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잠시 후.
무사히 위기의 순간을 넘긴 김지훈이 눈가를 굳히며 각오를 다졌다.
‘개원 후 첫 이식 수술이다. 최선을 다해도 예후를 알 수 없는 환자를 수술해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해야 환자를 살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회의실이 꽉 찼다.
공여자 수술 팀인 신현수와 안호석, 수혜자 수술 팀인 서도진과 이혁원을 비롯해 이식 파트 전원이 자리했다. 내과 치료를 담당한 윤석진, 마취를 담당한 김진호 교수와 윤서연, 수술 방을 대표하는 고경아와 중환자실 간호사까지 모두 참석했다.
김지훈이 머리 숙여 인사했다.
“주말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인철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직 확인해야 할 검사가 있어 공여자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았지만, 환자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월요일로 예정된 간 이식 수술이 미뤄질 가능성이 없습니다. 공여자 상황이 달라진다고 해도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바뀌는 것뿐이고, 전격성 간염의 무서움을 여러분도 잘 알 테니 만반의 준비를 갖춰 주십시오.”
수술 전 준비부터 수술 후까지 필요한 과정을 일일이 점검했다. 서울 병원의 경험을 토대 삼아 진행했지만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들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
복강경과 더불어 전문 병원의 양대 핵심인 간 이식 수술 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손일석과 강병옥은 마치 자신의 팀 수술인 양 무척 적극적이었다.
회의가 끝날 무렵 김지훈이 미안한 말을 또 꺼내 들었다. 최종 결과가 나오는 대로 보호자에게 수술 방법과 예상되는 합병증과 위험성을 반드시 알려야 했다.
문제는 공여자가 확정되는 일요일 오후나 돼서야 알릴 수 있다는 점과 달랑 외과 수술 팀만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김진호 선생님, 윤석진 선생님, 죄송하지만 내일 오후에 시간을 내주셔야겠습니다.”
“김 과장,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우리는 상관없으니까 시간 잡히는 대로 연락해. 윤석진 선생, 괜찮지?”
“그럼요.”
“감사합니다. 신현수 선생님, 윤서연 선생님과 시간 꼭 지켜 주세요.”
“오케이!”
김지훈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젠 더 이상 뒤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유인철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나빠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조차 미안해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환자 아버지의 검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김지훈이 병원에 나와 철저하게 확인했다. 발견 못한 질병이 있거나 만에 하나 다른 장기에서 종양이라도 보이면 당장 공여자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검사 결과까지 모두 나왔다.
김지훈이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어떤 문제도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통상의 경우 간 이식 일정이 잡히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수술이었다. 그런 수술을 마치 응급 수술을 하듯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검사에 이상이 없다. 공여자 나이가 계속 신경이 쓰이지만 술, 담배도 안 하시는 분이니까 불안해하지 말자. 이제 수술에만 집중해야 한다.’
일요일 오후.
참석해야 할 의료진이 모두 모인 가운데 보호자를 만났다. 남편의 간 오른쪽을 모두 절제해 이식해야 한다는 신현수의 말에 아내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수술 중 혹은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감염, 출혈, 사망 가능성을 언급하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물며 마취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달랑 셋뿐인 가족 중 두 사람의 생과 삶이 걸렸으니 실신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여보! 걱정하지 마. 내가 얼마나 건강한지 알잖아? 당신은 우리 아들에게만 신경 써.”
아버지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굳건한 모습을 보였다.
“선생님, 수술 전에 아내와 함께 우리 아들 얼굴을 볼 수 있을까요? 힘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면회를 허락했다.
김지훈이 얼굴을 펴지 못했다.
어쩌면 자식의 마지막 숨을 보는 날이 될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오열했다.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들만 바라보았다.
견디기 힘든 슬픔과 아픔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아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기색이 눈에 보일 정도로 역력했다.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아내를 향한 남편의 배려였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무슨 이유인지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일부를 내어 주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제 피를 받은 아이를 죽음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던 아비라는 작자가 떠올랐다.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불합리하고 불공평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인철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 훨씬 더 많기에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아들을 잃으면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실 분들이다. 유인철 씨, 힘내요. 반드시 살아야 합니다.’
잠들기 힘든 밤이었다.
김지훈이 희연이를 꼭 안았다.
새근새근 잠든 얼굴이 천사가 따로 없었다.
희연이가 건강하다는 사실이 한없이 고마웠고, 항상 건강하기만을 바랐다. 고경아를 사랑하고, 고경아에게 매일매일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에 바보처럼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었다.
***
날이 밝았다.
유인철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30퍼센트의 생존 확률에 불과한 간 이식만이 유일한 삶의 끈으로 남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버텨 준 것만도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몰랐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긴장에 휩싸였다.
달리 선택할 도리가 없는 외길 수순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러나 간 이식은 모든 환자의 마지막 치료였다.
평생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신현수 선생, 부탁해.”
환자의 부모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머니의 손수건은 마를 시간이 없었다. 꿋꿋한 표정으로 오히려 아내를 토닥이는 남편이 아니었다면 더욱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아들 수술 잘 부탁합니다.”
수술을 앞두고 불안에 떨지 않는 환자는 없었다. 하지만 환자의 아버지는 마치 자신의 의무인 것처럼 수술 방으로 옮겨지는 그 순간까지 자식 걱정만 했다.
‘부모 마음이란 것이 이런 거겠지? 정말 환자를 살리고 싶다. 어쩌면 우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을 살릴지도 모르겠다.’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 김지훈이 중환자실로 향했다.
서도진과 이혁원이 얼굴을 펴지 못했다.
곧 전신 마취를 해야 하지만 혹여 이동 시 발생할지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환자를 미리 재웠다. 잠에 빠져 규칙적이어야 할 호흡이 도리어 거칠어진 탓이었다.
심장박동도 불안했다.
마스크를 통해 고농도 산소를 공급했지만 산소포화도가 좀처럼 정상 수치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 사흘간의 집중 치료에도 불구하고 전신 상태가 극도로 불량했다.
회진을 마친 윤석진이 환자 상태를 최종 점검했다. 수술 당일 시행한 검사를 꼼꼼하게 검토하며 변화 유무를 확인했다.
“추가로 발생한 문제는 없지?”
“없어.”
“수술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인공호흡기까지 달지는 않았잖아. 건강했던 사람이고, 나이도 젊으니까 분명히 견뎌 낼 거야.”
수술 중 사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안심할 구석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첫 간 이식 수술부터 정말 지독하게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째깍!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하게 들렸다.
신현수가 심호흡을 했다.
공여자 수술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너무 긴장되네.’
전문의가 된 후 위장관 수술에 전념해 왔다.
그동안 다른 파트 수술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오직 위장관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유방 파트에 신경을 쓰면서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
덕분에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학회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와 수술을 받고자 하는 환자를 볼 때마다 자신감보다는 오히려 초심을 상기했다. 자만하는 순간 결코 김지훈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그립다.’
진상건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
전문 병원 설립이 유일한 대안이 되며 세부 전공 분야마저 바꿔야 했다. 이준영 교수라는 대가와 함께 간암 부분을 맡은 것은 영광이자 오랜 바람이었지만, 오랜 기간 한 발 비켜서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간 이식 공여 수술까지 맡게 됐다.
안전한 절제도 중요하지만 혈관 처리가 가장 핵심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신기동 교수에게 많은 부분을 배웠지만 절대 취약해서는 안 되는 부분인 탓에 손일석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을 믿고 함께한 동료들과 환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준영 교수까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비쳤다.
하지만 정교하고 정확한 수술 스타일에서 보듯 항상 완벽함을 추구하는 신현수였다.
스스로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예정보다 이 주나 빨리 수술을 하게 됐다. 완벽하게 수술할 수 있을까?’
띠! 띠! 띠! 띠! 띠!
이미 환자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윤서연이 편안한 표정으로 마취를 시작했다.
‘남편이 아닌 의사로서 당신이 최고라는 사실을 항상 믿어 왔어. 오늘도 잘해 낼 거야.’
수술 팀 역시 약간의 긴장을 보일 뿐 평소와 다름없이 마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안호석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수술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송재덕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눈짓을 했다. 그 너머로 이준영 교수가 눈길도 주지 않고 자신에게 배정된 수술실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관심이 아니었다.
대가가 보인 믿음이었다.
‘그래. 이준영 선생님이 날 믿지 못했다면 공여자 근처에도 못 가게 했겠지. 송재덕 선생님도 웃음보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바빴을 분이다. 수혜자 수술에 비하면 공여자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다.’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완벽한 수술에 대한 부담이 아니라 스스로 믿지 못했거나 공여자 수술을 처음 한다는 사실에 동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도 몰랐다.
대가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자신의 실력을 믿고도 남았다.
“수술 시작해도 됩니다.”
윤서연의 목소리가 편안했다.
신현수의 눈이 냉철하게 빛났다.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예리한 메스가 복부를 갈랐다.
모든 장기가 정상적이었고, 선홍색으로 빛나는 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 갖은 노력을 다한다면 수혜자의 몸에 확실하게 안착될 것이란 희망이 스쳤다.
‘두 사람을 살리는 수술이다. 어떤 실수도 없이 간을 절제해야 한다.’
“보비! 모스키토! 타이! 컷!”
삐이이이이!
날카로운 기계음이 울리며 질긴 막 속에 숨은 간이 절제되기 시작했다. 이준영 교수와 함께하거나 혹은 집도의로서 간암 수술을 하며 수없이 반복했던 과정이었다.
신현수의 손은 정교하면서도 정확했다.
안호석은 최고의 퍼스트였다.
고경철은 이제 일 년 차가 아니었다.
절제 부위가 점점 더 깊어졌다.
시야가 좁아지는 상황에서도 신현수는 자신의 수술 스타일을 견고하게 유지했다. 출혈을 제어하며 간 조직을 깊숙이 잘라 갔다.
사전에 정했던 시간에 예정된 부분까지 정확히 접근했다. 이제 하나의 목적을 가진 두 개의 수술을 동시에 진행할 때가 됐다.
“수혜자 수술 팀에게 간 절제 중반에 들어갔다고 연락해 주세요. 예상 시간은 세 시간 반입니다.”
예정된 시간에 정확하게 간을 절제해 내지 못하면 가뜩이나 상태가 안 좋은 수혜자의 마취 시간만 길어지게 된다. 전격성 간염이라는 원인 불명의 질환으로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수술 팀의 집중도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직 간에만 눈을 고정시켰다.
세 개의 동맥과 담도가 차례차례 드러났다.
일정 길이를 확보하는 한편 주변 조직을 확실하게 박리해야만 수혜자의 혈관과 담도에 안전하게 이식시킬 수 있다. 성공을 위한 일차 관문이자 핵심적인 과정이었다.
신현수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담도를 확보했다.
간 정맥, 간 문맥, 간 동맥을 처리하는 매 순간 결코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지금 진행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만 기억했다.
“타이! 컷!”
환자의 간 우엽을 지탱하던 구조물이 하나둘 육신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흠뻑 젖은 수술복은 수술 내내 유지한 집중의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