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098화 (1,098/1,329)

4화

김지훈이 강호성의 퇴원장에 서명을 하며 활짝 웃었다.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갔던 강호성, 아비라는 작자에 대한 분노, 엄마에게 보였던 오해와 희망까지 그 어느 하나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세간의 이목을 한데 모은 사건답게 퇴원 과정도 남달랐다.

시장과 시청 직원들이 방문했다.

민정호가 관계된 의료진의 참석을 요청했다.

꽤 많은 사람이 모여 강호성과 엄마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쓸데없는 일이라며 인상을 썼을 이준영 교수도 기꺼이 함께했다. 송재덕 교수는 여기저기 너털웃음을 흩뿌렸다.

“자자! 줄 섭시다. 줄. 이 교수, 자기는 맨 뒤로 가야지 앞에 서면 어떻게 해? 뒷사람 하나도 안 나온다. 하나도. 김 과장, 호성이 옆에 서. 왜 구석에 가 있는 거야?”

“자! 찍습니다. 김치!”

찰칵! 찰칵! 찰칵!

발가스름한 얼굴로 활짝 웃는 강호성, 두려움이 아닌 부끄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엄마, 퇴원을 축하하는 많은 이들의 미소를 본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호성아, 이젠 행복한 일만 있기를 바란다.’

작별의 시간이 왔다.

김지훈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성인도 쉽게 회복하지 못할 육신의 손상도 모자라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한 달도 안 돼 퇴원을 하게 됐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놀라운 회복력이자 생명력이었다.

어쩌면 너무도 그리워했던 엄마의 따스한 품과 사랑을 이제야 한껏 느끼고, 누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자식의 손을 꼭 잡은 엄마의 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강호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호성, 한 달 후에 보자. 그때는 더 건강해져서 와야 한다. 밥 잘 먹고, 너무 심하게 노는 건 조심해야 돼.”

“예, 선생님.”

강호성이 누군가를 보았다.

송진우와 안호석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고경철과도 따스한 온기를 나눴다.

여덟 살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선생님!”

두려움도 불안도 아니었다.

기쁨이자 희망이자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김지훈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호성아! 나도 있어. 나도.’

만반의 준비를 한껏 갖췄건만 강호성이 눈길 한 번 주고는 엄마와 엘리베이터에 탔다. 다들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와중에 김지훈의 손만 힘없이 흔들렸다.

바이! 바이!

‘호성아, 이건 배신이야, 배신. 어후! 저 자식들만 안아 주다니, 역시 킵을 해야 했어.’

가장 많이 부대끼고, 아픔을 함께한 의료진만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김지훈을 쏙 빼고 비껴 지나갔다. 온 정성을 다해 수술했는데도 말이다.

눈물 한 방울 똑 떨어졌다.

아쉬운 마음이 한 가득이어도 좋았다.

강호성이 무사히 회복돼 아무 걱정 없는 얼굴로 퇴원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행복이자 보람이었다. 부디 엄마와 함께 다른 가족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애정과 후원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의 관심이 일회성으로 그친다면 비극은 이어질 것이다. 관계 기관의 지속적인 조치도 이어져야 했다.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세 번째 강호성을 찾아내고, 가정 폭력을 방지하는 첫 단추일 것이다.

그런 날이 올까?

민정호가 시장과 일행을 안내하다 말고 꼭 할 말이 있다는 듯 다가왔다. 다들 얼굴이 환한데 여전히 무표정했다. 아마도 유일하게 웃지 않았을 테니 사진이 나오면 눈에 딱 띌 것이다.

“과장님, 시간 있으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시장님과 잠깐 자리를 가질 예정인데 과장님도 참석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원장님과 부원장님도 함께하실 겁니다.”

이미 시장과 인사를 나눴지만 형식에 불과했다. 따로 자리를 갖는다면 보다 의미 있는 만남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호성이 문제 빼고는 딱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꼭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 원장님과 스승님이 잘 말씀하시겠지. 민 부원장도 있고. 괜히 유인철 환자에게 쏟아야 할 시간만 뺏길 수 있다.’

“미안하지만, 난 참석을 못할 것 같습니다. 직접 봐야 할 환자가 있어서요. 원장님과 부원장님이 계시니까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럼 일 보시죠.”

김지훈이 부리나케 사라졌다.

민정호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열 일 제치고 만나야 할 정도로 무조건 득이 되는 자리다. 나중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다니 자리에 관심이 없는 걸까? 그 스승에 그 제자?’

병원 내 보직, 특히 원장단은 실력만으로 얻기 힘든 자리였다. 이준영 교수가 예외이긴 하지만 송재덕 교수도 필요한 능력을 갖췄기에 오랜 기간 원장을 역임해 왔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인 시장과의 인연은 도움이 되고도 남았다. 단순해 보여도 김지훈은 일반적인 기준만으로 판단하기 힘든 사람임이 분명했다.

김지훈이 병동을 찾았다.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25세 남자 환자. 유인철.

환자 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부지런히 부모의 검사를 챙겼다. 둘 다 나이가 많다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걸렸다. 적합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형제가 있기를 바랐지만 불행히도 외동아들이었다. 친척들에게 기증 의사를 확인하고, 검사를 시행하기엔 너무 촉박했다.

하나하나 결과가 나왔다.

결과지를 확인할 때마다 긴장이 다가왔다.

사실 지방간만 있어도 부적합 판정을 할 정도로 공여될 간의 건강성이 무척 중요했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간 부전이 이 주도 안 되는 기간에 급격하게 진행됐다. 물론 더욱 중요한 조건인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도 간 이식을 성공한 경험이 있지만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경우였다.

‘후우! 두 분 다 이 항목은 통과네. 다행이다. 공여자 나이가 문제지만 지금은 고려 항목에서 제외하는 수밖에 없다.’

토요일 오전에 적합성 검사가 모두 나왔다.

매번 살얼음판을 걸었다.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었다. 곰곰이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신현수와 함께 부모가 입원한 병실을 찾았다.

부모 모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아들은 어떻습니까?”

“별다른 차도가 없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아드님을 위해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는 울고, 아버지는 무거운 한숨만 내쉬었다. 이틀 후 둘 중 한 명이 기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안정이 필요했다.

“결과는 나왔습니까?”

“다행히 두 분 모두 공여에 적합합니다만, 혈액 검사만 시행한 결과입니다. 추가 검사가 남아 최대한 빨리 공여자를 결정해야 합니다.”

의사 입장에서 누가 간을 제공해야 할지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수혜자가 건장한 사람이기에 상당한 크기의 간이 필요했다.

체격이 큰 아버지가 보다 적절했다.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유인철의 아버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제가 수술을 받겠습니다.”

“여보! 안 돼요.”

“무슨 소리야? 당신보다 내가 훨씬 더 건강해. 툭하면 몸이 아파 절절매는 사람이 수술까지 하면 버틸 수나 있겠어?”

“내 고집으로 한약을 먹였어요. 내 탓이에요. 우리 아들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살려야 해요. 당신까지 힘들게 할 수는 없어요.”

“그게 왜 당신 탓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신은 인철이한테만 신경 써. 선생님, 제 간을 떼어야 합니다. 와이프는 몸이 약해 절대 안 됩니다.”

“여보!”

남편이자 아버지는 완강했다.

눈을 부라리며 입도 열지 못하게 했다.

유인철의 어머니가 서럽게 울었다.

아무리 부모이자 부부라 해도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특히 어머니의 경우 자식이 사경을 헤매는 이유가 온전히 자신 탓이라 여기기에 더욱 괴로울 것이다. 그런 아내를 보며 힘들어할 남편의 부담까지 덜어 주어야 했다.

“어머님, 아드님의 체격이 크기 때문에 이식해야 할 간이 커야 합니다. 의사 입장에서 아버님이 간을 공여하시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드님을 위해서도 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거봐. 내가 더 적당하다고 하시잖아. 선생님, 추가 검사가 남았다고 하셨죠? 빨리 검사해 주십시오.”

가족이라도 공여 의사가 없어 이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당연하게 보이는 자식 사랑이 왠지 크게 느껴졌다.

“빠르게 결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부와 흉부 내 장기에 다른 이상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초음파 및 CT까지 시행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드시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어머님 퇴원 절차는 아버님의 최종 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 진행하겠습니다.”

“우리 아들 볼 수 있을까요?”

어머니의 말에 김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호전 없는 아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빤했다. 만약 아버지를 대상으로 한 추가 검사 결과에 문제가 보인다면 어머니의 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감정적 동요까지 막아야 했다.

“지금은 집중 치료를 하는 중이라 면회가 불가능합니다.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어머님도 안정을 취해야 하고요.”

병실을 나왔다.

김지훈이 신현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여자 수술은 네 담당인데 왜 한마디도 안 해? 나이가 많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

신현수가 피식 웃었다.

‘병원 설립 때도 그렇고, 이번에 진충기 선생님과 너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어. 우리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라이벌이 돼야지.’

“부모님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잖아. 게다가 이번 수술을 책임져야 할 주임 교수가 너잖아. 어떤 식으로 설명하고, 접근하는지 알아야 호흡을 맞추지. 어쨌든 첫 수술이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무사히 퇴원시켜야 돼.”

정말 많이 변했다.

이제는 라이벌을 떠나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한 동료였고,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일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웃었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전문 병원 설립을 함께 주도한 것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여겼다. 이준영 교수 대신 신현수가 한 팀이 된 것도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다. 수혜자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다음부터 공여자는 네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돼. 공여자 문제로 수술 못하면 누구 책임인지 알지?”

“걱정하지 마. 공부 많이 하고 있고, 일석이하고도 호흡 굉장히 잘 맞아.”

“하긴 내가 뭐라고 할 위치가 아니네. 공여자 때문에 수술 취소되면 일석이는 펄펄 뛸 테고, 민 부원장은 네 가슴을 박박 후벼 팔 거다.”

“그렇겠지? 지금도 재정 때문에 들들 볶인다.”

“힘들어?”

“알잖아. 같은 소리를 해도 그렇게 기분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반박하려고 해도 다 맞는 소리라 화도 못 내겠고 죽겠다.”

신현수가 웃고 있었다.

“에휴!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공개적으로 개망신을 주지 않는 게 어디야?”

“환자를 억지로 끌어올 수도 없는 노릇인데 넌 또 무슨 죄냐. 진상건은 민 부원장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까? 잠잠한 걸 보면 모르는 것이 확실하겠지?”

분명 상당히 호의적인 말투였다.

민정호와 일한 지 이제 한 달 됐다.

사람 한 명 알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특히 독특하다 못해 성격 나쁘다는 인식을 주는 사람에겐 더욱 짧은 시간이었다.

‘그사이에 우리 중 가장 냉철한 현수까지 호감을 느끼다니, 여러모로 참 묘한 사람이네. 돈돈 거려도 사심 없이 일하기 때문인가?’

잠깐 샛길로 빠진 사이 공여자 검사 결과를 다시 한 번 확인하던 신현수가 깜빡했다는 표정으로 김지훈의 옆구리를 툭 쳤다.

“집담회 끝나겠다. 가자.”

회의실이 조용했다.

늦은 것이 아니었다.

부신 절제술을 담당한 복강경 파트와 전격성 간염이란 극히 드문 질환을 맡은 이식 파트 전체가 이미 초토화된 탓이었다. 네 명이 모두 있으나 두 명만 있으나 스승들의 화력은 동일한 모양이었다.

펠로우와 후배 사인방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경석은 물론 이식 파트라는 이유로 손일석까지 집중포화에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목덜미를 보니 아직도 땀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장난 아니었나 보네.’

김지훈이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무시무시한 눈 화살이 온몸에 내리꽂혔다.

집담회에서마저 눈칫밥 먹어야 했다.

신현수 역시 꼿꼿한 자세로 침착하게 앉아 있었지만 눈동자가 불안할 정도로 크게 흔들렸다. 응급에 준해 모든 검사를 시행한 탓에 공여자를 두고도 무수한 질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 과장 왔구나. 환자는 어때? 수술은 어떻게 하기로 했니? 해야겠지? 그치?”

“월요일 첫 수술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환자 아버님이 간을 공여하기로 결정했고, 집담회 끝나는 대로 회의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래. 그래. 우리도 전격성 간염에 대해 충분히 토론했으니까 잘될 거야. 잘. 손일석 선생, 그치? 우리 확실하게 알았지?”

“예? 예.”

손일석이 울었다.

‘원장님, 전 수술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결코 전해지지 않을 절규였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종료를 알리는 말이 들리기 무섭게 김지훈과 신현수가 쏜 살같이 사라졌다. 손일석이 닭 쫓던 개처럼 멍하니 문만 바라보았다. 간 이식 회의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왠지 핑계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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