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응급 수술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서둘러야 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게다가 둘 다 교수급 집도의였다. 당황스러운 기색까지 보여 느낌이 좋지 않았다.
“손 교수, 무슨 일이야?”
“출혈이야.”
손일석이 마치 진충기 교수가 들으면 안 되는 것처럼 입을 가린 채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출혈? 어떤 환자?”
“간 이식 환자.”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간 이식 수술 시작 후 항상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아무리 노련한 써전에게도 수술 후 합병증은 피치 못할 일이라지만 절대 일반적인 합병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폐렴, 상처의 염증, 패혈증, 하다못해 요로의 염증까지 전신 어디에나 감염이 발생할 수 있었다. 수술한 장기의 회복이 늦어지며, 연결 부위가 새거나 좁아지는 경우는 물론 출혈도 왕왕 보곤 했다.
영향을 주는 요소가 워낙 많았고, 메이저 수술을 한 환자에게서 더 자주 보지만 마이너 수술을 했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경우 적절한 조치로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지만 간 이식 환자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3~5퍼센트 정도의 확률로 발생하는 출혈이나 혈전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환자가 걱정이었다.
하기에 같이 당황해 우왕좌왕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환자를 가장 잘 아는 집도의가 침착하게 대처해야만 환자를 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제 두 번째 간 이식 수술을 한 진충기 교수였다. 가뜩이나 부담이 큰 상황에서 더 큰 압박을 느끼게 할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출혈이 발생했다고 해서 이식한 간이 죽는다는 소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침착하게 대처하시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진충기 교수가 눈가를 굳혔다.
엄중한 상황이었다.
혈관 전문의를 겸한 손일석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도 상당한 부담감에 진정하기 어려웠지만 김지훈의 눈에서 강한 신뢰의 빛을 보았다.
“수술 끝나고 봅시다.”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수술 방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드르르르륵!
이미 환자는 수술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 고통스러운 얼굴, 쏟아지듯 떨어지는 혈액은 환자의 급박함이었다. 출혈을 잡지 못하면 간을 잃고, 간을 잃으면 결과는 명확했다.
비상이다.
자신의 수술실로 들어가던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순간순간 진충기 교수의 재수술에 신경이 갔지만 더 이상 용납할 선이 아니었다.
‘내 환자에게 집중하지 못하면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집중하자.’
어수선한 상황이 멀어졌다.
수술 방도 고요함을 되찾았다.
김지훈의 팽팽한 긴장과 강한 집중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환자가 눈을 뜨고 나서야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대부분의 수술이 끝났다.
피곤에 지친 써전들이 휴게실을 떠나지 못했다.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며 진충기 교수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김지훈은 직접 수술을 지켜보았다.
원인은 동맥이 아닌 문맥 연결부였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혈류 압력이 높지 않은 반면 동맥에 버금갈 정도로 혈류량이 많은 탓에 상당한 출혈이 불가피해 보였다.
집도의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재연결이 마무리됐다.
진충기 교수와 손일석이 수술 부위를 수차례 교차 확인해 더 이상 출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관건이 될 수밖에 없는 간 상태도 양호해 보였다. 출혈 중에도 간 동맥이 정상적으로 혈류를 유지해 준 덕이었다.
‘후우! 천만다행이다.’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
눈을 뜬 환자가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김지훈까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진충기 교수는 말이 없었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는 내내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발을 동동 구르는 보호자를 만날 때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잘 설명하셨습니까?”
“수술 전에 출혈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한 덕인지 별문제 없네요. 걱정을 끼쳐 미안합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지 마세요. 잘 회복될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김지훈으로서는 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사히 깨어났다고 해도 환자 상태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 예측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식된 간이 갑자기 기능을 잃는다면?
회복이 너무 늦어져 전신 상태가 나빠진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1퍼센트 전후의 사망률이 자꾸만 떠올랐다.
일과를 끝낸 후에도 퇴근을 하지 못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단순히 간 이식 수술 팀의 한 명이 아니었다. 전체를 총괄하는 파트장이자 과장이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했다.
더구나 간 이식 수술 후 처음 발생한 치명적인 합병증이었다. 정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합병증 발생이 잦아질 것이다. 또한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전문 병원의 위상에 금이 갈 수도 있었다.
엄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였다.
김지훈이 첫 수술 팀을 찾았다.
강병옥과 송진우였다.
며칠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기억에 의존한 말과 기록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입원 당시 기록부터 수술 기록까지 세심하게 확인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수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혈관 기형이 있었구나. 이것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강병옥 선생, 보호자와 환자에게 문맥 기형이 의심된다고 설명했어?”
“예.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수술 시 소견은?”
“수술 전 검사와 동일했고, 문맥 간의 문합이 상당히 어려웠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확실하게 대처했습니다. 수술 직후 어떤 출혈의 징후도 없었습니다.”
“송진우 선생, 재수술 들어갔지? 간 이식 수술 중에 간과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소견은 없었어?”
“연결 부위가 터진 것이 아니라 봉합한 부분 사이사이에서 출혈하는 양상이었습니다. 기형 때문에 혈관의 건강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고, 혈액 응고 기능 저하까지 겹치면서 다량의 출혈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김지훈이 정면으로 강병옥과 송진우를 보았다.
“진충기 선생님의 실수는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 같은 수술 팀이 아니라 한 명의 의사로서 말해야 돼.”
“없었습니다.”
“좋아. 가 봐.”
강병옥이 주춤거렸다.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진충기 선생님께 문제라도 생기는 거 아닙니까?”
“고의가 아닌 이상 실수나 과실이 없으면 어떤 문제도 없을 거야. 우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잖아. 강병옥 선생과 송진우 선생은 환자에게만 집중해.”
곧바로 손일석을 만났다.
재수술을 들어간 탓에 막 중환자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자세하게 상황을 물어본 결과 간 이식 수술 중에는 실수나 과실이 없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진충기 선생님은?”
“중환자실에 계셔.”
“어때 보여?”
“죽을 맛이지, 뭐. 수술 후에 별의별 합병증을 다 봤어도 이번처럼 심각한 경우는 없잖아? 수술 전에 충분히 설명한 덕에 보호자들이 수긍해서 다행이지, 미흡했으면 난리 났을 거야.”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합병증이든 뭐든 회복세를 보이던 환자가 갑자기 사망하면 대부분의 보호자는 일단 병원의 과실부터 생각하게 된다. 더구나 바이탈이 흔들리는 상황까지 유발돼 재수술을 했다. 집도의는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일단 환자를 살려야 한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불가피한 일인 이상 과장으로서 책임을 피하지 말고, 진충기 선생님을 보호해야 한다.’
환자까지 같이 보아야 할까?
아니었다.
다른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충기 교수와 수술 팀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각오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할 일은 차근차근 정리하는 일뿐이었다.
다음 날.
유난히 몸이 찌뿌둥했다.
월요일에 수술한 간 이식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어 겸사겸사 재수술을 받은 환자까지 수시로 찾았다. 밤새 킵을 했는지 송진우의 눈이 시뻘겠다.
환자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하게 하고, 쓸데없는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진충기 교수와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보호자와의 원활한 소통 역시 집도의의 몫이었다.
다행히 경과가 좋았다.
보호자들도 특별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환자만 괜찮아지면 별일 없겠어.’
다소 마음이 놓이는 순간 민정호가 찾아왔다.
“환자 때문에 왔어요?”
“치료에 관한 부분은 제 업무가 아닙니다.”
무척 냉정한 말이었지만 원래 성격인 데다 행정 직원이 끼어들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오히려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럼 다른 일 때문에?”
민정호가 살짝 인상을 썼다.
“오늘 소방 점검과 위생 및 시설 점검을 하겠다고 보건소와 소방서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정밀 점검이라고 하니까 한동안 바빠질 것 같습니다.”
“소방 점검은 원래 몇 달에 한 번씩 하잖아요? 설마 그 문제 때문에 온 것은 아니죠? 보건소가 문제인가요?”
“규정을 준수하고 있으니까 적절하게 대처하면 됩니다만, 심평원에서 현지 실사를 하겠다는 연락까지 왔습니다.”
“현지 실사요? 개원한 지 일 년도 안 되는 병원에 무슨 실사가 필요하다고…….”
김지훈이 돌연 눈을 부릅떴다.
현지 실사는 심평원 직원이 직접 나와 의료보험서부터 비급여 부분까지 광범위하게 조사해 병원의 불법을 막는 제도였다.
취지는 합당하지만 문제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약 하나하나마다 병명을 붙여야 하고, 바늘 하나의 비용까지 제한된 급여를 심사하는 마당이었다. 아무리 성실하게 대처해도 구멍이 없을 수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착오 혹은 누락마저 부당 청구라 불러 오명까지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학 산하 병원도 수백억에 달하는 과징금을 무는 일이 발생했다. 따라서 불법과 합법을 떠나 병원 관계자에겐 이보다 더 큰 스트레스가 없었다.
김지훈이 심각해진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정기적이라 해도 소방, 위생, 시설 점검이 한꺼번에 닥쳤다. 그도 모자라 비정기적으로 시행되는 현지 실사까지 통보받았다. 개원한 후 최소 사오 년은 지나야 받는 조사를 말이다.
한동안 민정호를 비롯해 대다수 행정 직원은 물론 의료진 일부도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다.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기에는 아직 부족해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나?’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같았다.
진상건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민정호도 그런 이유로 찾아왔을 것이다. 추측이 맞는다면 일개 개인에게 휘둘리는 공공 조직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 부원장님, 평범한 일은 아니죠?”
“다른 병원에 알아본 결과 불행히도 누군가의 의도가 작용한 것 같습니다. 누가 무슨 짓을 했든 일단 이번 조사를 빠르게 끝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도울 일이라도 있어요?”
“심평원 실사 때문에 진료 중에도 기록 요구가 많을 겁니다. 각 과 선생님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조치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된 이상 진상건을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모르는 패를 쥔 것 같은데 더 미뤄야 합니까?”
민정호는 동요하지 않았다.
“어떤 의도가 작용했든 어차피 받아야 할 조사와 점검입니다.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점검 나와서 온갖 트집을 다 잡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심지어 뒷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도리어 고맙죠. 예기치 못한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법과 원칙을 지켰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아직 때가 아닙니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민정호가 무엇을 쥐고 있는지 몰라도 맞는 말이었다. 행정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진상건의 능력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여겼다.
‘일선 공무원이 문제일까? 아니야. 어느 틈엔가 돈과 권력에 취해 버린 사람들이 문제겠지.’
각 과에 현지 실사를 알리는 전화를 넣는 동안 점점 기분이 가라앉았다. 환자만 보고 살고자 하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를 일이었다.
중환자실 앞에서 진충기 교수를 만나는 보호자들의 표정을 보자 다소 기분이 풀렸다. 잘 깨어나 혈색까지 찾은 환자를 보며 웃을 수 있었지만 머릿속에서 실사와 점검이라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진상건! 이 쪼잔한 새끼!’
이를 갈던 김지훈이 돌연 눈가를 찡그렸다.
진상건이 거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하는 짓마다 쩨쩨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일도 골치는 아프지만 담벼락에 난 생채기 정도에 불과했다.
‘어울리지가 않아. 뭐지? 나 같으면 한 방을 노릴 텐데,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진상건의 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모를 일이었다. 하기에 민정호는 물론 가장 마음이 급할 신현수까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한동안 생각에 빠졌던 김지훈이 툭툭 옷을 털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당당하게 마주친다면 하나하나 다 잘 해결될 것이다. 거짓으로 모면해야 하는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