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081화 (1,081/1,329)

7화

민정호가 사무실 방향을 가리켰다.

“무슨 일입니까?”

“손님이 몇 분 오셨습니다.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서정호 검사님과 정훈철 국장님에 대해 왜 말씀 안 하셨습니까?”

“예? 형님들이 오셨다고요?”

슬쩍 눈길을 주며 신문을 내밀었다.

“오늘 아침 자로 지역 신문에 강호성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문사 기자 한 명이 평소 안면이 있던 정훈철 국장님께 연락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사안을 무시하면 기자가 아니겠지요.”

김지훈이 재빨리 기사를 확인했다.

객관적인 필체로 아동 학대의 심각성과 강호성의 위중한 상태를 상당히 심도 있게 다뤘다. 특종으로 취급해 독점하지 않는 점이 무척 고마웠다.

개인적 욕심을 앞세웠다면 신문과 방송의 영역, 혹은 영향력이나 파급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훈철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훈철이 형님은 그렇다 쳐도 형님은 관할 구역이 다른데 어떻게 아셨지? 일석이가 연락했나?’

“검사님은 어떻게 알고 오셨답니까?”

“제가 물어야 할 말 아닌가요? 서로 알고 계신 데다 사안이 엄중해 국장님께서 연락한 모양입니다. 대검에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일이 더 잘 풀릴 것 같군요.”

민정호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친척이라고 해서 써먹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 인맥입니다. 청탁도 아닌데 무엇을 주저하신 겁니까? 미리 연락했다면 한결 편했을 겁니다.”

“경찰이 조사 중인 일을 섣불리 연락하기에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분들 일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과장님은 외부가 아니라 병원 운영에 부담을 느끼셔야죠. 어쨌든 제게 나쁜 일은 아니군요.”

“설마 새 인맥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냉정한 건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인지 몰라도 강호성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기에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민정호의 생존 방식일 것이다. 덕분에 이번 일이 상당히 빠르게 공론화되고 있을지도 몰랐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정훈철, 서정호와 형사 한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간만에 본 반가움보다 깊은 분노와 무거운 마음이 느껴졌다. 밝은 인사보다 도리어 마음이 놓였다.

김지훈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민정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바쁘실 텐데 사적인 얘기는 나중에 하시고, 형사님 업무부터 먼저 해결하죠.”

역시 민정호였다.

사무적인 일 이외에 관심도 두지 않았다.

어떻게 인맥을 유지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둘인 데다 대검 검사에 방송국 국장이었다. 자리가 상당히 불편하고도 남을 형사가 재빨리 서류를 내밀며 물었다.

“아이 상태는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오늘 내로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큰 병원으로 이송할 예정입니다.”

“끔찍한 일이네요. 폭력에 의한 외상이라는 소견이 변함없으시면 진단서와 소견서 내용을 확인하고 서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종 확인을 위한 절차입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진단서와 소견서는 법적 증거로 쓰이기에 신중하게 서명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모든 정황이 아동 학대 이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했고, 이미 이름을 걸고 발부한 서류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김지훈이 곧바로 서명했다.

관심사는 책임이나 처벌만이 아니었다.

부모와 아이의 분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이와의 접촉을 최대한 막아야 합니다. 부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요청하신 대로 아이 엄마의 피해 사실을 조사하는 한편 정신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아이와 똑같이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린 것이 사실이었고, 저항조차 하지 못했더군요. 하지만 동조 내지는 방관한 사실도 분명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법이 판단할 사안이었다.

“아빠라는 사람은요?”

“곧 혐의를 모두 입증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재도 신병을 확보하고 있고, 검찰로 넘어가면 바로 구속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서명을 확인한 형사가 묻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잔인한 사건을 무수히 보았을 텐데도 아내와 지식이 있는 입장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지 치를 떨었다.

“아이 엄마 말에 따르면 인간이 아니더군요. 벽에 세우거나 바닥에 눕혀 놓고 짓밟았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몇 번 신고가 들어왔는데 술 먹었다는 이유로, 가족 내 일이라는 이유로 적정히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미안할 따름입니다.”

김지훈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경찰도 책임이나 비난을 피하기 어렵겠지만 결국 사회 전체의 문제였다. 미비한 법, 아동 학대를 훈육이나 가족 문제로 치부하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했다. 물론 아비라는 인간부터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잘 조사해 주시겠지만 췌장 파열은 교통사고 아니면 낙상 때나 볼 수 있는 외상입니다. 사람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동 학대나 폭력이 아닌 살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최종적으로 법이 어떻게 판단할지가 문제네요. 아이를 꼭 회복시켜 주십시오. 여덟 살 아이의 증언도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말씀 나누시죠.”

형사가 나가자마자 김지훈이 한동안 매서운 눈초리의 매를 맞았다. 서정호와 정훈철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민 부원장님이 여기저기 연락한 덕분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늦어졌다면 어떻게 할 뻔했어? 최소 검사인 내게 먼저 알렸어야지.”

“죄송합니다.”

“김 과장, 지역 신문에 기사 실리는 것하고 방송 타는 건 차원이 다르다. 세상에 알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족 내 폭력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어. 아이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 이번 일은 왜 이렇게 티미한 거야?”

“죄송합니다.”

김지훈이 그저 고개만 숙였다.

민정호가 스윽 고개를 돌렸다.

“과장님, 죄송하다고 할 일이 아닙니다. 의사로서 해야 할 일 이상으로 처리했습니다. 검사님과 국장님도 이런 일이 얼마나 처리하기 힘든지 아실 텐데요.”

“우리 말은 그게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고, 이 이상의 책임을 요구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법을 집행하는 검사님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정훈철과 서정호가 당황해 입을 열지 못했다.

잘못해서 죄송하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인간적인 표현이었고,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기에 이해하고 자시고 따질 필요조차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어째 더 미안해졌다.

김지훈이 서둘러 막았다.

‘이건 편들어 주는 게 아닌데.’

“민 부원장님, 가만히 계세요.”

“할 말은 해야죠.”

비난이 아니기에 도와주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타박 아닌 타박일 뿐이었다.

분위기 어색해졌다.

민정호만 태연히 커피를 마셨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김지훈이 재빨리 전화를 확인했다.

“죄송합니다. 여보세요?”

(과장님! 호성이가 눈을 떴습니다.)

“뭐? 정말이야?”

(예. 튜브를 빼 달라는 표현을 너무 강하게 해서 튜브를 빼야겠습니다. 응급으로 시행한 흉부 사진과 비지에이 모두 괜찮습니다. 빼겠습니다.)

송진우의 판단이었다.

“알았어. 지금 갈게. 형님, 아이가 눈을 떴습니다.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올 정도로 관심을 가진 탓인지 서정호와 정훈철의 엉덩이가 절로 들썩였다. 그런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해 곧바로 반응을 보여야 할 민정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갈 자리가 아닙니다. 과장님만 가 보시죠.”

어차피 중환자실은 통제 구역이었다.

“그게 좋겠습니다. 아이 상태는 확인하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두 분은 저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셨으면 합니다. 특히 국장님께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커피 한 잔 더 드릴까요?”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짐작이 갔지만 강호성이 눈을 떴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기에 꾸벅 인사를 한 김지훈이 부리나케 중환자실로 향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조차 뜨지 못했던 아이가 몸을 비틀었다.

인정사정없이 입 안과 코에 남은 분비물을 제거하는 송진우의 처치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참아.”

김지훈이 강호성의 손을 잡았다.

컥컥! 고통스러운 신음과 발버둥 치는 팔다리, 눈가에 맺힌 눈물과 여덟 살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강제적인 분비물 제거가 끝났다.

강호성의 입이 열렸다.

“엄마! 엄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처럼 엄마부터 찾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응급실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본 김지훈과 송진우에겐 충격과 다름없었다.

혹시 눈만 뜬 것일까?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호성아! 나 보이니? 여기 봐 봐.”

“엄마! 엄마!”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김지훈의 손가락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아?”

“벼… 병원이요.”

“엄마가 보고 싶어?”

“예.”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에 거짓은 없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호성이 깨어난 것도, 엄마를 찾는 것도,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까지 모두 기쁨보다 이상스레 가슴을 아프게 했다.

멍하니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튜브를 뺀 이상 추가 검사가 필요했다.

채혈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도 강호성은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위안이 될까 싶어 희연이가 준 카드와 젤리를 손에 쥐여 주자 더욱 서럽게 울었다.

감정적 동요가 극심했다.

불안과 두려움은 회복에 치명적이었다.

엄마를 불러야 할까?

눈을 뜬 이상 큰 병원으로 이송한다는 결정도 다시 생각해야 했다. 한동안 눈가를 찡그린 채 고민하던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안정시키지 못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호성아, 엄마가 정말 보고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든 일이 오해였을까?

“아빠는?”

순간 아이의 몸이 굳었다.

손발이 달달 떨렸다.

극심한 공포에 입을 열지도 못했다.

“호성아, 괜찮아. 아빠 볼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엄마만 부를게. 그러면 되겠지?”

“예.”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엄마는 널 지켜 줬던 모양이구나.’

엄마를 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을 굳힌 김지훈이 전화기를 꺼냈다.

난감했다.

경찰에게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다짜고짜 엄마와의 면회가 필요하다는 말을 수긍할지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통화한 적도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서정호라면 방법을 찾아 줄지도 몰랐다.

일단 민정호에게 연락했다.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놀라는 기색조차 없었다.

(엄마가 와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연락하겠습니다.)

눈을 떴고, 엄마를 찾는다는 말만 했다.

의사 소견으로 분리시키길 원했던 엄마였는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상당히 당황스러워할 경찰을 무슨 말로 설득할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서정호 검사님께 말씀드리면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저나 경찰이나 환자에 관해서는 무조건 과장님 결정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자세히 안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요. 치료 이외의 문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 선에서 해결하겠습니다.)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호성이에 대해 더 묻지 않지? 결과적으로는 원하는 대로 이뤄지긴 하지만 뭔가 어색하네. 감정을 아예 배제하고 행동하는 걸까?’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감정이 메말랐다고 보일 정도로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공사와 각자의 권한을 확실하게 구분할 뿐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민정호 덕분에 강호성에게만 집중하면 됐다.

잠시 후 안호석까지 달려왔다.

전문의 셋이 아이 한 명을 둘러싸고 귀를 쫑긋 세웠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 이것저것 가벼운 질문을 하며 부모 얘기는 철저하게 뺐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막 눈을 떴는데 말만 더듬거릴 뿐 상당히 명료하네. 통상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야. 설마 이렇게 어린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았던 걸까?’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죽음을 초래할 정도의 폭력을 가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극한의 공포가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의 안색이 무거웠다.

‘설마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심리 치료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한 번 입을 연 강호성은 힘들어하면서도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무엇이 삶의 의지를 일깨웠는지 알 수 없었다. 또래 아이보다 작은 손으로 한 장의 카드, 한 봉지의 젤리를 꼭 쥐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