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다음 날 아침.
이경석의 눈에 긴장의 빛이 감돌았다.
대장에서 시작해 다양한 질환을 복강경으로 수술해 왔다. 새로운 접근 방식을 이용한 탈장 수술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특별한 이정표였다. 하지만 부신을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것은 상황이 다소 달랐다.
물론 수술 준비는 완벽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써전이자 복강경에 관한 한 최고라 할 수 있는 김지훈과도 수차례 머리를 맞대며 수술 과정을 점검했다.
내과는 혈압 조절과 전해질 균형을 확실하게 확보했고, 마취과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상황에 철저하게 대비했을 것이다.
관건은 자신의 손이었다.
수술 중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호르몬 폭발은 부신의 인위적인 손상에 기인하기 때문이었다. 과도한 조작 혹은 사소한 실수 모두 원인이 될 수 있었다.
‘후복막 내에서 복부 대정맥과 신장 정맥을 피해 부신을 제거해야 한다. 공간이 나올까?’
경험이라도 많으면 좋았겠지만 송재덕 교수나 이준영 교수마저 거의 접하지 못한 수술이었다. 그런 수술을 개복도 아닌 복강경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신감보다 불안이 훨씬 더 강했다.
띠! 띠! 띠! 띠!
“맥박 수 안정적이고 심전도, 혈압, 산소 포화도 모두 정상입니다. 모니터링 지속하세요. 마취 시작합니다.”
윤서연도 바짝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더욱 긴장이 가중됐다.
수술 팀이 자리 잡았다.
김지훈이 퍼스트, 강병옥이 세컨이었다.
써전 이상의 경험을 쌓아 웬만한 의사보다 오히려 노련할 수 있는 고경아가 필요한 기구를 순서대로 가지런히 정리했다.
조용히 마취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이경석을 보며 웃었다. 입은 마스크에 가려졌지만 눈가의 주름은 분명 웃음이었다.
편안해 보였다.
마취가 끝났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이경석이 손을 내밀지 못했다.
김지훈이 고경아를 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잠시만 기다려요.’
“경석이 형, 걱정 마세요.”
“생각보다 불안하네.”
“그런 소리 마세요. 우리 모두 형이 가장 적임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파트장이시잖아요.”
이경석이 수술 팀에게 눈길을 주었다.
불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윤서연의 눈빛도 다르지 않았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 아니었다.
신뢰였다.
‘그래. 나 혼자 하는 수술이 아니다.’
일말의 불안을 떨쳐 냈다.
손을 내밀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예리한 칼날이 환자의 피부를 절개했다.
모두 세 개의 구멍을 뚫었다.
성공한다면 배꼽에 숨을 상처를 빼고 두 개의 흉터만 보일 것이다. 결혼을 앞둔 환자의 만족도가 얼마나 클지 모르지만 더 이상 줄일 수 없었다.
최선이었다.
처컥! 처컥!
환자의 배가 빵빵해졌다.
복강 내 장기가 환하게 드러났다.
부신의 종물이지만 다른 장기의 이상 여부를 철저하게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간과 비장을 비롯해 모든 장기가 건강했다.
이경석이 눈가를 좁혔다.
어느 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다.
좌측인 관계로 비장부터 처리해야 한다.
이후 후복막을 연다.
신장 상부에 도달해 부신을 확인한다.
부신의 혈관은 물론 근접한 신장 정맥과 복부 대정맥에 절대 손상을 주면 안 된다. 수술 중에도 호르몬을 분비할 부신 조직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을 극히 좁은 공간에서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을 비롯해 수술 팀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경석이 훅 숨을 내쉬었다.
“진행합시다. 보비!”
삐이이이! 삐이이이이!
하얀 연기가 석션을 따라 사라졌다.
비장과 위를 연결하는 조직을 잘랐다.
변화가 심한 비장 동맥의 주행 경로와 작은 혈관에서 발생하는 출혈에 주의하며 콩팥을 덮고 있는 후복막을 노출시켰다.
콩팥이 불룩한 굴곡을 그리고 있었다.
“보비! 켈리!”
콩팥 상부의 후복막을 지졌다.
조그만 틈을 중심으로 절개와 박리를 진행했다.
툭하면 발생하는 출혈로 절대 방심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자칫 과도한 출혈이 유발되면 부신까지 피에 물들어 수술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었다.
“수처! 타이! 컷! 클립!”
이경석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수술 전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 그 자리를 집중력으로 가득 채웠다. 수많은 경험에서 오는 노련한 손길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콩팥 상부를 확인했다.
바로 위에 위치한 초승달 모양으로 길고 납작한 부신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후복막 박리가 진행되며 마침내 부신 전면을 모두 노출시켰다.
공간이 너무 좁았다.
이경석이 마른침을 삼켰다.
“김 과장, 후복막을 더 이상 여는 것은 어렵겠지.”
“더 박리하면 공간은 확보하겠지만 불필요한 손상을 줄 위험이 너무 큽니다. 지금이 적정선으로 판단됩니다.”
“오케이! 진행하자.”
이제 콩팥에서 부신을 분리해야 한다.
연약한 조직이자 호르몬을 분비하는 장기기에 혈관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콩팥이란 장기가 질긴 막으로 싸인 데다 조직 자체가 단단하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모스키토!”
작은 기구가 부신 밑을 파고들었다.
최대한 콩팥 쪽에 붙여 진행했다.
공간과 시야 모두 극도로 제한됐다.
“강병옥 선생, 카메라 더 접근시켜.”
이경석이 마치 간을 자르듯 조금씩, 조금씩 박리해 나갔다.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도 미세하게 발생하는 출혈을 막을 수 없었다.
“보비! 클립!”
사전에 계획한 대로 콩팥 쪽은 보비로 지져 지혈하고, 부신 쪽은 클립으로 잡았다. 수처를 하기에는 공간이 너무 좁은 탓이었다.
박리할 부분이 점점 깊어졌다.
기구를 조작하기 힘들 정도였다.
사야를 확보하기 위해 부신을 함부로 젖힐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카메라를 최대한 근접시켜도 제한적인 시야만 나올 뿐이었다.
‘실수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모든 과정이 아슬아슬했다.
오직 집중력만이 요구됐다.
이경석의 이마가 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김지훈 역시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부신 동맥과 정맥, 복부 대정맥과 신장 정맥, 해부학적 위치를 벗어난 혈관의 존재까지 가장 주의해야 할 좌측 부분에는 도달도 하지 못했다.
‘후우! 혈관이 적은 우측 부분이 이 정도 힘들면 좌측 박리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지?’
예상 못한 어려움이 아니었다.
진행 이외에는 답이 없었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빨간 피가 부신을 물들일 정도로 흘러나왔다. 만일 조직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색이 변한다면 복강경 수술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보비! 클립!”
멈추지 않았다.
이경석이 외쳤다.
“수처! 타이 준비해요.”
김지훈이 필사적으로 기구를 조작했다.
강병옥은 출혈 부분에 최대한 카메라를 접근시키는 한편 집도의와 퍼스트의 손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시야가 확보됐다.
이경석과 김지훈이 빠르게 움직였다.
“컷! 거즈!”
출혈을 잡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졌다.
띠! 띠! 띠! 띠!
심박동 소리가 안정적이었다.
급박한 순간에도 다행히 부신을 과도하게 건드리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이경석이 눈가를 찌푸렸다.
‘정말 쉽지 않네.’
최악의 경우 기구를 넘겨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지금은 집도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김지훈 역시 퍼스트 역할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했다.
“모스키토!”
마침내 부신 우측 부분이 모두 박리됐다.
유리한 점이 생겼다.
주변 조직에서 완전히 떨어진 부분을 들어 올리면 한결 시야가 좋아질 상황이었다. 반면 부신을 과도하게 자극할 우려가 그 이상으로 커졌다.
퍼스트의 몫이었다.
이경석이 김지훈을 보았다.
가장 믿고 기댈 수 있는 확실한 손이었다.
‘부탁한다.’
“진행하자.”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부신 일부를 잡았다.
과도한 압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기구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부신을 들어 올렸다.
콩팥 상부와의 경계가 확연하게 보였다.
약간의 여유만 얻었을 뿐이었다.
위험성은 도리어 커졌다.
이경석이 조금씩, 조금씩 박리를 진행하며 부신 동맥과 정맥을 찾기 시작했다. 통상의 수술과 달리 정맥을 특히 조심해야 했다. 동맥을 묶어도 부신에 남아 있는 호르몬이 정맥을 통해 언제든 대량으로 방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혈관이 주행하는 부분이 점점 가까워졌다.
모니터와 손에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하던 김지훈이 빠르면서도 침착하게 말했다. 연약한 부신에서 보다 강한 저항을 느낀 것이다.
“이경석 선생님, 바로 앞에 혈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해부학적 위치와도 일치합니다.”
“오케이!”
이경석의 손이 더욱 신중해졌다.
부신 동맥과 정맥이 있다면 바로 인접해 복부 대동맥과 신장 정맥도 있다는 말이었다. 단 하나라도 놓치면 곧바로 개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째깍! 째깍!
땀이 온몸을 적셨다.
가늘고 긴 구조물이 보였다.
부신 동맥이었다.
동맥 주변을 박리하는 이경석이 극도의 긴장에 휩싸였다. 모스키토를 조작하는 손길 하나하나에 모든 땀을 쏟아부었다.
“수처! 타이! 컷!”
끝이 아니었다.
정맥을 찾았다.
환자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호르몬 폭발이란 치명적인 위험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보다 큰 수술도 복강경으로 했건만 지금처럼 어렵고 힘든 적이 없었다.
본래 색깔을 잃어 가는 부신은 의미가 없었다. 부신 조직과 주변에 손상을 주지 않고 정맥까지 잡아야만 가장 큰 난관을 넘을 수 있었다.
이경석이 숨도 쉬지 못했다.
긴장으로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카메라 조금 더 접근시켜. 김 과장, 시야 더 확보할 수 있을까?”
“더 이상은 무리예요.”
온갖 악조건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이경석은 멈추지 않았다.
수술 팀 전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손을 믿었다. 더구나 최고의 써전인 김지훈이 퍼스트를 서고 있었다.
서서히 정맥이 드러났다.
1센티미터도 안 되는 부분을 박리하기 위한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머릿속마저 텅 비었다.
극에 달한 집중력이었다.
사투 끝에 박리가 끝났다.
“타이! 가위! 컷!”
마침내 정맥을 잡았다.
맥이 다 풀릴 정도였지만 이경석의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남은 부신을 박리하는 내내 신중하고 정교한 기구 조작을 끝까지 유지했다.
부신이 절제됐다.
콩팥은 물론 주변 조직에 어떤 손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생리 식염수로 몇 차례 씻어 내며 확인한 결과 출혈의 위험도 없었다.
이경석이 김지훈을 보았다.
“마무리해도 되겠지?”
“예. 안전해 보입니다.”
가느다란 관으로 만들어진 드레인을 수술 부위에 넣고, 기존 절개창을 통해 빼내는 것으로 수술을 끝냈다.
“환자 깨웁니다.”
기관 내 삽관한 튜브 속과 입 안에 고인 분비물을 제거하는 소리 속에 환자의 건강한 심장박동이 섞였다.
“끄으으응!”
유선영 환자가 눈을 떴다.
보이는 상처는 자그마한 절개창 두 개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술 팀의 목소리에 흥분이 감돌았다.
최초인지는 몰라도 이경석이 또 하나의 길을 개척해 낸 현장의 생생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