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수술실이 얼어붙었다.
반드시 보여야 할 반응이 없었다.
아이가 눈을 뜨지 못했다.
안색마저 창백했다.
자발 호흡을 찾았지만 불규칙했다.
가쁘게 숨을 내뱉어 기관에 삽관된 튜브를 제거할 수 없었다. 수술 중 충분한 수액을 투여했지만 소변량마저 부족했다.
패혈증이 진행된 것일까?
수술 자체가 너무 늦은 것일까?
김지훈이 불안한 눈으로 윤서연을 보았다.
“동공반사는?”
목소리가 떨렸다.
“반응은 있는데 마취에서 깨어나질 않아. 지금 즉시 중환자실로 옮기는 것이 좋겠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묵묵히 준비를 갖추고 중환자실로 옮겼다.
간 파열 환자만이 치료 중이기에 인력 부족은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여덟 살 아이에게 주어진 유일한 희망일지도 몰랐다.
띠띠띠띠띠!
가뜩이나 빨리 뛰는 아이의 심장이 헐떡였다.
수술 후 시행한 모든 검사가 좋지 않았다.
자칫 폐렴으로 진행할지도 모르는 흉부 사진, 악화된 패혈증 소견, 수술 부위를 그토록 깨끗이 씻었건만 지저분한 드레인 양상에 김지훈이 차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송진우가 억지로 등을 떠밀었다.
“선생님, 여긴 제가 지키겠습니다.”
보통 보는 환자였으면 조금 더 지켜봤겠지만 아동 학대가 분명한 상황이었다. 아이의 치료에 의사 머릿수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송진우 선생, 수술 소견 확실하게 작성하고, 사진 첨부 잊지 마. 우리가 빠트린 손상 부위가 더 있는지도 확인해. 고경철, 오늘 밤 잘 봐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응급실에 있을 테니까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해.”
김지훈이 중환자실을 나왔다.
아무도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와 자신을 기다려야 했을 부모를 떠올리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다른 사람 소행이었다면 벌써 말했겠지. 늑골과 팔에 발생한 골절, 온몸에 난 멍까지 생각하면 부모 짓이 분명해. 엄마가, 아빠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 지경이 되도록 자식을 학대한 부모가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중환자실 앞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면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쳤을지도 몰랐다.
답답한 가슴을 안고 응급실로 향했다.
조용했다.
경찰에 연행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문을 여는 순간 아비라는 인간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하마터면 멱살을 잡힐 뻔했다.
“우리가 애를 학대를 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해? 네가 책임질 수 있어? 네가 뭔데 마음대로 수술을 해?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돼? 개새끼, 니 얼굴 똑똑히 봤어. 가만 안 둔다.”
자식 걱정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아이 상태조차 묻지 않았다.
어미도 다르지 않았다.
아비가 눈을 부라리며 행패를 부리자 자신 역시 피해자라도 되는 것처럼 울며불며 소란을 일으켰다. 경찰도 폭력 사태만 막을 뿐 더 이상 개입하지 못했다. 물증처럼 객관적 증거가 없는 이상 그들도 답답할 것이다.
만취 상태로 난동을 부려도 적법하게 처리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물리적 힘을 쓴다면 사태만 더욱 악화시킬 것이 빤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김지훈의 숨이 거칠어졌다.
둔탁하게 잘린 췌장과 의식 없는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었다. 적어도 인면수심을 가진 것들의 입은 막아야 했다.
“내 얼굴 똑똑히 봤다고? 그래서?”
그때 당직실에 있던 사인방이 달려 나왔다.
동시에 응급실 문이 열렸다.
민정호, 당신은 또 왜?
눈길을 줄 때가 아니었다.
김지훈이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 난리가 났는데 나 몰라라 퇴근할 사인방이 절대 아니었지만 고마운 일이었다. 분노를 터트려야 의사만 불리해질 뿐이었다.
응급실 특성상 어떤 일이 일어나든 백이면 백, 의료진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대부분 의사와 환자 간의 분쟁인 탓에 의료진이 나서 해결하는 것이 순리였다.
이경석이 슬며시 김지훈을 막아섰다.
‘칼부림할 놈이다. 절대 안 돼.’
“김 과장, 참아. 수술 잘됐지?”
“아이가 깨어나질 못하네요.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반드시 회복될 거라고 믿어야죠. 경찰은 뭐래요?”
“아이를 학대한 정도가 아니라 죽을 정도로 폭행을 가한 것이 분명해 보여도, 부모 자식 간이라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대. 진료 방해로 걸어도 보호자가 진정되면 이걸로 끝인데 골치 아프게 생겼어.”
이경석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엄연한 현실이었다.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김지훈이 손일석을 보았다.
“형님에게 연락할까?”
“강력부에 관할까지 다르잖아. 연락하기엔 시간도 너무 늦었고, 다른 일로도 바쁘실 텐데 폐만 끼치는 건지 몰라서 고민 중이야.”
손윗동서인 서정호 검사라면 일정 부분 도움을 줄지 몰랐다. 하지만 검찰이라고 입장이 다를 수 없었다. 손일석 말대로 쉽게 거절하지 못할 부담만 지울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도움을 요청해야 하겠지만 당장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의 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부모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응급실이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다.
출동 나온 단 두 명의 경찰로는 연행조차 하지 못할 것이 빤했다. 타인의 간섭에 민감한 부모와 자식이란 관계, 의료진의 주장과 정황뿐인 아동 학대, 턱없이 미비한 법의 한계였다.
“현수야, 좋은 방법 없을까? 아이에게 악영향을 줄까 봐 면회시키는 것도 무섭다.”
“나도 잘 모르겠다.”
답답한 일이었다.
그때, 평소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응급실 간호사와 대화를 나눈 민정호가 다가왔다. 엉엉 울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보호자를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과장님,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왜 그러시죠?”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장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등장 자체가 의아한 일이었다.
실제 어느 병원이든 똑같은 경우가 벌어져도 행정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설픈 개입은 또 다른 문제만 야기할 뿐이었다. 당연히 간부급 직원은 사후 보고를 받았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한해 병원의 입장을 관철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굳이 얼굴 비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뭔가 있어 보였다.
피아를 구분하며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선입견도 다소 흐려진 상황이었다.
“당직실에서 함께 보시죠.”
“들어가실까요?”
민정호가 구체적인 상황을 물었다.
김지훈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과 수술 소견을 차근차근 설명하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감정의 동요는 보이지 않았고, 간호사들에게 들은 말과 일치하는지 검토하는 것 같았다.
“결국 췌장이 부서질 정도의 폭력을 동반한 아동 학대란 말씀이시죠? 지금 아이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고요. 부모 소행이라고 확신하십니까?”
“아이가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없다면 사람 소행이 분명합니다. 부모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아이 걱정을 하는 모습도 못 봤어요. 증거로 삼기 위해 수술하며 손상 부위 모두 사진으로 남겨 놨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진정하시죠. 도움이 될 일이 없습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두 가지 부탁을 들어주셔야겠습니다.”
갑자기 부탁이라니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번 일을 해결해야죠. 첫째, 아이를 무조건 살려야 합니다. 여덟 살이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살려야 한다는 사실은 절대적 명제였다.
말할 것도 없었다.
“나머지 하나는요?”
“여기는 제게 맡기시고, 모두 퇴근해 주십시오.”
“이 난리가 났는데 집에 가라고요?”
“치료에 관한 부분은 과장님 영역이고, 난리 치는 보호자 처리는 제 영역입니다. 선생님들이 계셔야 도움이 될 일이 없습니다. 병원비를 받아 낼 방법도 생각해야 하고요. 설명이 더 필요합니까?”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런 일을 자청해 해결하겠다니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가장 강한 의심의 눈초리를 갖고 있는 신현수도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지?’
“해결 방법이 있습니까?”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죠. 내게 맡기시면 됩니다. 아! 태도가 바뀌지 않아도 아이 면회가 가능해지면 엄마 정도는 허락해 주십시오. 부모를 모두 밀어붙여야 소란만 커질 테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합니다. 그럼 이만.”
민정호가 당직실을 나갔다.
경찰에게 뭔가 물은 후 누군가와 한참 동안 통화를 했다. 폭력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보호자들이 언성을 높이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제 풀에 지치길 바라는 것일까?
김지훈은 집도의이자 과장이었다.
‘나까지 퇴근할 수는 없지.’
솔직히 나머지 사인방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민정호 말대로 도움이 될 입장도 아니었다. 어정쩡하게 바라보는 사인방에게 빨리 귀가하라는 눈짓을 했다.
이경석이 고개를 저었다.
“응급실장이 사라지면 내일 무슨 낯짝으로 직원들을 보겠어? 현수야, 일석아, 김 과장 데리고 빨리 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겠다.”
김지훈도 휘휘 손을 저었다.
입장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의식이 없는 아이를 두고 퇴근할 수가 없었다. 물론 송진우가 있지만 적어도 응급실 상황이 진정되는 것을 꼭 봐야 했다.
“나야말로 퇴근 못합니다. 현수야, 일석아,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여기서 더 나빠질 일이 있겠어?”
신현수와 손일석이 입맛을 다셨다.
모두 다 전문 병원 설립 멤버인 데다 힘든 초반을 더욱 힘들게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신현수는 이사인 까닭에 상당히 애매모호한 처지에 직면했다.
결국 주저앉았다.
“이제 퇴근하기엔 서울이 너무 멀어.”
“난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
신현수 역시 내심 민정호가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 궁금한 탓이 적지 않았다. 번거롭다 못해 무척 골치 아플 일을 자청해 맡았다. 이유를 알면 속을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등장만으로도 그동안 불편하기만 했던 감정이 조금은 옅어지고 있었다. 어려울 때 등을 미는 놈과 손을 내미는 사람을 똑같이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응급실이 팽팽한 긴장에 휩싸였다.
김지훈이 부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집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도 연거푸 중환자실을 다녀왔다.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한 모습이 어찌나 불쌍한지 가슴이 시릴 정도였다.
정작 부모라는 인간들은 오진이라는 둥 수술할 이유가 없다는 둥 헛소리만 지껄이며 여전히 아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 상태가 중해 중환자실에 있다는 말을 듣고도 말이다.
‘법이 강해지면 최소 저런 모습은 보지 않을 수 있을까? 민정호는 저런 인간들을 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민정호와 보호자를 번갈아 보던 김지훈이 돌연 눈을 반짝였다. 응급실 밖에서 다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왠지 익숙했다.
119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경찰도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내원한 환자가 분명했다.
예감 적중했다.
아뻬였다.
‘하필이면 이런 날…….’
반가우면서도 상당히 갑갑했다.
전문 병원을 표방하지만 오는 환자까지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응급실이 어지러워 그렇지 당장 코가 석 자였다.
다행히 복강경으로 수술하기 좋은 환자였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빠르게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사인방 역시 심사가 좋지 않을 텐데 차라리 수술하며 잊으라는 눈빛을 보냈다.
솔직히 혼자 빠져나가는 것 같아 미안했다.
“일석아, 네가 할래?”
“무슨 소리야? 라파로는 내 전공이 아니다. 그리고 당직이 수술해야지, 오프가 왜 해?”
고마운 일이었다.
김지훈이 마치 전공의 일 년 차처럼 열과 성을 다해 설명했다. 전문의 보기 어려운 응급실에서 과장이 주치의라니 환자와 보호자도 상당히 만족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송진우와 고경철은 중환자실을 한시도 비울 수 없었다. 한 명만 더 있으면 되는 수술이기에 고민하다 아주 적당한 의사가 떠올랐다.
안호석이었다.
‘간단한 수술이지만 이참에 손도 볼 겸 만일을 대비해 호흡을 맞춰 보자.’
복강경이라 해도 가장 기본적인 수술이라는 사실과 무엇보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철판 깔고 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