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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162화 (1,162/1,329)

8화

워낙 냉정하기로 유명했고, 무엇보다 병원 재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기에 어떤 말을 할지 몰라 다들 귀를 세웠다. 병원 발전에 공헌도마저 상당해 무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직급이 있거나 기존에 고액 연봉을 받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액수가 적습니다. 성과급 규모는 한정적이고, 수입이 적은 직원들에게 더 큰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 대부분이 고액 연봉자에 속하기 때문에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신 교수님은 성과급 자체를 받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신현수가 멋쩍게 웃었다.

“저만이 아닙니다. 원장님, 부원장님, 운영이사님 모두 지급 대상에서 빠지기로 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다른 분들은 절대 해당 사항이 없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이번 성과급 배분의 취지를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다음번에는 함께 결정하겠습니다. 아! 수령 거부는 스스로 요청하셔도 단호히 거부합니다. 꼭 받아 주십시오.”

신현수가 농담으로 자신과 참석자들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했다. 연봉 혹은 월급의 일정 퍼센트로 성과급을 주는 상궤를 벗어난 결정을 두고 나직한 대화가 오갔다.

“최근 뽑은 직원이나 신임 펠로우들은 기준이 애매모호할 텐데 어떻게 지급합니까?”

“지난 일 년의 대가기도 하지만 앞으로 있을 공헌도까지 고려했습니다. 모든 직원에게 동일한 조건을 적용합니다.”

각자의 기준이 있을 테고, 돈에 대한 개념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현 운영진의 결정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석진이 가장 먼저 동의를 표했다.

간호 부장과 행정 간부들도 이의가 없었다.

“좋습니다. 동의합니다.”

큰돈만이 부익부 빈익빈을 만드는 것이 아닐 것이다. 특수한 경우라 하지만 결국 바탕과 허리를 맡은 직원들을 먼저 챙기지 않으면 좋은 직장이라고 할 수 없었다.

연봉 차이가 많이 나는 상황에서 같은 비율로 성과급 등을 지급하면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각자 능력이나 공헌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불공정한 점이 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어떤 일을 해도 값지지 않은 노동은 없으니 말이다.

“액수를 떠나 성과급이라니 은근히 기분 좋네. 김 과장, 이런 일은 미리미리 얘기하면 더 좋지 않겠어?”

“윤 과장, 미안해.”

대부분 웃는 얼굴로 자리를 끝냈다.

취지는 공감해도 각자의 생각과 처한 현실이 모두 같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있을 불만까지 배척하지 말고, 해결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일일이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민정호는 할 말 다 했다는 듯 자신의 자리에서 서류 한 장을 앞에 두고 고민에 잠겨 있었다. 직원별로 적힌 성과급 액수를 보며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사기 진작에는 좋지만 재정에 상당한 무리가 따르겠어. 김 과장님 고집이 그렇게 셀 줄이야. 하긴 이런 면 때문에 병원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지.’

송재덕 교수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다가왔다.

“김 과장, 신 교수, 이준영 교수도 성과급 받니? 월급 많이 받는데 우리처럼 반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일도 많이 하지만 돈도 많이 받잖아. 많이.”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어디까지나 운영진에 국한된 사항이었다.

농담인지 빤히 알지만 대답이 궁했다.

민정호가 태연히 입을 열었다.

“원장님, 이준영 선생님은 부원장님 그만두신 이후 월급이 줄었습니다. 운영진도 아니고요.”

“그걸 누가 몰라? 샘나서 그래. 샘나서. 설마 그렇게 무뚝뚝한데 이런 일을 예측했을 리도 없고 희한해. 난 평생 성과급이라는 걸 받아 본 적이 없는데 누구는 운이 막 따르잖아. 막. 내 월급 깎이면 보존해 줄 거야?”

“지금이라도 드릴까요?”

“돈 주고 소문내려고 그러지. 욕을 바가지로 먹으라고. 민 부원장, 그렇게 살면 곤란하다. 곤란해. 나 청렴한 원장이야. 청렴한 원장.”

타박을 하면서도 계속 웃었다.

그저 대견하고, 고맙기만 한 모양이었다.

머뭇거리면 효과가 반감되기 마련이었다.

회의 직후 전원에게 통보하는 동시에 성과급이 입금됐다. 일부 성격 급한 직원들이 바로 통장을 확인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일한 보람의 상당 부분은 돈에서 온다. 대신 운영진은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사람의 속성을 생각할 때 일회성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민정호가 끝끝내 얼굴을 펴지 못했다.

‘내년에도 수익의 일정 부분을 지급하려면 지금부터 적립을 해야 하는데 돌발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까? 어차피 차입을 해야 한다면 작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결국 수익이 많아져야 가능한 일이다.’

압박해야 할 사람이 눈에 보였다.

“김 과장님, 약속 지키십시오.”

“무슨 약속이요?”

“한 입으로 두말하실 겁니까?”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돈이 부족하면 더 열심히 해 그 이상으로 벌어 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친 탓이었다. 막상 강력하게 주장했던 일이 실행되자 눈앞이 캄캄한 것도 사실이었다.

‘여기서 수술을 어떻게 더 하지?’

그래도 잘한 일이 분명했다.

손일석은 좋아 죽었다.

음흉한 수작까지 부렸다.

“김 과장, 내 통장에는 아직 안 찍혔던데 현금으로 받을 방법이 없을까? 이럴 때 비상금을 만들어 두면 얼마나 유용하겠어?”

“만들어 뭐 하게. 경아 씨도 받는데 어떻게 처제가 모르겠어? 집에 들어가면 당장 액수부터 물어볼걸?”

“아니야. 포기하면 안 돼. 카드만으로 살기에는 내 행적이 너무 적나라하게 노출돼. 하오문 유지하려면 비밀 작업도 필요한데 방법이 없을까? 김 과장, 내가 그 돈을 혼자 먹겠어? 남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이야. 유부남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고 생각해야 돼.”

“용쓰지 마.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받지도 못하는 사람 염장을 지르고 앉았네.”

김지훈은 과연 흑심이 없을까?

퇴근 후, 핀잔만 먹었다.

“마님, 얼마 들어왔어요?”

“왜요?”

“아니,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왔고, 나도 사회적 체면이 있어서 여기저기 쓸 일이…….”

“허구한 날 늦게 들어오면서 돈 쓸 시간은 있으신 모양이네요. 아! 그래서 성과급을 자진 반납하셨나요? 병원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로 바빠서?”

허거걱!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 알면서.”

힐끗 눈을 흘긴 고경아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천 원짜리 다발일지도 모르지만 두툼했다.

“아껴서 꼭 필요할 때 써요. 와이셔츠하고 양복 새로 사 왔어요. 허리하고 바지 길이 안 맞으면 수선해야 하니까 빨리 입어 봐요.”

“지금 있는 옷도 많은데 이런 건 왜 사요?”

“돈 벌어 뭐 할래요? 어머! 허리가 남네. 살이 빠졌나? 어디 아픈 데 없어요? 어쩐지 요새 비실비실한 것 같더라. 우리 남편 보약이라도 해 먹어야 되나?”

자기는 살 빼야 한다는 소리를 주문처럼 말하고 다니면서 허리둘레 줄었다고 난리를 쳤다. 그것도 모자라 기껏 사다 놓은 비타민 안 먹었다고 한 소리 되게 먹었다.

마냥 행복했다.

성과급은커녕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조차 구경을 못하지만 이런 맛에 산다. 손일석은 지금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끙끙 앓고 있을 것이다.

***

다음 날, 상쾌한 기분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도중 이혁원과 강은미가 찾아왔다.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둘이 항상 붙어 다니기로 한 거야? 너무 티 내고 다닌다.”

“그게 아니라 인근 개인 산부인과에서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항문폐쇄증입니다.”

Imperforated Anus.

항문 생성이 안 되는 선천성 질환이었다.

결함 발생 위치에 따라 고위쇄항과 저위쇄항으로 나뉜다. 고위쇄항은 인공항문을 만든 후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이 됐을 때 항문 직장 재건술을 시행한다. 수술이 복잡하고, 아이에게도 큰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저위쇄항은 바로 항문 성형술을 시행하면 된다. 상대적으로 수술이 쉽다지만 수술 후 항문이 좁아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어느 경우나 아프고,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타입은 모르고?”

“와 봐야 정확하게 알 것 같습니다. 오는 대로 강은미 선생과 필요한 검사 시행하겠습니다.”

함께 온 이유가 있었다.

김지훈이 이혁원을 보았다.

‘무조건 욕심낼 혁원이가 아니지. 저위인 경우에는 직접 집도하려고 하겠지만 고위인 경우에는 최소 상의를 할 것이다. 아니다. 이참에 확실하게 맡길까?’

고민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이혁원이 뜻밖의 말을 했다. 소아 외과 수술이 기본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모를 리도 없었다.

“송진우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고위쇄항인 경우에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수련 때부터 유독 아이에게 관심이 많았고, 얼마 안 되는 수술을 거의 다 참석하거나 참관했을 정도로 열의를 가진 송진우였다.

결국 써전 둘과 소아과 전문의가 힘을 합쳐 보겠다는 말이었다. 이미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고, 책에만 의존해 수술을 준비할 이혁원도 아니었다.

“좋아. 맡아서 수술해.”

“감사합니다. 아이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틀 후에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김지훈이 손을 휘휘 저었다.

간 이식 수술 팀의 주역으로 만들려 했던 이혁원이 새로운 길로 갈지도 모르지만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관계 때문에 휘둘릴 써전도 아니었다.

순리를 따른다면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다.

‘어느 길로 가든 네 길이겠지.’

“다음 환자 봅시다.”

오전 진료를 끝마칠 무렵이었다.

김지훈이 환하게 웃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천성 거대 결장으로 일차 수술을 받은 아이가 내원했다. 제법 살이 붙은 데다 재롱까지 부려 기분이 무척 좋아진 참이었다.

“보호자분, 유전 질환까지 무슨 검사를 이렇게 많이 신청하셨어요? 웬만한 질병은 다 검사했을 텐데요.”

“처음에 같이 오셨던 손일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셔서 예약했는데 모르셨어요? 비용은 걱정 말라고 하셔서 병원에서 하는 검사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김지훈이 순간 당황했지만 티를 낼 일이 아니었다. 심심찮게 거론된 입양도 마음에 걸렸지만 입원 중에 수시로 아이를 찾는 손일석을 보며 유난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 그랬군요. 마지막으로 언제 보셨어요?”

“퇴원 후에도 사모님과 함께 몇 번 오셨었어요. 아이 장난감에 분유, 이유식까지 사 오시고는 한동안 놀아 주기까지 하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아이를 참 좋아하시나 봐요.”

‘처제까지?’

왠지 기분이 묘했다.

강은미에게 연락해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았다.

(손일석 선생님이 직접 연락하셔서 함께 검사 일정 잡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별건 아니고, 특별한 말은 없었어?”

(당장은 필요 없는 검사가 있어서 말씀을 드리긴 했어요. 이왕이면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시는 데다 생후 검사도 제대로 안 된 것 같아서 별생각 없이 지나갔는데, 왜 그러세요?)

“아니야. 일 봐.”

진료를 끝낸 김지훈이 생각에 잠겼다.

‘설마 입양을 하려는 걸까? 건강한 아이도 많을 텐데 하필이면……. 어휴! 이런 생각을 하는 거 자체가 안 될 일인가? 그래도 입양을 하면 평생 돌봐야 할 자식이 되는 건데.’

복잡하기만 했다.

입양해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들어 알고 있었다. 선천성 질환이 있다는 사실이 아이를 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었지만 가족인 탓인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 볼 때마다 묻고 싶었다.

“손 교수, 요새 뭐 특별한 일 없어?”

“특별한 일? 재미난 일 말하는 거야? 아침 해 보고 출근해서 달 보며 퇴근하는데 일이 있긴 뭐가 있겠어? 브로커 날뛰었을 때가 차라리 그립다.”

“처제는 잘 있지?”

“오늘 뭐 잘못 먹었어? 본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희연이 때문에 그래?”

검사와 추적 관찰을 위해 아이가 내원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김지훈이 아직 모를 것이라 여긴 것인지 입양이란 말 자체를 꺼내지 않았다.

‘대놓고 물어볼까? 아니야.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아. 만일 내가 착각한 거라면 일석이 상황만 우스워질 수 있어.’

결국 묻지 못했다.

혈관 수술이 있어 더 이상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게다가 진충기 교수가 손일석과 함께 수술 방으로 향하는 바람에 마음을 엿볼 기회조차 사라졌다.

한편으로 웃음이 나왔다.

진충기 교수 때문이었다.

간 이식은 물론 다른 수술까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써전의 열정에 긴장까지 느껴졌다. 어쩌면 먼저 대가 소리를 들을지도 몰랐다.

‘이런 일은 선후배를 따질 일이 아니지. 먼저 듣는 놈이 임자다. 에휴! 그래서 더 무섭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나 먼저 달려가는 선배나 무섭긴 마찬가지네.’

여기에 평생 라이벌인 사인방까지 사방이 온통 경쟁자였다. 자신의 분야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도 힘들 판에 운영이사로서 의료 외적인 문제까지 짊어지고 있는 현실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부르르 어깨를 떤 김지훈이 이내 고민에 빠졌다.

입양이란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럴 때 마음을 활짝 열고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손일석의 처형이자 고경희의 언니가 아니더라도 아내는 그런 존재였다.

퇴근하자마자 고경아를 찾았다.

너무 조용했다.

희연이를 꼭 안은 채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이 화들짝 놀랐다.

“경아 씨? 왜 그래요?”

눈가에 눈물이 그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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