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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96화 (1,096/1,329)

2화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였다면 벌써 조치를 취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내과 환자를 같이 보자고 할 이유도 없어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어쨌든 응급실 호출이었다.

급하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곧바로 응급실로 내려갔다.

윤석진까지 보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펴지 못했다.

“공정식 선생, 무슨 일이야?”

“검사부터 확인해 봐.”

25세 젊은 남자였다.

간 효소 수치가 1,000에 육박했다.

심한 황달까지 발생했다.

CT, MRI, 초음파에서는 간의 염증성 소견 이외에 특별한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B형 간염 환자야?”

“간염은 아니야. 이 주 전에 간 기능 저하로 내원해서 검사했던 환잔데, 그사이 간성 뇌증이 발생할 정도로 급격하게 나빠졌어.”

“간성 뇌증?”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섬망, 혼미, 혼수 등이 발생하는 간성 뇌증은 급격한 간 기능 부전을 의미했다. 더구나 혈기 왕성할 25살 젊은 남자였다. 간염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다른 원인 질환이 있어야 했다.

“의심되는 질환은 없어?”

“만성 두통을 빼고는 건강했던 환자야. 최근 두통 때문에 아세트아미노펜 제제를 과다 복용해 주의를 줬었는데 지키질 않았어. 게다가…….”

“또 뭐가 있어?”

“간이 안 좋다니까 부모님이 한약하고 민간요법에서 쓰는 건강식품이라는 걸 먹인 모양이야.”

“한약에 민간요법까지?”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기저 질환이 없다.

방사선 검사상 간 특이 소견이 관찰되지 않았다.

아세트아미노펜을 과다 복용했다.

간과 신장이 나쁜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 한약도 모자라 민간요법에 따른 성분을 알 수 없는 건강식품까지 먹었다.

불과 이 주도 안 되는 사이에 황달과 급격한 간 효소 수치 증가가 발생했고, 급기야 간성 뇌증까지 보였다. 특히 이 주라는 기간이 갖는 의미는 섬뜩 그 자체였다.

의심되는 질환은 하나였다.

“설마 전격성 간염?”

공정식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도 그렇게 의심하고 있어.”

전격성 간염의 무서움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어떤 약물로도 회복시킬 수 없는 상태로 진행돼 오직 간 이식으로만 치료 가능한 질환이었다.

하기에 진단이 무척 중요했다.

문제는 특정 검사로 확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진단 근거는 과거력과 증상뿐이었다.

이 환자 역시 아세트아미노펜, 한약, 건강식품을 복용했다는 사실과 황달, 간 기능 저하 발생 후 불과 이 주 내에 간성 뇌증이 발생했다는 것이 주요 근거였다.

의료진 모두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식이 윤석진의 의견도 모자라 김지훈까지 찾은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김 과장, 전격성 간염 환자를 본 적이 있어?”

“없어. 상당히 드물지만 간 이식 대상 질환이기 때문에 알고 있을 뿐이야.”

난감했다.

진단이 맞는다면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적절한 시한 내에 간 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오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다.

이준영 교수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많은 의료진이 모여 관련 책자까지 확인하며 논의했지만 다른 질환을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전격성 간염일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었다.

보호자를 만났다.

공정식이 의심 질환을 설명했다.

한약과 민간요법이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말에 부모의 팔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혼미한 상태의 아들을 보며 이미 사색이 됐던 부모였다.

“어떻게 치료해야 합니까?”

김지훈에게 눈짓을 했다.

간 이식만이 유일한 치료였지만 욕심을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확진할 방법이 없는 만큼 보호자의 의사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더구나 전문 병원을 표방하긴 했어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자리 잡지 못한 신생 병원이었다.

“외과 김지훈입니다. 간 이식만이 치료입니다. 우리 병원에서도 가능하지만 원하신다면 대학 병원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간 이식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단이 맞는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엉거주춤 의아한 표정만 보였다.

슬픔보다 불신이 앞설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미 간성 뇌증으로 혼미한 상태에 빠졌다. 그것만으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간 이식만이 치료라니 충격 이상의 불신에 빠지고도 남았다.

환자 아버지가 강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여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우리 아들 살리려면 큰 병원으로 가야 해.”

오히려 큰 소리를 내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의료진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간 이식을 해야 한대. 그게 말이 돼? 괜히 이 병원으로 왔어. 큰 병원으로 가야겠지? 어느 병원이 좋겠어?”

(맞아. 고만한 병원 말을 어떻게 믿어? 생사람 잡기 전에 당장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으로 가.)

의료 지식이 없을 친척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내심 안타까웠지만 부모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믿고 싶지 않겠지. 나도 오진이었으면 좋겠지만 씁쓸하네. 우리 병원이 대학 병원 이상으로 신뢰를 받는 날이 언제 올까?’

김지훈이 환자에게 집중했다.

상태가 너무 심각해 지체할 틈이 없었다.

즉각 이송 준비가 시작됐다.

절대적으로 중환자실이 필요한 환자였다.

대단한 배경이 있지 않는 한 보호자가 병실을 확보할 방법은 없었다. 무턱대고 대학 병원으로 갔다가는 입원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었다. 또한 반드시 생체 간 이식 역량을 지닌 병원이어야 했다.

김지훈이 흥분한 보호자를 붙잡았다.

“무작정 가시면 안 됩니다. 저희도 중환자실 확보를 확신하지 못하지만 대학 병원에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권할 수 있는 병원은 단 두 곳뿐이었다.

신기동 교수가 있는 서울 병원과 진충기 교수의 H 병원이었다. 비록 양 병원 모두 간 이식이 활성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의료계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였다.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병원도 없었다.

한시가 급했다.

김지훈이 직접 연락을 취했다.

(김지훈 선생님, 신기동 선생님은 지금 수술 중이시고, 죄송하지만 중환자실 여력이 전혀 없습니다. 응급실로 와도 이삼 일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가장 깊은 인연이 있는 서울 병원이었다.

억지로 밀어붙이면 하루 정도는 일찍 중환자실에 입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격성 간염 환자에게는 단 하루도 허용되지 않았다.

H 병원에 연락했다.

다행히 진충기 교수와 직접 통화할 수 있었다.

(전격성 간염이 확실하면 며칠 내에 간 이식을 해야 할 텐데 검사는 돼 있습니까?)

“오늘 응급실로 와 이식에 필요한 검사는 하나도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환자 받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중환자실이 없습니다만, 일단 보내시죠. 가능한 빨리 확보해 보겠습니다.)

서울 병원과 다른 상황이 아니었지만 진충기 교수와 직접 연락을 취했다. 제때에 치료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여건도 훨씬 나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환자를 보냈다.

응급실이 갑작스러운 정적에 휩싸였다.

김지훈이 턱을 괸 채 콧등을 찡그렸다.

한바탕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자 아쉬움이 몰려왔다. 전문 병원이건만 사람들 인식은 규모 작은 일반 병원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간 이식을 시행하는 이상 분명히 변할 것이라 믿었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최종적으로 수술을 많이 해야 환자가 더 많이 오겠지. 그래야 신뢰도 형성된다. 민 부원장이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결국 홍보도 우리 몫이다.’

문득 내심과 달리 현수막이 떠올랐다.

왠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속도 쓰렸다.

하필이면 H 병원에, 그것도 진충기 교수 앞으로 환자를 보내다니 스스로 발등을 찍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전격성 간염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케이스였다. 돈 주고도 못 살 귀중한 경험을 날린 것이다.

“경철아, 위장약 좀 가져와.”

“속이 안 좋으세요?”

“다 안 좋다.”

강철 위장 김지훈이 약을 찾다니, 쓰리디쓰린 마음이 진짜 증상을 유발한 모양이었다.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이 된다는 소리도 있지 않은가!

이런 병은 환자로 치료해야 한다.

강호성의 퇴원 일정을 구체적으로 잡았다.

집에만 가면 끝이 아니기에 민정호를 만나 단단히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토요일에 퇴원시킨다고요? 알겠습니다.”

“후속 조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죠?”

“최종 정산만 되면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김지훈이 잠시 망설였다.

‘고맙다는 말 하기가 이렇게 어색할 줄은 몰랐네.’

“감사합니다.”

“저도 과장님께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오후에 응급실로 온 환자는 우리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했습니까?”

“가능했습니다.”

“제가 봐도 좋은 기회가 분명한데 왜 보내셨습니까? 환자를 잡고자 하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셨어야 했습니다. 세상일이나 의료 쪽이나 수동적이면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렵습니다.”

맞는 소리지만 현실 모르는 말이었다.

병원과 환자의 관계는 능동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득이 된다는 법은 없었다. 자칫 보호자와의 갈등과 분란의 소지만 만들 수 있었다.

“엄연히 대학 병원과 우리 병원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도리어 손해가 될 겁니다.”

“인정합니다. 다만 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확실하게 잡는다면 과장님이 생각하시는 한계가 더 빨리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설마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시겠죠?”

역시 맞는 말이었다.

은연중 의사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환자에 대한 긴장을 한시도 늦추지 못하게 했다. 피아 구분이 점점 확실해졌지만 오히려 더 밀어붙이고 있었다.

김지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힘든 사람이네.’

그 탓에 생각이 많아졌다.

과연 전문 병원의 한계는 어딘지,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들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움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두고두고 고민할 일이었다.

밤이 깊었다.

번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해지며 눈이 감기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도 없거니와 당직도 아니었다.

“여보세요?”

(진충기입니다. 밤늦게 미안해요.)

“아닙니다. 무슨 일이세요?”

(오후에 우리 병원으로 보낸 환자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전격성 간염이 확실해 보입니다.)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

무거운 눈꺼풀이 더 무거워졌다.

게다가 이미 소견서에 같은 질병명을 넣었다.

전화할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경쟁 관계에도 불구하고 간 이식이 필요한 환자를 보냈다는 사실에 진충기 교수가 보이는 예의일 수도 있었다. 시간이 늦어 탈이었지만 말이다.

“후우! 그렇군요. 언제 더 나빠질지 모르는데 간 이식 준비를 빨리하셔야겠습니다.”

“후우! 그래야죠.”

‘중환자실을 확보한 모양이네. 환자에겐 정말 다행이지만 최고의 라이벌에게 환자 한 명을 바쳤네. 바쳤어. 집에 위장약이 있었나?’

김지훈이 벅벅 눈가를 문질렀다.

그런데 진충기 교수는 왜 한숨을 쉬었을까?

갑갑하게 느껴지는 헛기침까지 터트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우리 병원에서는 힘들겠어요. 백방으로 손을 썼는데 도저히 중환자실을 확보할 수가 없습니다. 일반 병실에서 치료할 상황도 아니고요.)

잠이 확 달아난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비록 보호자가 원해 이송한 환자지만 젊은 남자의 목숨이 달렸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중환자실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은 없었다.

“어이구! 큰일이네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간 이식이 가능한 다른 병원에도 중환자실이 없답니까? 서울 병원에 다시 알아봐야 할까요?”

진충기 교수가 잠시 뜸을 들였다.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니야?’

김지훈은 눈가만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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