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130화 (1,130/1,329)

16화

보호자를 만났다.

총기 사고라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인지 군 장교 인원도 늘어났다. 일부 장교들이 자신들에게 먼저 환자 상태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김지훈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민간 병원에 온 이상 군의 사고 처리 원칙이나 지휘 계통의 문제는 두 번째였다. 설혹 외압이 가해지더라도 환자와 보호자를 무조건 먼저 생각하고 보호해야 했다.

“부모님 되십니까?”

“우리 아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손상 장기와 수술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하부 위, 우측 신장, 담낭, 담도와 췌장 일부를 절제했다는 소리에 부모 모두 주저앉았다.

생떼 같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자나 깨나 무사하기를 바라며 노심초사했을 부모였다.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도 후들후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결코 희망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 일 없을 거야. 우리 아들은 괜찮을 거야.’

충격이 너무 큰지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우리 아들은 살아 있나요?”

“호흡은 있습니다만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켜봐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사망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정말 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의사는 객관적인 사실을 전할 의무가 있었다. 제대로 듣고 이해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향후 발생할 합병증 등 온갖 위험까지 모두 설명해야 했다.

부모는 말이 없었다.

오로지 자식의 얼굴을 보기만을 바랐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평소에도 얼굴 보기 힘든 아들이었다. 군대의 특성을 고려해 군의관까지 면회를 허락했다.

결국 눈물이 터졌다.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까지 소리 내 울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대부분의 부모에게 자식은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애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은 서러운 울음은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뿐, 반드시 살리겠다는 말을 못하는 우리를 용서하십시오.’

가슴 아파도 원할 때까지 면회를 허락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모 마음은 알지만 오히려 환자 치료에 방해만 될 뿐이라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

군의관만 남았다.

영관급 장교들까지 온 상황인 데다 병사들의 건강과 치료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 장교기에 추가로 필요한 정보가 있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한수영입니다.”

대위라는 계급을 붙이지 않았다.

“김지훈입니다. 궁금한 점이 더 있으십니까?”

조목조목 묻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전공의 수련 때의 기억에 의존한 질문이 아니었다. 언뜻언뜻 최신 경향에 대한 지식까지 엿보여 김지훈도 내심 감탄했다.

‘군대 갔을 때가 의사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정도로 놀 시간이 많다고 하는데, 이 선생은 다르네.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한 티가 역력해.’

“설명 충분히 들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김 일병 변동 상황만 제때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장님, 가끔 뵀는데 혹시 저 모르시겠습니까?”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혁원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모찬우는 아예 한수영 대위의 어깨를 치며 눈인사까지 나누었다.

“과장님, 학교 후배예요. 천안 병원에서 우리 과 수련 받았고, 곧 제대 예정입니다. 기억 못하셔도 학회에서 보셨을 겁니다. 한수영 선생, 맞지?”

“예. 학회 때 다른 선생들하고 함께 인사드린 적이 있습니다. 군복 입고 갔으면 눈에 띄었을 텐데, 사복 입고 가서 알아보지 못하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 그렇구나. 미안해. 어쩐지 총기 사고인데 응급처치를 상당히 잘해 놨다 싶었어. 덕분에 수술까지 할 수 있었네. 고맙다.”

“아닙니다.”

김지훈이 웃었다.

환자를 앞에 두고 웃을 상황이 아니었지만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환자일수록 초기 처치가 무척 중요했다. 만일 한수영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면 사망한 채 도착했을 것이다. 일반 단위 부대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써전이 분명했다.

멋있는 후배를 만났다.

특히 지원자가 적은 일반외과를 전공한 후배기에 더욱 반가웠지만 즐거운 인사를 나눌 자리가 아니었다. 이혁원도 비슷한 마음인지 눈가를 찌푸렸다.

헛짚었다.

한수영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한수영 선생, 총기 사고 환자를 민간 병원으로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혹시 독단으로 이송을 결정한 거 아니야? 위에서 뭐라고 안 그래?”

“솔직히 지휘 계통 책임 문제가 너무 커서 시비가 걸릴 것 같긴 합니다. 여럿 옷 벗을지도 모르는데 저도 영향을 받긴 하겠죠. 하지만 군의관이 징계를 받아야 얼마나 받겠습니까?”

“말년에 고생할 수도 있겠다.”

“김 일병이 사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겠습니까? 군의관의 책임이자 의무이기도 하고요. 선생님들을 믿습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의 아들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징계라니, 무슨 말이야?”

“군대 내 문제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찬우 통해 선생님이 계신 병원을 알고 있어서 고민하지 않고 이송한 덕을 단단히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나가 보겠습니다.”

한수영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김지훈이 모찬우를 보았다.

“내가 있는 병원을 알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워낙 친했던 학교 동기입니다. 사실 수영이하고 저하고 펠로우를 뽑으면 같이 지원하자고 했습니다. 복무 중에도 허가가 떨어지면 학회에 참석할 정도로 열의가 있고, 실력도 정말 뛰어납니다.”

끌어 줘야 하는 선배보다 경쟁할 수밖에 없는 동기에게 인정받는 일이 훨씬 어려운 법이었다. 더구나 펠로우를 뽑는다는 공고조차 안 나간 상태였고, 복수로 선발한다는 보장도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둘 다 멋있네.’

인연이 인연을 만들고 있었다.

한수영은 징계를 우려하면서도, 책임 소재를 우려해 통합 병원으로 갈 수 있었음에도 오직 젊은 군인의 목숨만 생각했다. 바이탈을 다루는 일반외과 전문의로서 손색이 없었다. 단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모찬우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후우! 이제 시작한 병원을 두고 배우고자 하는 후배들이 이렇게 많은데.’

펠로우 선발을 이준영 교수에게만 맡기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올랐지만 당장 고민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내일을 위해 한 시간이라도 자야 했다.

세 명의 써전이 이경석과 당직 팀을 믿고 아주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 창밖의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잘해야 한 시간 남짓 눈 붙였다.

천근만근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젊은 병사의 상태가 걱정돼 중환자실로 향했다. 바이탈은 수술 직후와 별반 다르지 않아 여전히 불안했고, 의식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육신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막고, 수술 후 합병증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가장 팔팔한 전공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킵이 불가피했다.

찌이익! 찌이익!

기도에 삽입된 관을 통해 폐와 기관지를 막고 있는 분비물을 제거했다. 무척 고통스러운 처치였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혼수상태였다.

“이혁원 선생,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주의해서 뇌 CT 찍자. 드레인은 어때?”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살 수 있겠지?”

환자 상태가 아무리 위험해도 희망만 볼 뿐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김지훈이었다. 살상을 목적으로 한 개인 화기의 무서움을 처음으로 실감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혁원도 다르지 않았다.

답답한 한숨만 터졌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중환자실을 나온 김지훈이 보호자를 찾았다.

눈물만 보았다.

설명하는 내내 아들이 누워 있는 쪽만 바라보던 아버지가 이를 악물며 김지훈의 손을 잡았다.

“선생님, 우리 아들 포기하지만 말아 주십시오. 누구보다 건강했고, 의지가 강한 아이입니다. 쉽게 물러날 녀석이 아닙니다. 반드시 눈을 뜰 겁니다.”

순간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살아 숨 쉬는 그날까지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 없다지만 결코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다.

‘의사인 내가, 집도까지 한 내가 환자의 삶을 의심하다니,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내가 의심하고, 불안해하면 환자는 더 나빠진다.’

김지훈이 고개를 숙였다.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장이 뜨거워졌다.

대장이 찢어지고, 십이지장이 파열되고, 콩팥까지 잃은 것도 모자라 췌장과 담도까지 잘린 환자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

그것이 희망이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며 스스로 확신을 가졌다. 젊은 병사와 부모의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이 자신을 포함한 의료진임을 깊게 각인시켰다.

군 일행이 다가왔다.

영관급 장교가 보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위중한 것은 알지만 통합 병원으로 이송했으면 합니다. 동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당장 이송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응급 상황에서는 불가피했지만 환자가 군인인 이상 통합 병원에서 치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절대 안 될 말이었다.

더구나 통합 병원 시설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도 환자를 치료할 일반외과 전문의는 태부족일 가능성이 높았다. 설령 있다 해도 의무 복무를 하는 군의관이 다수일 테고, 따라서 전문 병원 의료진보다 경험이 많을 수 없었다.

자칫 사지로 보내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인공호흡기조차 떼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송 중 사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경험이 풍부한 의사가 아니면 치료하기 힘듭니다. 보낼 수 없습니다.”

“환자는 군인입니다. 복무 중 부상을 입은 이상 이 문제는 통합 병원과 우리가 결정할 일입니다.”

“군인이 아니라 생사를 오가는 환자입니다. 부모님 동의는 받으신 겁니까?”

“우리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으실 겁니다. 민간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치료비 상당 부분을 자비로 부담해야 하고, 군 입장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속내를 알 길이 없었지만 환자가 아닌 군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환자가 사망할 경우 지휘관들의 책임을 덜려는지도 몰랐다.

한수영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맨 뒤에 서서 얼굴만 잔뜩 찌푸린 채 김지훈을 보지도 못했다. 일부 장교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송 문제를 두고 상급자들과 충돌한 것이 분명했다.

자칫 큰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수영의 소견을 물을 수 없었다. 사실 한낱 군의관이 전권을 갖고 있을 리 만무했다.

집도의로서 반드시 막아야 했다.

“안 됩니다.”

“군 상부의 결정입니다. 따르십시오.”

“절대 안 됩니다.”

“선생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김지훈의 얼굴이 붉어졌다.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내게 책임을 묻겠다고? 군인이나 공무원이나 다를 게 없겠지? 당신은 물론 상부까지 책임을 져야 할 거야.’

“환자의 목숨을 두고 도박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정 이송하겠다면 이송 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사실을 문서로 작성해 주십시오. 통합 병원에서 치료를 담당한 군의관 역시 이송을 동의한다는 문서를 작성해 내게 보내 줘야 합니다. 공식 문서여야 합니다.”

“우리가 책임지겠다는데 무슨 문서가 필요합니까?”

“제가 수술했습니다. 향후 발생할 합병증은 물론 이송에 동의하는 순간 이송 도중에 생기는 문제까지 모두 내 책임입니다. 환자를 치료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책임만 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식 공문으로 요청하세요.”

구두 약속은 기억 운운하며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만 공문에 직인을 찍은 사람은 빼도 박도 못한다. 전시도 아닌데 휘하에 있던 군인의 목숨보다 군이 더 중요하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마땅했다.

영관급 장교가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펴지 못했다. 몹시 초조해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사건 수습에만 매달렸다. 모든 군인이 똑같지 않겠지만 최소한의 도의도 보이지 않았다.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김지훈이 냉정하게 돌아섰다.

“수술이 있어서 이만 가 봐야 합니다. 환자 이송은 공문이 도착하는 대로 동의해 드리겠습니다.”

수술 방에 도착한 김지훈이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직업 군인이 아닌 징집병이었다. 한 발 양보해 스스로 해병에 지원했다고 해도, 도리어 그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대해야 할 대한민국의 자식이었다.

‘나쁜 놈들!’

누구도 압력만 가할 뿐 공문으로 요청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직접적으로 책임져야 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전의가 불타올랐다.

반드시 젊은 병사를 살리겠다는 각오만 남았다.

비리니 뭐니 거창한 문제는 몰라도 의문사, 복무 중 부상을 입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군인이 발생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었다.

김지훈도 마땅히 거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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