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김지훈이 소파에 몸을 눕혔다.
연구실 창가로 흐릿한 빛이 번졌다.
‘서울보다 빛 공해가 훨씬 덜하네.’
당직 때도 아니고 정규 수술 후 밤이 늦어 소파에서 새우잠을 청하기는 개원 후 처음이었다. 서울 병원에서는 밥 먹듯 벌어졌던 일이 의외로 낯설었다.
눈은 뻑뻑하기만 한데 너무 피곤한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출근해 열세 시간 동안 단 하나의 수술을 하고 이제야 몸을 누였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아침에는 호흡기를 뗄 수 있을까? 환자 아버지는 잘 회복되고 있겠지? 뭐라고 설명해야 환자 어머니가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아! 배고프다. 컵라면이라도 먹을 걸 그랬나?’
이 생각 저 생각에 뒤척이던 김지훈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가물가물 몽롱해지는 순간 고개를 툭 떨어트리며 사정없이 코를 골았다.
드르렁! 드르렁!
얼마나 지났을까?
김지훈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말도 못할 피곤 속에 불과 두세 시간 남짓 잤을 뿐인데 평소처럼 일어나다니 습관이란 놈 참 무서웠다. 한때 침대보다 더 즐겨 이용했던 소파가 이젠 불편해졌는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이었다.
머릿속에 납덩이 하나 들었다.
팔다리가 찌릿찌릿 찌뿌둥했다.
온몸이 노곤노곤 물 위에 붕붕 뜬 것 같았다.
피곤이 채 풀리지 않았지만 소파 위에서 뒹굴뒹굴 굴러 봐야 몸만 무거워질 뿐이었다. 기지개 펴며 크게 하품 한 번 하고 일어났다.
천근만근 몸이 잘 따라 주지 않았다.
‘조금 더 잘 걸 그랬나?’
찬물 덕에 그나마 졸음이 달아났다.
옷장을 열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개원 전에는 숱하게 필요할 줄 알았는데 이제야 여벌로 갖다 놓은 옷을 입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외박 아닌 외박이 가족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병원이나 간 이식 분야의 대가가 되고 싶은 자신에겐 딱히 불리한 것이 없는 일이 분명했다. 사실 이 땅의 모든 외과의가 짊어진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몸이 상당히 피곤해 문제지만 말이다.
연구실을 나온 김지훈이 어디를 먼저 갈지 잠시 망설이다 재빨리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먹어야 힘을 낸다.’
야간 당직을 마친 직원 몇몇이 이른 식사를 위해 들어오다 말고 깜짝 놀랐다.
“과장님, 벌써 출근하신 겁니까? 설마 밤늦게까지 수술하셨다더니 퇴근 못하신 건 아니죠?”
“그렇게 됐네요. 밤새 수고하셨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다들 눈가에 졸음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아픈 사람을 상대하는 일 자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대단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게다가 야간은 주간보다 몇 배 힘든 법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의료진을 포함해 모든 직종의 직원이 이십사 시간 내내 상주해야 하는 병원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왠지 안쓰러웠다. 잠시도 쉬지 못하는 격무까지 더해져 이직이나 퇴직이 많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나마 한가한데도 저렇게 힘드니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어쩌나! 월급이라도 많이 받았으면 좋겠는데, 병원 재정이 빤한 상황에서 무작정 많이 줄 수도 없고 참 난처한 문제네.’
문득 제 몫 하라는 민정호의 말이 떠올랐다.
병원 수입은 거의 대부분 의료진을 통해서 창출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일반 직원이 없다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똑같이 월급 받는 처지건만 병원 설립을 주도했단 사실이 무척 큰 책임으로 다가왔다.
‘힘내자, 힘!’
김지훈이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웠다.
곧바로 유인철 환자를 찾았다.
항상 피곤에 찌들어 사는 고경철이 오늘도 아침 검사 결과를 챙기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안 힘든 사람이 없네.’
“고경철 선생, 환자 어때?”
“인공호흡기는 자발 호흡 모드로 유지했습니다. 다행히 다른 아침 검사 결과는 괜찮은데…….”
말꼬리를 흐렸다.
상당히 빠른 시간에 담즙이 배출돼 극적인 호전을 기대했건만 간 효소와 황달 수치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바이탈과 관련된 지표, 혈소판과 백혈구 수치가 양호하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패혈증에 안 빠진 게 참 신기하네. 스물다섯답게 털고 일어납시다.’
“이혁원 선생은?”
“새벽까지 킵한 후 저하고 교대하신 뒤 당직실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아침 먹는다고 하면 깨워서 같이 밥 먹고 와.”
고경철이 머리를 긁적였다.
“전 이제 습관이 돼서 괜찮습니다.”
“어제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수술실에서 살았어. 이혁원 선생 걱정돼서 하는 소리니까 빨리 가 봐. 너도 시간 되면 아침 꼭 챙기고.”
처남 사랑은 매형 몫이고, 후배 사랑은 선배의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그래야 힘 다 떨어졌을 때도 대접받고 살 수 있는 법이다.
김지훈이 휘휘 빨리 가라고 손을 저었다.
차근차근 환자를 살폈다.
지난밤 바이탈은 잘 유지됐고, 호흡도 나빠지지 않았다. 드레인 양상은 수술 후 첫날에 흔히 볼 수 있는 양상이었다.
수술 전 환자 상태와 썩어 가는 것처럼 보인 간을 생각하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회복의 징조나 암시가 아니었다.
관건은 담즙 생성과 배출이었다.
원활하게 흐른다면 간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는 소리였고, 곧 황달까지 사라질 것이다. T-tube에 연결된 주머니를 통해 추측할 수 있었다.
주머니에 고인 담즙은 보이지 않았다.
관에 맺힌 2~3CC 정도의 담즙이 다였다.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지만 거부 반응에 수술 후 합병증까지 고비가 한두 가지가 아니네. 후우!’
수술 환자를 위협하는 요소인 폐렴, 감염, 출혈 등등 하나하나가 모두 치명적으로 작용할 환자였다. 당장은 완전하지 않은 자발 호흡과 의식 상태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급선무였다.
잠시 수그러들었던 긴장이 다시 느껴졌다.
간이 제대로 기능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선을 다해 환자의 변화에 대응하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만이 남았다.
불안한 마음에 이혁원이 직접 낸 오더를 일일이 확인했다. 흠잡을 데 없었지만 사소해 보이는 내용까지 재차 고민하고, 점검했다.
‘정말 어려운 환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술 타이밍이 늦었어. 만일 전격성 간염 환자가 또 온다면 단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이식을 시행해야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잠시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중환자실을 나왔다.
가장 어려운 사람을 만나야 할 때였다.
환자 어머니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남편 수발까지 겹쳐 한잠도 못 잔 얼굴이었다.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 다행이었다. 최소 남편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었다.
“선생님, 우리 아들은요?”
김지훈이 눈가를 흐렸다.
좋은 말, 희망적인 말만 해 주고 싶었지만 당장 한 시간 앞도 예측할 수 없었다. 객관적인 설명 또한 보호자를 무척 힘들게 만들 것이 빤했다.
적절한 타협이 필요했다.
“다행히 우려했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아직은 지켜봐야 합니다.”
“언제까지요?”
“급성 거부 반응까지 고려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주일 이상 걸립니다. 아드님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이식 환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간입니다.”
위안이 될 리 없었다.
환자의 어머니가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아들 살 수 있는 거죠?”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30퍼센트에 불과한 예후도 모자라 늦었을지 모르는 수술이었다. 최선을 다했으니 지켜보자는 소리는 의료진의 부담만 덜어 줄 뿐 보호자에게 어떤 의미도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대신할 말이 없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무릎이 후들후들 떨렸다. 하지만 엄마이자 아내는 강한 존재였다. 수술 전 받은 충격, 자책, 혼란에서 벗어나 꿋꿋하게 버텼다.
“면회는 가능한가요?”
“조치하겠습니다. 아버님은 어떠신가요?”
“자기 몸부터 챙겨야 하는데 아들 걱정만 하고 있어 걱정이에요. 혹시 우리 애 아빠 보시면 선생님도 말씀 좀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이준영 교수가 회진을 돌기 직전이었다.
“환자 어때?”
김지훈이 수술 소견까지 모두 설명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듣던 이준영 교수가 회진을 미루고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뾰족한 방법이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많은 도움이 됐다.
“수술 후에 환자 바이탈이 유지된다는 소리는 수술이 늦지 않았다는 의미야. 수술도 잘됐으니까 다른 간 이식 환자와 똑같이 대처하면 돼.”
언제 들어왔을까?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면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모를 수 없었다. 아마도 평소처럼 창 너머에서 빤히 보고 있었을 것이다.
“보셨습니까?”
“들었다.”
“그게 그거죠. 보셨네요.”
“뭐?”
“하하하! 아닙니다.”
항상 곁에서 지켜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자신이 키운 제자라고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며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스승이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힐끗 눈길을 주었다.
“점심때 더 자 둬.”
‘스승님도 내 걱정을 다 하시고 나이 들으셨네.’
“괜찮습니다.”
“오후 회진 끝나고 다음 주 간 이식 시행할 환자 최종 면담이 있잖아. 그 얼굴로 만날 거야? 의사가 피곤해 보이면 환자는 불안한 법이야.”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며 머리를 톡톡 쳤다.
어제 수술의 부담이 워낙 커 외래 예약 환자까지 제법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게다가 간 이식 환자의 최종 면담인 만큼 간단하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팽팽 놀다가도 한 번 일이 몰려오면 한도 끝도 없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김지훈이 후다닥 발을 놀렸다.
회진부터 진료까지 모두 정확하고 간결하게 진행해야 할 때였다. 스승의 말마따나 피곤한 얼굴로 몸뚱이 질질 끌고 다니면 환자도 가자미눈을 뜰 것이다.
‘힘내자.’
개원 후 한 달이 넘어가는 날.
지난날의 한가함이 싹 사라졌다.
혹시 단 이틀 동안만 반짝이는 걸까?
스승의 지엄한 명을 따라 재빨리 점심 식사를 해결한 김지훈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연구실 소파에 누워서도 눈이 말똥말똥했다.
오전 진료가 정말 알찼다.
두 건의 메이저 수술이 예약됐다.
간 일부 포함해 절제해야 하는 담낭암과 휘플이 필요한 췌장암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간 이식이 예정돼 있어 순간 수술 날짜까지 고민했다.
답은 간단했다.
서울 병원에서 근무할 때처럼 전공의와 수술 팀을 만들어야 했다면 고민이 길어졌을 것이다. 한 주에 간 이식을 포함한 세 건의 메이저 수술은 분명 무리였다. 수술 이상으로 수술 후 치료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전문 병원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검증된 써전인 서도진과 강병옥에 서도훈까지 있다. 이혁원과 송진우는 펠로우를 넘어 후배 사인방과 버금가는 의사로 발전하고 있었다.
환자도 당연히 빠른 수술을 원했다.
‘월, 수, 금에 하나씩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우리 병원의 능력을 보여 줄 때다. 가만! 이렇게 되면 다음 주에 서야 하는 당직이 문제네. 이번 주로 당겨야겠어. 일석이하고 바꿀까?’
은근히 흥분됐다.
결국 잠 못 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후 진료까지 넘치지는 않았다. 살짝살짝 졸음이 몰려왔지만 오전 진료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충만했다.
김지훈이 다른 때와 달리 여유롭게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외래 간호사와 한 잔의 커피까지 즐겼다. 잔이 바닥을 보일 무렵 서도훈이 찾아왔다.
“외래 끝났구나. 커피 한잔할래?”
“예, 주십시오. 과장님, 환자 때문에 상의할 일이 있습니다. 췌장 종물 환자가 라파로를 원합니다.”
의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긴장을 한껏 풀고 있던 김지훈이 바로 고쳐 앉았다.
“라파로로? 쉽지 않은데 하기로 결정했어?”
“당연히 수술 가능하다고 했는데 제가 경험이 없다는 게 문제잖아요. 그래서 집도는 과장님이 하실 거라고 말해 뒀고, 모레 선생님 앞으로 진료 예약했습니다.”
서도훈은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최초로 시도한 김지훈의 수술을 먼저 보고 배우는 것이 합당한 결정이었다.
“알았어. 이번은 내가 수술하지만 다음번에는 서도훈 선생이 집도해야 돼.”
“수술은 언제 하실 겁니까?”
“다음 주는 불가능하고, 그다음 주 월요일에나 가능해. 일석이 간 이식을 봐야 하는데 안 되겠네. 아쉽다.”
“알겠습니다. 환자에게 연락해 수술 일정까지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직접 전화까지?’
환자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열의였다.
배워야 할 자세였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환자 신상과 상태를 듣던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메이저 수술을 줄줄이 하게 생겼다.
하나같이 점심 혹은 저녁까지 건너뛰어야 하는 큰 수술이었다. 당연히 수술 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 한동안 바삐 움직여야 할 것이다.
정말 일이 몰려드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