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면접 위원들이 모였다.
대부분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는 쟁쟁한 의사들이자 한때는 말을 섞기도 어려웠던 선배였다. 마침 이혁민 교수도 위원으로 선정돼 어색한 상황은 면했다.
“김 과장, 학회에서 뵌 분들이니까 잘 알지? 그래도 면접 위원으로서는 처음이니까 인사해라.”
“안녕하십니까? 전문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지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젊은 사람이 와서 좋네. 김 과장이 수련할 때와 다르다는 사실 누구보다 잘 알죠? 사 년 동안 고생 많이 하고 이 자리까지 온 후배들이니까 너무 빡빡하게 심사하지 맙시다. 자자! 곧 시작합니다. 다들 배정된 선생들 성적 확인하고, 면접장으로 갈 준비하세요.”
심사 서류를 받은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맨 앞장에 적힌 올해 응시 총원 및 제반 사항을 확인하는 순간 후배들을 본다는 기대가 답답함으로 변했다.
‘적어도 너무 적네.’
일반외과 전공의 지원이 줄어든 지 오래됐다. 모든 병원의 공통된 현상이었지만 전국적으로 얼마나 심각하게 감소했는지 실감할 기회가 없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김지훈이 수련을 마칠 때는 한 해 백육십 명 가깝게 전문의가 배출됐건만 이젠 불과 팔십 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공의 지원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였다.
간신히 절반 정도 채웠다.
감소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기피 과가 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기에 전국 병원이 배출한 전문의 수를 확인하는 순간 서글프다는 생각만 들었다.
“선생님, 이렇게 줄다니 심각하네요.”
“대책을 세우고 있긴 하다.”
“애초 지원이 없는데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정책을 짜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나? 그래도 일단 일반외과를 비롯해 같은 처지에 빠진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전공의 월급을 대폭 올려 달라고 요구할 생각이다.”
“얼마나요?”
“두 배는 돼야 하지 않겠나?”
과를 막론하고 기본 월급이 적지만 수련 기간인 사 년 내내 두 배를 받는다면 상당한 액수일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특혜라 해도 무방한 정도였다. 그러나 김지훈조차 특혜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다른 과를 지원하는 수련의들도 기피 과 상황을 빤히 아는 이상 월급 문제를 물고 늘어지지는 않겠지. 그게 더 마음이 아프네.’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항의를 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의사 사회 분위기를 볼 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대안이 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원이 늘까요?”
“애초에 힘들기만 하고 돈은 못 버는 과라 기피하는 건데 늘겠나? 하지만 뭐라도 해야 되는 상황이잖아. 전공의 때만이라도 다들 안 하려는 과를 한 보상이라도 해 줘야지. 동남아에서 의사를 수입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실이 될까 봐 두려울 지경이다.”
땜질에 불과했다.
같은 외과 계열인 신경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는 전공의 지원이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률마저 늘어 가는 추세였다.
똑같이 힘든데 이유가 뭘까?
물론 전문의가 된 후 충분한 보상, 즉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이 주요 이유일 것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근본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외과에 중점을 두는 병원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낮은 수가로 인해 돈을 벌어 주지 못하는 과, 열심히 수술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거나 의료사고의 위험만 높아지는 과, 간단한 수술조차 대형 병원을 원하는 환자까지 모든 요인이 복합된 결과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일반외과의 미래가 어둡다는 사실이었다.
바이탈을 다루며 수술을 통해 한 사람의 생명을 지켜 내고자 하는 꿈이 말 그대로 꿈에 불과해진 것이다. 물론 다른 길이 없지는 않았다.
일반외과 전문의가 돼 성형외과를 넘보든 가정의의 역할을 하든 의사로서 살 수는 있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더 풍족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애초 원했던 미래가 아님은 분명했다.
‘남들이 다 기피하는 상황에서 우리 과가 어떤 과인지 알고 들어온 선생들이다.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사명감이나 보람을 찾고자 할 텐데, 사 년 고생해서 다른 분야로 가야 한다면 얼마나 기운이 빠질까? 악순환이네.’
선배의 무능력이 부끄러웠다.
관련 정부 부처를 비롯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인데 모두들 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력감마저 느꼈다.
평생 고민해야 할 숙제였다.
아뻬 하나 할 의사가 없어 원치 않아도 대형 병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 이혁민 교수 말처럼 타국에서 의사를 수입할 수도 있다는 우려만큼은 막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의료계 내부의 제도와 사회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일은 몇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뤄질 일이 아니었다. 반면 소소하나마 후배의 꿈과 미래를 열어 줄 방법이 있었다.
바로 전문 병원이었다.
대장항문 병원이 성공적으로 안착됐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메이저 수술은 못하지만 전문적인 영역을 잘 살린 결과였다.
간담췌 분야라고 다를 수 없었다.
간 이식을 포함한 메이저 부분과 마이너 수술을 담당하는 복강경 파트가 더욱 활성화된다면 수많은 후배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단순히 전문의의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만 보는 자리가 아니다. 후배들과 함께 어떻게 일반외과를 끌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자리다.’
문득 면접 위원으로 선정된 것이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준영 교수는 김지훈에게 보다 큰 시야를 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자! 시작합시다.”
위원장의 목소리가 상념을 깼다.
대기실을 지나 면접실로 향했다.
모찬우가 보였다.
“오셨습니까?”
“면접 잘 봐.”
같은 학교, 혹은 같은 병원 출신은 심사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병원 의사가 면접을 진행하게 됐다. 열정과 의욕이 넘치는 만큼 나쁜 평가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면접이 시작됐다.
삼십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두 명의 위원이 여러 명을 평가해야 했다. 이미 시험을 봤고, 사 년 동안 어떻게 수련을 받았는지 사전 정보를 받아 형식에 불과할 수도 있었지만 김지훈에게는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
일일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우수한 자원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더더욱 관심이 갔다. 그들의 진로가 일반외과의 현실이자 미래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군대를 가야 하는 전공의에겐 성급한 질문이었지만 곧 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진로는 결정했습니까?”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고 있는데 쉽지 않습니다. 근무 여건이 되면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이거나, 제가 원하는 지역에는 그런 병원이 없어 고민입니다.”
“전 제안을 받았지만 혼자 근무해야 하는데 응급실까지 담당해 달라고 해서 개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대다수가 처한 현실이었다.
기존 병원은 일반외과 의사를 늘리지 않았고, 신설 병원은 구색을 맞출 방편이거나 응급실 근무까지 요구해 사실상 신규 자리가 제한된 상황이었다.
수술하며 살기 원한다면 단기라고 해도 보다 전문적인 의료를 배우는 펠로우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일단 월급이 적었다.
넌킴(예비역)인 전공의는 이미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족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군대까지 구 년 가까이 일했어도 모아 놓은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애초 금수저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이도 큰 문제인데 장밋빛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원하는 장래가 보장된다면 경제적인 문제는 감수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펠로우들이 바라는 미래였다.
펠로우는 대학 병원에서 선발한다.
전문 병원도 산하 병원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때문에 궁극적인 목표는 교수가 되는 것이었지만 전임 강사 자리마저 극히 제한적이었다. 실제 신규 교수 선발이 없다면 삼 년을 또 허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후배들이 처한 상황과 고민을 들으며 김지훈도 미처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과에만 무려 다섯 명의 펠로우를 신청했다.
그들 모두 교수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임용되지 못한 채 기한이 지나면 모두 병원을 나가야 했다. 경쟁의 결과라지만 문이 너무 좁다면 각자의 능력과 무관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산 넘어 산이네. 우리 욕심만 부린 걸까? 펠로우를 마친 후배들을 책임져야 하는 일도 우리의 의무 아닐까?’
면접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냥 대견하고 흐뭇하게만 후배들을 볼 수 없었다. 다들 열심히 살아왔고, 전문의가 될 자격이 충분해 더욱 안타까웠다.
“김 과장, 어땠나?”
“단순히 전문의 자격을 심사한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고민이 많아집니다. 후배들이 원하는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면 지원 자체가 더 줄어들겠죠?”
“내도 우리 과 상황이 이렇게 열악해질 줄은 몰랐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 아니겠나? 많이 생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자. 참! 집 멀다고 몰래 빠져나가지 말고 꼭 밥 먹고 가라.”
“알겠습니다.”
김지훈이 매무새를 살폈다.
유쾌한 기분도 아니었고, 선배들과의 자리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예의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소속을 알려 주는 명패를 보며 한 가지 의문을 꼭 풀어야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술 몇 잔이 오고 갔다.
올해 응시한 후배들의 평가와 각 병원의 사정 등이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좋은 면보다 걱정스러운 면이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혁민 교수와 나눈 말이었다.
김지훈이 슬그머니 누군가를 찾았다.
안면이 있는 H 병원 원로 교수였다.
“선생님, 그동안 별일 없으셨습니까?”
“오! 김 과장, 여기 앉아요. 간 이식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힘들지 않아?”
“할 만합니다. 근데 저번 학회 때 진충기 선생님이 안 보이시던데,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그런 자리에 빠질 분이 아니시잖아요.”
원로 교수가 헛기침을 했다.
“개인적인 일입니까?”
“그것보다 전문 병원에 대해 듣고 싶은데, 진 교수 일은 나중에 기회 되면 얘기하지.”
말을 돌리며 화제를 바꿨다.
좋은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어딘가 어색했다.
한때 서로를 적대시하던 관계에서 건강한 라이벌이자 믿을 수 있는 선후배가 된 탓인지 무척 신경이 쓰였다. 더구나 금경태와 비슷한 사람인 최인호 과장과 절연했기에 동병상련 비슷한 감정까지 느끼고 있었다.
‘내가 면접 위원이 될 정도면 진충기 선생님은 말할 것 없이 위원이 됐어야 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은근슬쩍 여러 차례 떠보았지만 원로 교수는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점점 걱정이 커져 진충기 교수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민 부원장님, 혹시 H 병원에 잘 아는 사람 있습니까? 내부 사정 빠삭한 사람으로요.”
(있긴 있는데 왜 그러시죠?)
“친한가요?”
(공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시 민정호였다.
대개 행정을 책임지는 사람들끼리 교류를 하기 마련이었지만 행정부원장을 맡은 지 반년 조금 더 지났다. H 병원 요직을 맡은 사람과 친분이 있다니 대단했다.
“진충기 교수님이라고 H 병원 일반외과 선생님이 계십니다. 곤란한 부탁이긴 한데 근황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병원과 관련된 일입니까? 사적인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셔야 합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개인적인 관심이 제일 크지만 병원과 관련이 없다고도 말하기 힘듭니다.”
(어떤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직은 나도 애매모호한 상황입니다. 뒤를 캐 달라는 것이 아니라, 병원 내 위치나 입지 정도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면접은 잘 진행하셨습니까?)
‘이런 걸 다 물어보고 웬일이야?’
“무사히 끝났습니다. 신경 써 줘서 감사합니다.”
(펠로우 선발과 관계가 있는 일인데 당연히 신경 써야죠. 그중에 지원자가 있지 않겠습니까? 후보가 될 선생님들을 눈여겨보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왕이면 우리가 제시하는 월급에 만족하시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월급 적게 줘서 좋을 일 없습니다.”
(월급 적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돈 벌자고 펠로우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나쁜 일도 없겠죠. 그 선생님들이 진짜 원하는 부분은 과장님께서 채워 주셔야 할 일이지, 제 몫이 아닙니다.)
김지훈이 웃고 말았다.
민정호는 단순히 의사 보충이 아니라 펠로우를 왜 하려 하는지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월급과 벌어 주는 돈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해도 철두철미한 사람임은 분명했다.
‘역시 우리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
“에휴! 알겠습니다. 가급적 빨리 부탁드립니다.”
(다음 주 내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많은 생각이 스쳤다.
일 년 후에 교수 임용이 결정될 이혁원과 나종진만 발등의 불이 아니었다. 앞으로 함께할 모든 펠로우의 장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수 수급에 결정적인 문제는 재정이다. 돈이 받쳐 주지 못하면 선발을 하라고 해도 못한다.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야 돼. 자칫 진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생각만으로도 섬뜩한 일이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무의미했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것이 또한 김지훈에게 주어진 의무였다.
진충기 교수 근황도 자못 궁금했다.
엉뚱한 생각이 날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