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김지훈이 당직이었다.
“여보세요?”
(송진우입니다. 8세 남자아이가 심한 복통으로 119에 실려 내원했습니다. 지금 CT 찍고 있습니다만, 직접 내려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뭐가 의심되는데?”
(전화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누구보다 신중해 도리어 수동적인 면이 더욱 드러나는 송진우였다. 의심되는 병명조차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따로 있다는 말이었다.
“알았어. 지금 내려갈게.”
신현수가 시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여섯 시인데 일복 여전하네. 일주일 내내 당직을 부탁해야 하나?”
“나 당직비 엄청 비싸다.”
“못한다는 말은 안 하네.”
“못해. 마님한테 맞아 죽어.”
환자가 없는 관계로 회진이 일찍 끝나 다들 퇴근할 겸 김지훈을 따라나섰다.
“나 참! 이거 웃어야 돼? 울어야 돼? 일주일에 한 번 서는 당직 때도 누구는 환자 씨가 말랐는데 벌써 환자가 와? 일복 없는 놈 서러워서 살겠나.”
손일석이 투덜거렸다.
예전에는 이경석과 같은 부류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엄청난 일복을 경계했던 손일석이었다. 환자에 대한 갈증이 목까지 차오른 모양이었다.
별생각 없이 일 층으로 내려간 사인방이 흠칫 놀랐다. 마치 싸움이라도 난 것처럼 응급실이 시끄러웠다. 절대 단체로 환자가 온 것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급히 문을 열었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119 대원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애가 뭘 잘못 먹어서 배가 아픈 건데, 왜 큰 병원 응급실까지 온 거예요? 개인 병원으로 가도 충분하잖아요. 부모 말을 왜 무시해요?”
“아이 상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개인 의원을 어떻게 갑니까? 오자마자 검사하고, CT까지 찍잖아요?”
“누구야? 당신이 찍자고 했어? 내 앤데 누구 마음대로 검사를 막 하는 거야? 당신이 돈 낼 거야?”
아빠로 여겨지는 사람까지 난리를 쳤다.
송진우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주먹질이라도 할 기세였다.
‘진우가 설명도 안 하고 무작정 CT까지 찍을 리가 없는데, 왜 저래? 에휴! 환자도 없는데 저런 사람들이 오다니 기분 참 안 좋네.’
김지훈이 서둘러 개입하려는 순간 평소 침착한 말투로 보호자를 설득했을 송진우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시뻘게진 채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조용히 하세요. 부모가 맞는다면서 애가 어떤 상태인지도 몰라요? 철저하게 검사해야 하니까 기다리세요.”
“뭐? 이 자식이 어디서…….”
욕까지 나왔다.
아무리 안하무인인 사람이라도 자식이 아프면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었다. 분명 만취한 상태가 아닌데 의아할 정도로 흥분했다. 여하튼 이런 사람이 의료진을 개떡으로 보기 마련이었다.
김지훈이 재빨리 보호자 앞에 섰다.
언제 주먹을 날릴지 몰라 바짝 긴장했다.
“보호자분, 여긴 급한 환자를 보는 응급실입니다. 진정하시죠. 송진우 선생, 무슨 일이야?”
“과장님, 오셨습니까? 사진부터 보시죠.”
“당신이 과장이야? 잘됐네. 당장 진료 중단시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막돼먹은 사람이 분명했다.
자식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여전히 소란스러운 보호자를 보면서도 송진우가 응급실 스테이션에 설치된 모니터를 가리켰다. 결코 평소 볼 수 없었던 태도였다.
‘보호자도 그렇고 진우까지 뭐 때문에 이렇게 흥분했지?’
“이경석 선생님, 보호자 통제 부탁드립니다.”
분명 배가 아파 왔다고 했는데 팔다리까지 찍었다. 의아함을 꾹 누른 김지훈이 내원하자마자 바로 찍은 흉부와 복부 사진부터 확인했다.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응급실이 난리가 난 데다 김지훈이 이상한 눈치를 보이자 신현수와 손일석도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거 뭐야? 큰 사고가 난 적이 있었나?”
갈비뼈 곳곳에 예전에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확연하게 보였다. 상당히 큰 사고를 당했던 것이 분명했고, 당연히 부모에게 과거력을 확인해야 했다.
문제는 다음 사진이었다.
팔을 확인했다.
다들 눈가를 찡그리고 말았다.
손목 윗부분에서 뼈가 휘어 있었다.
언뜻 지나치기 쉽지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소견이었다. 나뭇가지 부러지듯 동강이 나는 성인과 달리 뼈가 유연한 어린아이는 때때로 대나무처럼 휘는 양상으로 골절이 발생한다.
이른바 그린스틱(Green Stick) 골절이었다.
원인은 단 한 가지, 외상뿐이었다.
문제는 회복 양상이 전혀 보이지 않아 최근에 다친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시차가 있다지만 아무리 장난이 심한 아이라도 이렇게 여러 곳이 부러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뭔가 감이 안 좋았다.
그때 복부 CT를 찍은 아이가 막 옮겨졌다.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아이 팔이 맨살을 드러낸 채였다.
최소 치료인 깁스조차 보이지 않았다.
곳곳이 멍들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말라 있었다.
부모는 여전히 악을 쓰고 있었다.
순간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설마?’
급히 CT를 확인했다.
지저분한 복수가 상복부에 차 있었다.
복막염을 의미하는 소견에 매서운 눈으로 장기 상태를 살피던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믿을 수 없게도 췌장이 절단돼 있었다.
“송진우 선생, 빨리 수술 준비해.”
재빨리 아이를 진찰했다.
아이의 의식이 좋지 못했다.
옷을 들어 올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복부 정중앙에 피멍이 선명하게 보였다.
‘설마 발로 차서?’
“강호성, 강호성, 내 말 들리니? 여기가 아프니?”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의식이 흐린 상태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렸다. 부모의 목소리에 겁이라도 난 것처럼 움찔거렸다. 언뜻 보인 눈동자 속 공포는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했다.
배를 누를 때마다 몸을 비틀었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장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검사 결과까지 고려할 때 복막염이 발생한 지 이삼 일은 지났을 것으로 판단됐다. 원인은 췌장 파열이었다. 여덟 살 아이가 어떻게 그 지독한 통증을 참았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의식이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호성아, 누가 이랬어? 언제 어디서 다친 거야? 괜찮아. 나한테는 다 얘기해도 돼.”
입을 다문 채 힘없이 눈물만 흘렸다.
당연히 찾아야 할 부모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했다.
“당신이 과장이야? 부모가 싫다는데 왜 강제로 CT를 찍어? 내게 설명도 안 하고 수술이라니, 이래도 되는 거야?”
아이가 열만 나도 난리가 나는 부모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부모라는 작자들이 오히려 성을 내며 고래고래 소리만 질렀다.
분노가 치밀었다.
‘침착하자. 부모가 아닐 수도 있어.’
“우리 몸속 장기 중 가장 위험한 췌장이 반으로 잘렸습니다. 외상이 아니면 불가능한 손상입니다. 아이가 어떤 일을 당한 겁니까? 정확히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습니까?”
“뭘 잘못 먹었다니까.”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놈이 반말 짓거리였다.
김지훈이 꾹꾹 참으며 물었다.
“갈비뼈와 팔에 골절이 있습니다. 예전에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까? 최근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은 없습니까?”
보호자가 순간 움찔거렸다.
췌장이 어떤 성격을 가진 장기인지 모르겠지만 골절이란 말 앞에서 찔리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워낙 장난이 심한 놈이라 놀다가 떨어진 적은 있겠지. 그런 건 왜 물어?”
“확실하게 말해요. 아이는 왜 이렇게 말랐죠? 온몸에 난 멍은 뭡니까?”
“내 자식이야. 당신이 뭔데 상관이야?”
아비라는 작자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어미는 남편의 말이 맞는다는 듯 얼굴을 벌겋게 붉힌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췌장이 반으로 잘려 심각한 복막염이 발생했습니다.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아이가 죽……. 어쨌든 바로 수술해야 하니까 묻는 말에 정확하게 대답해요.”
흐린 의식이라도 아이가 들을 수 있었다.
차마 죽는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야? 어디서 생사람을 잡아?”
“수술 시기를 놓치면 아이가 위험합니다.”
“배 아파 들어온 애가 죽긴 왜 죽어? 수술하다가 우리 아들 잘못되면 의료사고인 건 알지? 나 가만 안 있어. 당신이고 병원이고 끝장 날 줄 알아. 너는 엄마라는 사람이 멍청히 서서 뭐 하는 거야? 다른 병원으로 가게 빨리 짐 싸.”
어미가 아이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수술을 준비하려는 송진우가 아이 몸에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방해했다. 침착하고 순한 송진우마저 부모와 실랑이를 벌여 응급실이 아예 난장판으로 변했다.
도저히 부모가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의료진에 대한 불신도 아니었다.
결국 원무과 직원까지 와야 했다.
김지훈이 재빨리 사인방과 머리를 맞댔다.
모든 정황이 사고가 아니라 폭력에 의한 손상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의 손에, 그것도 췌장이 절단되도록 말이다.
“부모 같지?”
“어렸을 때 지금과 똑같은 처지에 빠졌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부모가 확실합니다.”
그토록 얌전한 송진우가 핏대를 세웠다.
신현수가 눈가를 문질렀다.
“김 과장, 부모 동의를 받긴 어렵겠어.”
“췌장이 깨졌어. 어떤 일이 있어도 당장 해야 돼. 이러다 아이 놓친다.”
설득한다고 말로 상대하다간 시시각각 나빠질 아이만 위험에 빠트릴 상황이었다. 법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어도 아이를 위한 법은 아동 복지법뿐이었다.
훗날 아동 학대 방지를 위한 더욱 강력한 법이 시행되겠지만 가정 내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 부족했다. 훈육으로 치부하거나 가족 스스로 해결할 일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경찰조차 손을 놓기 일쑤였다.
당장 아이를 살리려면 임의대로 수술하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의사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었고, 아동 학대 신고조차 법적 의무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벌어져도 두고 볼 상황이 아니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살인이나 다름없다.’
김지훈이 결단을 내렸다.
“부모가 동의할 리가 없지만 형식을 갖추기 위해 시늉이라도 하는 게 좋겠어. 현수야, 일석아, 내가 만나는 동안 경찰 불러서 수술 동의서를 받아 줘. 송진우 선생, 수술부터 하자.”
부모의 눈을 피해 경찰에 신고했다.
잘잘못을 가리며 부모와 언성을 높여 봐야 아이에게 유리할 일이 없었다. 자칫 난동이라도 부릴 기세에 김지훈이 최대한 분노를 억제하며 마지막으로 설득했다.
“너 뭐야? 내 자식인데 누구 마음대로 수술해?”
소용없었다.
어미마저 아이를 외면했다.
다섯이나 되는 스텝에 꾹꾹 화를 누르던 고경철이 결국 젊은 혈기를 참지 못했다. 가운을 벗어 던지며 주먹을 쥐는 모습에 손일석이 턱 가슴을 막았다.
“경철아, 우리에게 맡겨.”
“선생님!”
“쓸데없는 생각 말고 준비나 해.”
그나마 김지훈이 시선을 돌린 덕에 간신히 수술 준비를 마쳤다. 아이를 옮기려 하자 송진우와 고경철을 막아서며 쌍욕을 내뱉었다.
“이 개새끼들이 어디서 수작이야? 이 여편네야, 넌 뭐 하는 거야? 빨리 안 막아? 너도 죽고 싶어?”
분명 배 아파 났을 어미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아비라는 사람의 눈빛이 변하자 간호사 머리채까지 잡았다.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한 119 대원과 건장한 원무과 직원까지 합세해 부모를 막아야 했다.
응급실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
김지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이 부모야?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정말 몰라?”
“뭐야? 이 개…….”
“또 한 번 욕하면 당신 가만 안 둬. 조용히 해. 아이는 당신 소유가 아니야. 누가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든 아이를 방치하고, 치료를 방해한 사람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당신들에게도 예외는 없어.”
분노에 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김지훈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일순 응급실이 조용해졌다.
분위기에 눌렸는지, 아니면 응당 느껴야 할 두려움과 죄책감을 이제야 느꼈는지 아비와 어미라는 인간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송진우 선생, 고경철 선생, 아이 옮겨.”
재빨리 침대를 옮겼다.
여덟 살 아이가 눈물만 흘렸다.
끝까지 부모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였다.
사인방에게 수습을 부탁했다.
수술 방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정문 근처에서 경광등이 번쩍였다.
아이의 목숨은 의료진이 맡았다.
부디 경찰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