무리 건장해도 마취제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었다. 정맥 마취제가 투여되자 긴장에 사로잡혔던 정유미의 눈이 곧바로 감겼다.
“김 과장, 얼마나 걸려?”
“혈관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빨라도 두세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오케이! 다음 수술 없으니까 천천히 해. 수술 시작해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췌장과 담도 파트까지 맡고 있지만 서도훈이 있어 그간 복강경 수술이 많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훨씬 더 어려운 수술을 해 왔기에 절대 실력이 사라질 리 없었지만 상당한 부담을 지울 수 없었다.
‘담낭 절제술이 이렇게 부담될 줄은 몰랐네. 도훈이가 있는 이상 실패보다 성공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믿자.’
배꼽 부분을 열었다.
카메라를 넣고 장기를 확인했다.
담낭에서만 염증의 흔적이 관찰될 뿐 모든 장기가 깨끗했다. 수술을 진행하는 데 어떤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담낭 동맥을 비롯해 혈관이 몰려 있는 부분을 비추는 순간 결코 원 포트로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혈관을 덮고 있는 지방 조직이 생각보다 너무 두툼하네. 도훈이를 부르길 정말 잘했다.’
구멍을 하나 더 뚫었다.
모두 세 개의 기구를 삽입했다.
김지훈이 서도훈을 보았다.
“시작하자.”
삐이이이이!
담낭 윗부분부터 박리를 시작했다.
수없이 경험한 과정이었고, 어려울 일도 없기에 빠르게 진행됐다. 담낭이 떨어져 나올수록 혈관이 몰려 있는 부분에 가까워졌다.
그때 수술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이경석과 나종진이었다.
실력 있는 의사 덕에 정유미 환자의 혈관 기형을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었지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일이 아니었다.
수술 중 언제든 맞닥트릴 수 있고,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볼 필요가 있기에 들어왔을 것이다. 한편으로 복강경에 관해서는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 이경석의 존재감이 결코 작지 않았다.
김지훈에겐 상당한 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겨도 경석이 형과 종진이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진 김지훈이 한 가닥 희망을 걸었다. 기형이든 변형이든 담낭 끝에 연결된 동맥만 찾으면 여타 담낭 절제술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온갖 우려와 걱정은 기우였을 뿐 순식간에 수술이 끝날 것이다.
네 명의 써전이 모니터에 집중했다.
담낭 끝부분이 거의 다 노출됐다.
“모스키토! 보비!”
신중하게 조금씩 박리했다.
온통 노란 지방 조직으로 두껍게 뒤덮여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불과 2센티미터만 더 박리하면 담낭 동맥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동맥으로 보이는 구조물이 보이지 않았다.
개복했다면 조작도 쉬울뿐더러 손으로라도 동맥 박동을 감지해 한결 수월했겠지만, 이 상태로만 진행되면 어떤 문제도 없을 상황이었다.
김지훈이 살짝 희망에 부풀었다.
서도훈 역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우리 예상과 주행이 다른 모양…….”
그때 박리된 조직을 조심스럽게 밀어내며 시야를 확보하던 서도훈이 흠칫 놀라며 다급히 말했다.
“과장님, 동맥인 것 같습니다.”
김지훈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마지막 순간에 우려가 현실이 됐다.
벌떡! 벌떡!
도저히 담낭 동맥으로 볼 수 없는 굵은 혈관이 담낭의 끝부분과 겹쳐 있었다. 혈관을 제치지 않고서는 담낭 동맥에 접근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간 동맥일까?”
“이 정도 굵기면 간 동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맥을 완전히 노출시키지 않고 밑으로 파고들어 끝낼 수 있을까?”
“다른 혈관이 있을 수도 있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조작하다 잘못되면 담낭 동맥이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경석도 무언의 동의를 보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머리를 쥐어짜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동맥 주변을 모두 박리해 추가로 숨어 있을지 모를 혈관까지 노출시켜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안전하면서 가장 위험한 방법이었다.
길은 하나였다.
“동맥 분지 주의하면서 진행하자. 모스키토!”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간 동맥으로 추정되는 혈관 주변을 박리했다. 간 이식을 하며 수없이 본 혈관이었고, 주변 구조를 확실하게 파악했다고 여겼지만 기형적인 구조는 한 치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피 한 방울만 비쳐도 섬뜩했다.
중요 혈관이 몰려 있지만 가뜩이나 좁은 부분이었다. 허용 수준 이상으로 지방 조직이 피로 물들면 시야 확보가 불가능해 사소한 출혈마저 철저히 잡아야 했다.
“수처! 타이!”
정확한 기구 조작만이 답이었다.
“보비!”
삐이이이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혈관에 손상을 가했는지 일일이 확인한 후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다. 동맥이 벌떡벌떡 뛸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간 동맥 주변을 거의 다 박리했다.
서도훈이 동맥을 제쳐 가장 깊숙한 부위의 시야를 확보하는 순간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리고 말았다. 아직도 담낭의 마지막 끝부분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혈관이 보였다.
“무슨 혈관 같아?”
“담낭 동맥은 절대 아닙니다. 담도나 췌장으로 가는 혈관이 아닐까요?”
“그 가능성이 제일 높겠지.”
‘후우! 간 이식을 하며 이 부분 구조는 확실하게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혈관인지도 알 수 없다니, 기형이든 변형이든 너무하네.’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현실은 첩첩산중이었다.
혈관은 가늘면 가늘수록 박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간 동맥 박리는 경험까지 많아 차라리 쉽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반면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새로 확인한 혈관만 박리하면 담낭의 끝부분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끝이 보였지만 어떤 손상도 가하면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진행하자. 모스키토!”
서도훈의 노련한 보조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시야였다. 간 동맥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기구 조작은 후복막 박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어려웠다.
피다!
“석션! 거즈!”
빨간 피가 비칠 때마다 혈관에 손상을 가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털이 곤두섰다. 피를 닦는 손길마저 떨릴 지경이었다.
“수처! 타이! 보비!”
난관의 연속이었다.
식은땀이 맺혔다.
일 분이면 끝날 수도 있는 담낭 동맥 결찰을 앞두고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꼴이었다. 새로운 출혈이 발생할 때마다 개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강해졌다.
하지만 거의 다 접근했다.
안전하고 편한 길은 수술 전 이미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환자에게 반드시 복강경으로 수술을 끝내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했다. 써전 특유의 욕심, 혹은 도전 정신도 강렬한 유인이었다.
김지훈이 몸을 비틀었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그만큼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필사적으로 시야 확보에 안간힘을 쓰던 서도훈이 이를 악물며 눈가를 굳혔다.
‘집도의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퍼스트의 역할에만 집중해야 한다. 혈관을 어떻게 박리하고,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지 못하면 라파로 휘플은 영원히 불가능해진다.’
새로운 혈관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혈관과 겹쳐 있던 담낭 끝부분이 살짝 보였다.
바로 담낭 동맥이 위치한 부위였다.
김지훈이 손을 멈췄다.
‘이 이상 박리하다간 손상을 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서도훈 선생, 너무 위험해서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 게 좋겠다. 클립으로 잡을 수 있을까?”
“공간이 너무 좁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서도훈이 잠시 고민했다.
“수처로 해결하시죠.”
“조작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올까?”
“과장님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위험을 무릅쓰고 박리를 계속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클립을 넣을 공간은 물론 수처할 수 있는 여유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진퇴양난이었다.
머릿속으로 과정을 그렸다.
바늘이 들어가야 할 방향과 기구를 어떻게 틀어야 수처를 할 수 있을지부터 타이까지 모두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어야 했다.
‘나라면 가능하다고? 말은 고맙지만 과대평가야. 이 상태에서 위험하지 않은 과정이 없다. 최선의 방법은 조금 더 박리한 후 수처로 담낭 동맥을 잡는 것뿐이다.’
추가 박리가 필요한 부분은 몇 밀리미터에 불과했지만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실패와 직결될 것이다. 하지만 성공을 눈앞에 두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개복이란 단어를 아예 지웠다.
“수처로 묶자. 그래도 박리가 더 필요해. 서도훈 선생, 믿는다. 모스키토!”
간을 자를 때보다 더 작은 부위를 조심스럽게 벌렸다. 노출된 혈관을 한쪽으로 밀어 시야를 확보해야 하는 서도훈 역시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조금씩 목표 부위와 가까워졌다.
이미 온몸이 땀으로 젖은 상태였지만 수술 팀은 결코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규칙적인 기계 소리만이 나직하게 수술실을 감돌았다.
한 시간 같은 십 분이었다.
더 이상 박리는 불가능했고, 수처만이 남았다. 단, 수처할 부위에 담낭 동맥이 확실하게 있다는 보다 강한 확신이 필요했다.
김지훈이 이경석을 보았다.
“선생님, 이 부분에서 잡으면 문제없겠죠?”
“구조상 담낭 동맥이 다른 방향으로 주행할 리 없어 보인다. 너무 깊게 뜨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아.”
귀중한 조언이었다.
기구 하나를 뺀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수처!”
작은 바늘이 담낭 끝부분을 돌아 나갔다.
까만 실이 단단하게 조여졌다.
아슬아슬하게 주변 조직과 이어진 담낭의 마지막 연결 부위를 제거하고 절제해 냈다. 동맥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써전의 경험에 의존한 과정이었다.
김지훈과 서도훈이 동시에 잘린 부위를 확인했다.
작은 구멍이 또렷하게 보였다.
“서도훈 선생, 확실하지?”
“담낭 동맥이 분명합니다.”
후우!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다른 혈관 주변을 박리했기에 출혈에 대비해야 할뿐더러 결정적으로 담낭의 혹 때문에 한 수술이었다. 만에 하나 악성이라면 개복해야 하는 것은 물론 완전히 다른 수술이 될 것이다.
“고경철 선생에게 연락해 주세요.”
담낭을 받아 든 고경철이 빠르게 사라졌다.
김지훈은 세심하게 출혈 여부를 확인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한결 긴장을 덜은 서도훈이 은근한 감탄을 터트리고 말았다.
‘예전보다 라파로 수술이 많이 줄었는데도 참 깔끔하게 박리하셨네. 역시 간 이식 덕분이겠지? 지금보다 더 많이 참가하는 게 맞아.’
이경석과 나종진도 눈가를 좁힌 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깨끗한 수술 부위는 곧 김지훈의 실력이자 강렬한 자극이었다.
째깍! 째깍!
제법 시간이 흘렀다.
모든 출혈을 잡았다.
암이 아니라면 닫으면 끝이었다.
지금까지 느꼈던 부담과 긴장을 대신한 초조함이 수술 팀의 어깨를 압박했다.
“왜 연락이 없지?”
그 순간 고경철이 발소리를 죽인 채 달려왔다.
“다섯 부분으로 잘라 확인한 결과 모두 음성입니다. 담낭 용종으로 판단된다고 하셨습니다.”
후우! 진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수술 내내 숨도 쉬기 어려웠던 상황이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환자와 보호자를 웃는 얼굴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김지훈이 힘차게 말했다.
“마무리하자.”
단 몇 바늘을 꿰매는 것으로 길고 길었던 수술이 모두 끝났다. 예상대로 세 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그 이상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끄으으응!”
정유미가 잘 깨어났다.
즐거움도 잠시, 김지훈을 포함한 네 명의 써전 모두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부분을 더 신경 써야 하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수술 성공은 환자 치료의 모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뤄야 할 결과의 하나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