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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164화 (1,164/1,329)

10화

단둘이 보며 이렇게 어색했던 적은 없었다. 말을 해야 하는 손일석도, 들어야 하는 김지훈에게도 쉽게 나눌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곧 진료 시작이야.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오늘은 보호자로서 왔어. 내일 수술 잘 부탁한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충격을 받고도 남을 말이었다. 그런데 당황스럽기는커녕 마치 당연한 말을 들은 것처럼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미리 상의했으면 하는 서운한 마음도 없었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손일석의 담담한 태도 때문인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커피 한 잔을 내오며 물었다.

“처제도 동의한 거지?”

“나보다 더 아이를 걱정하고 있어. 이미 알고 계시지만 우리 집하고 원주는 수술 끝나고 난 뒤 정식으로 찾아볼 생각이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양이 흔한 일도 아닐뿐더러 자기 핏줄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강력했다. 솔직히 김지훈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반대하고 찬성하고 할 일이 아니다. 그냥 일석이하고 처제가 다른 부부처럼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길 바랄 뿐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을까?’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마음이 안 좋고, 완고하다면 완고할 양가 집 어른들까지 사실상 허락한 마당이었다. 오랜 친구이자 가족이란 이유로 왈가왈부할 상황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결정까지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손일석과 고경희였다. 더군다나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해 두 번의 수술까지 받아야 하는 아이였다.

얼마나 고민했을지 눈에 빤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사람 대 사람으로서 생각하면 된다.

행복의 기준이나 가치관이 완벽하게 같지 않은 이상 전적으로 믿고 지지하는 것이 마땅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결정이었다면 오히려 박수를 쳤을 것이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데려올 거야?”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 다 장만했으니까 퇴원에 맞춰 데려와야지.”

“이름은?”

“와이프하고 상의하고 있어. 돌림을 써서 나머지 한 글자만 정하면 되는데 생각보다 어렵네.”

문득 희연이 첫 이름이 떠올랐다.

경목이란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사주팔자 따위는 믿지도 않으면서 행여 해가 될까 봐 희연이란 이름을 짓기까지 꽤 고민했다.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직접 짓든, 아버님에게 짓든 이름 잘 지어. 잘못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희연이 원래 이름이 경목이었지? 그런 참사는 막아야지. 나도 우리 아이 이름 잘 지어 주고 싶다. 나중에 희연이보다 더 예뻐한다고 뭐라고 하지 마라.”

김지훈이 결국 미소를 머금었다.

‘일석아! 우리 잘 살자.’

“조카를 수술해야 하네. 원래 이런 경우는 집도를 넘기는 것이 좋지만 이번만은 내가 할게. 괜찮겠지?”

“예외로 하자. 가급적 흉이 덜 생기게 신경 써 줘. 나중에 커서 보면 남자 놈이라도 속이 많이 상할지 모르잖아.”

“걱정하지 마. 병실에는 누가 있어?”

“아주머니에게 배울 것이 많아서 오늘부터 와이프가 같이 있을 거야.”

“알았어. 이따 보자.”

손일석이 문을 열다 말고 눈길을 주었다.

“고맙다.”

“조카 한 명 더 생겨서 좋구만, 무슨 소리야? 가족 모임 할 때 남자 수가 적어서 여자들에게 항상 밀렸는데 잘됐네. 확실한 한 표 만들자.”

홀로 남은 김지훈이 잠시 진료를 미뤘다.

친구 사이에도 이럴진대 피를 나눈 혈육은 더할 것이다. 워낙 자매간의 우애가 깊은 탓에 처형인 고경순은 물론 고경아의 마음이 아프고도 남았다.

오전 진료를 마친 김지훈이 고경아를 찾았다.

“애 키우는 일이 정말 힘들지만 잘 키울 거예요. 우리 희연이 돌봐 줄 분도 구했으니까 걱정 말아요.”

이미 다 알고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사이가 좋은 동생 가족의 일이었다. 감정을 추스르기 힘든지 입으로는 웃으면서도 눈가는 빨갰다.

“지훈 씨, 퇴근하고 병실에 있을게요.”

“회진 때 같이 봐요.”

울먹울먹 눈물이 뒤섞였다.

그동안 임신을 위해 수없이 노력한 동생이 안타깝기만 한 모양이었다. 웃으며 행복하게 입양 절차를 밟으면 좋겠지만 사람 마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복잡한 심사 속에 일과가 끝났다.

김지훈이 마지막으로 아이의 병실에 들렀다.

수술에 필요한 검사 결과는 양호했고, 아이의 체중과 전신 상태는 물론 발달 양상까지 이차 수술을 받기에 어떤 문제도 없었다.

어렵게 꽂은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손목이 무척 불편한지 아이가 칭얼거렸다. 임시 입양을 한 아주머니 대신 고경희가 아이를 달랬다.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익숙한 품이 아니다.

낯가림일 수도 있었다.

결국 아주머니 품에 안기고서야 잠이 들었다.

손일석과 고경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입양 후에 이런 일이 얼마나 지속될지 몰랐다. 입양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는 것 같아 고경아는 물론 김지훈까지 남몰래 무거운 한숨을 흘렸다. 하지만 오랜 기간 고민 끝에 결정한 일인 이상 잘 극복해 나갈 것이다.

“형부, 내일 첫 수술이죠?”

“수술 방 앞에서 재운 후 들어갈 거니까 같이 내려와. 오늘 밤 아이 잘 보고, 걱정되는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예. 잘 부탁드려요.”

“조카 수술이야. 부담 주지 마.”

한동안 대화를 나누며 수술의 불안을 달랬다. 자신의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아주머니와 함께 병실을 나왔다. 정이 많이 들었는지 눈가를 훔치며 이것저것 신신당부를 했다.

“밤에 울면 변 주머니부터 확인하시고, 많이 안 나왔으면 그냥 두세요. 너무 자주 갈면 도리어 멀쩡한 피부가 더 헐어요. 대부분 배가 고픈 거니까 분유 먹이면 안 울 거예요. 손등으로 온도 재는 일 잊지 말고요.”

차마 인공항문이란 말을 하지 못했다.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다.

다른 아이에 비해 손이 무척 많이 가 힘들었을 텐데 정말 고맙고,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함께 아이를 보살폈을 그녀의 가족 또한 충분히 인사를 받고도 남았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손 교수, 처제, 간다.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고경희와 손일석이 웃고 있었다.

고경아도 애써 미소를 지었다.

여러 생각 속에 하룻밤이 지났다.

김지훈이 수술 방 앞에 섰다.

고경희가 손일석과 함께 아이를 안고 내려왔다.

밤새 잠을 잘 못 잤는지 피곤해 보일 지경이었지만 여느 부모처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순한 보호자가 아닌 부모로서 서 있다는 사실에 김지훈도 긴장하고 말았다.

‘진짜 조카를 수술하네.’

“처제, 수술 시간이 제법 걸려. 끝나는 대로 연락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병실에서 기다려.”

“형부만 믿어요.”

“이 선생, 시작합시다.”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가 아이를 재웠다.

재빨리 머리를 받쳐 안고 수술실로 옮겼다. 대기하고 있던 마취과와 수술 팀이 조심스럽게 아이를 받은 후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띠띠띠띠띠띠!

슉! 슉! 슉!

아이의 심장은 건강했다.

작은 공기주머니로 유지되는 호흡은 전신 구석구석에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공급했다. 이제 김지훈과 이혁원의 손에 아이의 미래가 달렸다.

기존 절개창을 다시 절개해 배를 열었다.

인공항문으로 만들었던 하행결장을 신중하게 피부에서 분리하고, 입구를 막은 후 안전한 부분에 위치시켰다. 정상적인 크기에 대장벽도 단단해져 항문과 연결시키는 데 조금도 무리가 없었다.

핵심적인 과정이 남았다.

신경절이 없는 S결장과 직장을 제거한 후 기존 항문 부위까지 하행결장을 끌어내려 이어 주어야 한다. 성공적인 직장 제거와 더불어 항문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S결장부터 제거 시작합니다.”

모든 장기가 작고 여렸다.

특히 직장이 파묻힌 부분은 손가락 하나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데다 연약한 조직으로 둘러싸여 자칫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단 한순간도 방심하지 못할 과정이었다.

S결장과 이어진 장간막을 분리했다.

잘린 동맥에서 피 몇 방울이 흘러나왔다.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지만 환자가 영유아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약간의 출혈마저 전신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즈 카운트, 출혈량 체크 정확하게 해 주세요.”

거즈 한 장이 푹 젖으면 대략 10cc의 실혈이 발생한 것으로 본다. 불과 몇 장뿐이어도 체중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직장이 남았다.

김지훈이 바짝 긴장했다.

“이혁원 선생, 시야 확보하자. 모스키토!”

후복막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조직에 완전히 둘러싸인 직장 박리가 남았다. 특히 후면에 분포한 혈관 다발에 손상을 주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모스키토를 따라 조직이 벌어졌다.

빨간 피가 스르륵 흘렀다.

“수처! 타이! 컷!”

성인 수술 시에도 어려운 과정이었다. 손가락 하나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출혈 부위를 봉합하고 묶는 과정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각! 사각!

김지훈의 이마가 땀으로 젖었다.

이혁원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불과 몇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직장을 제거하는 내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어떤 아이여도 마찬가지겠지만, 손일석과 고경희 때문인지 가해지는 심적 압박이 상상을 초월했다.

‘후우! 이래서 가족을 수술하지 말라는구나. 조카가 아닌 아픈 아이다. 필요 이상의 부담을 느끼지 말자. 실수는 절대 안 된다.’

피에 젖은 거즈가 쌓여 갔다.

띠띠띠띠띠띠띠!

수액 하나에 의존하고 있는 아이의 심장은 잘 견뎠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수혈을 시작해야겠지만 수술 팀은 이를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

“보비!”

삐이이이이!

공간이 작고 좁아 전기 소작을 할 때마다 하얀 연기가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다. 재빨리 석션으로 제거해 시야를 확보하는 동안에도 석션 팁이 주변 조직을 건드리지 않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다.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했다.

도중에 멈출 상황도 아니었다.

온몸이 통증을 호소했다.

간만에 느끼는 강렬한 자극이었다.

‘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더!’

마침내 직장의 끝이 보였다.

완벽한 직장 제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극히 작은 부분이라도 신경절이 없는 병변 부위와 하행결장을 바로 연결하면 배변 자체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병변 부위를 좁힌 꼴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하행결장의 끝을 항문 시작 부분에 이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항문 옆에 연결해야 한다. 이 과정의 관건은 괄약근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었고, 최종 결과를 좌우하기에 무엇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수처! 타이! 컷!”

직장을 제거하고, 열린 구멍을 막았다.

이제 항문 쪽에서 접근해 하행결장을 이어 줘야 했다. 수술 팀 간의 완벽한 호흡이 요구됐지만 누구보다 소아 수술에 적극적인 이혁원이 퍼스트였다.

신뢰 이상의 힘은 없었다.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하에 김지훈의 손은 멈추지 않았고, 이혁원은 정확하게 움직였다. 하행결장을 직장이 있던 부분으로 끌어내린 후 항문 옆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진행됐다.

“수처!”

한 바늘 한 바늘이 끝날 때마다 정확한 봉합 위치와 괄약근 손상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를 출혈에 끝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지막 봉합이 끝났다.

수술 후 발생하는 흉으로 항문이 좁아질 수 있어 김지훈이 최종 점검을 했다. 손가락 하나가 잘 들어가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혁원 선생, 복부 쪽은 어때?”

“하행결장에 여유가 있고, 출혈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닫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지훈이 긴 숨을 내쉬었다.

수술 내내 떨쳐 낼 수 없는 부담과 긴장이 이어진 탓인지 무척 힘든 수술이었다.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이혁원도 유난히 뻣뻣해진 목을 돌리며 이제야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무리가 시작됐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복부 정중앙에 난 절개창, 인공항문을 만들었던 자리, 드레인을 박은 옆구리의 절개 부위까지 작은 배가 온통 수술 자국이었다.

배 아파 낳은 부모에게는 눈물이자 안타까움이겠지만 손일석과 고경희에겐 어떨지 몰랐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 사람은 결국 아이였다. 어려서는 배변 때문에 힘들 테고, 커서는 드러내 보이기 힘든 배 때문에 괴로울 것이다.

“컷!”

마지막 봉합을 마친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수술을 두 번이나 보고도 입양이 가능할까? 어떤 수술인지 빤히 알고 있는 일석이가 의사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네. 후우! 이제부터는 어디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커야 한다.’

시간이 흘러 일어날지도 모르는 입양으로 인한 문제가 순간 뇌리를 스쳤지만 훗날 일이었다. 정성과 사랑으로 키운다면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훨씬 강할 것이다.

김지훈이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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