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김지훈이 한결 짐을 덜었다.
다시 보아도 진충기 교수를 간 이식 파트장으로 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기존에 정해진 틀이 있다지만 생체 이식인 까닭에 일주일 안에 행해지는 수술만 열 건이었다. 수술 일정부터 예약까지 신경 써 관리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진충기 교수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각 수술 팀을 조율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을 무리 없이 진행시켰다. 특히 H 병원에서 기획했던 방식을 조화롭게 적용시키는 과정에서도 손일석과 긴밀하게 협의해 잡음조차 나지 않았다.
‘좋았어.’
무난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에 김지훈도 자신의 환자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정유미 환자에게는 무엇보다 행운이었다.
김지훈과 서도훈이 자주 머리를 맞댔다.
혈관 기형에 따른 문제를 철저히 점검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환자가 입원한 이후 충분한 대화를 통해 강한 라뽀(Rapport)까지 형성했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까 배를 열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이유 때문에 자주 찾은 것이 아닙니다. 환자분과 의사 사이에 유대 혹은 친밀감이 높아질수록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니까, 우리 모두 서로를 믿고 힘내죠. 잘될 겁니다.”
상호 간의 신뢰와 수술 자체의 성패는 무관해 보이지만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실패에 따른 부담을 줄이면 줄일수록 마음의 안정을 찾아 성공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사실 서도훈의 말이 가장 끌렸다.
“들인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됐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담낭 동맥만 바로 찾으면 단순 담낭 절제술에 불과한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검사와 실제 소견이 다른 경우가 많으니까 이번에는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죠.”
십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긍정적인 생각이었다. 때때로 난감하게 작용했던 검사와 실제 소견의 괴리가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단, 긴장은 유지해야 했다.
어느새 수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후 마지막 진료가 시작됐다.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로 간 이식이 필요한 환자를 최종 점검하는 날이었다. 가장 많은 원인 질환을 가졌기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남은 검사를 하고, 예약된 날짜에 수술하면 끝이었다.
김지훈이 살짝 긴장된 기색을 보였다.
‘예정대로 수술할 수 있을까?’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간을 절제하고, 옮겨 주는 수술인 만큼 사소한 문제도 상당한 난관이 될 수 있었다. 더구나 예약이 밀려 한 번 수술이 연기되면 다시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환자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라 수술 전에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환자의 가계도를 다시 확인했다.
스무 살 된 아들 한 명만 두었다.
적합한 공여자인 데다 젊고 건강해 더할 나위 없었다. 모자지간이라도 100퍼센트 동의한다는 보장이 없었지만 아들이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아들이라도 쉬운 결정이 아닌데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겠지? 만일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면 다른 환자가 피해를 입는 꼴인데 성급했나?’
약간의 후회까지 밀려왔다.
잠시 후, 환자 부부와 아들이 들어왔다.
두근두근!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김지훈의 시선이 아들에게 먼저 향했다.
한눈에 보아도 약속을 지켰다.
즐거운 웃음이 절로 터졌다.
“어서 오세요. 약속을 지켰네요.”
“말씀하신 50킬로그램 다 뺐습니다.”
간을 떼는 큰 수술이 무섭지 않은지, 간 절제 후 육 개월 이상 지속될 수 있는 후유증의 경고조차 두렵지 않은지 아들도 웃었다.
“다행입니다. 어머니는 기본 검사 이외에 더 이상 검사할 게 없지만 아드님은 초음파와 CT를 다시 시행해야 하는데 괜찮죠?”
통상 필요한 절차였고, 사전에 설명을 했건만 환자의 어머니가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도 입을 열지 못해 아들이 대답했다.
“예. 빨리해 주십시오.”
모든 환자와 가족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이 환자의 경우는 다소 특별하다면 특별했다. 환자인 어머니가 아니라 공여자인 아들 때문이었다.
불현듯 사 개월 전 첫 진료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병색이 완연한 어머니와 함께 내원한 아들은 자신이 유일하게 적합한 공여자라는 사실에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조직 적합도에 국한됐다는 것이었다.
185센티미터의 키에 건장한 체격은 충분한 간을 얻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13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몸무게가 발목을 잡았다.
“간 기능에서부터 모든 상황이 좋은데 콜레스테롤 수치가 지나치게 높고, 지방간까지 심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간을 이식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조건 체중을 빼야죠. 이식하려면 지방간이 없어야 하는 데다 고도비만 자체가 수술의 위험성을 크게 높입니다.”
“얼마나 빼면 돼요?”
“체중 조절 후 다시 검사를 해야 하지만 지방간을 확실하게 없애려면 50킬로그램은 빼야 합니다. 그동안 고지질혈증 약도 꾸준히 먹어야 하고요.”
가족 모두 당황했다.
함께 오기까지 무수한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렸을 텐데, 다른 문제도 아닌 몸무게 때문에 수술이 불가하다니 막막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정상 체중을 만든 후 다시 진료하자는 말에 아들이 펄쩍 뛰었다. 한계까지 몰린 어머니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예약이 밀려 있다고 들었습니다. 수술 날짜부터 잡아 주세요. 그때까지 반드시 살을 빼겠습니다.”
“체중을 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잖아요. 몇 킬로도 아니고 무려 50킬로그램입니다. 다른 환자의 기회를 뺏을 수도 있습니다.”
“약속할게요. 그동안 말썽만 피우고, 부모님에게 효도 한번 제대로 못했습니다. 제발 수술 날짜를 잡아 주세요.”
스무 살 나이에 하기 힘든 결정과 마음이 대견하고 고마웠지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날짜를 잡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부모가 만류했지만 아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
김지훈은 집도의였다.
한 명의 환자를 위해 다른 환자를 희생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아들은 통상적인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극단적인 체중 감량을 시행해야 했다.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지금도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가 많아요. 몸 상태부터 만들고 난 후…….”
그때 아들이 소리쳤다.
“선생님도 부모님이 계시잖아요? 살 하나 빼지 못해 엄마를 지금보다 더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전 할 수 있습니다.”
순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다시는 보지 못할 어머니, 아버지가 떠올랐다.
효도는커녕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해 지금도 가끔은 가슴이 시릴 정도로 후회가 되곤 했다. 아들의 나이도 당시 김지훈의 나이보다 몇 살 많을 뿐이었다. 때문인지 아들의 눈빛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부모님을 들먹여서 고민하게 만드네. 번거로워도 예비 순번을 끌어당기면 전체 일정에 차질을 빚지는 않겠지.’
고민 끝에 도박 같은 예외를 두었다.
“좋습니다. 사 개월 후로 잡겠습니다. 만일 그때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기회는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식으로 수술 예약을 했다.
솔직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헉헉 가쁜 숨을 내쉬며 땀을 흘리는 아들을 보니 후회가 앞서긴 했다. 말이 50킬로그램이지, 거의 마른 성인 한 명의 몸무게를 어떻게 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반드시 약속을 지켜 주세요.’
사 개월 전의 일이 어제처럼 스쳤다.
김지훈이 웃으며 물었다.
“혹시 식사했습니까?”
“긴장돼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잘됐네요.”
즉시 초음파실로 자리를 옮겼다.
“남들은 몇 킬로 빼는 것도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뺐어요?”
“하루 한 끼만 먹으며 헬스를 병행했습니다.”
‘말이 쉽지, 그 정도로 빠질 살이 아닌데 정말 힘들었겠네. 어머니만 생각했을까?’
“몸이 정말 좋아졌겠…….”
아들의 옷을 걷어 올리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만삭의 임산부를 방불케 하던 뱃살은 당연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식스팩이 뚜렷한 왕 자(王)가 새겨져 있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네요. 어머님, 아버님은 이런 아들을 두셔서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80킬로 되던 날, 아들 손 잡고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에게 간을 줄 수 있다고 좋아하는 모습이 왜 그리 아픈지 모르겠더군요.”
처음 말문을 연 아버지가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기는 괜찮다며 애써 웃음 짓는 아들을 본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가족 모두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얼마나 좋았을까?
김지훈도 왠지 가슴이 찡했다.
이젠 결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을 보고 있었다. 좋으면 좋았지, 결코 분위기 가라앉힐 상황이 아니었다.
농담 하나 던졌다.
“어이구! 내 수술이 아니어서 다행이지, 몸을 너무 단단하게 만들어서 수술하기 어렵겠어요.”
“예? 수술이 어렵다니요?”
“수술하는 입장에서는 근육이 너무 좋아도 곤란하거든요. 40킬로만 빼라고 할 걸 그랬나? 어디 보자! 지방간은 싹 사라졌고, 다른 장기도 다 건강해 보이네요.”
마침 혈액 검사 결과까지 도착했다.
“콜레스테롤 수치까지 정상이네요. 좋습니다. 아드님은 이준영 선생님 앞으로 입원하시면 되고, 어머님은 제 앞으로 입원하시면 됩니다. 예정대로 수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아드님 덕분입니다.”
진료를 끝냈다.
먹먹함이 여운처럼 남았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아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지켰고, 어머니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품었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그 사실에만 집중해야 했다.
확실한 성공만이 요구됐다.
‘매주 하는 수술인데 의외로 부담이 더 느껴지네. 기대하지 못한 약속을 지켰기 때문일까?’
문득 정유미 환자가 생각났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자신을 믿고 찾아온 환자에게 한 약속이라면 달리 생각해야 했다.
“정유미 환자 내려 주세요.”
이미 금식이 시작됐을 테니 초음파를 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검사에 정유미와 보호자가 상당히 긴장된 표정을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닙니다. 초음파로 혈관 기형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 연락했습니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거든요.”
침착하게 담낭과 담도 부분을 찾았다.
도플러를 이용해 동맥과 정맥의 주행을 세심하게 확인하며 내일 있을 수술에 대비했다. 자신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였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이 다소 놓였다.
“수술이 잘 끝나면 언제 퇴원할 수 있나요?”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예.”
쓴웃음이 나왔다.
단지 회진만 돌지 않기를 잘했다.
“복강경으로 끝나면 이틀 후 퇴원할 수 있습니다. 두 군데를 열 예정이지만 배꼽을 이용하기 때문에 상처는 한곳만 보일 거고요.”
“혹이 있는데요?”
“양성이면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후유증은 없나요?”
“소화불량 정도는 발생하지만, 그보다 쓸개 빠진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겠죠.”
“호호호호!”
수술 전날이건만 정유미가 밝게 웃었다.
나름 신경을 많이 쓴 환자였는데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김지훈은 도리어 얼굴을 굳혔다.
‘설명을 안 했을 리 없지만 환자가 기억을 못하면 설명 안 한 것이나 다름없겠지. 이런 점에서 기록의 중요성도 새삼 다가오네.’
130에서 80으로, 몸무게를 무려 50킬로그램이나 줄인 한 환자의 아들 덕분에 자칫 지나치기 쉬운 문제들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진료와 치료는 의사만의 영역이 아니다.
모든 과정을 환자와 함께하지 않으면 언젠가 탈이 날 것이다. 그 피해 역시 의사에게만 국한되지 않기에 명심하고 또 명심할 일이었다.
하룻밤이 지났다.
아침부터 정덕순 의원이 보였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복강경으로 끝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술 시간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두세 시간 정도 잡고 있습니다.”
무사히 첫 수술을 마쳤지만 식사를 할 시간이 없었다. 우유 하나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고, 바로 정유미 환자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환자는 물론 서도훈까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개복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복강경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준비 다 끝났습니까?”
마취과 의사가 들어왔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