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빤하다 해도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도 환자분의 마지막 소원인 막내 따님 결혼식에 참석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엄윤희가 언니 품에 얼굴을 묻었다.
“언니! 나 결혼 못해. 엄마하고 살래.”
“윤희야!”
“저렇게 아픈 엄마를 두고 어떻게 결혼을 해? 어떻게! 얼마나 사실지도 모르잖아?”
“우리도 정말 힘들지만 엄마 소원이야. 네 결혼식 보려고 버티시는지도 몰라. 절대 다른 생각 하지 마.”
“언니! 나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환자의 바람을 이뤄 주고 싶다는 생각과 별개로 의사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절박한 엄마와 또 다른 의미로 절박할 자식들이 결정할 문제였다.
김지훈이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유복자라고 했지?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을 눈물로 치러야 한다니 막내딸 인생도 참 기구하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복강경 수술을 성공해야만 환자의 바람을 온전히 이뤄 줄 가능성이 있었다. 엄마의 사랑 혹은 애착이 작은 행운을 가져오길 바랄 뿐이었다.
환자를 수술실로 옮긴다는 연락이 왔다.
오후에 예약된 진료를 서도진에게 맡기고, 서도훈과 함께 수술실로 향했다. 가족 모두가 애써 웃으며 슬픔을 삼키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든 웃으려 하는 엄윤희의 모습이 유난하게 다가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다리고 계십시오.”
손을 못 댈 상황이라면 삼십 분 내에 보호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환자를 수술대에 눕혔다.
띠띠띠띠!
평생을 지탱해 온 심장이 헐떡였다.
수술 팀의 얼굴이 착잡하기만 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수술이 아니라 단지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수술이었다. 하물며 바이탈을 다루는 써전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마취 시작합니다.”
윤서연의 목소리도 무겁기만 했다.
수술이 시작됐다.
단지 튜브 하나 넣는 수술이었지만 원 포트로는 불가능했다. 절개창 수는 회복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아니기에 세 개의 구멍을 뚫는 편이 나았다.
카메라를 넣었다.
수술 팀 모두 탄식을 터트리고 말았다.
담도에 접근하기도 전에 곳곳에서 임파선 비대가 관찰됐다. 암이 발생한 담도는 물론 인접한 조직들도 상당 부분 암에 침범당했다.
가히 열자마자 닫아야 하는 수준이었다.
‘최악이네.’
수술의 목적은 오직 하나, 통로를 막고 있는 암에 의해 정체된 담즙의 배출이었다. 암이 발생한 부분보다 상부가 아니면 제아무리 굵은 T-tube를 넣는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서도훈 선생, 간 쪽으로 최대한 붙여 봐.”
간에서 바로 빠져나온 담도를 비췄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정상 조직으로 보이는 부분이 보이긴 하는데 기구를 이용해 튜브를 넣기에는 너무 짧지?”
“최소 1센티미터 이상 절개해야 하는데 그 정도 길이는 도저히 안 나올 것 같습니다. 무리하다 암이 발생한 부위를 건드리면 출혈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잡을 수 있을까요?”
“절개 부위가 아무는 것도 문제야. 담즙이 새 복막염이라도 발생하면…….”
김지훈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개복하실 겁니까?”
“어떻게 생각해?”
“담즙 배출이 원활할지 모르지만 가장 가느다란 T-tube를 사용한다면 암을 피해 넣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요? 수술 위험은 줄어들지 몰라도 개복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
“염증으로 끈적끈적할 텐데 배출이 되겠어?”
“간 내 담도까지 퍼지진 않았으니까 튜브를 넣을 수만 있다면 수술 후 튜브를 통해 담도 세척을 자주 해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서도훈 역시 복강경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간담췌 복강경의 대가가 되기를 원하는 써전의 욕심일 수도 있었고, 하나라도 더 보며 배우고 싶다는 열망일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빠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암이 너무 넓게 퍼진 탓이었다. 수술 가능 부위가 너무 좁아 개복을 한다 한들 안전하게 수술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수술 전 생각과 너무 다르네. 튜브를 넣을 공간이 없으니까 도리어 수술 부위를 확대해 볼 수 있는 라파로가 유리할 수도 있겠어. 문제는 정확한 판단과 손이야.’
김지훈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복강경으로 시도하다 개복으로 전환하면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가급적 수술 시간을 줄여야 하기에 첫 판단이 매우 중요했다.
모두들 집도의의 결정만을 기다렸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자꾸 머릿속을 감도는 송진순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떨쳐 내려 애썼다. 오직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해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까지 결정하기 힘들다면 가장 먼저 내린 판단이 맞다. 우리 팀도 같은 생각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개복보다 위험한 수술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서도훈 선생, 라파로로 시도하자. 메스!”
고민과 달리 수술 방법은 간단했다.
암이 발생한 부위 상방을 절개하고, 튜브를 넣기만 하면 된다. 통상적으로 한 시간 반이면 충분했지만 문제는 암이 침범한 부위를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김지훈이 정상 부위를 가늠한 후 조심스럽게 메스를 가져갔다. 간과 거의 맞닿은 부분인 탓에 시야가 좁았고, 기구 조작 자체가 쉽지 않았다.
담도를 살짝 절개했다.
정체됐던 검은 담즙이 흘러나왔다.
“석션!”
찌이이익! 찌이이익!
끈적끈적한 담즙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전형적인 염증 소견을 보였다.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였지만 그보다 담도염에 의한 패혈증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기적에 가까울 지경이었다.
“가위!”
조금 더 열었다.
같은 양상이 이어졌다.
“이리게이션! 석션!”
한참 동안 담도 내부를 씻어 낸 후에야 담도 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암이 퍼졌다면 벽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두껍게 보여야 했다.
‘다행히 여기까지 먹지는 않았네.’
최대한 간과 인접한 부분까지 열었다.
T-tube를 넣기에 부족했다.
암 발생 부위 방향으로 더 열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기구를 조작했다. 한 번에 단 1밀리미터를 연다는 생각으로 인내심을 유지하며 담도 벽의 상태를 살폈다.
벽이 두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도훈 선생, 정상으로 보여?”
“암이 퍼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더 이상 열 부분도 없지만 절개 길이가 너무 짧은데 가능할까요?”
가장 가느다란 T-tube를 넣을 수 있는 여유조차 거의 없었다. 암으로 인해 담도 자체가 상당히 딱딱해졌기 때문에 무리한 조작은 담도를 손상시킬 수도 있었다.
돌아갈 길이 없었다.
개복을 해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T 자 모양의 튜브 머리 부분을 어떻게 접어 절개 부위 속으로 넣느냐가 관건이었다. 몸통 굵기의 통에 양팔을 벌린 채 버티는 사람을 넣는 것과 다름없었다.
“해 보자.”
김지훈이 튜브를 잡았다.
미약하게나마 살아 있는 담도의 탄력을 믿어야 했다. 신중하게 구멍 사이로 튜브 한쪽부터 밀어 넣은 후 반대쪽 삽입을 시도했다.
튜브는 탄력이 상당히 강한 재질로 만든다.
조금이라도 각도가 빗나가면 구부렸던 부분이 펴지며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몇 번을 시도해도 성공하지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눈 감고도 할 수 있었던 과정이 이토록 힘들고, 애를 먹일 줄은 몰랐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실패는 곧 개복이었다.
‘어이가 없네. 왜 안 들어가지?’
튜브 끝이 반복적으로 담도에 낸 구멍의 양 끝을 건드렸다. 아무리 기구 조작이 어렵고, 구멍이 좁다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손이 따라 주지 않았다. 담도 벽이 손상되고도 남는 상황에 몰리기 직전이었다.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복강경을 포기하지 않는 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운이든 아니든 간에 집도의의 손이 따라 주지 못하면 퍼스트와 손을 바꾸는 것이 최선이었다.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다. 스승님도 이런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손을 바꿨을 거야.’
“서도훈 선생, 손 바꾸자.”
서도훈이 흠칫 놀랐다.
“제가요?”
“무엇을 잘못하는지 몰라도 내 손으로는 안 돼. 부담 갖지 말고 시도해. 너도 안 되면 개복하자.”
윤서연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경석이 복강경 파트 주임을 맡고 있지만 누가 뭐라 해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써전은 김지훈이었다. 그런 써전이 수술 중에 다른 사람도 아닌 후배에게 집도의 자리를 넘기고 있었다. 웬만한 사람이면 자존심 때문이라도 개복을 택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뭐 해? 내가 하다간 100퍼센트 개복이야. 그러길 바라? 서도훈 선생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서도훈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상당히 긴장된 기색으로 튜브를 잡았다.
몇 번 손이 움직였다.
거짓말처럼 튜브가 쑥 들어갔다.
김지훈이 입을 쩍 벌렸다.
‘뭐야? 왜 이렇게 쉽게 들어가?’
서도훈조차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수라고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보장은 없었다.
어쨌든 탁월한 선택임이 분명했다.
“잘 들어간 것 같습니다.”
김지훈이 힐끗 서도훈을 보았다.
튜브를 확실하게 고정시키기 위해 담도 절개 부위를 봉합하는 과정이 남았다. 위치가 안 좋아 훨씬 어려웠지만 자신감이 엿보였다. 더구나 일단 틀어진 손은 실수를 연발하기 마련이었다.
이왕 넘긴 자리였다.
서도훈은 믿을 수 있는 써전이었다.
“오늘은 서도훈 선생 컨디션이 제일 좋은 것 같네. 다행이다. 진행해.”
“감사합니다.”
서도훈이 신중하게 담도 절개 부위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불과 세 바늘이었지만 튜브 주변을 따라 단단히 봉합해야 빠지지 않을뿐더러 담즙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김지훈도 긴장해야 할 과정이었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 이마에 땀까지 맺혔지만 서도훈은 실수하지 않았다.
마지막 바늘이 남았다.
암이 침범했을지도 모를 부분이었다. 통상의 경우처럼 힘을 주다간 탄력을 잃은 담도가 찢어질 수 있었다. 적절한 힘이 아니면 최악으로 치닫고도 남았다.
서도훈이 극도의 긴장에 휩싸였다.
김지훈은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시야를 확보하는 한편 기구 조작에 무리가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은빛 바늘이 담도를 통과했다.
수처가 끝났다.
타이만 남았다.
서도훈이 실을 당겨 매듭 하나를 만든 후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었다. 지금 멈추면 풀고 다시 타이할 기회가 있지만 매듭 하나를 더 만들어 조이는 순간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불완전하다면 수처를 다시 해야 한다.
결국 기회가 없다는 말이었다.
“이 정도면 될까요?”
눈으로만 봐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주요 과정을 모두 시행한 서도훈은 손을 넘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집도의였다.
김지훈은 망설이지 않았다.
“판단은 서도훈 선생 몫이고, 책임은 내 몫이야.”
서도훈이 눈가를 굳혔다.
타이를 진행했다.
“컷!”
실이 잘려 나가자마자 서도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이제 되돌릴 수 없었다.
보다 경험이 많은 써전의 판단이 필요했다.
김지훈이 웃었다.
“내가 보기엔 정말 잘됐어. 무사히 끝내 줘서 고맙다. 다음에는 이런 일 없어야 하는데 큰일 났네. 이러다 자리 빼앗기겠어. 마무리하자.”
가벼운 농담으로 서도훈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띠! 띠! 띠! 띠!
“끄으으으!”
고령의 말기 암 환자가 눈을 떴다.
서도훈의 도움으로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 줄 기회를 잡았다. 보호자에게 말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무조건 고마운 일이었다.
서도진에게 진료를 맡겼지만 자신의 환자까지 있는 이상 외래 환자가 밀렸을 것이다. 서도훈에게 환자를 맡긴 김지훈이 곧바로 수술실을 나왔다.
대기하던 보호자들이 벌떡 일어났다.
예상외로 길어진 시간에 잔뜩 긴장한 기색이었다. 개복했을 때 따라올 문제부터 행여 환자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스쳤을 것이다.
“선생님! 수술 잘 끝났나요?”
“다행히 복강경으로 성공했습니다. 마취에서 어느 정도 회복되면 병실로 옮길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엄윤희가 얼굴을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어떤 마음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절망은 아니었다. 모두의 바람대로 어머니와 딸이 함께 결혼식을 치른다면 아픔이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다.
환자 한 명에게 매달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김지훈이 다급히 발을 놀렸다.
그때 민정호의 얼굴이 보였다.
할 말이 있어 찾아왔다는 표정이었다.
오다가다 몇 번 마주쳤지만 별말 없던 탓인지 간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수술 방이나 중환자실 앞에서 민정호와 우연히 마주칠 일이 없었다.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감 적중했다.
김지훈이 잠시 뜸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