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뜻밖의 말이 들렸다.
(선생님 병원으로 다시 보내겠습니다.)
김지훈이 순간 당황했다.
“보호자가 동의했습니까?”
(동의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데다 이준영 선생님이 학회장이시고, 김 과장님 경험이 상당하지 않습니까? 대학 병원 이상으로 잘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해 뒀습니다.)
마냥 환영할 일이 아니었다.
병원을 믿지 못해 이송을 원했던 환자였다.
마지못해 등 떠밀리듯 다시 와야 없던 신뢰가 생길 리 없었다. 생체 간 이식은 환자만이 아니라 보호자 중 한 명의 간까지 필요하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김지훈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말씀 감사합니다만, 보호자분들이 충분히 납득해야 치료에 임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중환자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병원에 온다면 치료 중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문 병원이라는 점 확실하게 설명했고, 보호자에게 선생님들이 어떤 경력을 가졌는지 설명했습니다. 현재까지 간 이식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진충기 교수가 강한 신뢰를 보였다.
보호자에게도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다.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한결 걱정을 덜었습니다. 언제 보내실 겁니까?”
(지금 바로 이송하겠습니다. 대신 이식을 하게 되면 수술 소견 꼭 보내 주셔야 합니다. 테이프까지요.)
“알겠습니다.”
의지는 물론 능력까지 갖춘 의사가 고작 병실 하나 때문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환자를 부탁했다. 진충기 교수야말로 누구보다 안타깝고, 마음이 안 좋을 것이다. 하기에 반드시 환자를 살려야 했다.
“혹시 선생님은 전격성 간염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도 책에서만 본 질환입니다. 내과에 경험이 있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시는데 순식간에 환자를 잃었답니다. 최대한 빨리 간 이식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지금까지 본 환자 중 가장 어려운 환자임이 분명했다. 수술이 가능할 때까지 환자가 견딜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마음 단단히 먹었다.
상황이 급변했다.
위중한 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였다.
두 시간 내에 도착할 것이다.
더 나빠지지 않고 현 상태가 지속된다고 해도 사흘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생체 간 이식에 필요한 검사를 하는 데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김지훈이 고경아에게 조용히 말했다.
“경아 씨, 병원에 가 봐야 되겠어요.”
“왜요? 당직도 아니잖아요.”
“내일 아침에 설명할게요.”
응급실로 향했다.
몇몇 환자가 보였지만 중환은 아니었다. 도착하자마자 집중적으로 치료해야 할 환자가 있는 와중에도 내원 환자 목록에 눈이 갔다.
‘라파로로 수술 한 건 했네. 마이너라도 이렇게 꾸준히 와 주면 좋겠다.’
마침 신현수가 당직이었다.
김지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오늘 같은 날 현수가 당직이라니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네.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되겠어.’
“김 과장, 갑자기 왜 나왔어?”
“전격성 간염 환자가 다시 와.”
신현수가 깜짝 놀랐다.
“서울 쪽에서 해결이 안 됐나? 다른 방법이 없어서 우리 병원으로 온 거면 환영할 일이 아닐 수도 있어. 예후가 너무 나쁘잖아? 근데 어떻게 알았어?”
“방금 전에 진충기 교수님한데 직접 연락받았어.”
신현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에게 환자를 보내고, 다시 보냈다는 말이네. 라이벌이라는 의미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하네. 하여튼 보기 좋고, 기분 좋은 일이다.’
생각도 잠시, 뜻밖의 말이 들렸다.
“현수야, 네가 공여자 수술을 맡아야겠다.”
“이준영 선생님이 계신데 내가?”
“환자만이 아니라 공여자를 선정할 시간까지 부족해. 팀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 같아.”
김지훈은 단호했다.
신현수 역시 공여자 수술 팀의 일원이었다. 이준영 교수와 한 팀으로 수술하는 날을 간절히 기다려 왔지만 처한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
정해진 팀 구성을 고집했다가는 오히려 불리한 상황을 자초하는 꼴이었다. 어떤 일이든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야 환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김지훈이 간략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응급실 근무 직전, 신현수도 유인철 환자에 대해 들었다. 더욱이 평생 한 번도 보기 힘들지만 전격성 간염이 어떤 질환인지 잘 알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즉시 준비에 들어갔다.
내과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해 공정식에게 연락했다. 군소리 없이 바로 나와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윤석진을 대신했지만 김지훈의 간 이식 수술 팀이 모두 갖춰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얼추 두 시간이 지났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환자 바이탈 체크하고 중환자실로 옮깁시다.”
보호자의 눈가가 눈물범벅이었다.
황망하기 짝이 없겠지만 의사 입장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진충기 교수도 제삼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보호자분, 설명 들으셨죠?”
“들었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전적으로 우리 병원을 믿고 아드님 치료를 맡기실 수 있겠습니까? 신뢰가 없다면 결과도 좋지 못합니다.”
보호자들이 눈가를 닦으며 김지훈을 보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상황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최대 규모와 실력을 자랑하는 병원에서 추천한 의료진이었다.
눈앞의 의사를 믿고 아들을 맡겨야 했다.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부모님들도 지금 바로 검사를 해야 합니다. 형제가 있으면 내일 아침까지 반드시 병원으로 오도록 연락해 주세요.”
“간이 아니라 무엇이든 다 떼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 수술만 하면 사는 겁니까? 반드시 살려 주셔야 합니다.”
금방이라도 애간장이 끊어질 것 같았다.
김지훈이 순간 입을 열지 못했다.
예후야말로 의사, 보호자를 떠나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삶보다 죽음이 가까운 이상 진충기 교수가 설명을 안 했을 리 없었다.
부모로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희망적인 말을 해 주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질환이기에 바윗덩어리 하나 가슴에 얹은 것 같았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야 할 때였다.
의사로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였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절대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
“들으셨겠지만 현재 상태에서 호전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간 이식을 무사히 마쳐도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수술을 해도 우리 아들을 잃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이삼십 대 환자들의 예후가 좋다고 하지만 30퍼센트 전후에 불과합니다. 이식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100퍼센트 사망하는 질환이라 각오하고 수술해야 합니다.”
환자 엄마가 주저앉았다.
생떼 같은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사지에 밀어 넣은 꼴이었다. 간에 좋다고 먹인 약이 독약이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슴을 부여잡고 끅끅 울음을 삼켰다.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엄마가 잘못했어. 내가 죽어야 돼. 내가 죽어야 돼…….”
넋이 나간 채 같은 말만 반복했다.
“어머님, 희망을 잃으면 안 됩니다. 두 분 중 한 분이 간을 주셔야 하는데 이러고 계시다간 수술도 못해 보고 아드님을 잃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마저 반응이 없었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보호자분, 아드님을 다시 보고 싶으면 정신 차리세요. 꾸물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멍한 눈빛을 보이던 부모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죽음의 위기에 빠트렸지만 자신의 몸으로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부여잡았다.
“빨리 검사해 주세요. 빨리.”
혈액 채취를 비롯한 기본 검사를 시행했다.
김지훈이 응급실을 나서지 못했다.
걱정이 앞섰다.
부모라 해서 면역 타입과 형액형이 모두 일치한다는 법은 없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정밀 검사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의료진도 초조했지만 부모만큼은 아니었다.
아들의 목숨이 걸렸다.
각기 다른 병원에서 두 번에 걸쳐 설명을 들었어도 여전히 정확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에 빠져 있는 한 어떤 말도 머릿속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저 본능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보호자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김지훈이 신현수와 함께 만났다.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다.
“내과에서 이삼 일 정도 아드님 상태를 지켜본 후 호전되지 않으면 즉시 수술을 시행해야 합니다. 공여자는 여기 신현수 선생이 수술하고, 아드님은 제가 수술합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까?”
“없습니다. 약물 과다 복용이나 민간요법으로 인한 간 손상을 의심할 뿐 원인 자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질환입니다.”
부모 모두 눈물만 흘렸다.
흔히 먹는 아세트아미노펜 제제를 더 복용한 것뿐이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먹인 한약이나 민간요법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거죠? 왜 우리 아들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겁니까?”
“드릴 말씀이 없네요. 분명한 사실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간 이식 이외에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지금은 확실하게 준비를 해야 할 때고, 어느 분이 공여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두 분 모두 입원해서 검사해야 합니다.”
공정식은 분명 간 기능이 안 좋기에 두통약을 끊고, 한약을 함부로 복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했다. 지키지 않은 사람의 잘못이지만 부모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평생 멍에처럼 안고 살겠지만 말이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환자를 찾았다.
섬망을 동반한 혼미 상태였다.
헛소리를 하며 잠을 자지 못했다.
황달로 눈이 노랬다.
응급으로 시행한 간 효소 수치는 더 올라갔다.
“공정식 선생, 좋아질까?”
“보존 치료 이외에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는데 가능성이 있겠어?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 도대체 한약은 왜 먹이고, 민간요법은 또 뭐야? 후우! 더 세게 경고했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다.”
“자책하지 마. 이준영 선생님도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는데 누가 알았겠어?”
김지훈이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간성 뇌증이 심해지면 최악의 경우 뇌부종으로 인해 뇌 탈장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 간이 아닌 뇌 문제로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심각할 대로 심각해진 간 기능 부전까지 막판으로 치달으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관건은 사흘이라는 기간이었다.
적합한 공여자를 찾기 위한 최소의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현재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건만 조금도 자신할 수 없었다. 치료할 방법은 아는데 막상 몸 상태를 유지시킬 방법조차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에 절절한 한계가 느껴졌다.
고경철을 찾았다.
“어떤 상황인지 알지? 환자 잘 봐.”
그동안 킵을 통해 많은 환자를 살렸다.
지금만큼은 기대마저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환자를 포기하면 안 되는 사람이 바로 의사였다. 눈앞에서 환자를 잃으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으로 남기 때문이었다. 수없이 경험해도 결코 무덤덤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환자분, 월요일까지만 버텨요.’
이럴 때는 신이라도 찾고 싶었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수술 하나 없이 하루 종일 바빴다.
고경아와 마취과 김진호 교수에게 지난밤에 있었던 일과 상황을 설명했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환자가 좋아지지 않으면 월요일 첫 수술로 간 이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응급으로 수술할 수도 있습니다. 미리 준비해 주세요.”
“첫 간 이식 수술인데 정말 힘든 케이스가 걸렸네. 공여자 수술은 신현수 선생이 한단 말이지? 알았어. 방 두 개 비워 놓고 준비할게.”
이준영 교수를 찾았다.
유인철 환자에 대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신현수 선생이 공여자 수술을 맡기로 했습니다.”
“실력 있는 팀이다. 충분해.”
언제나 그렇듯 짧은 말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준영 교수가 인정한 이상 공여자 수술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사실 신현수만 한 써전도 없었다.
꾸벅 인사를 한 김지훈이 잰걸음을 놀렸다.
‘간 이식 전에 문제 소지가 있는 환자들을 미리 정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주말 당직 때 수술한 환자들을 이송시켰다.
일반 병실 확보도 중환자실만큼이나 힘들었지만 미리 연락한 덕분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젠 생명에 지장이 없었고, 골절 수술만 하면 되기에 웃는 얼굴로 보낼 수 있었다.
드디어 간절히 원하던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