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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170화 (1,170/1,329)

16화

개복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암일까 걱정하나? 그래도 연고지와 먼 우리 병원까지 올 상황은 아닌데 이상하네.’

예외적인 경우라면 예외적인 데다 선입견을 방지하기 위해 임시 진단명이 적힌 소견서 확인을 뒤로 미뤘다. 병력과 과거력, 현재 상태를 자세하게 확인한 결과 암을 의심할 만한 징후는 없었다.

하지만 담낭암 역시 침묵의 살인자였다.

검사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담낭에 1센티미터 정도의 혹이 있네요. 담낭을 절제한 후 조직 검사를 해야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초음파나 CT로 봐서는 양성 종물이나 용종으로 보입니다. 이런 경우 복강경을 이용한 담낭 절제술을 권유하는데, 말씀 들으셨죠?”

“복강경으로는 힘들다고 들었어요. 배를 여는 수술은 받고 싶지 않아요. 부탁드려요.”

‘별문제 없어 보이는데, 또 뭐가 있는 거지?’

“요새는 보편적으로 많이 시행하고, 노련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특별히 우리 병원을 찾아야 할 이유가…….”

설명을 이어 가던 김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복강경 수술이 가능한 단순 종물인 경우 일반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검사를 봤기 때문이었다.

“혈관 검사가 가능한 CT를 추가로 찍으셨네요.”

“초음파를 하고 난 후 필요하다고 해서 찍었어요.”

‘이상하네. 설마 과잉 검사는 아니겠지만 굳이 이런 검사까지…….’

찬찬히 확인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혈관 기형이 동반됐다.

담낭의 형태 이상이 수술에 큰 문제가 되지 않듯, 담낭 동맥의 주행 방향이나 위치가 비정상적이라고 해도 다른 부분이 정상적이라면 복강경으로 절제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 때문에 혈관 검사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간 동맥의 위치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기형이 아니라 일종의 변형이라 할 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담낭 동맥이 주행하는 부분에서 이상 소견이 관찰됐다. 주변에 중요 혈관이 워낙 많아 자칫 수술 중 손상이 유발되면 개복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간 동맥 변형 때문에 주변 혈관이 복잡하게 얽혔다. 간 문맥은 물론 췌장, 담도로 가는 혈관의 위치도 일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동맥을 담낭 동맥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어.’

타 병원에서 말한 수술의 어려움이자 위험성이었다. 팔다리 동맥도 잘리면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물며 중요 장기를 담당하는 혈관들이었다. 잘못 묶고 자르는 순간 장기 하나가 죽는 것이다.

김지훈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위험을 자초할 이유도 없었다.

“일종의 기형이라 할 수 있는 혈관 변형이 동반됐습니다. 복강경으로 수술 시 동맥을 정확하게 판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개복이 안전할 것 같습니다.”

“정말 방법이 없나요?”

위험해서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을 뿐 방법이 있긴 했다. 담낭 동맥 주변을 모두 박리해 다른 혈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하면 된다.

말로만 못할 수술이 없다.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지 않은 혈관이 없는 데다 수술 부위까지 굉장히 좁습니다. 혈관을 구분하기 위해 조직을 파헤치다가 다른 혈관을 건드리게 되면 담낭 절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의사나 환자 모두 답답한 상황이었다.

때론 개복에 대한 두려움, 복강경 수술에 대한 기대가 위험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무시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해 이번 환자 역시 의사의 선택지는 두 개였다.

첫째, 무조건 개복만이 답이다.

둘째, 복강경 시도 후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개복으로 전환한다. 물론 복강경으로 끝날 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짐을 분명하게 인지시킨다.

김지훈이 고민에 잠겼다.

이미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지만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하는 것이 환자에 대한 예의였다. 복강경으로 시도한다는 말 자체가 주는 오해가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수술을 성공한 경험이 적지 않았다.

김지훈 특유의 도전 의식도 꿈틀거렸다.

‘개복을 해도 무척 신중해야 한다. 라파로는 어떨까? 정말 박리가 불가능할까?’

신중함은 기본이었다.

경험만큼 중요한 요소가 없지만 상황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현 수준으로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정확히 판단해야 했다.

다시 한번 CT를 꼼꼼하게 살폈다.

혈관의 위치가 대략적으로 그려졌다.

어느 방향에서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어떤 혈관을 주의해야 하는지 마치 수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과정이 하나둘 떠올랐다.

김지훈 자신에게도 이상한 일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어렵다는 생각만 들 텐데, 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혹시 욕심 때문일까?

다시 한번 수술 과정을 그려 보았다.

점점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각 혈관의 위치와 주행 방향, 담낭의 위치와 형태 및 동맥의 연관성을 따져 보며 위험도가 높다고 평가하면서도 오히려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간 이식을 하며 쌓은 경험과 지식이었다.

간을 절제하는 과정과 이식하는 과정은 한마디로 혈관과의 싸움이었다. 진충기 교수에게 합병증 발생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준 혈관 기형 역시 종종 경험하는 일이었다.

덕분에 풍부한 해부학적 지식을 쌓았다.

수술명은 같지만 단 한 명도 똑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 수술을 하며 쌓은 경험은 어느 틈엔가 혈관을 다루는 실력까지 크게 배가시켰다.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수술의 난이도도 제각각이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어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도약했는지도 몰랐다.

김지훈의 가슴이 뛰었다.

환자와 수술을 두고 흥분하기는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뿐이라면 치명적인 오판 내지는 무모한 시도를 초래할 수 있었다.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환자분, 일단 수술 팀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한두 시간 이상 걸릴 텐데 기다리시겠습니까?”

“가능한가요?”

“속단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희망과 실망이 오갔지만 분명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부담마저 즐거웠다. 생각조차 불가능한 상황과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은 차원이 달랐다.

마침 진료 시간이 비었다.

김지훈이 부리나케 움직였다.

시간이 없어 이준영 교수와 이경석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다른 정보는 일체 배제하고 오직 질환과 혈관 변형에 대한 설명만 한 후 조언을 구했다.

이경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라파로로 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CT가 상당히 정확해졌다고 하지만 해부학적 구조를 확실하게 파악하기 어렵잖아. 설령 혈관 위치를 정확하게 안다고 해도 담낭 동맥 근처에 혈관들이 얽혀 있으면 박리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어. 안전하게 개복했으면 좋겠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예상했던 반응 중 하나였지만 복강경 수술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이경석의 말이기에 기운이 빠졌다. 사실 손과 기구는 다를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실력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욕심이었나?’

스승의 의견이 더더욱 궁금했다.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라파로로 가능하다는 근거가 뭐야?”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기 어렵고, 실제 소견도 예상과 다를 가능성이 높지만 전체적인 해부학적 구조가 눈에 들어옵니다.”

“혈관 구분과 박리가 모두 가능하다는 거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난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겠지.”

‘에휴! 긍정적인 말씀이 아니네.’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환자에게 쓸데없는 희망을 주었다는 사실에 후회가 몰려오려는 순간 이준영 교수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이경석 선생, 집도할 수 있겠어?”

박리가 가능하다는 말에 김지훈을 보며 살짝 놀랐던 이경석이 잠시 고민을 한 끝에 고개를 저었다. 자존심을 찾을 상황이 아니었다.

“담낭의 양성 질환이라고 해도 엄밀하게 따지면 제 분야가 아닙니다. 솔직히 어려운 수술을 많이 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자신이 없습니다.”

“난 할 수 있다고 보지만 실력을 떠나 자신이 없으면 집도는 불가능해. 개복이든 라파로든 김 과장이 집도하는 것이 좋겠다. 김 과장, 결정은 어디까지나 집도의 몫이야.”

“솔직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리한 시도라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타당한 시도일까요?”

“난 모른다. 하지만 이런 수술을 라파로로 하지 못하면 휘플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어. 간 이식을 하며 쌓은 지식과 경험 역시 그 이상의 의미가 있어.”

김지훈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스승과 제자의 생각이 일치했다.

반복된 간 이식 수술이 써전에게 끼치는 여파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대가가 인정했다. 막연했던 근거가 분명하게 보이며, 만용이 아닌 자신감이 다시 치솟았다.

간 주변의 해부학적 구조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꿰뚫고 있는 덕이었다. 더구나 췌장과 담도 쪽 질환의 상당 부분을 복강경으로 수술한 경험까지 풍부한 상황이었다.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수술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에 휩싸이겠지만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한다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지훈이 결정했다.

“시도하겠습니다.”

이경석이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준영 교수는 당연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김지훈은 절대 욕심낼 제자가 아니었고, 오직 환자만을 생각하는 의사이기 때문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눈길을 돌렸다.

“환자가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어?”

“예. 가 보겠습니다.”

김지훈이 이경석과 함께 교수실을 나왔다.

“김 과장, 절대 무리하지 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절대 욕심 때문에 시도하는 수술이 아닙니다. 이준영 선생님 말씀대로 라파로로 휘플을 하려면 이보다 더 어려운 수술도 할 수 있어야겠죠.”

이경석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감만으로 할 수술이 아니다. 이준영 선생님도 김 과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난 어디에 서 있는 걸까?’

메이저보다 마이너 수술에 집중하며 수시로 드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써전의 능력은 수술의 종류나 치료하는 질환으로만 나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분야든 독보적인 존재가 되면 대가라는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내겐 나만의 길이 있다.’

이경석이 어깨를 폈다.

당당할 수 있는 힘이었다.

잠시 김지훈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던 이준영 교수가 창가에 서서 의미 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제자는 간 이식에서 얻어야 할 것들을 완벽하게 습득하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나를 뛰어넘을 때가 머지않았어. 이 정도 수준으로 대가 소리를 듣는 게 부끄러울 때가 많았는데, 지훈이 넌 그럴 일이 없을 거다.’

이럴 때마다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써전이라고 할 수도 없었던 의사가 어느 틈엔가 대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만 했다. 제자에 대한 사랑이 이럴진대 아들에겐 오죽할까?

‘혁원이 이놈은 갑자기 소아외과에 바짝 신경을 쓰질 않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네 미래야 네가 결정할 일이지만 부모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인데, 강은미 선생을 정식으로 인사시킬 생각은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똑똑똑!

아버지의 걱정과 생각을 알기라도 한 듯 이혁원이 불쑥 찾아왔다. 오늘 역시 바늘과 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강은미가 함께였다.

“무슨 일이야?”

무뚝뚝한 말투는 어쩔 수 없었다.

강은미가 정도 이상으로 움찔거렸다.

이혁원이 슬며시 앞으로 나섰다.

“소아 환자가 한 명 있어 상의드리려고 왔습니다. 간 기능이 조금 안 좋은데, 혹시 해 주실 말씀이 없는지 해서요.”

“내가?”

“예. 그게 오늘따라 다들 유난히 바쁘시고, 경험은 선생님이 제일 많으시지 않습니까? 강은미 선생도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을 볼 때 특별하게 주의할 점이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형식과 내용이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아들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선배 의사가 아닌 아버지로서 부드럽게 응대하는 것이 마땅했다. 더구나 아직 공식적으로 인사받은 것은 아니지만 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는 강은미였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예? 그게…….”

이준영 교수가 긴 숨을 내쉬었다.

이혁원은 아직도 아버지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한창 자랄 나이에 함께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무뚝뚝한 성격인 탓에 따스한 부정을 느끼게 한 적조차 없었다. 못내 가슴에 걸리는 일이었다.

‘아들, 미안하다.’

허물어야 할 때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마냥 살가울 수는 없지만 남들만큼은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평생 입에 밴 말투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었다.

고심하던 이준영 교수가 커피를 탔다.

한 잔이 아닌 세 잔이었다.

“강은미 선생,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강은미는 쩔쩔매고, 이혁원은 놀랐다.

아버지가 커피 좋아한다는 사실은 물론 가장 존경하는 선배 김지훈의 캔 커피가 가진 위력도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커피를 들고 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렵기만 한 아버지가 직접 커피를 타 왔다.

“이혁원.”

정작 말투는 달라지지 않았다.

‘많이 변하셨지만 내게는 예전에 보았던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네.’

직장에서는 아버지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은미가 함께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내심 서운한 것이 사실이었다. 아버지의 애정을 피부로 느끼고 싶은지도 몰랐다.

“예, 말씀하십시오.”

이혁원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

먼저 벽을 허물기 쉽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사무적으로 대답하다 말고 이어진 말에 정말 놀라고 말았다. 공사 구분 확실하고, 무뚝뚝하다 못해 엄한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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