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105화 (1,105/1,329)

11화

70세 여자 환자. 송진순.

담도암이 확실했다.

종양 크기가 작지 않은 데다 이미 간을 포함한 주변 장기 및 조직을 직접적으로 침범했다. 원격 전이와 동일한 임파절 전이까지 다수 관찰됐다.

수술이 불가능한 말기 암이었다.

방사선 치료 또는 항암 치료로 종양의 크기를 줄이고, 임파선 전이를 없앤 후 수술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하지만 담도암은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암이었고, 간까지 침범한 이상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수술로 제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억지로 한다 한들 위험만 초래할 뿐이었다.

환자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 줄 수 있는 치료는 담도에 튜브(T-tube)를 넣어 담즙을 배출시켜 주는 보존 치료뿐이었다.

‘담도가 반 이상 막혔다. 황달은 물론 통증이 심할 수밖에 없는데 잘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네. 처음 진료받은 병원에서 진단하자마자 보존 치료를 권유했을 텐데 우리 병원에는 왜 왔지?’

“환자 들어오라고 하세요.”

심각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환자를 부르며 차트와 동봉된 의뢰서를 다시 살폈다.

마지막 CT를 찍은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말기에 달한 암이 주는 고통을 고려할 때 벌써 수술했어야 했다. 만일 수술 후 합병증이 생겼다면 응급실로 내원하는 것이 순서였지만 그마저도 맞지 않았다. 굳이 수술한 병원이 아닌 전문 병원까지 와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 데다 주소지마저 상당히 멀었기 때문이었다.

절대 병원을 전전할 때가 아니었다.

‘설마 아직도 수술을 안 한 거야? 의사가 권유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뭐지?’

환자가 들어왔다.

전형적인 말기 암 환자였다.

이미 체중까지 상당히 감소한 것으로 보였고, 딸로 보이는 중년 여인 두 명이 부축해야 할 정도로 허약해져 있었다. 평생 땡볕 아래서 일했는지, 아니면 간 기능 저하 때문인지 얼굴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뒤늦게 발견한 이유가 있었다.

눈꺼풀이 처져 흰자위를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오래전에 나타났을 황달조차 의심하기 힘들었다. 그보다 초기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거나, 자식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숨겼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어쩌면 운이 없는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갑갑한 숨을 내쉬었다.

‘간암, 담도암, 췌장암 모두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진행된 후 오는 경우가 많지만 볼 때마다 안타깝네. 보호자들을 봐서는 가난해 보이지 않는데 정기적인 검진이라도 받게 했어야지.’

“환자분, 앉으세요. 보호자분, 다른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는 확인했습니다. 병명은 알고 계시죠?”

“엄마도 아세요.”

진료 중 가장 힘든 경우 중 하나가 자신의 병을 모르는 환자 앞에서 설명하는 일이었다. 말기 암은 말할 것도 없이 어렵고 불편했다. 부담이 모두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편해졌다.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다.

T-tube만 넣은 경우에는 겉으로 수술 여부를 알기 힘들었다. 반면 수술받은 지 일주일도 안 됐다면 고령의 환자가 걸어서 내원했다는 사실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십중팔구 배를 열어 수술했을 텐데 말이다.

‘설마 아직도 안 한 건가?’

“보호자분, 수술을 권유했을 텐데 받으셨습니까?”

“사정이 있어 아직 못 받았어요.”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보호자가 걱정이 앞서다 못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가족의 의사와 달리 환자가 고집을 부렸다는 말이었다. 남은 날 동안 고생만 더 할 뿐이라는 생각에 착잡한 한숨이 절로 터졌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긴 했다.

소화불량부터 시작해 상복부의 은근한 통증으로 오랜 기간 시달렸을 것이다. 자식 걱정 시키지 않겠다고 배가 끊어지고도 남을 통증까지 숨기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돼서야 말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받았을 시한부 선고!

환자의 의지를 완전히 꺾고도 남았다.

‘어차피 치료할 수 없는 상태긴 하지만 그동안 정말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을까?’

“환자분, 죄송한 말씀이지만 검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도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힘들어서 안 됩니다.”

보호자가 눈물을 흘렸다.

“엄마, 자식이 넷이나 되는데 왜 혼자 살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선생님, 멀리서 혼자 사시는데 자주 못 가 본 우리 잘못이에요.”

“너희들 잘못 없다. 내 탓이야. 내 탓. 살 만큼 살았어. 조금만 더 살면 돼.”

“엄마! 왜 그래?”

숨죽인 울음이 터졌다.

환자의 목소리가 의외로 담담했다.

힘이 없을 뿐이었다.

오가는 말로 볼 때 암 말기라는 사실을 모를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지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를 보는 딸들의 가슴이 찢어지고도 남았다.

김지훈이 냉정을 유지했다.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결국 환자는 아프고 힘들기 때문에 오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의사의 의무였다. 송진순 환자의 경우 남은 생을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환자분, 초기가 아닙니다. 암이 생각보다 많이 진행됐습니다.”

“말기라고 들었어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자식 앞이라 태연한 것인지, 생의 끝자락에 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초연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부정을 넘어 긍정의 단계에 들어섰는지도 몰랐다. 어떤 상태에 있든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알고 계셨군요. 그래서 더더욱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 상태로는 너무 힘드실 겁니다.”

“다른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받아야 할 것 같고요. 선생님께서 수술해 주세요.”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황이 맞지 않았다.

보존 치료만 가능한 상태였고, 단순히 T-tube만 넣는 수술은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이라면 어디서나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우리 병원까지 올 이유가 있나?’

혹시 몰라 보호자의 주소까지 확인했지만 다들 병원과 상당히 먼 곳이 연고지였다. 수술 후에도 지속적인 간호가 필요한 이상 의사의 욕심을 부릴 일이 아니었다.

“한동안 입원하셔야 하는데 보호자분이 사는 곳과 가까운 병원이 좋지 않겠습니까? 수술만으로 끝나는 상황이 아니라 여러모로 꽤 불편하실 겁니다.”

“배 안 열고 수술하신다는 소리 들었어요. 제가 가급적 빨리 일어나야 해요. 늦어도 일주일 내에 퇴원했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았어요.”

분명 복강경 수술을 원하고 있었다.

말기 암이 의심될 때 정확한 진단을 위해 시행하는 경우가 있지만 치료를 목적으로 택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더구나 특정 수술 방법을 택하다 못해 정해진 시한 내에 퇴원까지 시켜 달라니 영문 모를 일이었다. 말기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약속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말기 암 환자는 수술 자체로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퇴원 날짜까지 정하고 수술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안 돼요. 그럼 난 수술 못해요.”

“엄마! 제발 고집 부리지 마. 매일매일 쩔쩔매면서 왜 그래? 진통제도 소용없다는 거 우리도 다 알아. 오래오래 편하게 살아야 될 거 아니야?”

“다른 것 다 필요 없다. 우리 윤희 결혼하는 거 보고 죽는 게 어미의 마지막 소원이야. 너희들은 아빠 얼굴이라도 보고 자랐지만 윤희는 젖도 제대로 못 물렸어.”

딸들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환자는 완강한 표정만 지었다.

‘딸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네.’

대충 짐작이 갔지만 모녀 사이의 실랑이를 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수술이 늦어질수록 환자의 고통만 더욱 극심해질 것이 빤했다.

“다들 진정하세요. 어머니, 복강경을 원하시고, 일주일 안에 퇴원하길 원한다는 말씀이시죠?”

“예.”

“따님 결혼식 때문인 것 같은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술이 잘된다고 해도 일주일 내에 퇴원하기 힘드실 수가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온 거예요. 수술 안 받고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는데 하루하루가 달라요. 우리 막내 결혼하는 것도 못 보고 갈까 봐 너무 무섭네요. 차라리 일찍 죽었어야 했어요.”

환자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정이 딱하다고 무작정 약속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황이 허락한다면 딸의 결혼식을 연기하는 것이 도리어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아니면 참석을 포기하는 것 역시 방편 중 하나일 것이다.

“저로서는 어머니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네요. 하루하루가 다르다고 하셨죠? 보존 수술을 하지 않으면 점점 더 힘들어질 겁니다. 따님 결혼식 참석이 그보다 더 중요합니까?”

송진순 환자가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은 모르세요.”

가슴을 진정시킨 딸이 상황을 설명했다.

환자의 막내 딸 엄윤희는 유복자였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말 그대로 젖도 제대로 못 먹이고 키웠다.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억척같이 산 어머니였지만 가난을 쉽게 벗어나지 못해 딸 넷 모두 간신히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사랑과 우애를 잊지 않았다.

가족 모두 서로를 의지하며 열심히 살았다.

가난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일찍 자립한 언니 셋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엄윤희 역시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취직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야간 대학까지 졸업했다.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기에 대견하기만 했다. 그러나 홀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가 으레 그렇듯 무엇 하나 도와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항상 걱정뿐이었다. 그래도 다들 살 만해져 행복한 날을 꿈꿀 수 있었다.

“무릎하고 허리가 아파 고생하시면서도 매일 막내 결혼시켜야 한다면서 일을 멈추지 않으셨어요. 올해 막내가 서른인데 사위 될 사람을 데리고 와 엄마도 한시름 덜었다며 무척 좋아하셨어요.”

호사다마라!

툭하면 여기저기 불편해하는 엄마 생각에 서둘러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그때라도 검사를 해야 했건만 단순히 속이 안 좋은 것이라 여겨 가족 모두 지나쳤다.

끙끙 앓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막내 결혼을 두 달 남기고서야 여전히 고집을 부리는 엄마를 억지로 끌고 가 개인 병원에서 검사를 했다. 초음파에서 이상이 보인다며 큰 병원을 권유했다.

예약이다 뭐다 시간이 끌렸다.

간신히 정밀 검사를 받고 노심초사 결과를 기다린 끝에 받아 든 것은 말기 담도암이었다. 짧으면 삼 개월, 길면 육 개월이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남은 생을 그나마 편안하게 지내려면 보존 수술이라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혼식을 불과 삼 주 앞둔 때였다.

하늘이 무너졌을 것이다.

“배를 열고 수술해야 하는데 회복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말에 엄마가 막내 결혼식을 꼭 봐야 한다며 수술을 거부했어요. 고집이 보통 아니셨어요.”

수술 후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었지만 심하게 겁을 먹었을 것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 입장에서는 수술 자체가 의미 없었을 수도 있었다.

“울며불며 매달려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런데 며칠 전 연락이 온 거예요. 지금도 내색하지 않는 엄마가 얼마나 아팠는지 병원 데려다달라고 하면서…….”

마약성 진통제로도 조절하기 힘든 암성 통증이었다. 먹는 약은 물론 주사제도 소용없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만 들었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만 터트렸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애초 복강경을 생각할 상황이 아닌 데다 배제해야만 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담도암의 위치상 T-tube를 넣을 만한 공간이 거의 없었다. 만일 암이 침범한 담도까지 열어야 한다면 아예 아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탓에 복강경이 훨씬 더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병원 역시 개복을 권유했을 것이다.

김지훈 역시 환자의 개인적 상황을 몰랐다면 당연히 배를 열고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을 테고, 보다 안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환자의 마지막 소원은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고 평생 미안해하며 가슴을 아파했던 어머니가 막내딸의 결혼에 남은 생을 바치고 있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라파로로 할 수는 있지만 개복보다 훨씬 위험하다. 만일 문제가 생긴다면 퇴원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환자의 마음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어머니, 복강경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통증이 오면 꼼짝할 수가 없어요. 이 상태로 가면 우리 막내 결혼을 아예 못 볼 것 같아요. 선생님, 제발 그때까지만 절 살려 주세요.”

너무도 절박한 모습이었다.

불현듯 이 상황을 모를 리 없을 텐데 함께 오지 않은 막내딸에게 화가 났다. 아무리 인륜지대사라 해도 결혼이 엄마의 남은 생보다 소중할 수는 없었다. 가족 모두 머리를 맞대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 마땅했다.

“막내 따님은 왜 같이 오지 않았습니까? 어머니 상태를 알고 있는 겁니까?”

환자가 펄쩍 뛰었다.

“절대 알리면 안 돼요. 평생 하나도 도와주지 못했는데 여기까지 혼자 힘으로 온 아이예요. 끝까지 딸자식 앞길을 망치는 어미가 될 수는 없어요.”

보호자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고 있지만 수술받으러 온 사실은 몰라요. 날도 얼마 안 남았고, 엄마 병을 알고 난 후에도 도리어 걱정해 준 사돈 되실 분들께 폐를 끼칠 수 없다면서 막내에게 알리지 말라고만 하시네요.”

볼 때마다 눈물만 흘렸을 막내딸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난감하네. 라파로로 시도해야 하나?’

김지훈이 고민에 빠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