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대로 내달렸다.
병동 간호사에게 묻지도 않고 송진순 환자의 병실로 향했다. 서러움을 못 이겨 통곡하는 소리,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보호자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문을 열었다.
고경철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었다.
송진순 환자의 낯빛은 이미 까맣게 죽었다.
우두둑! 우두둑!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섬뜩했다.
“고경철 선생, 어떻게 된 거야?”
“어레스트(심정지) 발생 연락받고, 십 분 전부터 심폐소생술 시행 중입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간호사 선생, 언제 발견한 거예요?”
“마지막 바이탈 체크할 때까지만 해도 주무시고 계셨어요. 보호자들이 이상하다고 달려왔을 때는 이미 호흡이 없는 상태였어요.”
날벼락이었다.
최소 십오 분가량 지난 후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환자가 갑자기 숨이 멈추다니 믿겨지지 않았다. 아무리 시한부라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족들은 이미 넋을 잃었다.
주저앉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김지훈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외과 병동에서 어레스트 발생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말기 암 환자라고 해도 일반적인 일이 될 수 없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늦은 것은 확실한데 심장이 돌아올 때까지라도 계속해야 하나? 의미가 있을까?’
불현듯 송진순 환자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선생님, 막내 결혼식 때문에 욕심을 부렸고, 힘든 부탁을 했지만 언제 갈지 모른다는 사실 잘 알고 있어요. 혹시 문제가 생겨 희망이 없다 싶으면 곱게 보내 주세요.’
‘환자분,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나도 고생하기 싫고, 자식들 고생시키기는 더욱 싫어서 그래요. 살 만큼 살았어요. 정신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고요.’
‘가족들이 원치 않을 겁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며칠을 또 무사히 넘긴다면 다른 선생님께 부탁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죠?’
그때 엄윤희가 보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연명 치료를 확실하게 거부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의사의 판단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송진순 환자는 고이 가기를 원했다.
희망이 있다면 모를까, 극적으로 회생한다고 해도 숨만 붙어 있을 것이다. 그조차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질 뿐이었다.
고경철이 외쳤다.
“선생님, 중환자실로 옮길까요?”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환자 상태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심장은 단 한 번도 뛰지 않았다.
자발호흡이 없었다.
눈동자는 이미 완전히 열린 상태였다.
환자의 죽음은 기정사실이었다.
약을 때려 부으며 포기하지 않는다면 만에 하나 심장은 돌아올지 몰라도 의식을 찾을 상태가 아니었다. 기계의 도움을 받으며 결코 돌아오지 못할 사람의 생을 억지로 연장할 뿐이었다.
보호자들을 만났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요?”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머님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언제 아셨죠?”
“피곤하다며 주무시기에 식구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돌아왔는데…….”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엄마 홀로 놔두고 밥을 먹으러 갔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살짝 열렸던 문 사이로 보였던 심폐소생술은 공포와 다름없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바로 발견한 줄 알았는데 훨씬 전에 돌아가셨구나. 계속해야 하나? 어떤 의미가 있지?’
한 사람의 죽음을 선고하는 일은 경험이 아무리 많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하기 힘들다 해도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
무조건 환자의 숨을 돌리는 것만이 의사의 책무는 아닐 것이다. 때론 고이 보낼 때 환자와 가족에게 오히려 평안을 줄지도 몰랐다.
절대적인 냉정함이 요구됐다.
보호자들을 병실로 불렀다.
“안타깝지만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정말 돌아가신 건가요?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심장이 뛰고 있잖아요?”
심전도 기계가 불규칙한 그래프를 보이며 삑삑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심장을 압박할 때마다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반응에 불과했다.
“죄송합니다. 환자분의 심장이 뛰는 것이 아닙니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채 단순히 생명만 연장하길 바라십니까?”
“연장만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미 심정지가 발생한 상태입니다. 중환자실로 모셔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가족분들이 환자분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사망 선고를 하는 것뿐입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을 두고 말이죠.”
“다른 방법은 없나요?”
김지훈이 엄윤희를 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을 올린 지 하루밖에 안 됐다. 오늘이 엄마의 기일이 된다면 결혼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며칠 상간일 뿐 절대 피하지 못할 일이었다.
‘가슴이 아파도 감당해야 할 일이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최선은 이대로 소생술을 중단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안 돼요.”
절박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떤 마음인지 잘 압니다만,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오늘 아침 환자분이 제게 직접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송진순 환자의 말을 전했다.
“고이 보내 달라고 하셨다고요?”
엄윤희가 주저앉았다.
차가워진 엄마의 손을 잡은 채 눈물만 흘렸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이미 장례 문제까지 상의했을 가족들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김지훈이 조용히 기다렸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유언으로 남겨도 빈번하게 연명 치료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이상 가족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의사에겐 연명 치료를 중단할 권리가 없기도 했다.
보호자의 의사에 반해 치료를 중단한다면 법적인 책임까지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사망한 채 응급실로 온 환자가 아니라 아침까지 멀쩡했던 입원 환자였다.
최악의 경우 병원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다.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 흘렀다.
고경철은 아직도 심폐소생술 중이었다.
쉴 새 없이 떨어진 땀이 침대를 흥건히 적셨다.
간호사 역시 단 한 명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고경철 선생, 어때?”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대로 사망 선고를 해야 마땅했지만 가족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한부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실감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 선택할 도리가 없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인공호흡만 유지해.”
심장은 이미 선 지 오래였다.
인공호흡은 눈가림에 불과했다.
자식 고생한다고 연명 치료를 거부했던 환자였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어쩌면 또 하나의 소원을 스스로 이뤘는지도 몰랐다. 특별한 고통 없이 잠을 자듯 떠났다는 사실 또한 큰 위안이었다.
매정하다고 해도 통보만 남았다.
“보호자분, 죄송하지만 이미 사망하셨습니다. 더 이상의 심폐소생술은 무의미합니다.”
“안 돼! 엄마! 이렇게 가지 마! 엄마!”
울음만 남았다.
딸들과는 어떤 대화도 불가능했다.
사위들과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딸들이 차갑게 식은 어머니의 육신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여보! 이제 보내 드려.”
“안 돼요. 고생만 했는데, 편히 모시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보내요. 어떻게! 선생님, 제발 우리 엄마 살려 주세요. 제발!”
“죄송합니다. 편히 보내 드렸으면 합니다. 고경철 선생, 인투베이션 빼자.”
기관에 삽관됐던 관을 뺐다.
김지훈이 사망 선고를 했다.
“X월 X일 XX시 XX분에 송진순 환자분 심정지로 사망하셨습니다.”
하얀 천이 까만 얼굴을 덮었다.
평생 자식들만 보며 살았던 어머니가 마지막 소원을 이룬 지 하루 만에 곁을 떠났다. 누구 한 명 가슴 아프지 않은 이가 없겠지만 엄윤희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나쁜 기억을 안고도 살아갈 수 있다. 때론 슬프고 아프기만 한 기억도 일종의 추억이 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젠 결혼기념일 다음 날이 엄마 기일이라며 담담히 웃는 엄윤희가 그랬다.
그때마다 눈물이 맺히지만 말이다.
지금은 잘 살고 있다.
갑자기 떠난 어머니도 웃고 있을 것이다.
김지훈이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슬픔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반짝이는 두 개의 별을 보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리던 습관도 사라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네.’
하루하루 열심히 살며 현실에 충실한 것이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효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 민정호가 진상건을 만났다.
“민 부원장, 이틀 전 정한득 위원장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어. 난데없이 모함이네 누명이네 하던데, 어떻게 된 거야?”
“불법적인 일에 관련됐습니다.”
“확실한 거야?”
“제가 판단하기에는 그렇습니다.”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
“제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습니다. 연관된 사람도 적지 않을 테고요.”
진상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하라고 보냈더니 도리어 내 일을 방해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내가 관련됐다는 물증이 없어서 떠보는 건가?’
“사람 속 알 수 없다더니, 온갖 편의를 봐줬는데 그런 짓을 하고 다니다니 한심하군. 전문 병원 처리를 계속 맡겼으면 나까지 골치 아플 뻔했어. 잡음 나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잘 처리해.”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수술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어. 차등 수가 적용까지 벗어났는데 계약을 이행할 자신이 있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한데 정한득 때문에 상황이 돌변했어. 앞으로 삼 개월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 주지 못하면 우리 인연을 이어 가기 힘들 것 같지 않아?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이니까 불만 없겠지?”
“벌써 사람을 구하고 계신 것 같은데, 보수 지급만 확실하다면 불만 없습니다.”
진상건이 태연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발등을 찍혔지만 내가 네놈 성격을 잘 알지. 딱 손에 든 돈만큼만 움직이잖아?’
“역시 눈치 하나는 빨라. 아직 결정된 바는 없어. 자네 하기에 달렸단 말이지. 성공 보수가 적지 않은데 그만둘 생각이야?”
“이사장님 결정에 달린 일입니다.”
“내 의사야 확고하지. 민정호 이상으로 깔끔하게 일 처리 하는 사람을 어디서 찾겠어? 가끔은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흔들릴 때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아. 하지만 실수는 여기까지야.”
민정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상건이 탁한 눈빛을 보이며 턱을 매만졌다.
‘이미 마음이 떠났군. 제길! 위험하다고 해도 이면 계약을 맺었어야 하는 건데 잘못 생각했어. 도대체 돈 말고 무엇이 저놈을 움직이게 하는 거지?’
부글부글 속이 끓어올랐지만 민정호에게 약점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눈을 속이고 정한득의 비리를 캤다면 수중에 더 많은 것을 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대책이 필요했다.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야. 그러면 본원으로 와 행정부원장을 맡는 건 어때? 마침 필요하다는 요구도 있고, 원한다면 보수를 올려 줄 생각도 있어.”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자는 말씀입니까?”
“당연한 일 아니야?”
“제게 호의를 베푸셔서 감사합니다만, 또 다른 병원의 행정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직원부터 환자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더군요.”
“마지막 제안일지도 모르는데 거절하는 거야?”
“이사장님과 맺은 계약을 이행할 뿐입니다. 기한은 최소 삼 개월로 알고 있겠습니다.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민정호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미련 없이 문을 열었다. 재계약, 혹은 새로운 계약 모두 관심 밖이라는 명확한 표현이었다.
딸깍!
문이 닫혔다.
진상건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존폐 중 존립을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삼 개월의 기한을 최대가 아닌 최소라 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 아니라 목이 따이게 생겼다. 계약에 따른 일이라고 하지만 명백한 반기였다. 엄청난 이권이 자칫 민정호라는 인간 하나 때문에 공중으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우당탕! 쨍그랑!
책상이 엎어지고, 꽃병이 깨졌다.
난장판이 되고서야 소파에 몸을 묻었다.
“네놈이 감히! 완전히 매장시켜 주마.”
진상건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내일 저녁에 모두 모여야겠습니다. 한 분도 빠지지 않도록 조치하시고, 민정호를 대체할 사람과도 자리를 만드세요. 확실해야 합니다.”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