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김지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과장님, 금요일에 수술하기로 한 췌장암 환자 예약 취소됐어요.”
“왜요?”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집 근처 병원에 입원했는데 희망이 없는 모양이에요. 하루라도 빨리 수술했으면 단 몇 달이라도 더 사실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네요.”
김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도 전국 도처에서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지만 집도를 약속한 의사로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괴로웠다.
충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자신을 믿고 수술을 기다려 온 환자의 얼굴조차 희미하다는 사실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언제 어디서 환자를 놓칠지 모른다는 생각만 들었다.
김지훈이 얼굴을 감싼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태용 환자였다.
지금은 고요해 보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대장 구석구석에 심어져 있다. 일단 터지면 날로 악화될 간 기능과 맞물려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가장 위태로운 환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적절한 때를 놓쳐 또 한 명의 환자를 헛되이 보낼 수 없었다.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췌장암 환자도 기꺼이 자신이 잡지 못한 시간을 다른 환자에게 양보할 것이다.
김지훈이 전화기를 들었다.
“신현수 선생, 금요일에 공여자 수술 할 수 있나? 안호석 선생도 좋아.”
(잠깐 일정부터 확인하자. 나는 힘들고, 안호석 선생이 가능해. 믿고 맡겨도 돼.)
“오케이!”
이혁원과 송진우를 찾았다.
“금요일에 최태용 환자 수술하자. 내과하고 마취과에 연락하고, 차질 없이 준비해.”
“금요일에요? 그날 수술이 있지 않습니까?”
“취소됐어.”
당장은 마음이 아프고, 죄를 진 것 같아 차마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 진정되면 반드시 이유를 알려 함께 고민해야 할 일임은 분명했다.
“환자와 보호자에겐 말씀하셨습니까?”
“아차!”
평소 허둥거리는 정말 보기 힘든 모습에 이혁원과 송진우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바삐 서두르는 김지훈을 보며 의문을 접었다.
환자와 보호자를 만났다.
가족들 모두 크게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반면, 환자와 간을 공여하기로 한 가족은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보였다.
수술 전까지 차근차근 해결할 일이었다.
사흘 남았다.
준비 팀 전체가 모여 최종 점검을 하고, 보호자와 환자에게 수술과 마취의 위험성에 대해 철저하게 설명한 후 동의서를 받았다.
최태우 의원이 김지훈을 찾았다.
“우리로서는 정말 다행이지만 갑자기 수술을 결정한 이유가 있습니까? 혹시 상태가 나빠진 겁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지금이 적기이고,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의료진의 판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눈매가 매서워졌다.
환자에게만 집중한다고 했던 말을 의심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입원하는 일조차 의사보다 행정 직원에게 부탁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설마 날 상대로 다른 생각을 한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민 부원장에게 수차례 연락한 덕인가? 태용이에겐 이보다 좋은 일이 없지만 원칙을 강조하던 의사가 갑자기 수술 차례를 바꾸다니 착잡하네.’
생각일 뿐이었다.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지금은 약자였다.
모든 이들이 권하는 국립 병원을 놔두고 간 이식 전문 병원이라는 사실만 믿고 동생을 맡겼기에 결정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최태우 의원이 빠르게 표정을 바꿨다.
“과장님만 믿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떤 의도를 가졌든 의사는 제 할 일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혹여 청탁을 하면 적당히 핑계를 대며 거절하고,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해도 수술 잘 받아 건강해지는 순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빠르게 사흘이 지났다.
최태용 환자가 궤양성 대장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한결 좋아진 몸과 달리 심리적 불안이 도리어 심해져 김지훈도 바짝 신경 써야 했다.
“간으로 인한 증세가 거의 없고, 불편한 점이 없어서 더 불안하실 겁니다. 하지만 사전에 말씀드린 대로 담관암이 발생하거나 간 부전에 빠지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수술을 받아야 사실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수술 당일 아침이 밝았다.
원래 대가족인지, 형이 국회의원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최태우 의원은 정작 중요한 날에 보이지 않았다. 문득 전공의 시절 정부 고위 관료를 담당했던 때가 기억이 났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겐 당연한 일인가? 그때도 넓은 병실이 화분으로 가득했었지.’
아마도 이런저런 사람들이 뒤섞였을 것이다.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의사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사실 최태우 의원의 지인이나 측근이라고 귀찮게 하는 사람 자체가 없긴 했다.
“과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여자 수술이 먼저 시작됐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수혜자 수술이 시작됐다.
순조로웠다.
다만 제거한 간 속에 암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경화성 담관염이란 말처럼 굳은 부분은 담도 벽 자체가 두꺼워진 상태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암과의 구분이 불가능했다.
“송진우 선생, 조직 검사 확실하게 챙겨.”
공여자의 간은 건강했다.
수혜자의 혈관도 단단했다.
증상이 발현되기 전에 수술한 덕이었다.
정맥, 문맥, 동맥, 담도가 차례로 이어졌다. 혈관 겸자를 푸는 순간 검붉었던 간의 색이 밝아지고, 팽팽하게 늘어나며 힘차게 피가 도는 건강한 혈관에 결과가 좋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수처! 타이! 컷!”
수술 팀의 집중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랜 기간 함께한 이혁원과 송진우는 날이 갈수록 간 질환과 간 이식 수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실력은 그 이상으로 늘고 있었다.
“컷!”
마침내 열 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났다.
드르르륵!
김지훈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여느 때처럼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나자 하루 종일 쌓인 피로가 밀려왔다. 가끔은 곧바로 퇴근하고 싶었지만 오늘 할 일을 미루면 내일은 두 배로 힘들기 마련이었다. 피와 물로 축축하게 젖은 수술복을 가운으로 가리고 보호자를 만났다.
최태우 의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우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은 절대 안정이 필요하고, 집중 치료를 요하기 때문에 불가합니다. 내일 아침에나 면회가 가능합니다.”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
열 시간 넘게 수술한 의사의 피로를 본 최태우 의원이 먼저 자리를 끝냈다. 김지훈에겐 고마운 일이었지만 하필 월요일에 수술한 환자 보호자를 만났다.
의사에겐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보호자에겐 하루 한두 번의 짧은 시간이 주어질 뿐이었다. 김지훈이 성심성의껏 대화를 나누며 한참 만에야 자리에서 벗어났다.
애정을 가진 보호자들이 으레 그렇듯,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중환자실 앞을 떠나지 못하던 최태우 의원이 살짝 놀랐다.
김지훈이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간 것이다.
‘밑에 의사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이쯤이면 퇴근해도 되지 않나?’
격무라 생각했던 모습조차 피상적이었다.
바로 나올 줄 알았건만 결국 김지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최태우 의원의 놀람은 끝이 아니었다. 간혹 설명을 듣기 위해 들렀던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김지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역 현안처럼 급한 일이 있거나 선거철이 아니면 국회의원도 일요일에는 쉬는 마당이었다. 그런데 과장이라는 사람이 주말에도 수시로 얼굴을 비쳤다. 심지어 자신이 수술하지 않은 공여자까지 신경 썼다.
면담하는 태도도 남달랐다.
짜증스러운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같은 질문이 반복돼도 성의를 갖고 대답했다. 면회 시간이 겹쳤을 때는 중환자실에서 대기한 채 조용히 간호사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최태용 환자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모든 환자에게 똑같은 태도와 자세로 치료에 임하고 있었다. 혹시 자신의 존재 때문일지도 몰라 은근슬쩍 간호사들에게 물어본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과장님은 쉬시지도 않습니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쉬시는 것 같아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에도 나오세요.”
“가족들이 뭐라고 안 그래요?”
“사모님이 우리 병원 간호 과장님이세요. 그래서 더 잘 이해하시지만 딸 때문에 많이 속상해하시는 것 같아요.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거든요.”
최태우 의원의 눈길이 김지훈에게 머물렀다.
생각해 보니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난 적이 없었다. 항상 늦은 시간이었고, 방금 전까지 환자와 부대낀 얼굴이었다. 다른 의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과장이라는 사실이 무척 인상 깊을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 과장과 가족들 모두 힘들겠네. 그 덕에 우리가 아플 때 믿고 찾을 수 있겠지?’
단순히 돈 많이 버는 직업이란 시각은 너무 좁은 사고였다. 의대부터 시작해 전문의까지 십일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만 하는 직업이었다. 남자의 경우 군대까지 하면 꼬박 십오 년이었다.
이후에는 편할까?
다양한 방식으로 의료를 수행하겠지만 김지훈과 전문 병원 의료진을 보면 결코 편하지 않았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라 해서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일말의 편견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월요일 저녁, 업무를 마치고 꽤 늦은 시간에 병원을 찾은 최태우 의원이 마지막 일격을 받았다. 무려 아홉 시가 넘어서야 또 하나의 간 이식 수술을 마치고 나온 김지훈을 본 것이다.
그럼에도 웃는 얼굴로 면담에 응했다.
‘일주일에 세 건이라고 했나?’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제가 택한 길인데 어쩌겠습니까?”
“편하게 일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일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일반외과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과고, 전 일반외과를 택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지고 보람된 직업은 없습니다. 의료진의 노력으로 죽어 가던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보면 의원님 생각도 달라지실 겁니다.”
자부심이 뚝뚝 묻어났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곳이라는 정치판에 몸담고 있는 자신은 과연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새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엉뚱한 사람이 초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네.’
환자가 좋아지지 않으면 초심이고 뭐고 의미는 있을지언정 다 쓸데없는 소리였다. 김지훈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즐거운 소식을 전했다.
“일차 조직 검사 결과이긴 하지만 담관암 세포는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초급성 거부반응은 안심하셔도 되고, 급성 거부반응만 없으면 큰 문제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저보다 더 소중한 동생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최태우 의원은 의외로 소탈한 사람이었고, 보기 드물게 깨끗한 정치인일지도 몰랐다. 병실에 놓인 몇 개 안 되는 화분과 찾아오는 사람의 면면을 보고 판단한 결과지만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라 여겼다.
‘현수 말처럼 정말 국회의원다운 사람인 것 같다.’
결국은 평범한 사람인 국회의원이 의사를 보는 시각과 원래 평범한 사람인 의사가 국회의원을 보는 시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한 사람의 잘못이 집단에 먹칠을 하기도 하지만, 단 한 사람으로 인해 편견을 동반한 불편한 인식이 변할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의료진을 확충하고, 수술 팀을 늘린 영향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잠시 붐비다 한가해지길 반복했던 전문 병원이 이젠 확실히 바빠졌다.
매일 벌어지는 수많은 수술, 특히 마이너보다 메이저 수술 비중이 훨씬 커 한눈을 팔기 쉽지 않았다. 몸은 힘들지만 의료진 전체가 한 명 한 명 전문가가 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김지훈은 큰 짐 하나를 덜었다.
마침내 논문을 완성해 국제 학회에 심사를 요청했다. 많은 의사들이 먼저 밟은 길이지만 간 이식 분야는 처음이었다. 수록 결정이 나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다.
‘한두 달 이상 걸린단 말이지? 벌써부터 초조할 이유가 없는데 꽤 떨리네.’
국내 논문 심사와는 확실히 달랐다.
논문 하나로 일이 줄어들 상황이 아니었다.
모찬우가 떡하니 나타났다.
“과장님, 근무 시작하겠습니다.”
전문의 시험이 진행돼 이미 필기시험과 채점까지 끝났고, 면접 일자가 목전에 닥쳤다는 의미였다. 같은 학교나 병원 출신은 면접 대상이 아닌 까닭에 직접 평가를 하지 않겠지만 처음인 탓인지 은근히 떨렸다.
해가 뜨고 달이 졌다.
어느새 면접 날이 다가왔다.
최태용 환자 병실에 들렀던 김지훈이 며칠 만에 병문안을 온 최태우를 보았다. 앞으로 국회의원을 만날 일이 없는 이상 퇴원하기 전에 꼭 할 말이 있었다.
“의원님,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그러시죠.”
김지훈에게 상당한 호의를 가진 최태우 의원이 흔쾌히 단둘만의 자리를 승낙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긴한 부탁이 있다고요?”
때 아닌 커피까지 대접했다.
청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