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김지훈이 서도진과 이혁원을 보았다.
계획했던 시간에 연락이 왔다.
처음 하는 공여자 수술임에도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전문 병원 설립이 결정된 때부터 누구보다 치열하게 준비했을 신현수였다.
평생 싸워야 할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분명했다.
“옮기자.”
드르르르륵!
중환자실 베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술 방으로 향했다. 두 손을 꼭 쥔 채 초조한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인철아!”
먼저 수술실로 들어간 남편에 이어 아들마저 수술대 위에 눕혀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지고도 남았다. 퉁퉁 부은 눈가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머님, 수술 잘될 겁니다. 아버님 수술도 무사히 진행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나 걸릴까요?”
“기본적으로 간 이식은 정말 오래 걸립니다. 병실에 계시다가 연락하면 내려오세요.”
이미 설명했지만 정신이 없어 보였다.
차마 열 시간 전후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오랜 수술 시간 자체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어머니의 가슴을 완전히 뭉개 버리고도 남았다.
눈물을 뒤로하고 수술실로 환자를 옮겼다.
이제 막 담도와 혈관을 노출시킨 신현수의 수술을 보며 남은 시간을 가늠했다. 이식될 간이 옮겨지기 전에 환자의 간을 제거하고 혈관과 담도를 확보해야 했다.
‘환자의 간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간 전체를 제거해야 할 정도로 망가졌을까?’
긴장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간 이식 수술에 처음 참여하는 서도진은 물론 경험이 있는 이혁원마저 훅훅 숨을 내쉬며 부담을 떨쳐 내기 위해 애썼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스스로 풀고도 남을 긴장이었다.
김진호 교수가 산소마스크를 잡았다.
“마취 시작합니다. 준비하세요.”
슬슬 잠에서 깨어나며 전형적인 혼미 상태를 보이던 유인철 환자가 잠잠해지며 깊은 잠에 빠졌다. 기관 내 삽관을 한 후 인공호흡기가 연결됐다. 이제 열 시간에 걸쳐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김진호 교수의 손에 환자의 목숨이 달렸다.
김지훈이 수술 팀을 보았다.
서도진과 이혁원은 긴장 속에서도 침착하게 움직였다. 개원 후 첫 이식 수술이라는 사실과 극도로 나쁜 생존률을 모두 잊고 오직 수술에만 집중해야 했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은색 메스가 오늘따라 유난히 차가운 빛을 보였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고경아의 손길을 느끼며 환자의 복부를 절개했다. 방사선 검사대로 모든 장기가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심한 황달로 인해 노랗게 물들었다.
기능까지 상당히 약해졌다는 의미였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어떻게든 간 일부를 남겨 두고 싶었다. 하지만 전격성 간염이란 질환을 경험한 사람은 없었다. 간이 어떤 상황일지 추측조차 불가능했다.
조심스럽게 간을 노출시켰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수술 팀 모두 말을 잃었다.
투명한 막에 싸여 선홍색으로 반짝반짝 빛나야 할 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육안으로도 탄력을 잃은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신중하게 간을 확인했다.
김지훈이 흠칫 놀라고 말았다.
강하게 누르면 염증성 삼출액이 흘러나올 것처럼 간 전체가 물렁물렁했다. 손으로 만진 부분이 손가락 모양의 흔적을 남길 정도였다. 간을 제치고 후면의 복강을 확인한 결과 복수까지 상당량 차 있었다.
이런 간을 본 적이 없었다.
결코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전격성 간염이 얼마나 무서운지, 왜 예후가 그토록 나쁜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정확히 언제 이런 상태로 변했는지 모르지만 바이탈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수술 전 불과 한두 시간 내에 진행됐을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천운이었다.
반면 지금도 썩어 가는 간이 치명적 독소를 몸에 퍼트리고 있을 것이다. 노폐물을 제거해야 하는 간이 오히려 목숨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이 됐다.
환자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다.
아니, 이미 선을 넘고 있는지도 몰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속수무책 환자를 잃었을 것이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간 손상이 너무 심해 도리어 간 때문에 환자가 위험하겠어. 최대한 빨리 제거하자.”
수술 팀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간을 지탱하고 있는 연결 조직을 빠르게 제거했다. 약간의 압력이나 과도한 조작만으로도 독소 유출을 유발할 수 있기에 극도의 주의가 필요했다.
후복막과의 연결을 끊었다.
위, 십이지장, 담도 등과 연결됐던 조직을 차례로 절개해 간정맥 및 두 개의 혈관을 담고 있는 부분과 담도와의 직접적인 연결만 남았다.
“간 동맥, 간 문맥부터 잡자.”
이식될 간과 이어 주기 위해 깔끔하게 박리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간에 최대한 붙여 잘라 혈류부터 차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모스키토! 수처! 타이! 컷! 보비!”
모든 조직이 약했다.
혈관을 찾기 위해 살짝 벌리는 것만으로도 출혈이 발생했다. 이미 망가진 혈액 응고 기능까지 겹쳐 지혈에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다.
전기 소작을 가할 때마다 염증성 삼출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타이가 필요한 부분이 점점 많아졌고, 살짝 힘만 가해도 끊어질 것처럼 약한 조직에 서도진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간신히 간 동맥을 찾았다.
동맥이건만 정맥만큼 약하게 느껴졌다. 끊어지는 순간 감당하지 못할 출혈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박리가 아닌 단순히 간에 붙여 묶고 자르면 되는 과정이 엄청난 긴장을 유발했다.
“확실하게 타이 됐지? 자른다.”
기본적으로 동맥보다 더 약한 간 문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단단한 실이 문맥 벽을 파고들어 손상을 줄 것만 같아 숨도 쉬기 어려웠다.
“확실하게 타이 됐지?”
김지훈도 확신하기 힘들어 일일이 물어야 했다.
대정맥과 연결된 간정맥은 최악이었다.
주변 조직을 박리할 때부터 묶을 때까지 수술 팀 모두 극도의 긴장에 휩싸였다. 경험 풍부한 세 명의 써전도 감당하기 힘든 압박이었다.
두려울 지경이었다.
간신히 간정맥을 처리했다.
흐물흐물한 간이 완전히 분리됐다.
김지훈이 텅 빈 공간을 보며 눈가를 찡그렸다.
이제 이식될 간과 연결하기 위해 혈관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혈관을 둘러싼 조직을 박리하는 것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할 출혈까지 모든 과정이 위험하기만 했다.
시간마저 제한됐다.
공여자의 간을 오랜 시간 외부에 노출시켜 뒀다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미 혈관을 자르고 있을 테니 신현수에게 절제를 늦춰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모스키토!”
혈관을 확보하는 과정이 시작됐다.
심장박동을 따라 벌떡벌떡 뛰는 간 동맥, 소장을 거친 혈액이 모두 모이는 간 문맥, 간에 흐르는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 간정맥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혈관은 없었다.
수술복이 흠뻑 젖었다.
타이를 해야 하기에 집도의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는 서도진은 연신 어깨를 돌리며 가중되는 긴장을 견뎠다. 가장 나쁜 시야 속에 움직여야 하는 송진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타이! 컷! 보비!”
경험 많은 써전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모든 혈관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강병옥이 이식될 간을 들고 들어왔다. 이식하기 전에 필요한 전 처치를 시행하는 동안 모든 혈관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했다.
힐끗 눈길을 준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집중하자. 집중.’
재깍! 째깍!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단 한시도 쉬지 않았지만 계획했던 시간을 초과했다. 강병옥이 수술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경과된 시간을 알려 주었다.
“십오 분 지났습니다.”
“거의 다 됐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초조하기 짝이 없었다.
훗날 기술이 발전하면 더 많은 여유를 얻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기존의 관류액과 얼음 가루를 이용해 이식될 간을 최대한 보존해 주기만을 바랐다. 이식 팀인 만큼 전적으로 믿고 맡겨야 했다.
필사적인 노력 끝에 혈관을 모두 확보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났다.
생체 간 이식의 경우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오차였지만 상황이 달랐다. 썩은 간이 내뿜었던 독소가 지금도 수혜자의 육신 전체를 파괴하고 있을 것이다.
쉴 틈이 없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 서서 빨대를 이용해 우유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갈증만 해소했다. 빠져나간 수분은 그 몇 배가 넘었다. 써전이 오랜 수술 동안 화장실을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진행하자.”
아버지의 간을 아들의 간이 있던 자리에 위치시켰다. 상당히 건강했던 간인지 지연된 시간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탄력과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정도 크기면 충분하다.’
이제 간정맥부터 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어려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약해진 혈관을 제대로 연결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다. 정맥은 가장 약한 혈관이었고, 동맥과 문맥은 많은 피가 흘러 어느 하나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김지훈이 눈에 힘을 주었다.
‘자신감을 잃으면 실패한다.’
“루뻬!”
강한 어조로 자신과 수술 팀을 북돋은 김지훈이 적정한 길이와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두 개의 정맥을 잡았다. 군더더기 하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박리 됐다. 자신과 신현수의 실력을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수술은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혜자 수술 팀의 실력만 가지고는 생체 간 이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피부로 다가왔다.
‘그래. 우리는 최고의 수술 팀이었어.’
마음의 불안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손에 힘이 실렸다.
“수처!”
확대된 바늘이 정맥을 뚫었다.
서도진이 침착하게 헤파린이 섞인 생리식염수를 뿌려 수술 부위를 깨끗하게 했고, 이혁원은 석션을 사용해 적절하게 시야를 확보했다.
김지훈의 긴장이 솟구쳤다.
단 하나의 실로 정맥을 빙 둘러 이어 주는 연속 수처가 답이었다. 여러 장점이 있지만 단 한곳이라도 허술하게 조여지면 전체가 풀리는 것이 최대 단점이었다.
혈류가 흐르는 순간 연결 부위 전체에서 피가 샐 것이다. 기존 연결 부위 전체를 자르고 다시 이어 주는 수밖에 없다. 수술실에서 발생하면 즉각 조치라도 할 수 있지만 수술 후 발생하면 다시 배를 열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과도하게 조이면 연결 부위가 좁아져 협착이나 혈전이 발생할 수 있다. 적정한 압력을 유지해야 돼.’
어떤 수처 방식보다 집도의의 실력이 요구됐다.
김지훈이 실에서 전해지는 압력을 느끼며 정맥과 정맥을 밀착시켰다. 루뻬로 보이는 정맥의 변형과 기존 수술에서 얻은 경험을 모두 동원해야 했다.
집도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정맥을 통과한 실을 당겨 연결 부위의 밀착을 유지시키고, 다음 수처를 용이하게 하는 역할을 맡은 퍼스트의 능력 역시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수술 팀의 완벽한 호흡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첫 바늘이 빠져나오고, 두 번째 수처가 진행됐다.
“풀리지 않도록 조심해.”
적정한 압력을 유지해 확실하게 밀착시키기에 정맥이 너무 약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삐끗하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수처해야 했다.
혈관, 시간, 긴장과의 싸움이었다.
수술 팀 모두 대단한 압박에 시달렸지만 목표가 무엇인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몸에 밴 기본기가 본능적으로 작용했다.
김지훈은 멈추지 않았다.
서도진은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했다.
루뻬를 끼지 않아 수술 부위를 넓게 볼 수 있는 이혁원은 전체적인 시각으로 수술의 안전성을 담보했다.
정맥 전면부가 봉합됐다.
후면이 남았다.
시야에 문제가 없었지만 혈관을 비틀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큰 주의를 요했다. 기구를 조작하기도 결코 쉽지 않았다.
간 동맥과 문맥은 더 힘들 것이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누구도 느끼지 못했다.
시작점까지 한 바늘 남았다.
단 한 번의 타이지만 연속 수처 전체를 유지할 타이였다. 실에 가해지는 압력이 풀리거나 시작 부위와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지 못하면 정맥 연결부터 실패하게 된다.
김지훈이 후! 숨을 내쉬었다.
“타이! 마지막까지 텐션 유지해.”
서도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
오직 손에 잡힌 실에만 집중했다.
마지막 부분의 타이가 끝났다.
“컷!”
순간 정적이 흘렀다.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동맥과 문맥을 연결한 후 혈류를 재개시켜야만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었다.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정맥을 연결할 때의 감각과 판단이 잘못됐다면 총체적 난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재수술과 다름없었다.
“괜찮을까요?”
서도진의 말에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불안해하면 모두가 불안해지고, 내가 수술 팀을 믿지 못하면 수술 팀도 나를 믿지 못한다. 우리는 최고의 수술 팀이다.’
퍼스트 역시 자신의 손과 실력을 확신해야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한 명의 써전으로 인정하고, 한 팀이 된 이상 다른 생각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 문제 없어 보여. 문맥 연결하자.”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 빤했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훅 숨을 내쉬며 불안감을 보이던 서도진과 이혁원이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두 개의 문맥을 노출시켰다.
“수처!”
김지훈이 변함없는 집도의의 자세를 견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