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뇌사자 장기 기증이다.
연가 기증 건수가 지금도 수십 건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드문 일이었다. 김지훈이 즉시 손일석을 비롯해 수혜자 수술 팀 전원과 윤석진, 공정식에게 연락했다.
“김 과장, 언제쯤 보낸대?”
“이틀 후 장기 적출 예정이라는데 가 봐야 알겠지. 온전히 보낸다니까 대기 일순위인 성인 한 명, 소아 한 명에게 바로 연락해서 수술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기다려야 돼.”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고, 장기 매매 등 불법적인 일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 관리가 부쩍 강화되면서 기증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이식 순번이 주어졌다. 타 병원에서 장기 적출이 이뤄져도 순번에 더해 운송 거리, 해당 병원의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식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다.
장기 기증이 여전히 드물었기에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보다 객관적인 기준하에 이식을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신동철 이사장 때와 상황이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전국적으로 수천 명의 환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를 차례를 기다리던 환자는 물론 전문 병원에게도 대단한 행운이자 기회였다.
꾸물거릴 틈이 없었다.
일순위 환자가 수술을 못 받는 상황이라면 다음 순위로 넘겨야 한다. 시간은 점점 촉박해지고, 전문 병원에 등록한 대기자도 아니겠지만 또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윤석진과 공정식이 환자와 연락하기 위해 곧바로 움직였다. 수술 팀 역시 미리 확보한 환자 정보를 바탕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가 소아 환자 맡을 테니까 손 교수가 성인 환자 맡아. 체중을 고려하면 우엽과 좌엽으로 단순하게 나눠서 이식해도 될 것 같은데, 어때?”
“적정할 것 같아. 그런데 토요일에 차등 수가 결정 위원회가 열리잖아? 아무리 늦어도 금요일에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아서 걱정이다.”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야 애가 타지만 기증자 가족들 모두 동의하기가 쉽지 않잖아. 오늘 일차 뇌사 판정이 내려진다니까 금요일에는 가능하겠지. 수술 방법이야 동일하다고 해도 운송 시간을 생각하면 사소한 실수도 치명적일 수 있어. 다들 바짝 긴장하자.”
서도진이 힐끗 강병옥을 보았다.
“잘못하면 목, 금, 토 내리 대기해야 하는데,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강병옥 선생과 송진우 선생이 문제네요. 당직실에서 잘 수도 없잖아요. 이혁원 선생, 어떻게 생각해?”
“우리 집 당직실 된 지 오래입니다. 현관 비밀번호까지 다 알고, 송진우 선생은 여벌옷까지 갖다 놨어요.”
“그랬어? 다행이네. 이왕이면 나한테도 알려 줘.”
“선생님은 왜요?”
“마누라하고 싸울 때 큰 소리 뻥뻥 치면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막상 갈 데가 없더라고. 밤늦게 몰래 들어갈 때마다 자존심 얼마나 상하는지 총각은 모를 거야.”
심각한 와중에 큰 웃음 터졌다.
김지훈과 손일석도 편안한 미소를 머금었다.
펠로우 모두 비슷한 시기에 수련을 받은 탓에 라이벌일 수밖에 없었다. 전문 병원이란 변수가 생겼지만 모두 교수가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에 즐겁기만 했다.
‘고맙다. 이렇게 가면 누구 한 명 아쉬운 사람 없을 거야. 이런 건 우리가 잘 가르쳤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서로가 동료임을 잊지 않는 한 수술 팀의 호흡 또한 척척 들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예정에 없던 수술 역시 잘될 것이라 믿었다.
연락 당일, 대기 환자 두 명이 입원했다.
수술과 마취에 문제없는 상태였다.
김지훈의 환자는 12살 소녀였다.
간에 발생한 다낭성 낭종으로 심각한 기능 저하가 발생했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갈수록 커지는 물혹에 건강한 조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체 이식에 적합한 가족도 없어 희망 없는 삶만 유지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이식 대상 환자의 모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비슷했다. 이제는 무덤덤해질 법도 했지만 볼 때마다 안타깝기만 했다. 특히 고통받는 어린아이와 불안으로 피폐해진 부모를 보면 더욱 가슴이 아팠다.
지금 이 순간만은 달랐다.
삶이 무언지도 모를 12살 아이가 웃었다.
눈물로 매일 밤을 지새웠을 부모의 눈가에 강한 희망이 걸렸다. 잡을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던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고, 딸을 살릴 수 있다는 한 줄기 빛을 본 것이다.
“필요한 서류 모두 작성해 주시고, 언제 수술을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부모님 중 한 분은 반드시 병실에 계셔야 합니다.”
“확실하지 않은 건가요?”
“간혹 기증자 가족의 마음이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믿고 기다려야죠. 누군가에겐 간절해도 누군가에겐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아이 엄마가 두 손을 꼭 쥐었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증받을 기회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소중한 기회를 잡았다 해도 막판에 기증 의사 철회로 눈물 터트리는 경우도 제법 보았다.
필요하다면 목숨이라도 주고 싶건만 자신의 간조차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죄책감까지 느끼는 존재가 엄마였다. 어쩌면 딸의 병마저 선천성 질환이란 이유로 자신 탓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어머니, 잘될 겁니다.”
“부탁드려요.”
돌아서는 김지훈의 눈빛이 무거웠다.
이식 날짜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두 사람이 입원한 상황이었다. 수술 당일에 입원할 수 없기에 불가피한 일이지만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족들이 기증 의사를 유지할까?
기증자의 간이 예상처럼 건강할까?
운송 중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이식받을 환자 상태가 변하지는 않을까?
최악의 경우는 기증 의사 철회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잡은 삶의 희망을 허무하게 놓쳐 버린 꼴이었다. 환자들이 받는 심적 타격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간 이식을 하는 한 수없이 겪을 일이었다. 하기에 더더욱 차등 수가 문제에 발목을 잡힐 수는 없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오롯이 환자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삼 일 내에 이뤄질 두 건의 수술 자료를 미리 정리했다. 민정호와 함께 준비해 제출한 건수까지 모두 열다섯 건이었다.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 세 달밖에 되지 않았기에 결코 적은 횟수가 아니었다.
‘정한득만 막으면 된다.’
불현듯 민정호의 얼굴이 스쳤다.
그동안 사무적인 대화만 나눴다.
정한득을 해결하고 난 후 어떤 상황에 빠질지 빤한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백 마디 천 마디 말로도 부족하건만 진상건을 떠올리기 싫어 애써 피했는지도 몰랐다.
‘토요일에 서울 올라가면서 진지하게 얘기해야겠다. 진상건이 민 부원장에게도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데 우리가 도울 일이 있을까? 이렇게 되면 육 개월이란 시한도 무의미해지는 건가?’
아닐 것이다.
민정호 성격과 계약에 목을 매는 모습을 볼 때 현실과 스스로 정한 기준을 철저하게 지킬 것이다. 바람과 달리 언제든 손을 떼거나, 최악의 경우 진상건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도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전문 병원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은 결국 의료진을 포함한 모든 직원에게 달렸다. 단 한 명의 환자만 있을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길뿐이었다.
하루해가 유난히 짧았다.
어느새 회진 돌 때가 됐다.
송진순 환자 병실에 들어서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며칠 후면 가정을 꾸릴 엄윤희와 자매가 모두 모여 바닥 가득 한복이며 패물 같은 것을 펼치고 있었다. 일인실이었기에 망정이지, 다인실이었으면 이런 민폐가 없었을 것이다.
“어머! 선생님 오셨네.”
딸들 모두 지금 이 순간만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결혼식 준비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모양이었다.
분위기 띄울 때였다.
“한복이 무척 예쁘네요. 어머님이 시집가세요?”
“선 봐주실라우?”
다들 웃었다.
송진순 환자의 병색 완연한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모든 시름과 불안을 버리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행복해하는 모습에 가슴이 포근해졌다.
“오늘은 어떠셨어요.”
“덕분에 편안히 지냈어요.”
“하실 수 있는 만큼 식사 꼭꼭 챙기세요. 토요일에 퇴원하시면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하죠?”
“다 늙은 노인네를 어디다 쓴다고?”
“곱기만 하신데요.”
송진순 환자가 김지훈의 손을 잡았다.
의외로 따뜻했다.
마디마디 굵어진 손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이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할 것이다. 딸 넷과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웃고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엄윤희가 건네준 주스가 무척 달달했다.
째깍! 째깍!
다음 날, 이차 뇌사 판정 결과를 들었다.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가족 모두 인정했고, 마지막 절차와 동의만 남았다. 빠르면 목요일 아침 일찍 적출 수술에 들어간다고 연락받았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바삐 움직였다.
각자 자신의 환자를 만나 알리고, 어떤 때보다 몸 관리에 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우에 따라 감기만 걸려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당연히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있는 다음 대기자가 기회를 잡을 것이다.
“수정아, 우리가 말한 것들 잘 지키고 있지?”
“예.”
12살 아이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 건강해질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동안 겪은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목요일 이른 아침.
불행하게도 수술이 하루 연기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가족 전체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오직 결론만을 들어야 하기에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이식 수술 진행을 대비해 대신 외래를 보기로 했던 신현수마저 눈가를 찡그렸다.
“김 과장, 이러다 취소되는 거 아니야?”
“얘기 들으니까 한두 명이 반대를 하는 모양이야. 늦춰지는 것뿐이겠지.”
“하긴 우리도 그랬어. 고인 될 분의 뜻이라고 해도 가족의 슬픔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더라.”
새삼 선대 이사장이 떠올랐다.
자주 보지 못했지만 병원에 대한 애착만큼 또렷한 인상을 남기는 사람이었다. 아들인 신현수에겐 어제 일 같을 텐데 담담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잘 극복한 모양이었다.
“환자가 걱정이야.”
“굉장히 불안하겠지만 잘 설명하는 수밖에 더 있겠어? 오늘 안으로 확실하게 결정돼야 내일이라도 수술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나도 걱정이다.”
김지훈에겐 대비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만일 내일 결정돼 토요일에 수술해야 하면 수가 위원회는 현수 네가 참석해야 돼. 정한득을 만나는 일도 문제네.”
“내일 만나기로 했지?”
“이미 약속을 잡았을 텐데 어떻게 하나. 약속 시간을 바꾸자고 하면 낌새를 챌 수도 있잖아.”
“고민할 필요 없어. 민 부원장하고 상의해서 내일 수술하게 되면 내가 만나고, 토요일에 하게 되면 김 과장이 만나면 되지 않겠어?”
“하긴 어떻게 보면 네가 정한득을 만나는 게 더 충격을 줄 수도 있어. 민 부원장도 같은 생각을 했을 텐데 왜 나하고 만나자고 했을까?”
신현수가 안경을 고쳐 썼다.
“생각이 있겠지. 나도 그러길 바라고.”
“무슨 소리야?”
“추측일 뿐이야. 신경 쓰지 마.”
무척 궁금했지만 당장은 간 이식 결정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외래를 보는 사이사이 시간 날 때마다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간 이식 팀 전체가 모여 준비할 시간을 얻었다.
생체 간 이식은 경험이 쌓여 빠르게 끝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제반 여건까지 숙지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벌어져도 침착하게 대응할 기반이 될 것이다.
“정부 기관에서 관리하는 이상 사소한 절차 위반까지 문제가 될 소지가 큽니다. 뇌사자 장기 기증의 절차에 대해 충분히 숙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토요일에 수술할 수도 있기 때문에 주말 약속 조정해 주십시오. 정말 죄송합니다.”
웅성웅성!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다.
모처럼 고경아와 함께 퇴근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금요일에 예정된 수술이 한 건 있었다. 빨라야 오후 한두 시나 돼야 이식 수술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낭패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일주일에 두 건은 몰라도 세 건 이상 이식 수술이 벌어진다면 김지훈이나 손일석 중 한 명은 다른 수술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 빤했다.
집도의는 물론 팀 전체의 문제였다.
전문 병원의 확장력이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이 추세로 수술이 늘어 도진이하고 병옥이까지 네 팀을 만들어도 받쳐 줄 인력이 없네. 수혜자 수술 팀에만 최소 열두 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써전만 충원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과, 방사선과, 간호과 등 필수 인력 보강까지 생각하면 사람을 구하는 일도 문제지만 소요되는 재정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어후! 결국 돈을 못 벗어나네.”
“갑자기 웬 돈타령이에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긴 했지만 곧 닥칠 상황일 수도 있었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적절한 대처가 불가능할 것이다.
‘상황 보면서 빠른 시간 내에 상의해야 할 일이다.’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당장은 장기 기증이 문제였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만 쳐다보았다.
기증 의사를 철회하더라도 시간에 상관없이 연락 달라고 한 참이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