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김지훈의 갈등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후우! 머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려 주는데 가슴이 따라 주지를 않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역시 피해자 아버지와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다.’
실제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때론 분노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특히 상대가 어린이, 노인, 여인, 장애우 등 사회적, 육체적 약자를 짓밟는 범죄자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전과자라고 해서 무조건 백안시하는 우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지훈이 인상을 썼다.
‘빨리 좋아져야 얼굴을 안 볼 텐데.’
어떤 생각이 들어도 칼에 찔린 놈이 환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간 쪽의 출혈이 멈추지 않아 상당히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보호자의 태도도 변했다.
“왜 피가 멈추지 않는 겁니까? 수술은 제대로 한 겁니까? 이러다 우리 아들 잘못되면 누가 책임질 거요?”
“지금 상태에서 재수술을 들어가 손상된 간을 절제하면 손해가 더 큽니다. 절제 범위가 큰 데다 자칫 환자가 버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수술할 때 확실하게 했어야죠.”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상태였습니다. 사람 몸은 기계가 아닙니다. 첫 수술 때 간을 잘랐으면 수술 중 사망했을 겁니다.”
자칫 큰 분란이 유발될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치료를 등한시한다면 의사 자격을 스스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지금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송진우 선생, 출혈은 어때?”
“멈출 것 같으면서도 멈추질 않습니다. 혈소판과 혈장 투여량을 늘리겠습니다.”
퇴근 전 환자의 드레인을 살피는 모찬우를 보던 김지훈이 돌연 얼굴을 찌푸렸다. 그동안 송진우와 모찬우를 비롯해 당직 펠로우들이 수시로 환자를 살폈다. 속마음은 어떤지 몰라도 다른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가치나 주관을 개입시키지 말라고 배웠고, 가르쳤건만 스스로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벌을 주는 것은 사법부의 판단이지 의사의 영역이 아니었다.
더구나 사연 없는 환자는 없었고, 좋은 사연만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준영 교수의 말대로 다른 환자까지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었다.
‘후우! 이런 식으로 가서는 안 돼. 내가 먼저 원칙을 지켜야 저 사람을 비난할 자격을 얻을 수 있겠지. 머리까지 뜨거워지면 막을 수 있는 일조차 막지 못한다.’
생각을 바꿔야 했다.
불현듯 피해자의 아버지를 살인자로 만들지 말라던 서정호의 말까지 떠올랐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했다.
퇴근 후 김지훈이 희연이를 꼭 안았다.
‘희연아, 건강하게 자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갑갑하다고 발버둥 치던 희연이에게 아빠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품속에 폭 안겼다. 어리고 약한 몸을 반드시 지켜 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고경아가 살포시 기댔다.
“지훈 씨, 이제 그만 얼굴 펴요.”
“매일 얼굴을 봐서 그런지 쉽지 않네요. 희연이를 볼 때마다 걱정도 되고요.”
“우리도 그 환자 얘기가 나오면 다들 화부터 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할 일은 해야죠. 형부 말대로 살인자를 만들면 안 되잖아요.”
사람 마음 다 같았다.
다만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하는 의사나 간호사라는 이유 때문에 더 갈등하고, 고민스러울 뿐이었다. 문득 우연히 마주친 민정호가 한 말이 떠올랐다.
‘고민할 이유가 있습니까? 병원에 온 이상 당연히 살려야 합니다.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는 언젠가 톡톡히 치르게 될 겁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개과천선이란 말을 절반 정도만 믿습니다.’
정답일지도 몰랐다.
***
주말이 지났다.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간 이식 환자 수술을 하는 내내 중환자실을 잊을 수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오랜 시간 수술한 후 무사히 깨어나는 환자를 보는 기쁨도 사라지지 않았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살짝 떨리는 눈꺼풀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이렇게 편했구나. 그래. 욕은 하더라도 환자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자. 일단 내 일에 집중하는 것이 먼저다.’
한시름 놓으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중 칼에 찔린 환자를 보고 있던 송진우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이미 간호사에게 피를 준비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선생님, 직접 보셔야겠습니다.”
김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뚝뚝뚝뚝뚝!
환자의 우측 옆구리에 박힌 드레인에서 상당량의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드레인을 타고 나오지 못해 복강 내에 굳어 있을 피까지 생각하면 지켜볼 단계가 아니었다.
‘제길!’
절로 욕이 나왔다.
“즉시 수술 준비해.”
곧바로 보호자를 만났다.
환자 회복이 상당히 늦어져 희망적인 말보다 비관적인 말을 많이 했지만 이해할 보호자는 없었다. 간 출혈이 심각해져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리에 아비라는 작자가 소리부터 질렀다.
“지금까지 뭐 한 겁니까? 내 자식 반드시 살려 내요. 절대 죽어서는 안 될 아이입니다. 내 그 자식을 그냥! 그깟 일로 사람을 찔러?”
분노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었다.
‘당신 자식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 그깟 일이라고? 당신도 언젠가 대가를 치를 수 있어.’
김지훈의 눈이 오히려 냉정해졌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간을 절제해야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최악의 경우 깨어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죽을 수도 있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잘 버텼지만 자연적인 지혈이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애초 혈관 손상이 심했을 가능성이 너무 큽니다. 술로 인해 간 기능까지 약해져 피를 굳게 하는 기능도 정상적이지 않고요.”
보호자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재수술에 동의했다.
필요한 준비가 끝나자마자 즉시 수술실로 옮겼다. 수혈 속도를 크게 늘린 덕에 환자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
“살려 주십시오.”
절박한 얼굴이 무척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김지훈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준영 교수와 서정호의 말을 상기하고 또 상기했다. 의사의 사명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고, 눈앞에 있는 사람은 죽음의 위기에 빠진 환자일 뿐이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가위!”
절개된 환자 복부 정중앙을 꿰맸던 실밥이 투둑 끊어졌다. 상태가 나쁘다 해도 어느 정도 붙었던 절개창이 다시 활짝 열렸다.
복강 내 고인 피를 깨끗이 제거하고, 기존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비장을 제거한 부위와 대장을 연결한 부분은 아무 이상도 없었다.
관건은 역시 간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지속적인 출혈과 간 기능까지 저하시킨 술 때문인지 비감염성 염증까지 심각하게 발생했다. 봉합을 시행한 부분을 넘어 우엽 전체가 탄력을 잃은 상태였다.
재봉합은 아예 제외시켰다.
절제만이 답이었다.
문제는 어디까지 잘라야 하는지였다. 우측 간을 모두 자른다고 죽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살려야 퇴원 후에도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다.
“송진우 선생, 손상 부위가 생각보다 넓은데 어디에서 자르는 것이 좋겠어?”
“염증이 발생한 부분에서 자르면 또 출혈이 발생할 겁니다. 우엽 전체를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최선이겠지?”
수술 팀 모두 동의했다.
‘준비를 철저히 하고 간을 잘라도 몇 개월 이상 고생하는데, 이런 상태면 훨씬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어쩌면 이것이 당신 운명일지도 몰라.’
“자르자. 모스키토!”
간 이식 수술을 한 날이었다.
익숙해졌다고 피로가 덜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까만 어둠이 잔뜩 깔린 시간에 무거운 어깨를 풀고 간 절제를 시작했다.
보기보다 더 심각했다.
자칫 우엽만이 아니라 좌엽까지 잘라야 할 수도 있었다. 간의 회복력이 아무리 좋아도 지나친 절제는 그 자체로 치명적이었다.
어떻게든 우엽만 제거해야 했다.
“수처! 타이! 컷! 모스키토!”
건강한 조직도 절제 시에는 고도의 집중력과 주의를 요했다. 하물며 염증으로 약해진 간을 자르는 과정이 순탄할 리 없었다.
툭하면 피가 흘렀다.
전기 소작을 하고, 수처로 추가 보강을 해도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이젠 실력이 붙을 대로 붙은 송진우에게도 적정한 힘을 요하는 타이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사각! 사각!
반면 무엇보다 간 동맥, 문맥, 정맥을 처리할 때는 간 이식 수술 팀의 능력이 십분 발휘됐다. 혈관과 담도 분지를 철저하게 처리하며 간을 절제해 나갔다. 해부학적 지식은 물론 손 기술까지 나무랄 구석이 없었다.
주요 혈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맥이다. 두 번 타이하자.”
따르륵! 따가각!
혈관을 자르고 묶은 솜씨가 대단했다.
좌측 간에 바짝 붙여 잘라야 하는 탓에 혈관을 혼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실수하지 않았다. 주행 방향과 위치를 확인한 후 정확하게 우측 간의 혈관을 모두 처리했다.
시간과의 싸움만이 남았다.
사각! 사각!
약해진 간을 자르는 이상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점점 피로가 가중됐지만 멈출 상황이 아니었다. 수술 팀의 손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마침내 끝이 보였다.
칼에 손상된 후 염증까지 발생한 우측 간이 떨어져 나왔다. 철저하게 지혈하며 진행했지만 군데군데 우징(Oozing)처럼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피까지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다른 환자 같으면 지혈 패치를 붙이고 끝내도 되겠지만, 이 환자는 아니다.’
“송진우 선생, 더 막아야겠지?”
이미 새벽 세 시에 가까워졌다.
송진우는 주저하지 않았다.
“예. 이 상태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자식!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다니 많이 변했어. 이젠 정말 써전이네.’
“마취과, 우징처럼 발생하는 출혈까지 지혈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습니다. 유념해 주세요. 수처 주세요.”
지난한 과정이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수술실에서 산 꼴인 탓에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수술은 아예 불가능했기에 꼼꼼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거즈에 점점이 묻는 수준까지 지혈했다.
더 이상 건드리면 오히려 출혈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지혈 패치 등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한 후에야 수술을 끝냈다.
환자를 회복실로 옮겼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수시로 드레인을 살폈다. 복강을 세척하며 남은 물에 미세한 출혈의 흔적이 섞여 있었지만 간을 절제한 환자에게 당연히 보이는 소견이었다.
“모찬우 선생, 환자 잘 봐.”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찬우의 눈가가 검게 죽었다.
밤을 새 수술한 경험은 제법 있었지만 거의 이십 시간을 단 두 개의 수술로 보낸 적은 없었다. 중간에 쉴 틈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몇 배 힘들었다.
‘후우! 정말 두 분 다 대단하시네. 이렇게 수술하고 사니까 최고의 써전이라는 소리를 들으시겠지? 손이 부족해서 그렇지, 열정 하나는 남부럽지 않은 나다. 파이팅!’
힐끗 시선을 준 김지훈이 보호자를 만났다.
아무도 없었다.
보호자 대기실에 연락을 한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지나치게 늦은 시간인 데다 중환자실에 있다 해도 간병이 결코 쉽지 않고, 스트레스는 더 많이 받는 까닭에 이해하고도 남아야 할 일이었다.
‘매사 왜 이리 눈에 거슬리는지 모르겠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만, 말씀드린 대로 우측 간을 절제해야 했습니다. 힘들더라도 당분간 지켜봐야 합니다.”
눈가만 찡그렸다.
원인은 칼부림이지만 수술한 이상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눈빛이었다. 의사가 감수해야 할 책임이자 의무였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림까지 그려 가며 상세하게 수술 과정을 설명했다. 우측 간을 자를 수밖에 없는 상태였음을 수차례 강조하며 기록을 남기는 일 역시 잊지 않았다.
드르르륵!
환자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아버지!”
“오냐! 우리 아들!”
더없이 끈끈하게 보이는 부자간의 감정에 이유 모를 한숨이 터졌다. 수술 후 검사 결과를 확인하느라 한 시간 이상 환자 곁을 지켰지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어떤 대가도 바랄 수 없는 일이건만 송진우와 모찬우도 불편해하는 기색이었다.
정말 제 식구만 눈에 보이는 가족인 모양이었다.
‘그래. 빨리만 회복되자.’
당직도 아닌 날에 연구실 소파에 누웠다.
재수술이라는 흔치 않은 일에 심난하기만 했다. 비몽사몽 잠 같지도 않은 잠을 자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끄덕끄덕 졸던 모찬우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잘 때는 단 한 시간이라도 편하게 자. 이러다 몸만 해친다. 드레인은 어때?”
“한 시간 전에 새로 갈았습니다.”
모찬우가 드레인을 감싸고 있는 거즈를 치웠다.
상당 기간 지켜봐야 하겠지만 수술 첫날의 소견 역시 무척 중요했다. 허용 수준 이상의 출혈이 발생하고 있다면 이후 결과는 생각만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 틈엔가 송진우까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