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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129화 (1,129/1,329)

15화

신장 동맥 주행 방향을 따라 전진했다.

온통 벌겋게 물든 조직 사이로 피가 심장박동에 맞춘 것처럼 뭉클뭉클 새어 나왔다. 드디어 완전히 잘린 신장 동맥에 접근한 것이다.

신중해야 했다.

마구잡이로 헤치다가는 바로 앞에 있는 혈관도 놓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환자의 심장 소리는 점점 급박해졌고, 남은 시간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띠띠띠띠띠띠띠!

언제 멈출지 몰랐다.

오직 집도의의 손끝에 환자의 목숨이 달렸다. 아니, 급한 불만 끌 뿐이었고, 지금 당장 혈관을 잡지 못하면 다음은 없었다.

“켈리! 수처! 타이! 컷!”

시야를 방해하는 모든 조직을 묶었다.

돌연 뭉클뭉클 새어 나오던 피가 약해졌다.

띠띠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띠띠!

급격하게 혈압이 떨어지며 환자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팔다리로 보내던 혈액을 차단하고 주요 장기로만 혈액을 보내던 육체가 한계에 몰리고 있었다.

마취과가 다급하게 외쳤다.

“서둘러 주세요.”

마지막이 임박했다.

머리가 텅 비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안 돼! 조금만 더 버텨!’

지금까지 확인하지 못했던 부위에 켈리를 밀어 넣고 강하게 벌렸다. 순간 하얀빛이 감도는 조직이 보였다. 동맥인지, 유사하게 보이는 구조물인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따르륵!

그대로 조직을 잡았다.

빠르게 당겨 다시 한 번 잡았다.

“셀라인! 석션! 거즈!”

피를 닦았다.

잘린 단면은 분명 동맥이었다.

굵기와 위치로 보아 신장 동맥으로 판단됐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직 사이로 새어 나오던 피가 현저하게 줄었다. 신장 동맥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할 때도 아니었다.

“타이! 컷!”

굵은 동맥을 묶은 김지훈이 곧바로 손상받은 대장과 십이지장 주변의 출혈을 잡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양이 적다고 해도 혈압이 뚝 떨어진 환자에게 상당한 부담을 가할 양이었다.

띠띠띠띠띠띠띠!

급박한 심장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환자가 버티고 있는 한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 의사의 절대적인 책무였다. 젊은 군인의 강인한 육신을 믿어야 했다.

눈에 보이는 출혈을 모두 잡았다.

김지훈이 마취과를 보았다.

수액과 혈액이 대량으로 투여되고 있었다. 급격하게 깨진 전해질과 혈액 산도 균형을 맞추기 위한 약물도 수시로 투여했다.

“어떻습니까?”

“간신히 90에서 잡힙니다만, 언제 또 떨어질지 모릅니다. 얼마나 더 걸릴까요?”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신장을 제거하고, 대장을 잘라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정도로 큰 손상을 입었다. 관건은 소화액의 유출 통로인 십이지장 처리였다.

십이지장만 제거할 방법은 없었다.

‘휘플을 버틸까?’

잘 준비된 환자에게도 부담이 상당한 수술이었다.

출혈을 잡은 이상 환자의 체력을 믿고 당장 제거하거나, 아니면 신장과 대장만 해결한 후 상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린 후 이차 수술을 하는 방법이 있었다.

두 방법 모두 환자를 잃을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수술 중이든 후에든 결국 환자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게다가 단 일 초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혈액 공급이 끊긴 신장이 지금 이 시간에도 썩어 가고 있을 것이다.

김지훈이 곧바로 신장 제거에 들어갔다.

“예측할 수 없습니다. 신장부터 제거합니다. 바이탈 부탁드립니다.”

마취과에 막대한 부담을 안겼다.

신장에 접근하며 고민을 이어 갔다.

두 눈에 빤히 보이는 장기 손상이 무시무시했다. 그나마 출혈을 잡은 덕에 환자의 바이탈이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되고 있었다.

절대적으로 고려해야 할 판단의 근거였다.

그 순간에도 김지훈의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수처! 타이! 컷! 모스키토!”

신장 정맥과 요관을 잡았다.

엉망이 된 신장이 제거됐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추가 출혈이 없다면 낮은 수준이라도 바이탈은 유지될 것이다. 십이지장 손상이 너무 심해 이 상태로 배를 닫고 기다리면 소화액 유출과 감염을 막을 수 없다. 이차 수술이 훨씬 더 위험하다.’

결정을 내렸다.

‘휘플 시행하자.’

이미 손은 본능처럼 대장을 잡고 있었다.

천만다행 부분 절제로 해결할 수 있었다.

김지훈이 대장 내부를 깨끗이 소독하고 장 겸자로 절제해야 할 부분을 잡으며 물었다.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결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혁원 선생, 십이지장 파열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까?”

“손상이 너무 심해 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관을 박아 임시로 소화액을 외부로 배출시킨다고 해도 이차 수술 때까지 절대로 버티지 못합니다. 휘플을 해야 합니다.”

“환자가 견딜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휘플을 하지 않으면 환자를 살릴 길이 아예 없지 않습니까?”

정확한 판단이었다.

테이블 데스를 감수하고서라도 파열된 십이지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면 회복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 자리에서 사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환자가 지금까지 숨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수처! 타이! 컷!”

어느새 대장과 대장을 연결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이혁원과 모찬우가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휘플이라는 큰 수술이 남아 있고, 가타부타 말이 없었지만 김지훈은 평소의 안색을 되찾고 있었다.

‘휘플은 살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만, 이차 수술은 테이블 데스가 두려워 당장의 위기를 회피하고자 하는 생각일 뿐이다. 책임 여부는 나중에 생각하자. 수술 팀의 판단이다. 지금은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확신이 선 덕이었다.

“마취과, 바로 휘플 들어갑니다. 반드시 바이탈 유지시켜 주세요.”

마취과가 흠칫 놀라며 말을 잃었다.

신장과 대장 부분 절제는 견뎠지만, 단 몇 분 후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환자에게 휘플을 하다니 테이블 데스를 향해 달려가는 꼴이었다. 환자 사망 시 책임 소재가 오로지 수술 팀에게 있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김지훈이 집도의였다.

이혁원과 모찬우가 한 팀이었다.

최선의 선택이 분명했다.

수술 내내 환자의 바이탈을 유지시켜 무사히 끝마치게 하는 것 또한 마취과의 의무와 책임이었다. 무엇보다 환자를 살리고 싶었다.

마취과의 눈빛이 변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찬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짧은 경험이지만 수술 중 사망은 상당한 후폭풍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보호자에게 멱살을 잡히는 것은 물론 수년간 법정을 오가야 할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환자를 살려 나가는 것이 책임을 모면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잘 준비한 환자도 사망할 수 있는 휘플을 바이탈이 흔들리는 환자에게 시행하다니 일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극히 짧은 시간 생각에 잠겼다.

모찬우의 눈빛이 단단해졌다.

김지훈과 이혁원은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오직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하에 집도의로서 결정했고, 퍼스트로서 의견을 개진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집도의가 가져야 할 판단력, 과감함, 확신을 배워야 한다. 난 최고란 소리를 듣는 써전의 손을 정말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근무를 자청한 이유가 간 이식과 복강경 수술을 배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켈리!”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너덜너덜해진 십이지장을 잡는 두 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번쩍이는 두 눈에는 침착함과 냉철함만이 실려 있었다.

십이지장은 이미 충분히 박리된 상태였다.

위 하부부터 자르고 막았다.

담낭을 제거하고 담도를 잘랐다.

가장 위험한 장기인 췌장을 삼분의 일가량 잘랐다. 모스키토로 잘게 잘라 가는 과정, 약한 조직을 묶는 수처와 타이까지 김지훈과 이혁원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 주었다.

“췌장 단면 처리는 이 정도로 되겠지?”

“예. 문제없어 보입니다.”

“마취과, 소장과 연결 들어갑니다. 환자 상태 어떻습니까? 소변은 나옵니까?”

“걱정하지 말고 진행하십시오.”

띠띠띠띠! 띠띠띠띠!

여전히 빠른 박동 소리가 들렸지만 환자의 육신은 기나긴 수술 시간과 마취를 버티고 있었다. 강인한 체력과 의지의 소유자가 분명했다.

위, 담도, 췌장과 소장이 차례로 이어졌다.

모찬우가 눈 한번 깜빡이지 못했다.

그동안 여러 수술을 보았고, 단 한 바늘이라도 빠르게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김지훈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아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위와 소장을 연결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끝났다. 점막과 점막을 반드시 이어 주어야 한다는 원칙은 확인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담도와 소장 연결도 다르지 않았다. 이질적인 두 개의 장기를 잇는 과정은 확실히 다르고 어렵기 마련인데, 소장과 위를 연결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면 췌장과 소장을 연결할 때는 정말 신중했다. 한 바늘 한 바늘 꼼꼼하게 진행시켰고,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소화액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빨랐다.

“셀라인!”

김지훈이 복강 내를 씻기 시작했다.

드디어 모든 손상이 해결됐다.

문제가 될 소지는 보이지 않았다.

재수술을 대비하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복벽은 원 레이어(One Layer)로 모든 구조를 한꺼번에 묶어 봉합했다. 응급 수술 중 상태가 중한 환자에게 흔히 쓰는 방법이었다.

“컷!”

마침내 수술이 끝났다.

열 시간이 넘게 걸렸다.

당직도 아닌데 거의 밤을 새워 수술했다. 피곤이 누적돼 한시라도 빨리 쉬고 싶을 텐데 이혁원은 물론 김지훈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후우욱! 후우욱!

나약하지만 규칙적인 호흡 소리가 들렸다.

역겨운 호흡 마취제 냄새가 진하게 퍼졌다.

원활한 자발 호흡의 징후였다.

띠띠띠! 띠띠띠!

심장박동이 한결 안정됐다.

수축기 혈압이 100 근처를 가리키고 있었다.

똑! 똑! 똑!

소변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마취과 역시 최선을 다해 끝까지 바이탈을 유지시킨 것이다. 열 시간이 넘는 수술을 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뒷받침이었다.

하지만 환자가 눈을 뜨지 못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수술실 문이 열렸다.

이경석이었다.

“김 과장, 고생했어. 미안하다. 마취과하고 수술 방 간호사 팀도 고생했습니다. 환자 어때?”

“의식이 안 돌아오네요.”

“엽총도 위험한데 소총이야. 한두 군데 손상받은 것도 아니고 열 시간 넘는 수술에도 숨을 쉬잖아. 그것만으로도 기적이나 다름없어.”

중간중간 다녀간 모양이었다.

수술 중에 손을 바꾸는 것 자체가 위험할뿐더러 그럴 상황도 아니었건만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환자는 깨어나지 않았다.

마취제 효과는 거의 사라지고도 남았다.

수술실에서 지켜보는 것이 도리어 위험했다.

“모찬우 선생, 중환자실로 환자 옮기자.”

드르르륵!

수술 팀이 재빨리 환자를 옮겼다.

대기하고 있던 군 장교 서너 명이 급히 달려왔지만, 김지훈은 환자가 더 급하다는 말만 하고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물론 예외가 있었다.

“부모님 도착하시면 바로 알려 주세요.”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간 이식 수술 때마다 수혜자는 반드시 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점점 바빠지는 상황에서 그보다 더 중한 환자가 들어왔다.

띠띠띠! 띠띠띠!

심장박동만으로도 중환자실 공기가 변했다.

긴장이 치솟았다.

응급 검사를 시행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환자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바이탈은 나빠지지 않았지만 언제 흔들릴지 몰라 결국 인공호흡기를 다시 달았다.

슈우욱! 슈우욱!

환자의 안색이 파리했다.

김지훈이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천운처럼 심정지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뇌 손상을 100퍼센트 배제하기 힘들었다. 똑똑 떨어져 환자의 혈관을 거쳐 심장으로 들어가는 한 방울의 피가 생명이 되기를 바랐다.

“과장님, 보호자분 도착하셨대요.”

“알겠습니다. 이혁원 선생, 모찬우 선생, 당직에게 환자 맡기고 가자. 내일을 위해 쉬어야지.”

한 번은 고개를 저었어야 할 이혁원이 순순히 따라 나왔다.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아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김지훈은 환자와 부모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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