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147화 (1,147/1,329)

13화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월요일-김지훈.

화요일-손일석.

수요일-진충기.

목요일-서도진, 혹은 강병옥.

드디어 주당 네 건의 간 이식을 시행하게 됐다. 개원 초를 생각하면 가히 폭발적인 증가였고, 전문 병원의 입지는 그만큼 탄탄해질 것이다.

서도진과 강병옥의 경험이 쌓이고, 펠로우 보강까지 완료되면 애초 목표인 주당 다섯 건의 수술도 저절로 이뤄질 일이었다. 따라서 진충기 교수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했다.

수요일 아침이 밝았다.

초미의 관심사는 역시 진충기 교수의 첫 간 이식 수술이었다. H 병원을 대표했던 써전이었던 만큼 어떤 실력을 보일지 다들 기대 만발이었다.

“진 교수, 우리 병원에 와서 첫 수술이구나. 첫 수술. 떨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해. 중간에 참관해도 되지? 기대된다. 기대돼.”

김지훈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오후 모두 수술이 있어 시간을 내기 어려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진충기 교수의 수술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자.’

첫 수술을 끝낸 김지훈이 환자가 안정적인 상태로 들어서자마자 진충기 교수의 수술실로 향했다. 막 공여자 간을 받아 이식에 들어가고 있었다.

진지하면서도 무심하게!

진충기 교수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던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수술에 빠져들었다. 혈관 수술 중 타박 아닌 타박을 받았던 써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과감했다.

빠르면서도 정확했다.

손길 하나하나에서 간 이식을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H 병원 최고의 써전이라 불린 이유를 여실하게 확인했다.

‘대단하네. 아! 이 부분을 저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도 상당히 유용해 보이네. 배워 둬야겠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참관했다.

송진우가 다음 환자 수술이 준비됐다고 알려 줄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 너무 강렬한 자극에 후끈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김 과장, 참관했니? 참관?”

“예.”

“어떠니? 어때?”

“초빙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울 점도 많고, 환자들도 정말 안심할 겁니다.”

“좋다. 좋아. 복덩이가 굴러 들어왔네. H 병원이 땅을 치고 있겠지? 그치?”

“그렇지 않을까요? 저 같았으면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다른 병원은 생각도 못하게 했을 겁니다. H 병원에겐 정말 큰 손해 아닙니까?”

김지훈이 밝게 웃었다.

송재덕 교수가 자신의 수술실로 들어가는 김지훈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훈아, 고맙다. 내가 널 아끼는 이유가 바로 이거야.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이 안 돼 있으면 말짱 헛일이다다. 헛일.’

얼마 후, 이준영 교수가 나타났다.

“이 교수도 수술 보러 온 거야?”

“예. 원장님은 일 없으세요?”

“지금 하고 있잖아. 지금. 근데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로? 김 과장 수술은 왜 봐?”

“진 교수는 믿을 수 있는 써전입니다. 우리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요. 오늘은 휘플 라파로 가능성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김 과장이 있잖아. 김 과장이.”

“아직은 스스로 더 배워야 합니다.”

“너무 밀어붙이는 거 아니니? 그러다 김 과장 기운 다 빠진다. 조심해라. 조심.”

“그럴 일 없다는 건 원장님이 가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경석 선생에게 거는 기대도 큽니다.”

이경석 소리에 반색하던 송재덕 교수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문밖에서 처량하게 뭐 하니? 뭐 해? 습관이야? 습관? 그냥 들어가서 봐.”

“라파로는 여기서도 잘 보입니다.”

꿈쩍도 하지 않고 수술을 지켜보던 이준영 교수가 눈가를 좁혔다. 간 이식에 모든 땀을 쏟아붓는 와중에도 복강경 수술 실력이 도리어 좋아졌다.

‘간 이식이 췌장과 담도 라파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구나. 잘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았어.’

서도훈과 경쟁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김지훈의 실력은 분명 한두 수 위였다. 사실 누가 먼저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 첫발을 내디뎌야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중요했다.

한동안 김지훈의 수술을 지켜보던 이준영 교수가 이경석을 찾았다.

“이경석 선생, 서도훈 선생 잘 가르쳤으면 한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니면 이경석 선생도 라파로 휘플 경쟁에 가세하든지. 난 충분하다고 본다.”

엉뚱한 답이었지만 어떤 의미인지 모를 수 없었다. 칭찬에 인색하기만 한 이준영 교수의 말에 기분까지 좋아진 이경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말이 오가는지 알지 못한 채 김지훈과 진충기 교수는 자신의 수술에 모든 땀방울을 쏟아부었다. 이미 검증된 써전들이기에 결과가 나쁠 수 없었다.

오후 여덟 시가 지났다.

가장 늦게 수술실에서 나와 중환자실로 향하던 진충기 교수가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첫 수술을 무사히 끝냈고, 앞으로 매주 간 이식을 하게 될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마치 전공의 시절 첫 수술을 했을 때처럼 강한 흥분과 뿌듯함이 온 가슴을 휘저었다. 처음 손을 맞춘 서도진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길 잘했어. 이젠 여기가 내 집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가 반가울 지경이었다.

***

바쁜 나날이 흘렀다.

김지훈의 할 일은 끝이 없었다.

무엇보다 과장의 책임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원활하게 수술을 진행하려면 제반 조건이 받쳐 줘야 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 과장인 김지훈의 의무였다. 곧바로 시작될 펠로우 면접이 더욱 중요해졌다.

외과 펠로우 다섯 선발에 열 명이 넘게 지원했다. 모든 지원자가 무난하게 서류 전형을 통과할 정도로 우수해 면접에 각별히 신경 써야 했다.

‘모찬우와 한수영이 동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야 한다. 절대 공정함을 잃으면 안 된다.’

면접이 시작됐다.

가장 많은 인원인 세 명을 선발해야 하는 간 이식 수혜자 파트는 김지훈과 손일석이 주관했다. 각기 한 명을 뽑는 간암 및 공여자 파트는 신현수가 맡았고, 복강경 부분은 이경석이 담당했다. 사인방이 전문 병원의 핵심임을 보여 주는 단적인 증거였다.

많은 질문이 오갔다.

구두로나마 서류로는 파악할 수 없는 실제 실력을 가늠하는 한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 열정과 자세를 중점적으로 판단했다.

모찬우와 한수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찬우 선생님, 우리 파트에 지원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습니까?”

“평소 간담췌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간 이식은 모든 분야를 포함한다고 알고 있어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였습니다.”

“한수영 선생님, 수혜자 간 이식 수술이 얼마나 걸리는지 이미 알고 계시죠? 혈관 수술까지 새로 배워야 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긴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힘들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충분히 생각하고 지원했습니다.”

“간 이식 파트에 지원했지만 다른 파트도 배워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 간암 수술이나 라파로 부분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점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 보세요.”

“제 목표는 선생님들을 뛰어넘는 써전이 되는 겁니다.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 역시 한수영 선생과 함께 최고의 써전이 되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누군가를 넘어서겠다는 각오만큼 강력한 열정과 동기는 없었다. 일견 당돌한 말이었지만 후배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우리와 함께하게 되면 빠른 시일 내에 목표를 이뤄 주십시오. 발표는 사흘 후고, 근무는 다음 주부터 시작됩니다. 군의관의 경우 전역 후 일주일간 준비 기간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순차적으로 면접이 진행돼 마지막 지원자가 나가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각자의 채점표를 들고 모인 사인방이 축 처졌다.

“생각보다 힘드네. 김 과장, 찬우는 어땠어?”

김지훈과 손일석이 소리 내 웃었다.

“근무 자청할 때 알아보긴 했지만 무서워서 혼났습니다. 우리를 뛰어넘는 게 목표랍니다.”

“그러고도 남을 선생이지. 하여튼 쟁쟁한 후배들이 와서 고맙네.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어.”

탈락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뽑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행복한 고민이었다. 다들 바쁜 관계로 밤늦도록 심사를 진행했다.

선발 윤곽이 잡혔지만 신중해야 했다.

“내일 다시 만나 최종 결정하자. 어휴! 오늘도 늦었네. 이만 퇴근합시다.”

퇴근해 편안히 쉴 법도 한 김지훈이 면접 서류를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일 년이란 기간을 넘어 삼 년의 세월이 신입 펠로우에게 달렸다. 그중 교수가 되는 써전이 있다면 전문 병원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도 했다.

“지훈 씨, 안 자요?”

“경아 씨, 간호사 선발 때 어떤 기준으로 뽑았어요? 다들 놓치기 싫은 사람들이라 결정하기 힘드네요.”

“가장 뽑고 싶은 사람이 누군데요?”

“동문이라 그런지, 첫인상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모찬우 선생과 한수영 선생이네요.”

“그럼 답 나왔네요. 다들 능력이 비슷하다면 그 선생님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선생님을 뽑으면 되죠. 손발이 안 맞는데 뛰어나면 뭐 해요?”

“능력은 비슷하고……. 아! 고마워요. 우리 마님 아니었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겠네요.”

“있을 때 잘하세요.”

삶을 함께할 수 있는 사실!

직장이나 가정이나 다르지 않았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펠로우 선발이 최종 결정됐다.

모찬우, 한수영을 포함한 외과 펠로우 다섯 명, 내과 펠로우 세 명, 방사선과 펠로우 한 명, 마취과 펠로우 두 명까지 모두 열한 명이었다. 여기에 신현수가 긴급하게 요청한 소아과 펠로우 파견까지 하면 무려 열두 명이었다.

전문 병원의 규모를 고려할 때 무리라는 말이 나오고도 남았다. 하지만 상황을 알고 있는 내부 의료진 모두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특히 가장 걱정이 많을 민정호는 오히려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였다.

“재정 상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 우리가 목표했던 수술 건수가 계획대로 달성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번 주말 실적 발표를 할 예정이니 참조해 주십시오.”

“실적 발표를 또 한다고요?”

“목표치에 어느 정도 근접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선천성 질환을 가진 아이들 치료는 일정 부분만 반영하겠습니다.”

“왜 이래요? 이건 횡포나 다름없습니다.”

“우수한 실적을 내시려면 방송 때 신경 바짝 쓰셔야 합니다. 과장님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홍보로 유발되는 무형의 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뭘 신경 쓰라는 겁니까?”

“예전 일을 들으니까 성의가 없으셨더군요. 지금은 자기 PR 시대입니다. 하다못해 옷차림부터 표정까지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말로는 못 당할 민정호였다.

‘얼굴은 과묵한데 입만 열면 청산유수야. 에휴! 할 일도 많은데 일거리만 느네.’

어쨌든 이제 도약하는 일만 남았다.

주당 다섯 건의 간 이식을 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그 전에 신입 펠로우들의 수준을 맞추는 일 역시 과장의 책임이었다.

각오를 다지는 순간!

민정호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 주말에 특별히 할 일 있으십니까?”

“당직은 아닌데 왜요?”

“그럼 치료할 아이 보러 가시죠. 간호 과장님도 관계가 있으니 함께 가시면 더욱 좋고요. 다음 주에 소아과 펠로우 선생님이 파견 오시니까 문제없을 겁니다.”

김지훈이 머리를 톡톡 쳤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민정호보다 환자에게 신경을 덜 썼다니 찜찜했다. 한편으로 점점 한 병원의 행정부원장다워진다는 생각에 즐겁기도 했다.

“왜 웃으십니까?”

“그냥 웃음이 나오네요.”

“병원 업무를 얘기할 때는 보다 진지하게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 치료할 때 보험이 되는 부분은 철저히 적용시키셔야 합니다.”

“무료라면서요?”

“본인 부담금은 안 받아도 청구는 해야죠? 가뜩이나 수가까지 낮은데 왜 우리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돈까지 포기합니까? 일요일 오전 아홉 시에 병원에서 뵙겠습니다. 그럼 이만!”

김지훈이 쩝쩝 입맛만 다셨다.

‘아니, 왜 목소리까지 높여?’

민정호의 미묘한 변화를 무심코 넘긴 김지훈이 습관처럼 메일을 확인했다. 의협, 학회, 병원과 관련된 사람들이 보낸 메일 중 눈에 확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딸깍!

메일을 열었다.

김지훈의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쳤다.

참기 힘든 긴장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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