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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165화 (1,165/1,329)

11화

수술 팀 못지않게 긴장했던 윤서연이 아이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타고난 질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이의 입이 꼬물꼬물 움직였다.

“으앙! 으앙!”

가냘픈 울음이 터졌다.

미미하나마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무사히 깨어난 아이의 손을 꼭 잡은 김지훈이 함께 회복실로 향했다. 약간은 차가웠지만 보들보들한 감촉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연락을 받은 고경희가 들어왔다.

어린 자식을 수술한 엄마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를 똑같이 누렸다. 곧 자식이 될 아이를 향해 허겁지겁 달려오며 집도의인 김지훈을 보았다.

그마저 여느 엄마와 똑같았다.

“형부!”

“잘 끝났어. 괜찮을 거야.”

“고마워요.”

아이가 또 울음을 터트렸다.

고경희의 눈가가 붉어졌다.

“우리 아기, 괜찮아. 괜찮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비록 엄마라는 말은 못했지만 세상 모든 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잠시 후 들어온 손일석 역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 또한 같은 세대의 아버지 모습이었다.

고경아까지 왔다.

“잘 깼네. 제부, 다행이에요.”

“처형, 그래서 우리 아이를 과장님에게 맡긴 겁니다. 최고의 써전인 이모부가 쭉 돌봐 줄 테니 앞으로는 이렇게 아플 일 없을 겁니다.”

고경희의 불안을 느낀 손일석이 여유를 잃지 않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말이 트이는 순간 엄마, 아빠부터 시작할 아이의 작고 여린 손을 꼭 잡은 채 말이다.

‘이제 한 가족이네.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모르지만 경목이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아름만 짓지 마라.’

김지훈이 밝게 웃었다.

왠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다만 양가집 어른들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젊은 사람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걱정하고 있을 테고, 김지훈은 거들 뿐 설득은 어디까지나 손일석과 고경희의 몫이었다.

고경희가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가 하루 종일 울었다.

육체적인 면만 따진다면 어떤 환자도 수술 전보다 후가 더 힘든 법이었다. 특히 배를 크게 여는 수술을 받으면 성인도 참기 힘든 고통에 시달리기 마련이었다. 때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수 있었다.

진통제마저 함부로 쓰지 못하는 아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저 울음으로만 표현해 배가 고픈 것인지, 아프다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해 부모의 마음이 찢어지곤 했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었다면 알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고경희를 더욱 괴롭혔다.

울다 지쳐 간신히 잠드는 아이를 보며 툭하면 남몰래 눈가를 붉혔다. 이젠 임시로 입양한 아주머니의 품 대신 엄마가 될 자신의 품을 찾길 바랐건만, 익숙한 손길을 찾는 아이의 모습에 서글픔마저 느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기에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다.

강은미가 수시로 찾았다.

“아이가 낯가림을 많이 할 때예요. 특히 아프거나 수술을 받은 경우에는 아무리 어려도 본능적으로 익숙한 사람을 찾으니까 당분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세요. 아이도 곧 엄마 품을 편안하게 느낄 거예요.”

“알고 있는데 조급해지네요.”

“사실 저도 책과 아이를 치료하면서 배운 간접 경험이라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지금처럼 임시로 입양한 아주머니와 자주 대화하시는 것이 더 좋겠죠?”

밖에서 아이를 보는 것과 직접 키우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어쩌면 고경희에게 정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뿐일지도 몰랐다.

고경아와 고경순이 남몰래 애썼다.

가족의 손은 멀리 있지 않았다. 고경희는 소중한 딸이자 동생이라는 사실이 변할 수도 없었다. 결코 늦지 않은 때에 힘들어하는 손을 잡아 주었다.

아이를 키운 경험이 풍부한 최문옥 여사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입양에 대해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고성문은 조용히 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아이는 자니? 녀석, 할아버지가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네. 사진보다 훨씬 잘생겼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우리 경희 닮았나?”

“아빠!”

“애 키우는 일 쉽지 않다. 앞으로 힘들면 힘들지 편해지지 않을 텐데, 벌써 어깨가 처지면 어떻게 해? 아빠가 도와줄 테니까 힘내자.”

스윽 고개가 돌았다.

분위기 돌변했다.

“손 서방, 자네는 아빠가 돼서 뭐 하는 거야? 어린아이 수술 안 해 봤어? 손주 놈 배고픈 것 같은데 가스는 나왔어?”

“아직 안 나왔습니다.”

“항문 수술을 했으니 항문 마사지를 할 수도 없고 큰일이네. 방법을 찾아. 방법을. 김 과장은 어디 갔어?”

“수술 들어갔습니다.”

“자네는?”

“전 오늘 외래 보는 날이고, 지금 점심시간입니다.”

“시간 나면 우리 손주가 어떻게 하면 빨리 좋아질까 생각을 해야지, 같이 발만 구르면 뭐 해? 에잉! 이래서야 손주 놈 제대로 키울지 모르겠네.”

능글맞은 손일석도 자식이 될 아이 일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특별하다면 무척 특별한 경우니 평소처럼 행동하기 힘들 것이다.

쩔쩔매다 못해 얼굴까지 벌게진 손일석이 돌연 고성문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는 눈가를 붉혔다. 헛기침을 하며 애써 웃었다.

‘아빠라고, 손주라고 하셨나? 장인어른, 그동안 아이가 없어 속만 썩였는데 우리 아들을 손자로 인정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가장 설득이 어려웠던 부모도 하루 전 다녀갔다. 못마땅한 기색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지만 잘 키워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무엇 하나 어려운 일 없이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손일석이 가슴을 폈다.

‘이젠 정말 우리가 엄마, 아빠다.’

두런두런 오가는 대화 때문일까?

아이가 칭얼거리다 울었다.

제법 귀가 울릴 정도였다.

고성문이 콧등을 잔뜩 찡그렸다.

“여보, 배가 고픈 건가?”

“글쎄요. 애 키운 지 하도 오래돼서 알 수가 없네. 경희야, 엄마가 보기에는 배가 고파 우는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니?”

“나는 잘 모르겠어.”

하필이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아주머니가 자리를 피해 준 터라 무작정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설령 배가 고파 운다고 해도 물조차 먹일 수 없는 상태였고, 그나마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의료진뿐이었다.

고성문이 손일석을 보았다.

“손 서방, 어떤 것 같아? 수술한 지 사흘이나 지났는데 많이 아파서 우는 건 아니겠지? 애들은 큰 수술을 받아도 회복이 엄청 빠르잖아.”

진찰을 해야 추측이나마 할 수 있었다.

가운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던 손일석이 흠칫 놀랐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왔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달려온 통에 청진기를 놓고 온 것이다.

“쯧쯧! 실력 좋은 써전이면 뭐 해. 좋은 아빠가 돼야지. 손 서방, 정말 잘 키울 수 있는 거야?”

아이가 더 크게 울었다.

고성문은 물론 온 가족이 발을 굴렀다.

그때 김지훈이 나타났다.

수술을 마치자마자 병실을 찾아 땀에 젖은 수술복과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감추지 못했다. 일명 도시락이라 불리는 간이 드레싱 세트가 손에 들린 채였다.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바로 아이를 보았다.

“아버님, 어머님, 조카부터 먼저 봐야겠습니다. 처제, 눕혀 봐. 수술 후에 웃는 애 없어. 괜찮아.”

김지훈이 신중하게 청진을 했다.

그동안 거의 들리지 않았던 장 소리가 확실하게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간격도 정상에 가까워 수술로 인한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였다.

‘좋아. 곧 방귀를 뀌겠어.’

드레인을 살폈다.

하행결장과 항문을 연결했으니 배 속에 수술 부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직장을 제거했기 때문에 뒤늦은 출혈에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깨끗했다.

빼도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드레인을 피부에 고정시켰던 매듭을 자르고 단번에 잡아당겼다. 처음 보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빠르게 뽑아야 덜 아픈 법이었다.

쑥!

드레인이 빠져나왔다.

자극을 받은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소아 수술을 해 본 써전들에겐 익숙한 반응이었지만 다른 가족에겐 두려운 일이었다. 다들 놀라 아이에게 집중하는 순간 바라 마지않던 소리가 들렸다.

뽕! 뽕! 부르르륵!

아주 제대로 방귀를 뀌었다.

김지훈이 진찰을 하고, 치료를 마치자마자 방귀가 나오다니 공교로운 일이었다. 고성문이 아예 대놓고 일방적으로 편을 들었다.

“역시 과장이야. 수술복을 입고 왔는데 청진기도 잊지 않고 자세가 됐어. 그러니까 손만 닿아도 손주 놈이 좋아지지.”

“나올 때가 됐으니까 나온 거죠.”

“아니야. 다 자네 덕이야.”

장인어른에게 듣기 힘든 칭찬이었다. 게다가 고경아 말로는 여전히 입양 문제에 떨떠름해한다고 들었는데, 손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다니 살짝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마음이 턱 놓이네. 언제 물 먹일 거야?”

“내일 아침에도 별문제 없으면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손 교수가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 교수가?”

어째 눈길이 곱지 못했다.

손일석이 먼 산만 바라보았다.

영문 모를 김지훈은 눈만 멀뚱거렸다.

그사이 배 속이 한결 편해지고, 드레인이 주는 불편과 통증에서 벗어난 아이가 고경희의 품에 꼭 안긴 채 잠이 들었다.

최문옥 여사가 고경희의 등을 어루만지며 눈가를 붉혔다. 익숙하지 않은 품에 하루 종일 칭얼거렸다는 아이는 누가 보아도 엄마의 자식이었다.

“이제 네 품이 편하고 좋은 모양이다.”

“이렇게 폭 안긴 건 처음이에요.”

고경희의 눈가도 빨개졌다.

그동안 눈물이 끊이질 않았지만 오늘은 분명 즐거운 날이었다. 느낌과는 반대로 왠지 진지하다 못해 가라앉은 분위기에 고성문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 이름을 아직 안 지었네. 언제까지 손주라고 불러야 돼? 손 서방, 사돈어른들하고 상의해서 내가 지어 줄까?”

폭탄 발언이었다.

고심 끝에 지었다며 김경목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내밀었던 장인어른이었다. 모든 식구가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소리쳤다.

“여보! 당신은 빠져요.”

“아빠!”

“장인어른!”

“왜들 이래. 내가 못할 말 했어?”

외할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손자를 위한 할아버지의 마음보다 참사였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가족들 반응은 달랐다.

“애 깨겠어요. 나가요.”

고성문이 최문옥 여사의 손에 잡혀 끌려 나갔다. 이어지는 잔소리와 점점 기가 죽어 가는 목소리를 따라 모두 병실에서 나갔다.

“물 먹기 시작하면 우는 시간도 많이 줄 거야. 방긋방긋 웃기도 할걸?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경과를 밟고 있으니까 눈물은 그만 봤으면 좋겠다.”

“형부, 고마워요.”

다시 한번 아이를 진찰한 김지훈이 고경희에게 미소를 던지고는 마지막으로 병실을 나섰다.

고성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님, 언제 가실 겁니까? 병원 지킬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간 되시면 며칠 계시다 가시죠. 경아 씨하고 희연이도 보셔야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월요일에 간 이식 수술 한다고 했지? 그 수술 보고 가자. 손 교수 수술도 보고 싶은데, 그때까지 병원을 비우기는 힘드네.”

“늦게 끝납니다.”

“큰 수술을 봐야 배울 게 많고, 그래야 내가 해야 할 수술을 더 잘할 수 있는 법이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넘치고도 남아. 그게 아니더라도 손주 놈 분유 먹는 거 정도는 보고 가야지.”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이젠 입양이란 단어 자체를 머릿속에서 싹 지운 모양이었다. 자칫 세상을 보는 눈이 경직될 수도 있는 나이지만 오히려 개방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더불어 은퇴해도 될 나이의 써전이 지닌 열정이 강하게 다가왔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수술을 보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일석은 더 큰 감동을 먹었다.

‘건강하게 잘 키우겠습니다.’

사위 두 명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장인어른,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밥 사.”

고성문이 홱 돌아섰다.

여전히 허리가 꼿꼿했다.

크지 않은 체격이건만 당당하게 느껴졌다.

오랜 세월 자신의 길에 최선을 다한 사람, 일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일견 고집이 세 보이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잊지 않은 사람의 뒷모습이었다.

반드시 기억해야 했다.

먼 훗날 같은 모습을 보일 수 있기를 김지훈도, 손일석도 바라 마지않았다. 적어도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식들에게만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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