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아무리 생각해도 유리한 점보다 불리한 면이 많았다. 딸을 생각하며 애타는 표정만 짓는 환자를 보고 있자니 의사로서의 판단까지 흔들려 정말 답답한 상황이었다.
진료하다 말고 조언을 구할 수도 없었고, 설령 찾아간다 한들 이준영 교수나 송재덕 교수마저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송진순 환자가 절박한 눈으로 김지훈을 보다 말고 돌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하얗게 질리다 못해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암으로 인해 발생한 극심한 통증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었다. 고령의 환자를 잠식한 말기 암이 언제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김지훈이 급히 소리쳤다.
“간호사 선생, 바이탈 체크합시다. 응급실에 베드 준비하라고 연락해요.”
드르르륵!
송진순 환자가 응급실로 옮겨졌다.
새우등처럼 굽은 허리를 펴지 못했다.
말기 암의 통증은 정말 무서웠다.
바이탈은 안정적이었고, 급히 시행한 검사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두 시간이 지나서야 환자가 안정을 찾았다.
데메롤을 무려 세 개나 투여한 후였다.
통증이 쇼크를 유발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사이 일과를 모두 마치고 퇴근 시간마저 지났지만 김지훈은 병원을 떠나지 못했다. 환자의 요구를 떠나 최대한 빨리 수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환자분, 내일 일정 잡히는 대로 수술하겠습니다. 오늘 같은 일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마세요.”
“배를 안 열고 한다는 말씀인가요?”
방금 전 쓰러졌던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다.
엄마의 마음만이 아니라 노인의 고집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어떤 마음인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김지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라파로로 시도해서 결과가 좋으면 모르지만 반대라면 환자만 힘들 상황이 아니다. 환자의 마음과 달리 막내딸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 일부만 알고 수술하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못했다.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는 순간 상당수 보호자가 돌변하는 것을 제법 보았다.
직계가족 모두의 동의를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고, 특히 막내딸이 중요했다. 그것이 혹여 발생할지 모를 불상사를 피하는 길이었다.
관건은 환자였다.
냉정한 이성은 이미 힘을 잃었다.
공감을 통한 설득이 필요했다.
때론 온갖 절절한 말보다 자신의 이야기가 강력한 법이었다. 졸지에 부모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이미 경험한 김지훈이었다.
“환자분, 복강경으로 시도하겠습니다. 단, 막내딸에게도 알려야 가능합니다. 만에 하나 결혼식에 반드시 참석하지 못하셔도 따님들 모두 어머니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이렇게 아프다는 것을 알면 결혼을 미루고도 남을 아이예요. 죽는 날까지 자식 앞을 가로막고 싶지 않아요.”
“숨길 수 있을까요? 설령 숨길 수 있다고 해도 몰래 수술하는 것 자체가 따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겁니다. 정말 행복한 결혼식이 될까요?”
환자가 눈을 감았다.
함께 온 딸들에게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김지훈이 부드럽게 환자 손을 잡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부모님을 모두 잃었습니다. 혼자 살아야 했던 시간이 무척 힘들었지만 결국 기억으로만 남더군요. 가족이 아니었으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항상 행복하다고 느끼면서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아픔이 있습니다.”
환자가 눈을 떴다.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등 한 번 밀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가슴에 대못이 박히듯 자식 가슴에도 대못이 박힙니다. 제가 완치시켜 드릴 수는 없지만 가족에겐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막내 따님도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겁니다.”
“지금도 힘든 아이예요.”
“슬픔으로만 남으실 겁니까?”
환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려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식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세월을 함께했다고 해도 짐작조차 하기 힘든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죠?”
“다행히 응급실에서 시행한 검사상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바로 막내 따님에게 연락하시고 내일 수술받으세요. 결혼식장에서 아프시면 안 되잖아요.”
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딸들을 찾았다.
그사이 연락이 닿은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퉁퉁 부은 눈을 한 또 다른 딸과 사위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걱정이 가득했다.
평소 화목한 가족이었을 것이다. 수술 계획과 환자 상태를 다시 설명해야 했지만 모두들 환자만을 생각해 몇 번이라도 더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일단 복강경으로 시작하지만 개복해야 할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환자분에게는 그런 상황을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수술 후 감정적인 문제까지 보호자분들께서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고령의 말기 암 환자인 데다 사실상 응급 수술인 만큼 위험성이나 합병증 발생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 어머니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보호자들이었다.
눈가만 붉어질 뿐이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지훈이 입원장에 서명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수술실이 나오는 대로 수술하겠다고 했지만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 환자였다. 개복이 보다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복강경 수술을 약속했다. 게다가 일주일 안에 퇴원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말까지 귓가를 감돌았다.
‘T-tube를 넣을 공간 확보가 관건이다. 간 쪽으로 최대한 접근하면 가능할까? 암이 퍼진 부위를 잘못 건드리면 출혈이 멈추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하지?’
김지훈이 한동안 다시 찍은 CT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극히 짧았고, 종양의 크기는 섬뜩할 지경이었다.
미니 콜레시스텍토미(최소 절개 담낭 절제술)도 대안이 아니었다. 담낭만 제거하는 수술과 T-tube를 정확하게 넣는 수술은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퇴근하는 내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희비가 엇갈렸다.
드디어 유인철 환자가 퇴원하게 됐다.
무려 두 달 가까이 입원했다.
수술 후 기적적인 회복을 보였고, 합병증은 물론 급성 거부 반응도 발생하지 않았다. 퇴원이 늦어진 이유는 간 기능이 안심할 만한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전격성 간염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김지훈도 이제야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일찌감치 퇴원해 노심초사 아들의 회복만을 기다렸던 아버지가 활짝 웃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불안에 살까지 쭉 빠진 어머니는 눈가만 훔쳤다.
“선생님, 우리 아들 이제 괜찮은 거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단, 주의해야 할 사항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데가 있으면 바로 내원해야 합니다. 시간이 늦었다고 미루면 안 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아들을 잃을 뻔한 부모였다. 의사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병이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유인철 씨, 외래에서 봅시다. 잘 지내요.”
“감사합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매우 특별한 환자였지만 짧은 인사로 대신했다. 최근 간 이식을 받은 환자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고, 외래도 만만치 않았다. 송진순 환자 수술 문제까지 겹쳐 시간이 무척 부족했다.
그래도 조언이 필요했다.
이준영 교수와 이경석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라파로로 시도해도 될까요?”
“종양의 위치와 전이 정도로 볼 때 개복이 훨씬 안전할 것 같아. 라파로로 암이 침범한 부위를 가늠하기도 어렵고, 재수 없어 잘못 건드리면 출혈부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 무리하지 않는 게 좋겠어. 의사가 신도 아니고, 퇴원 날짜를 정하는 건 또 뭐야?”
이경석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스승님 의견도 동일하면 환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개복하는 게 맞는 선택이다. 보호자와 다시 설명하면 문제없겠지.’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파로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돼?”
“가능성이야 있지 않겠습니까?”
“욕심 부릴 생각은 없지?”
“절대 없습니다.”
“됐다. 집도의로서 판단해.”
복강경으로 시도하되 위험하거나 무리다 싶으면 즉각 개복으로 전환하라는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경석이나 자신의 의견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환자 상황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최종 결정은 집도의의 몫이라는 점과 더불어 제자에 대한 강한 신뢰였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애초의 결정을 번복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송진순 환자를 찾았다.
병실이 좁을 정도로 많은 보호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환자 손을 잡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젊은 여인이 눈에 확 띄었다.
엄윤희일 것이다.
“다행히 환자분 상태가 안정돼 오후에 수술실이 나오는 대로 수술을 시행하겠습니다. 막내 따님께는 그 전에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다들 초조한 기색이었지만 환자 앞에서 할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응급으로 시행하는 만큼 온갖 문제가 예상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회진을 마친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문득 유인철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오랜 기간 입원을 요하는 환자는 매시간 마음을 졸이게 하기 마련이었다. 반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후련하기보다 시원섭섭했다.
정이라도 드는 걸까?
아마도 보다 빨리 치료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뜻대로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문제, 한계를 느끼게 하는 의사의 능력을 절감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당장 송진순 환자도 다르지 않았다.
막내딸인 엄윤희까지 왔지만 회진 중에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상황이 복잡했다. 솔직히 복강경 수술이 무척 부담되기도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가치가 있는지도 모를 수술이었다.
‘오전 진료 마치는 대로 찬찬히 설명해야겠어. 막내딸까지 알았으니 더 고집을 부리실 테고, 개복하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닐 텐데 큰일이네.’
외래 진료를 시작했다.
첫 환자 이름을 보는 순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강호성이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제법 살이 붙었다.
어째 키까지 큰 것 같았다.
췌장이 얼마 남지 않아 꽤 걱정했건만 기우에 불과했다. 겉모습만으로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 건강해졌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강호성, 잘 지냈어?”
“예.”
“아침 안 먹었지? 오늘 검사할 게 많다. 배고파도 참아. 어머니, 지금까지 경과가 상당히 좋아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겁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그간 강호성을 볼 때마다 한 가지 불안이 떠나질 않았다. 짐승보다 못한 아비라는 작자의 재판이었다. 아픈 구석을 또 건드리는 것 같아 직접적으로 묻지 못했지만 엄마의 행복한 미소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호성아, 다음 달에 보자. 어머니, 호성이와 함께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엄마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덩달아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수술 중 한 아이의 생명을 잃었을지 모를 정도로 무척 어려운 수술이었다. 송진순 환자 수술의 난이도와 비교조차 힘들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때문인지 할 수 있다는,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오전 진료가 예상외로 길어졌다.
송진순 환자의 수술이 오후 정규 수술 시작과 동시에 잡혔다. 거의 이십사 시간 금식한 것과 다름없었고, 코 줄과 중심 정맥 확보까지 모두 준비됐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점심 건너뛰고 보호자들을 다시 만났다.
어떤 면에서는 엄윤희가 당사자나 마찬가지였다. 수술과 마취의 위험성은 물론 결혼식에 맞춰 퇴원시켜 달라는 어머니의 요구는 바람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일단 복강경으로 시도합니다만, 상황이 무척 안 좋습니다. 수술 중 무리라고 판단되는 즉시 개복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는 괜찮으시겠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술 부위 상태에 따라 아예 손을 못 댈 수 있습니다. 이미 경구용 진통제로는 통증 조절이 안 되기 때문에 퇴원이 힘들 수도 있고요.”
“얼마나 사실 수 있을까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수술 역시 남은 생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보내시도록 하는 것이 목적일 뿐 연장시키지는 못합니다.”
엄윤희가 입조차 열지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말기 암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보호자 역시 시한부 선고가 어떤 뜻인지 이해하고 있기에, 어떤 의미를 가진 수술인지 잘 알고 있기에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
김지훈이 갑갑한 숨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