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128화 (1,128/1,329)

14화

전화를 건 사람의 신분이 특이했다.

(해병 2사단에서 복무하고 있는 군의관입니다. 사고가 발생해 병사 한 명을 통합 병원으로 이송하는 중 상태가 너무 위중해 연락드렸습니다. 환자 받으실 수 있습니까?)

‘군의관? 위중한 환자?’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비록 신의 아들이었지만 웬만한 병은 무시하거나, 알약 두세 개로 해결한다는 곳이 의무대인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군대에서 통합 병원으로 이송도 못할 정도로 위급한 환자가 발생했다면 총기나 중장비에 의한 부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치명적이란 말이었다.

수술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로 환자를 거부한다면 한 사람의 생명을 잃고도 남았다. 더구나 병사라면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 떠들면서도 어느 틈엔가 비하되고,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젊은 군인이었다.

“언제 도착합니까?”

(십오 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비상이다.

단 일분일초에 젊은 병사의 생사가 오갈지도 몰랐다. 민정호와의 첫 식사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부족한 인력을 탓할 상황도 아니었다.

“신 교수, 응급 환자가 떴어. 난 다음에 참석할게. 민 부원장과 좋은 얘기 하고, 맛있게 먹어.”

(알았어. 고생해.)

통화를 마친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간호사들은 이미 환자 도착에 대비해 필요한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최소 세 명으로 이뤄진 수술 팀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았다. 당직이 모두 수술에 들어가 염치 불고하고 오프인 펠로우들에게 연락했지만 이혁원 말고는 시간 내에 도착할 사람이 없었다.

‘둘이 하기에는 무리일 텐데 어떻게 하지?’

떠오르면 안 되는 써전이 떠올랐다.

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을 모찬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곧 환자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게다가 군대 속성상 통합 병원이 멀다고 해도 웬만큼 위급하지 않고서는 민간 병원에 연락할 리가 없었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모찬우 선생, 응급실로 내려와.”

연락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모찬우가 나타났다. 열의가 넘친다 해도 짜증이 날 상황인데 오히려 긴장 속 기대가 보였다.

“과장님, 당직도 아닌데 나오셨네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사람이 부족하다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응급 수술이 동시에 뜨면 수술 팀을 꾸리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공부하는 중에도 죄송했는데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보통 전공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안하고도 고마웠다.

‘정말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써전이네.’

김지훈이 말없이 등을 한 번 친 후 시계를 보았다. 길이 막히는지 도착 예정 시간이 지났다. 바이탈이 유지되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나저제나 환자를 기다리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사실 전문 병원은 몇몇 특별한 분야를 빼고는 민간 영역에서도 널리 알려진 병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군의관이 콕 집어 이송을 부탁하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설마 119에 연락했나?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도 아니고, 군의관이 어떻게 우리 병원을 알았지?’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곁가지였다.

마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

가운은 물론 군복까지 피로 물든 군의관이 구르듯 뛰어 들어왔다.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을 보니 전문의가 된 후 임관한 모양이었다.

“환자 도착했습니다.”

간호사들이 곧바로 움직였다.

“혈압 80에서 잡히고, 맥박 수 130회, 호흡 수 30회입니다. 수액 모두 교체하고, 혈액 준비하겠습니다.”

모찬우는 전공의 사 년 차다.

일일이 오더를 내릴 이유가 없었고, 그런 시간조차 아까웠다. 말하기도 전에 바이탈을 확인한 모찬우가 익숙한 솜씨로 중심 정맥을 잡은 후 소변 줄을 끼워 소변량을 확인했다.

“멘탈 스투퍼(혼미)에서 세미코마로 판단되며, 소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저혈량성 쇼크 상태였다.

상처를 확인해야 할 때였다.

벌겋게 물든 채 복부에 감겨 있던 붕대를 푼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리고 말았다. 처치실 밖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군의관이 소리쳤다.

“과장님, 총기 사고입니다. 두 시간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며, 관통상입니다.”

과장님? 처음 보는 군의관이 누가 과장인지를 알 리 없건만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다.

김지훈이 바짝 긴장했다.

우상복부에서 사입구가 관찰됐다.

등 뒤에 위치한 사출구가 상당히 섬뜩했다.

총알이 뚫고 들어간 경로에 위치한 장기는 모두 손상될 수밖에 없었다. 칼이나 예리한 물체에 의한 손상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상흔을 남겼을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CT를 시행해 손상된 장기와 범위를 파악한 후 수술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총상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더욱이 환자는 이미 쇼크에 빠졌고, 우상복부는 중요 장기가 위치한 부분이었다.

‘간, 신장, 십이지장 모두 손상 가능성이 있다. 그중에서도 십이지장이 파열됐다면 휘플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시간을 끌어야 환자를 잃을 가능성만 높아진다.’

결단을 내렸다.

“모찬우 선생, 군의관이 동의하면 마취 가능한 혈압이 확보되는 대로 즉시 수술 방으로 올리자.”

“CT는 안 찍습니까?”

“엽총에 의한 손상도 무시 못하는데 소총에 의한 총상이야. 너무 늦어. 간호사 선생, 마취과에는 연락됐어요?”

“예. 거의 다 준비됐을 거예요.”

김지훈이 군의관을 만났다.

“지금 즉시 수술해야 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수술해 주십시오. 병사 한 명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과장님만 믿겠습니다.”

또 과장이라고 했다.

낯설어하지도 않는 얼굴이었다.

어쨌든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군대 지휘 특성이 아니더라도 보호자를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군의관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인지 살짝 의문이 들었다. 더구나 총기 사고는 관련 지휘관들 모두 줄줄이 좌천되거나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네. 외과 계열 전문의인가?’

다른 데 관심을 쏟을 때가 아니었다.

군의관도 여기저기에서 걸려 오는 전화에 상황을 보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민간 병원이지만 즉시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 큰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김지훈이 혈액을 짜기 시작했다.

바이탈을 단 일 분이라도 빠르게 회복시켜야 수술 방으로 옮길 수 있었다. 환자의 병력이나 과거력을 알아야 했지만 살상이 목적인 소화기에 의한 총상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띠띠띠띠띠!

젊은 병사의 심장이 헐떡였다.

일분일초가 아쉽건만 좀처럼 혈압이 오르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과 짧은 머리, 환자복이 아닌 군복이 이상스럽게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혁원이 도착했다.

한 사람이 더 가세해서야 마취를 걸 수 있는 정도의 혈압을 확보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잡았을 뿐 젊은 병사의 생사는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환자 옮깁시다.”

코 줄, 소변 줄, 수액과 혈액을 급속 투여하기 위해 잡은 중심 정맥 줄까지 어느 하나 위태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반드시 살려야 했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청춘의 일부를 바친 젊은 병사의 죽음을 절대 허용할 수 없었다. 이렇게 간다면 개죽음이나 다름없었다.

드르르륵!

처치실을 나오자마자 일단의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오발이든 뭐든 부대 하나를 발칵 뒤집고도 남을 사건이기 때문인지 영관급 장교들까지 보였다.

“선생님, 직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직함부터 묻다니 살짝 기분이 상했다.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응당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장병의 상태부터 묻는 것이 지휘관의 자세이자 도리이기 때문이었다.

“일반 외과 과장 김지훈입니다.”

“다행입니다. 김 일병 상태는 어떻습니까?”

“장기 손상과 출혈이 너무 심해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지체할 틈이 없습니다.”

“통합 병원으로 이송할 수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이송 중 사망합니다.”

다급한 마음은 알지만 CT도 못 찍은 마당이었다. 일일이 대답할 상황이 아닌 데다 솔직히 간접적으로 들은 말이지만 의문사라는 말까지 떠올라 군대를 신뢰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정작 가장 도움이 될 군의관은 한참 뒤로 밀려 있었다.

“비켜 주십시오.”

“얼마나 걸립니까?”

“예측할 수 없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술 방으로 향했다.

“야, 이 새끼야! 총기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부대 하나 말아먹을 일 있어? 한 대위, 통합 병원 이송을 막은 건 너니까 김 일병 죽으면 책임져.”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왠지 씁쓸한 상황이었다.

띠띠띠띠띠띠!

의식을 잃은 환자였다.

마취랄 것도 없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핏기 잃은 배를 열었다.

온통 피만 보였다.

“석션! 탭! 거즈!”

석션 줄을 따라 투명한 통에 피가 줄줄이 쏟아졌다. 피를 가득 머금은 수술용 천과 거즈가 바닥에 쌓이며 주변을 흥건하게 적셨다.

김지훈이 숨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양을 가늠하기 어려운 출혈이었다.

복강 내 압력이 사라지며 혈압을 더욱 떨어트렸을 것이다. 최단 시간 내에 출혈 원인을 찾아 막지 못하면 그대로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피에 잠겼던 장기가 하나둘 드러났다.

상행 결장에서 평행 결장으로 이어지는 대장 부분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짓뭉개졌다. 가뜩이나 총상 자체로 감염의 우려가 커 더욱 치명적인 손상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술용 천으로 손상 부분을 둘러싸 내용물이 퍼지지 않도록 조치한 후 복강 하부로 밀어내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김지훈이 답답한 신음을 터트렸다.

췌장액과 담즙의 배출공이 있는 십이지장 중간부가 형체를 잃었다. 손상 정도를 확인하기도 전에 벌건 피가 빠르게 차올랐다.

시야 내에서는 출혈 부위가 보이지 않았다.

복강 깊은 곳에 위치한 동맥이 끊어졌다는 의미였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동맥은 후면에 숨어 있을 십이지장 동맥이었지만, 더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신장 동맥의 손상도 배제할 수 없었다.

‘지금도 휘플을 해야 할지 모르는데 신장 동맥까지 잘렸으면 수술이 너무 커진다. 제발!’

생사의 경계일 수도 있었다.

“석션! 탭!”

주변부를 압박해 출혈을 억제하며 십이지장 전면을 확보했다. 쇼크를 일으킬 만한 출혈 부위를 찾지 못한 김지훈이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내밀었다.

“신장 동맥이 손상됐을 가능성이 커. 십이지장 박리할 거니까 집중해. 모스키토! 켈리!”

김지훈이 빠르게 십이지장 주변을 박리했다.

파열된 부분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손상을 받아 박리 자체가 극도로 어려웠지만 결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완벽하게 퍼스트를 서는 이혁원과 적재적시에 보조하는 모찬우가 아니었으면 더딜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다.

C 자 형태로 주행하며 후면이 후복막에 위치한 십이지장을 완전히 박리해 제쳤다.

김지훈의 안색이 시커메졌다.

끊어진 동맥이 보이지 않았다.

피는 여전히 차오르고 있었다.

‘제길! 정말 신장 동맥이 끊어진 거야?’

정상 구조를 유지해도 후복막 속에 묻힌 혈관은 항상 주의해야 하는 구조물이었다. 총알이 뚫고 들어가 조직을 엉망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온통 피로 물들어 혈관을 구분하기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만일 끊어진 혈관이 수축해 원래 위치에서 상당 부분 이탈했다면 손도 쓰지 못할 수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띠띠띠띠띠띠띠!

헐떡이는 심박동 소리가 섬뜩했다.

마취과는 바이탈을 잡느라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환자의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어차피 신장은 포기해야 한다. 지금은 끊어진 혈관을 찾아 잡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켈리!”

김지훈이 무모해 보일 정도로 과감하게 후복막을 열었다. 이혁원과 모찬우도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알았고, 김지훈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했다.

총알이 뚫고 들어간 길을 따라 조직을 찢는 것처럼 벌렸다. 사방에서 피가 흐르고, 무엇이 어떤 조직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지만 부차적인 문제였다.

김지훈의 등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집중력을 잃으면 끝이었다.

필사적으로 주변을 열어 끊어진 동맥을 찾았다.

“석션! 탭! 거즈!”

수술 팀의 손이 숨 가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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