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김지훈이 크게 기지개를 폈다.
생체 간 이식 환자의 최종 면담까지 바쁘고 힘든 하루였다. 공여자 수술을 맡은 이준영 교수와 세 번째 간 이식을 앞둔 손일석의 수술 팀의 열정 덕에 무사히 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김 과장, 다음 주부터 이 주 내내 수술이 꽉 찼다며? 그것도 메이저로 말이야.”
“꽉 찬 건 아니야. 어떻게 알았어?”
“민정호 파악이 늦어져서 그렇지 내가 누구냐? 슬슬 발동 걸리는데 간 이식도 일주일에 두세 개씩 하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팍팍 감이 와.”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제 수술한 환자가 생각날 때마다 감당할 수 있을지 살짝 겁이 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소리 하고 있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질환은 예외로 둬야지. 우리 병원 의료진이 대학 병원 못지않은데 뭐가 걱정이야? 단단히 붙들어 매고 수술이나 잘하셔.”
“그치? 빵빵한 건 사실이야. 참! 금요일에 당직이지? 나하고 바꾸자. 다음 주에는 당직을 서기 힘들 것 같아.”
“수술 많다고 은근히 자랑하네. 나도 혈관 수술이 밀려 있어서 안 돼.”
‘튕기긴! 그래도 아쉬운 건 나네.’
김지훈이 헤헤 웃으며 손을 비볐다.
간신히 허락을 얻은 후 중환자실로 향했다.
오후 검사 결과부터 찾았다.
김지훈이 눈만 껌벅였다.
서도진과 이혁원도 의외라는 표정만 지었다.
오전 검사와 분명하게 차이가 났다.
떨어질 줄 모르던 간 효소와 황달 수치가 오전보다 확실하게 낮아졌다.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구분이 안 되던 담즙도 나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환자 상태도 변했다.
자발 호흡이 상당히 강해졌다.
가끔씩 눈을 뜨며 힘차게 파이팅을 했고, 불상사를 대비해 묶어 놓은 팔다리까지 제법 힘차게 움직였다. 의사의 말에 정확히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것만으로도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빠른 변화에 도리어 믿기 힘들었다.
“고경철 선생, 유인철 환자 검사 맞아?”
“맞습니다. 저도 혹시 샘플이 바뀌었는지 몰라서 재차 내보내 나온 결과입니다.”
김지훈이 결과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황스러울 정도네. 서도진 선생, 이 정도면 간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 같은데 성급한 판단은 아니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상태로 간다면 간성 뇌증에서도 확실하게 벗어날 것 같습니다.”
“인투베이션 제거할 시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겠어. 그래야 정확하게 의식 상태를 파악할 수 있잖아?”
“내일 아침 상태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정말 기대하지 못한 회복이었다.
‘나도 이렇게 기쁜데 보호자 마음은 어떨까?’
“면회는 끝났나? 어땠어?”
“다른 환자와 비슷한 경과를 밟아 간다고 설명은 했는데 울기만 하시더라고요. 인공호흡기도 떼지 못했으니 엄마 눈에 괜찮아 보이겠습니까?”
“그렇겠지. 어쨌든 희망이 보이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자. 어느 정도 회복돼야 다음 간 이식을 마음 놓고 할 거 아니야?”
“초급성 거부 반응은 없겠죠?”
“없어야지.”
일주일은 지켜봐야 했다.
김지훈은 물론 서도진과 이혁원도 바람일 뿐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면역 억제제 이외에 달리 방지할 방법이 없었고, 이식 환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다른 장기 이식과 간 이식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신장은 투석이라는 생명 유지 치료라도 있지만 간은 대체할 장비 자체가 없었다. 유인철 환자처럼 간을 모두 제거한 경우에는 단지 수술 실패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환자를 잃게 된다.
의료진에게 이보다 더 큰 부담은 없었다.
희망 속 불안이 진하게 감돌았다.
시간이 꽤 늦었다.
이렇게 일하다간 강철도 부서질 것이다.
김지훈이 부지런히 퇴근했다.
누구 닮았는지 밤잠 없는 희연이와 함께 부엌으로 직행했다. 텁텁한 입에는 고춧가루 팍팍 뿌리거나 청양고추로 칼칼한 맛을 낸 라면이 최고였다. 땀 한 번 흘리고 나면 라면 국물에 찬밥까지 한 그릇 말아 뚝딱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진리였다.
물론 핀잔먹었다.
“지훈 씨, 희연이도 먹겠다는데 이렇게 맵게 끓이면 어떻게 해요? 도대체 고추를 몇 개나 넣은 거야. 애 생각은 안 해요?”
“잘만 먹는구만.”
“물에 씻어 먹여도 애 얼굴 빨개진 거 안 보여요?”
“강하게 키우는 겁니다. 아! 피곤해. 희연아, 엄마 화났나 봐. 오늘은 아빠하고 잘까?”
좋다고 안길 줄 알았건만 엄마 품에 쏙 안겼다. 하긴 최근 한 달 정도만 아빠 얼굴 자주 봤지,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하고 보냈으니 언감생심이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났다.
‘나보다 처제를 더 좋아한다고 했었지?’
외벌이면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맞벌이였다. 그저 고경아 만세를 부르며 잠자리에 눕는 수밖에 없었다. 희연이의 작은 손이라도 잡아 보겠다고 발버둥 치던 김지훈이 어느새 꿈나라로 달려갔다.
거의 하루 반 만에 청하는 편안한 잠이었다.
***
금요일 아침.
김지훈의 수술 팀과 윤석진이 긴장된 얼굴로 유인철 환자를 바라보았다. 검사 결과와 환자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의료진 전체 의견을 취합했다.
“인투베이션 빼도 되겠지?”
“자발 호흡 강하고, 눈으로 의사 표현을 정확히 합니다. 간 효소와 황달 수치도 거의 사분의 일 수준으로 떨어진 이상 제거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좋아. 고경철 선생, 튜브 빼.”
찌이이익! 찌이이익!
기도와 기관지의 가래를 제거했다.
환자가 상당히 격렬하게 반응했다.
청신호였다.
튜브를 제거했다.
거칠게 숨을 내뱉은 환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육신의 반응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잠시 안정되기를 기다렸다.
김지훈이 환자를 보며 소리쳤다.
“유인철 환자분, 정신이 들어요?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어요?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까 대답해 보세요.”
환자가 눈만 껌벅였다.
내원했을 때부터 섬망을 동반한 혼미한 상태였다. 단 한 번도 환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다. 눈이 아닌 말로 대답하고, 표현해야 의식 상태를 정확히 판정할 수 있었다.
긴장이 감돌았다.
김지훈이 다시 소리쳤다.
“환자분, 내 말 들려요? 말할 수 있겠어요?”
환자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예.”
탁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의료진 모두 훅훅 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의식만 돌아온 것이 아니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봤기 때문이었다.
“여기 어딘지 알겠어요?”
환자가 고개를 저었다.
“고개 말고 말로 하세요.”
“몰라요.”
단 두 마디였지만 의식이 완전히 돌아왔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스물다섯 청년, 유인철이 마침내 간성 뇌증에서 벗어난 것이다.
간이 육신에 축적된 노폐물과 독소를 확실하게 제거한다는 의미였다. 한결 나아진 몸 상태는 간에 가해지던 부담을 줄여 기능을 더욱 활성화시킬 것이다.
선순환이자 터닝 포인트였다.
누구보다 간절한 사람이 있었다.
곧바로 환자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았다.
갑작스러운 면회는 온갖 불길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었다. 주춤주춤 겁먹은 얼굴로 다가오던 부모가 인공호흡기를 뗀 채 눈을 뜨고 있는 아들을 보자마자 무너지듯 달려왔다. 아들만큼 커다란 복부 절개창을 가진 아버지는 배에서 전해지는 통증까지 잊었다.
“인철아! 인철아!”
“아버지! 어머니!”
얼마 만에 듣는 목소리일까?
어머니의 눈물이 쏟아졌다.
자신의 간으로 아들을 살린 아버지도 지금까지 참아 왔던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아무 기억도 없을 아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뒤돌아섰건만 들썩이는 어깨를 감추지 못했다.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제 우리 아들 괜찮은 거죠?”
“진정하시고, 지금은 아드님과의 시간을 가지세요. 무리하게 말을 시키진 마시고요. 자세한 얘기는 면회 끝난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30퍼센트에 불과한 생존율을 이겨 내기 시작한 환자였다. 초급성 거부 반응부터 완전하지 않은 간 기능까지 고비가 산적했지만, 다른 환자와 비등한 정도의 위험이었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헌신이 있기에 반드시 이겨 낼 것이라 믿었다.
김지훈은 확신했다.
설명하는 내내 목소리에 힘을 잃지 않았다.
수술 후 사 일째였다.
면회가 끝나고, 회진까지 다 돌았다.
다들 바빠 보였다.
‘나만 할 일이 없네. 시간이나 빨리 가라.’
쩝쩝 입맛을 다시는 순간 서도진이 슬쩍 붙었다.
“과장님, 할 일 없으시죠? 놀면 뭐 합니까? 중환자실 환자 킵 부탁드립니다.”
“내가? 너희들은 뭐 하고?”
“어제 제출한 수술 스케줄을 벌써 잊으셨어요? 다른 파트 지원 나갑니다. 주신다는 수술도 병옥이나 나나 고작 한 건으로 끝났는데 어시스트라도 열심히 서야죠. 한 건이라니! 후우! 그럼 수고하십시오.”
김지훈이 머리만 벅벅 긁었다.
예약된 메이저 수술은 이미 자신이 집도하기로 결정됐고, 서도진이 그렇게 믿었던 간 이식마저 이 주에 한 건 꼴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당장은 오늘 하루가 문제였다.
‘하루 종일 유인철 환자 옆에 있어야 하나?’
과장이 돼서도 킵을 하다니 신세가 처량했지만, 덕분에 회복에 들어선 환자를 집중적으로 볼 수 있었다. 때때로 자신은 물론 주변 상황을 궁금해하는 환자의 모습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중간중간 엉덩이 뗄 일까지 벌어졌다.
‘수술 없다고 또 불러 대는구나. 이 정도면 간성 뇌증에서 확실하게 벗어나고 있으니까 상관없겠어. 좋다. 이 맛에 의사 하고, 수술하는 거지. 하하하!’
어느새 저녁이었다.
띠리리리리!
응급실에서 호출이 왔다.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이제 막 어두워졌는데 또 왔어? 한 달 넘는 순간부터 정말 확확 변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야. 그래서 그런지 민 부원장 얼굴을 보기 힘드네.’
예약만 잔뜩 있을 뿐 정규 수술은 이번 주까지 개점휴업 상태였다. 대신 이런저런 환자로 슬슬 바빠지기 시작한 응급실의 핵심 표적이 됐다.
물론 절대 자의가 아니었다.
당직을 바꾼 걸 어떻게 알았는지 대낮부터 환자가 왔다. 오늘따라 다른 파트의 정규 수술이 넘쳐 김지훈의 파트마저 대부분 수술 방에서 살았다.
결국 응급으로 두 건이나 수술했다.
마이너라 해도 좋았다.
바라 마지않았던 일이었다.
팡팡 돌아가는 수술실과 제법 많은 환자로 붐비는 외래를 보며 가슴이 정말 뿌듯했다. 뒤처지지 말라는 듯 하루 전 진료에서 또 한 건의 수술 예약까지 잡았다.
이 주 앞까지 수술이 꽉 찼다.
김지훈이 콧노래를 부르며 바삐 움직였다.
‘간 이식 환자와 공여자, 수요일에 휘플을 할 환자까지 모두 차질 없이 입원했단 말이지? 갑자기 술술 풀리니까 오히려 불안하네.’
정말 심장이 뛰었다.
다른 이유 없었다.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함께 당직을 선 나종진과 고경철이 자연스럽게 폭탄을 맞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응급실과 수술실을 뱅뱅 돌았다. 덕분에 오전부터 이어진 킵을 한밤중까지 확실하게 했다.
입을 열기 힘들어 주로 듣기만 하던 유인철 환자가 김지훈을 볼 때마다 눈을 뜨며 뜨문뜨문 자신의 병과 상태에 대해 물었다.
김지훈이 자세하게 말했다.
안정을 취해야 했지만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모른다면 도리어 불안을 야기할 수 있었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오히려 부모부터 걱정했다.
정신적으로도 무척 강한 청년이었다.
“환자분, 지금은 오직 자신에게만 신경 써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길입니다.”
“간까지 주셨는데 편해질 수 있을까요?”
“환자분에게 달린 일이겠죠.”
“그런데 제가 왜 이런 병에 걸린 거죠?”
차마 추측되는 원인을 말해 줄 수 없었다.
한약과 건강식품을 먹인 어머니 탓도, 아세트아미노펜을 과다 복용한 아들 탓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로가 자신을 자책할 수도 있었다. 단지 의사들의 추측에 불과한 문제기도 했다.
“우리도 잘 모릅니다. 희한한 병이죠?”
깊게 잠들 수 없는 중환자실, 여전히 괴로울 육신, 부모에 대한 마음의 부담까지 모든 것이 힘들 환자였다. 몇 마디 나누다 말고 눈이 감겼다.
김지훈이 조용히 일어났다.
그때 환자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고맙습니다.”
가슴이 울컥했다.
수없이 들었고 어색하지 않은 말이었건만, 이상스레 마음을 울렸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아들과 한없는 사랑을 보인 어머니와 아버지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음은 편하건만 몸은 상당히 힘들었다.
당직이 점점 장난 아니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