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수술 당일.
강은미가 최종 점검을 했다.
소아과 의사는 확실히 달랐다.
그동안 반드시 필요한 검사와 진찰만 하며 최대한 조심했지만 청진기에도 울던 아이가 잠잠했다. 같은 마음이어도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매시간이 불안했던 아이는 수술에 적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은미 선생, 다른 문제는 없겠지?”
“동반 기형이 없는 데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아이예요. 잘 치료하면 발육 부진도 빠르게 회복될 거예요.”
확신에 찬 말이었다.
‘수술 잘하라는 말이네.’
함께 회진을 돈 김지훈은 물론 이혁원까지 나쁜 의미가 아닌 좋은 의미의 부담을 상당 부분 안고 수술 방으로 내려갔다.
성인이라면 수술실에서 기다리겠지만 오늘의 환자는 생후 육 개월 된 아이였다. 수술 방으로 들어가는 과정부터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김지훈이 수술 방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수술 전 금식으로 칭얼대는 아이를 안은 위탁모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친자식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와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선생님, 별일 없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이십사 시간 엄마 품이 필요한 아기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 같아도 수술을 앞둔 아이들은 온몸으로 불안을 표현하기 마련이었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
수술 방으로 들어가기 직전 마취과 간호사가 수면 유도제를 놓았다. 쉬지 않고 칭얼대던 아이가 잠이 들자마자 곧바로 옮겼다.
김지훈이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손에서 칼을 놓은 적이 없었지만 아이 수술은 오래간만이었고, 적절한 수술 시기까지 놓친 생후 육 개월 아기가 주는 불안이었다.
윤서연이 마취를 맡았다.
“윤 과장, 잘 부탁해.”
“과장 소리 들으니까 어색하네. 김진호 선생님도 부원장 소리 붙이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냥 전처럼 불러.”
“차차 익숙해질 거야.”
가벼운 농담으로 어깨 힘을 풀었다.
잠시에 불과했다.
띠띠띠띠띠!
정상적인 아이의 심장박동이었지만 왠지 급박하게만 들렸다. 가느다란 바늘을 따라 천천히 주입되는 수액과 끼울 소변 줄조차 없어 대신 붙인 소변 주머니까지 모든 것이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마취 시작합니다.”
미리 재웠던 아이의 몸이 완전히 늘어졌다.
수액 줄보다 조금 더 굵은 튜브가 아이의 작은 입 안으로 사라졌다. 작은 숨에 비해 너무 많은 공기를 밀어 넣는 탓에 인공호흡기조차 사용하기 힘들어 윤서연이 직접 공기 주머니를 잡았다.
더욱 진한 긴장감이 흘렀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일차 수술은 어렵지 않지만 지금 확실하게 해 놔야 이차 수술의 결과가 좋아진다. 집중하자. 원 스테이지로 수술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조그만 메스가 유난히 커 보였다.
가뜩이나 연약한 아이의 몸인데 더딘 발육까지 겹쳐 너무 손쉽게 배가 열렸다. 미처 다른 장기를 확인하기도 전에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대장이 삐져나왔다.
“이혁원 선생, 대장이 너무 확장돼 원 스테이지는 무리로 보인다. 예정대로 진행하자.”
“알겠습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대장에 구멍을 냈다.
사전 처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정체된 탓에 역한 냄새가 확 퍼졌다. 유익한 균은 다 죽고, 해로운 균만 득실거릴 것이다.
찌이익! 찌이익!
신중하게 가스와 내용물을 제거했다.
쭈글쭈글해진 대장이 성인의 대장과 비슷할 정도로 컸고, 대장 벽은 조금만 힘을 주어도 쉽게 찢어질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그나마 하행 결장까지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확실하게 수술하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겠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선천성 거대 결장은 전통적으로 두 단계로 수술한다.
첫 단계로 병변 부위를 자른 후 정상적인 결장을 피부 밖으로 빼내는 콜로스토미(Colostomy:결장루)를 시행해 인공 항문을 만들어 준다.
비정상적으로 확장됐던 대장이 제 모습과 기능을 찾으면 두 번째 수술로 항문과 연결시켜 마무리 짓게 된다. 지속적인 관찰을 요하고, 때론 재수술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확실하게 완치시킬 수 있었다.
반면 최근 들어 원 스테이지(One Stage)로 수술해 결장루를 이용한 인공 항문을 만들지 않고, 바로 항문과 대장을 연결해 주는 방식이 대두되고 있었다.
두 번의 수술과 마취로 인한 부담을 주지 않는 등 여러 장점과 동시에 단점 또한 만만치 않아 논란이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아직은 써전의 욕심일 수 있는 데다 최적의 수술 시기를 놓친 아이에게는 도저히 적용하지 못할 방식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장점이 확실한 만큼 선천성 거대 결장 케이스가 또 있으면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는 있어.’
김지훈이 나직하게 말했다.
“마취과, S 결장 상부에서 대장 자른 후 콜로스토미 시행하고 끝내겠습니다.”
영유아일수록 마취 시간에 신경을 써야 했고, 공기 주머니를 이용해 손으로 직접 호흡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수술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는 것이 바람직했다. 경험 풍부한 윤서연이 잘 대처할 것이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하행 결장과 S 결장 경계 부위를 잘랐다.
정상 부위의 확장과 병변 부위의 수축으로 발생한 극단적인 크기 차이가 선천성 거대 결장의 무서움을 여실하게 알려 주었다.
한 방울의 피라도 덜 흘려야 경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결코 어려운 과정이 아니었지만 가느다란 혈관과 연약한 조직에 손상이 가해지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장겸자!”
따르륵!
김지훈이 손을 멈췄다.
“모찬우 선생, 들어왔나요?”
“예. 대기하고 있습니다.”
병변이 있는 S 결장을 막아 버리고, 하행 결장은 피부 밖으로 끄집어내 인공 항문을 만들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가 남았다.
힐끗 모찬우를 본 김지훈이 하행 결장 끝부분 전체를 한 바퀴 빙 둘러 잘라 내 넘겼다.
동결 조직 검사를 위한 표본이었다.
수술 시간이 길어져도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절대 육안으로 정상적인 부분을 판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만일 자른 부위에 병변이 침범한 것을 확인하지 않고 끝낸다면 수술은 하나 마나였고, 아이는 더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모찬우가 빠르게 사라졌다.
은근히 초조한 시간이었다.
신경절 분포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면 어디까지 더 잘라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더욱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이혁원 선생, 만일 더 절제해야 한다면 어디서 잘라야 할까? 하행 결장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안전할까?”
“자른 부위 상부 모두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상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단계적으로 잘라서 매번 검사할 수도 없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하행 결장을 다 자르면 이차 수술이 훨씬 어려워질 겁니다. 무엇보다 삶의 질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장이 짧아지는 것 이상으로 불편이 커질 텐데요.”
맞는 말이었지만 여러 요소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사실 동일한 수술을 하는 써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문제기도 했다.
때문에 더욱 초조했다.
째깍! 째깍!
드디어 전화벨이 울렸다.
(신경절 정상적으로 분포한다고 전해 주세요.)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진행하자.”
장겸자로 막아 두었던 S 결장 상부를 꼼꼼하게 봉합했다. 오랜 기간 수축돼 있어 상대적으로 단단하겠지만 반복적으로 발생한 염증으로 취약해져 약하긴 마찬가지였다.
바늘구멍마저 조심해야 했다.
“수처! 타이! 컷!”
이혁원이 바짝 긴장했지만 곧 교수를 바라보는 써전이었다. 어떤 손상도 일으키지 않았고, 무사히 항문과 연결된 맹관을 만들었다.
하행 결장이 남았다.
콜로스토미를 만들어야 하는 부위기 때문에 박리가 필요했다. 후복막에 절반쯤 묻혀 있어 상당한 주의를 요하지만, 특징적으로 존재하는 무혈관층만 잘 찾으면 도리어 수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환자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었다.
각 조직이 모두 완성됐다고 해도 성인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거나 불완전해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놓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확장된 대장 벽이 무척 약하다는 점도 상당한 걸림돌이었다.
전적으로 써전의 손에 달렸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무조건 무혈관층부터 찾아야 했다.
조금만 엇나가도 대장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행 결장의 상태는 심각해 미세한 구멍만 뚫려도 아물지 못하고 범발성 복막염을 일으키고도 남았다.
땀이 맺혔다.
단순한 박리임에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혈관이 없는 부분을 찾지 못하면 수술이 어려워지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수술 중 출혈부터 시작해 감염 유발은 물론 최악의 경우 하행 결장 일부를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자칫 아이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었다.
간 이식을 하며 더욱 정교한 손을 갖게 된 김지훈이었다. 독자적인 수술 팀을 꾸리고도 남을 써전인 이혁원이 퍼스트였다.
마침내 찾았다.
아주 살짝 수월해졌을 뿐이었다.
과도한 확장으로 얇아진 하행 결장을 피해 박리하는 과정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절대 손상을 주면 안 된다는 부담이 압박으로 변했다.
“보비! 타이! 수처!”
박리가 거의 다 진행됐다.
하행 결장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 순간까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태어난 후 내내 고통 속에 살아오면서도 우는 것밖에 할 줄 몰랐던 아이를 위해 극히 사소한 실수마저 용납할 수 없었다.
드디어 끝이 보였다.
하행 결장을 모두 박리했다.
결장루만 만들면 된다.
새로운 절개창을 만들었다.
기존 절개 부위에 인공 항문을 만들면 상처 감염 시 복부 전체에 번질 수 있었다. 이 또한 어린아이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고도 남았다.
나이상 자의적인 조절은 불가능하지만, 그나마 항문의 힘을 대신할 근육 층을 통과해 피부 밖으로 조심스럽게 결장을 끄집어냈다.
창백할 정도로 옅은 분홍빛이 감도는 결장 점막을 세심하게 피부와 연결했다.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변 때문에 주변 피부가 짓물러 고통을 주겠지만 이차 수술 전까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수처가 남았다.
이혁원의 손은 끝까지 신중했다.
“타이! 컷!”
생각보다 힘들었던 수술이 끝났다.
피부 밖으로 볼록 튀어나온 점막은 인공 항문을 제대로 만들었다는 증거였다. 한 번의 수술만 더 버티면 아이는 건강해질 것이다.
쉭! 쉭! 쉭!
윤서연의 손길이 바빠졌다.
가벼운 자극을 받은 아이의 작은 손과 발이 움직였다. 기본적으로 건강하다는 의미였고, 늦어진 수술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경과를 보일 것이다.
“아앙! 으아앙!”
힘에 겨운 울음이 터졌다.
무사히 깨어났다.
즉각 회복실로 옮겼다.
통상 소아과는 마취 회복에 관여하지 않건만 뜻밖에도 강은미가 대기하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청진부터 시작했다.
김지훈이 웃었다.
“이혁원 선생, 강은미 선생, 수고해. 다음 수술이 있는데 난 가 봐도 되지?”
“수고하셨습니다.”
휴게실로 들어간 김지훈이 땀을 닦았다.
‘간 이식보다 더 긴장했네. 그나저나 소아과 의사 한 명이 온 것뿐인데 너무 마음이 놓여.’
불현듯 종합 병원의 존재 가치를 생각하게 됐다. 전문 병원도 좋지만 많은 환자에 여러 과의 진료가 필요한 이상 마냥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시간, 장소, 돈까지 모두 문제지만 말이다.
수술 방은 언제나 바빴다.
수술이 끝난 환자를 옮기자마자 다음 환자 준비로 부산했다. 정규 수술이 모두 끝난 후에도 정리 정돈으로 쉴 틈이 없을 것이다.
‘다들 힘들겠다.’
각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만 서로의 짐을 덜어 줄 수 있었다. 김지훈에겐 다음 환자의 수술을 깔끔하게 해내는 것이었다.
곰곰이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덜컥 문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예정된 수술이 없는 진충기 교수와 손일석이 허겁지겁 달려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여간 다급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