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간 문맥은 간 정맥보다 혈류가 강하고, 대동맥과 연결된 간 동맥보다는 약한 혈관이다. 그러나 가해지는 압력만 낮을 뿐 소장에서 영양분을 흡수한 혈액이 모두 통과하기 때문에 혈류량은 동맥보다 오히려 많은 구조물이다.
당연히 꼼꼼한 연결이 필요했지만 전격성 간염은 간만 스펀지처럼 만든 것이 아니었다. 주변으로 확산된 염증으로 문맥 역시 상당히 약해졌다.
특유의 탄력을 잃었다.
흔들리지 않은 손에도 불구하고 김지훈의 긴장이 극에 달했다. 신중하게 바늘을 통과시키고, 확실하게 실을 조였지만 수처 내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미세한 틈이 눈에 걸렸다.
‘문맥이나 동맥이나 대량 출혈을 발생시킬 수 있다. 더 조여야 하나? 이 이상 강하게 당기면 조직이 견딜까?’
실도 문제였다.
연속 수처를 하는 이상 실이 끊어지면 봉합한 부위 전체가 벌어진다. 처음부터 다시 봉합하는 것 이외에 수습할 방법이 없었다. 일종의 타이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김지훈과 서도진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였다.
각자 자신의 판단에만 맡길 수 없었다.
집도의라 해도 말이다.
“서도진 선생, 이 정도면 괜찮을까?”
“힘을 더 주면 실이 끊어질 겁니다.”
“간격을 좁혀야 할까?”
“혈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한쪽 눈에만 착용한다고 해도 시야가 무척 좁아지는 루뻬의 단점은 또 다른 위협이었다. 이혁원의 판단 또한 무척 중요했다.
“이혁원 선생, 전체적으로 볼 때 어때?”
“적절하게 보입니다.”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
덕분에 긴장과 불안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간 이식과는 모든 과정이 확연하게 달랐다. 마치 생소한 수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두 개의 문맥이 차츰차츰 하나로 연결됐다.
“서도진 선생, 확실하게 당겨.”
마지막 수처가 끝났다.
“컷!”
육안으로는 수처의 간격과 문맥과 문맥의 밀착까지 모두 완벽하게 보였다. 그러나 정맥만큼 굵은 데다 혈류량이 훨씬 더 많은 혈관이었다. 환자의 문맥 혈류를 차단하고 있는 혈관 겸자를 풀어 출혈 여부를 확인하고 싶을 만큼 김지훈은 확신하지 못했다.
“이리게이션(Irrigation:세척)! 석션! 거즈!”
봉합 부위를 깨끗하게 씻고, 거즈로 물기를 제거해 보다 자세하게 살폈다. 평소라면 안심하기에 충분했지만 전격성 간염이 혈관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만 확인했다.
‘후우! 아무리 불안해도 되돌릴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단 한 명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문제가 터지고도 남는다.’
아직 연결이 가장 어렵고 위험한 간 동맥과 혈관에 가려진 채 후복막에 바짝 붙어 있어 기구 조작이 쉽지 않은 담도가 남았다.
수술 예상 시간마저 상당히 초과했다.
전신 마취로 인해 환자에게 가해지는 영향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간성 뇌증까지 발생한 이상 수술 후 전신 상태마저 무척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반면 수술 팀의 피로도가 눈에 보였다.
다른 수술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긴장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 빤했다. 게다가 고경아도 체력이 떨어진 데다 마침 당직 간호사와 손을 바꿔야 할 시간이 됐다.
숨이라도 돌릴 휴식이 필요했다.
겸사겸사 지금 정리하는 편이 나았다.
“오 분만 쉽시다. 고경아 선생, 휴식 취하는 동안 당직 간호사에게 양해 구하고, 미리 손 바꾸세요. 그게 더 유리할 것 같네요.”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도 힘든 법이었다.
고경아가 힐끗 시계를 보았다.
다행히 오 분이나 십 분 상간이었다.
“수고하셨어요.”
“후우!”
서도진과 이혁원이 뻐근한 어깨를 연거푸 돌렸다. 우유 몇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는 수술 부위를 보며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어떻게 하면 무사히 수술을 끝낼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오 분이란 시간이 무척 짧았다.
간호사가 준비를 끝내자마자 수술이 재개됐다.
이식될 아버지의 간에 달려 있는 동맥은 상당한 탄력이 느껴졌지만 환자의 동맥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인체 중 가장 큰 장기답게 공급되는 혈액량이 어마어마했다. 뿐만 아니라 대동맥에서 바로 혈액을 받기 때문에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 역시 대단히 강했다.
수술 후 봉합이 풀리거나 느슨해져 출혈이 발생하는 순간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재수술을 들어가기도 전에 저혈량성 쇼크에 빠질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가 버틸 리 만무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끝까지 긴장을 풀면 안 된다. 집중하자.’
“동맥 연결합시다.”
짧고 강한 목소리로 수술 팀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손을 바꾼 간호사 역시 불안해 보였지만 손일석 팀의 메인 간호사인 만큼 신뢰하고도 남았다.
환자의 동맥이 심장박동을 따라 벌떡벌떡 뛰었다. 혈압이 유지되고 있다는 신호임에도 불구하고 수술 팀에게 더욱 강한 긴장을 불러왔다.
“수처!”
한 바늘, 한 바늘.
길게 이어진 채 혈관을 조이는 실.
루뻬로 보이는 두터운 동맥벽.
정맥이나 문맥 연결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과정이었지만 어려움은 더욱 가중됐다.
한 치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혈관 벽을 뚫고 나온 바늘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강하게 조여지는 실은 언제든 끊어질 것처럼 팽팽한 압력을 받고 있었다.
김지훈의 입이 바싹 말랐다.
혈관이 이어지며 내부 공간이 점점 좁아질수록 시야가 나빠졌다. 강한 집중력을 유지했건만 불필요할 정도로 긴장이 치솟았다.
“이리게이션! 석션!”
띠! 띠! 띠! 띠!
규칙적인 심박동만 수술실을 울렸다.
김진호 교수가 피곤한 눈가를 비비면서도 바이탈에 집중하는 한편 수술 진행을 예의주시했다. 돌발 상황이 터지면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할 의사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았다.
“마지막 수처 들어갑니다. 컷!”
두 개의 동맥이 하나로 이어졌다.
마침내 간 이식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혈관 연결이 모두 끝났다. 환자의 간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간을 보는 김지훈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확인이 남았다.
오랜 시간 혈류가 공급되지 않은 탓에 이식한 간이 진한 적갈색으로 변했다. 특유의 탄력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아들의 피가 제대로 흘러들어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경주한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아버지에겐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아들은 다시는 세상 빛과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지훈이 수술 팀과 눈을 마주쳤다.
“혈관 겸자 풉니다.”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동공이 확장되고, 식은땀이 맺혔다.
따가각! 따가각! 따가각!
혈관 겸자를 차례로 풀었다.
환자의 심장은 간과 달랐다.
강한 혈류에 납작했던 동맥과 문맥이 급격하게 불룩해졌다. 연결 부위가 당장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강한 압력을 받았다.
“거즈!”
미세한 핏방울이 점점이 묻었다.
혈류 유지가 가장 중요하기에 압박할 수 없었다. 가볍게 피를 닦아 내 심각한 출혈 발생 여부를 확인하며 바싹 말랐던 간이 피로 차기를 기다렸다.
정맥이 부풀어 올랐다.
아들의 피가 아버지의 간을 돌아 다시 자신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심장이 뛸 정도로 우려했던 심각한 출혈은 발생하지 않았다.
끝이 아니었다.
간이 본래의 색과 탄력을 찾아야 했다.
수술 팀 모두 긴장을 풀지 못했다.
째깍! 째깍!
숨 막히는 시간이 흘렀다.
간의 색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물렁했던 간이 약간은 탄탄해졌다.
혈관 연결 부위에서 지속적인 출혈이 관찰됐지만 어느 수술에서나 볼 수 있는 양상일 뿐이었다. 간 기능이 돌아온다면 저절로 멈출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또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었다.
“됐어. 진행하자.”
담도 연결이 시작됐다.
직전에 연결된 간 동맥과 간 문맥이 바로 인접해 있어 혈관 손상을 극도로 주의하며 진행했다. 다행히 혈관 문합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데다 수술 시간 단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지훈의 손이 상당히 빨라졌다.
담도를 깔끔하게 연결했다.
봉합 내내 한 방울의 담즙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간은 이제야 아들의 피를 받았다. 수술이 끝난 후 몇 시간 안에 담즙이 배출될 것이라 믿었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담도에 T-tube를 넣었다.
드레인 세 개를 수술 부위 근처에 삽입해 출혈에 대비하는 것으로 주요 과정을 끝냈다. 우상복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절개창만 봉합하면 기나긴 수술도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김지훈이 잠시 손을 멈췄다.
지금까지 경험한 수술 중 가장 어려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때문인지 아들의 간을 대신한 아버지의 간이 완벽하게 자리 잡은 모습을 보자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다가왔다.
‘아버지의 마음, 수술 팀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서도진 선생, 닫아도 되겠지? 마무리 부탁해.”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안 나간다.”
김지훈이 환자의 간을 살폈다.
전격성 간염 환자의 간!
써전에게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실로 대단해 수술 결과까지 좌우할 수 있었다. 다시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머릿속에 또렷이 박아야 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수술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야. 전격성 간염! 진단을 내리면 주저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이식을 하는 것만이 답이다.’
서도진의 손은 빨랐다.
“컷!”
김진호 교수는 이미 준비를 마쳤다.
“바이탈 안정적입니다. 바로 옮깁시다.”
드르르륵!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어머니가 퉁퉁 부은 눈으로 달려왔다.
“선생님, 수술은 잘됐나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우리 아들 괜찮은 거죠? 선생님! 괜찮은 거죠? 한 번만 보게 해 주세요. 제발!”
찢어지는 마음을 알고도 남았지만 면회를 허락할 상황이 아니었다. 오열하듯 터지는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수술 팀 전원이 환자에게 매달렸다. 예정보다 세 시간 이상 지연됐다는 사실에 대기하고 있던 윤석진이 무척 불안해했다.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수술이 너무 힘들었을 뿐이야.”
김지훈이 시계를 보았다.
무려 열세 시간이 걸렸다.
뻑적지근한 온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의사의 역할을 다한 것도 아니었다.
환자가 스스로 호흡하고, 눈을 뜰 때까지 수술만큼은 무사히 마쳤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최소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났다는 징후를 확인해야 했다.
“바이탈은? 비지에이 결과 안 나왔어?”
“안정적이고, 산소 포화도도 괜찮습니다.”
“소변은?”
“시간당 30CC 정도 나옵니다.”
응급으로 찍은 흉부 사진까지 문제없었다.
열세 시간에 달하는 수술을 잘 버텨 줬지만 정작 환자는 눈을 뜨지 못했다. 중간중간 확인한 자발 호흡까지 상당히 약해 김진호 교수마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필요한 조치를 모두 취했다.
예의주시하며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수술 시작 후 열다섯 시간이 지났다.
김지훈이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모래가 낀 것처럼 빡빡했다.
‘왜 안 깨지? 뭐가 잘못된 거지? 수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나? 아니면 애초에 수술이 늦었던 걸까?’
온갖 불안이 다 몰려왔다.
극심한 피로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머릿속은 완전히 뒤엉켰다.
불안한 마음이 극에 달했다.
절규하는 환자의 어머니, 망연자실 깨어나지 못한 아들을 보며 의료진을 원망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수술 자체를 실패한 것일까?
괴로움에 입도 열지 못하는 순간 드레인을 확인하던 이혁원이 중환자실의 무거운 적막을 깼다.
“선생님, 담즙이 보입니다.”
“뭐? 고여 있던 거 아니야?”
“아닙니다. 아까 한 차례 흘러나온 담즙을 제거했습니다. 담즙 색이 무척 흐린 것으로 보아 그때 거의 대부분 빠져나왔을 겁니다.”
이식 전 관류액으로 간 조직을 씻어 냈기 때문에 남은 담즙은 미량에 불과해야 했다. 이혁원의 판단이 맞는다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간이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수술 전후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 소견이었다.
그런데 환자는 왜 깨어나지 못할까?
‘설마 그사이 뇌부종이 심각하게 진행된 걸까? CT를 찍어 봐야 하나?’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무는 순간!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인공호흡기가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렸다.
“파이팅입니다.”
기계가 감지할 정도의 자발 호흡이 돌아왔다.
미약하지만 분명 몸을 비틀었다.
인공호흡기를 떼자 숨 막힌 기침 소리가 들렸다.
“컥! 컥!”
기관에 삽관된 튜브를 따라 거친 숨이 쏟아졌다.
김지훈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환자가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