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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68화 (1,068/1,329)

14화

김지훈의 얼굴이 다소 굳어 있었다.

송진우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뭐 실수한 게 있나?’

전문의가 됐어도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이자 의사 사회 특성상 스승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관계였다. 무엇보다 매서운 지적을 할 자격이 충분한 김지훈이었다. 더구나 담도공장 문합술을 처음 시도한 날이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옆자리를 툭툭 쳤다.

“앉아. 진우야, 혹시 서도훈 선생이 부담스러워?”

말투가 의외로 부드러웠다.

게다가 이름을 불렀다.

편하게 들으라는 말이었지만 평소 알고 있는 김지훈이 맞는다면 오히려 심각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우인지 모르지만 오늘 전공의 때 봤던 송진우를 또 봤어. 그때나 지금이나 난 진우 너를 무척 믿고, 좋아해. 실력도 인정해. 하지만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겠지?”

“무엇을 고치라는 말씀이십니까?”

“우린 모두 같은 수술 팀이고, 너도 전문의잖아. 전공의 때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모든 수술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수동적인 자세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돼. 지금의 송진우에게 퍼스트나 세컨은 단지 자리일 뿐이야.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말해야 수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 안 들어?”

송진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항상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사소한 일에도 붉어지는 얼굴과 함께 아킬레스건처럼 작용하는 약점이었다. 김지훈의 말처럼 서도훈의 눈치를 보며 세컨이었다는 사실에 움츠러들었는지도 몰랐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라고 한 말 아니야. 자기도 모르게 수술 스타일이 굳는 법이다. 이제는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야. 집도할 때 오직 자기 자신의 판단만 믿거나, 수술 팀의 의견도 구하지 않고 머뭇거릴 수는 없잖아?”

김지훈의 얼굴이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손이 젬병이 아닌 이상 기술적인 문제는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었다. 일단 손에 익으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본능처럼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반면 정신적인 문제나 자세는 평생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일이었다. 저지른 후 후회를 반복하는 나쁜 습관이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올해 본 송진우가 난 더 좋더라.”

송진우가 입술을 모았다.

은근슬쩍 얼굴이 벌게졌다.

‘천성이 너무 착해도 탈이네. 집도 경험이 부족한 것도 큰 요인이겠지.’

김지훈이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담도 담석 환자 두 명 수술 예약된 거 알지? 요새 병원 분위기상 입원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예정대로 입원한다면 내가 퍼스트 설 테니까 서도훈 선생과 하나씩 맡아.”

어떤 단점이 있다 해도 믿을 수 있는 써전임은 분명했다. 환자에게 다소 미안하지만 대학 병원 산하의 교육 기관이라는 면은 불변의 사실이었다. 게다가 모두 전문의이고, 퍼스트를 서며 끝까지 수술을 함께한다면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서도훈 선생에게 진우 네가 직접 알려 줘.”

“제가요?”

“어떻게 나보다 도훈이를 더 어려워하는 것 같다? 직속 선배라 그래? 어쨌든 버벅거리면 바로 뺏을 거니까 방심하지 마. 환자 병실 올라갈 때가 됐다. 가자.”

무슨 일이 있을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던 서도훈이 힐끗 곁눈질을 하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식은땀에 푹 절어야 했을 송진우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얼굴은 벌겠지만 말이다.

“진우야, 무슨 말 했어?”

“별거 아닙니다. 그보다 담도 담석 환자 입원하면 선생님과 제가 한 명씩 맡으라고 하셨습니다.”

“각각 집도?”

서도훈의 입이 쫙 찢어졌다.

불과 이 주 정도 수술을 못했을 뿐인데 꽤 갈증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췌장 담도 파트 속성상 복강경 수술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 개복이 아닌 이상 집도 기회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심지어 흔한 질환도 아닌 까닭에 은근히 걱정까지 했던 참이었다.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아야 했다.

“진우야, 잘하겠지만 준비 철저히 해. 외래 환자도 없는 상황인데 우리가 확실하게 보여 줘야 또 주시지 않겠어?”

“저도요?”

“무슨 소리야? 넌 전문의 아니야? 펠로우라고 주는 수술만 받으면 실력이 늘겠어? 우린 한 팀이야. 눈치 보지 말고 능동적으로 움직여. 그래야 김지훈 선생님을 빨리 간 이식으로 밀어내고 우리가 췌장 파트를 잡을 거 아니야?”

다시 함께한 지 일주일 조금 넘었건만 후배가 아니라 동료로 대한다는 생각이 말끝마다 묻어났다. 써전의 당연한 욕심에 불현듯 기분까지 좋아진 송진우가 어깨를 활짝 폈다.

“알겠습니다. 경철아, 오더 다 냈지? 보자.”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함께 차트를 보며 서도훈과 송진우가 쑥덕쑥덕 은밀한 모의를 멈추지 않았다. 김지훈을 보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한 파트의 책임자!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

혼자 이루기 벅찰 수 있는 목표를 함께할 동료가 생겼다. 어쩌면 김지훈이 없어도 휘플을 복강경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스쳤다.

씨익 웃음을 날린 김지훈이 수술 방을 나왔다.

순간 한껏 고무됐던 기분이 푹 가라앉았다.

민정호가 왜?

할 말이 있지만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 슬쩍 비켜서며 보호자를 가리켰다. 정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왠지 얄밉다는 생각만 들었다.

‘왜 이렇게 정이 안 가냐!’

김지훈이 보호자를 찾았다.

얼굴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수술 전보다 더 전전긍긍 초조한 기색이었다.

“선생님, 어떻게 됐습니까? 양성입니까?”

“다행히 양성이었습니다.”

“후우! 수술은 잘 끝났습니까?”

“예. 곧 병실로 올라가실 겁니다.”

“잘된 거죠?”

기쁨도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내가 실패 가능성을 너무 강조했나?’

“다행히 복강경으로 무사히 마쳤습니다만, 고령이신 데다 종양이 간과 상당히 가까워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맥이 풀린 것처럼 의자에 앉았다. 딸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보호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반응이 아니었다.

“수술 잘 끝났는데 왜 그러십니까?”

사위가 대신 대답했다.

“아버님과 워낙 사이가 좋아 누구보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저 역시 수술 전에 하신 말씀도 있고, 솔직히 불안해서 수술하시는 동안 여기저기 연락을 했습니다.”

“아! 선생님 몇 분을 안다고 하셨죠?”

“예. 다들 암이 아니더라도 복강경으로 하기엔 정말 어려운 수술이라고만 하시더군요. 개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시간까지 오래 걸려서 다른 문제까지 생겼는지 알았습니다.”

김지훈이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임파절이 커져 있어서 조직을 여러 개 떼어 내 검사했습니다. 그 탓에 시간이 다소 지체됐을 뿐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후 주의해야 할 점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도중에 환자가 수술 방에서 나왔다. 눈가가 벌게진 딸이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애써 웃었다.

“아빠! 고마워요.”

“아버님!”

아직도 몽롱할 환자가 딸과 사위의 손을 잡았다.

‘부러운 가족이네.’

급할 일이 없어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보호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를 보며 눈물지으면서도 안심이 되는지 웃기 시작했다.

사위가 돌연 고개를 숙였다.

“암이 아닌 것도 고맙지만 복강경으로 수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 볼 때 과장님인지 물었던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마음에 두실 일 아닙니다.”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이제야 선생님의 실력이 어떤지 알게 됐습니다.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꼭 선생님을 찾으라고 말해야겠습니다.”

확고한 신뢰였다.

이보다 기분 좋은 칭찬은 없었다.

환자가 병실로 향했다.

미소를 머금었던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민정호가 뚜벅뚜벅 다가왔다.

‘수술 방과 중환자실밖에 없는데 여긴 왜 왔지?’

“김 과장님, 오늘 수술 모두 끝나신 거죠?”

굳이 모나게 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건만, 꼭 수술이 한 건밖에 안 된다는 소리로 들렸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 다 개소리였다.

말이 좋게 나갈 리가 없었다.

“예, 끝났습니다. 왜 그러시죠?”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단둘이 마주했다.

“무슨 일입니까?”

“이번 수술이 급여 항목에는 없어 수술비 책정을 상의했으면 합니다.”

‘원무과에서 알아서 할 텐데 별걸 다 관여하네. 돈 문제라 이건가?’

“개복했을 때 담도공장 문합술은 급여 항목입니다. 거기에 복강경 기구 값을 더하면 됩니다. 통상 그렇게 해 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만, 비급여는 병원 재량에 달려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다른 병원에서는 이런 수술을 할 능력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요?”

“어떤 일이든 자신만의 전문적인 능력이 있다면 대우를 더 받는 것이 상식입니다. 일인실을 사용하는 것으로 봐 보호자의 경제적인 능력도 문제없을 겁니다. 수술 비용을 조금 더 산정하겠습니다.”

소탐대실일 수 있었다.

“수술비가 과도하게 비싸면 도리어 환자가 안 올 수 있습니다. 돈 때문에 복강경 수술을 아예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 점은 생각하신 겁니까?”

“오늘 하신 수술이 담도공장 문합술 맞죠?”

“맞습니다.”

“자주 하시는 수술입니까?”

“아닙니다.”

“결국 환자에게 큰 이득이 있지만 애초에 드문 수술이고,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는 말씀이군요. 아! 최초일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수술 비용을 최대한 적정하게 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기존의 다른 수술은 변동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애초의 의도나 제도의 합리성을 떠나 경험이 많은 의사에게 주어지는 특진비라는 것도 있으니 딴에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찜찜했다.

“환자에 따라 차이를 두겠다는 말입니까?”

“제 말을 오해하셨군요. 이번 수술의 특별함을 버리지 말자는 말입니다. 비급여 항목에 한해 예외를 적용하겠습니다.”

민정호의 지난 행적과 역할을 생각할 때 의료 부분을 잘 알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정말 돈이 되는 구석은 귀신처럼 찾아내는 모양이었다.

사실 비급여 항목 액수 책정을 병원이 할지, 의사가 할지를 두고 애매모호한 면이 적지 않았다. 하기에 명백한 월권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미운털 단단히 박힌 민정호였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스쳤다.

‘그런데 왜?’

잠시 침묵이 흘렀을 뿐이었다.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민정호가 휙 돌아섰다.

김지훈이 입만 벙긋거렸다.

‘이게 통보지, 상의야? 저 인간은 도대체 뭐지?’

한동안 씩씩거리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할수록 앞뒤가 맞지 않았다.

빤히 보이는 고정 경비를 늘릴 수 없는 한 병원을 망하게 하려면 무조건 수입이 적어야 했다. 그런데 일회성이라 해도 오히려 수입을 늘리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수술비를 다른 병원보다 비싸게 책정해 환자 수를 줄이려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수술만큼은 예외였다. 워낙 드물어 실상 지속적인 병원 수입으로 계산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비용은 어떻게든 줄이려 하고, 의사 입장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방식을 써서라도 수입은 늘린다? 진상건과 한통속 아니었나?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걸까?’

갈수록 고개를 치켜드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만약 말도 안 되게 수술 비용을 책정한다면 당장의 이득을 깎아 먹고도 남을 악소문에 시달릴 수 있었다. 그때는 과장의 권한으로 다시 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볼 일이었다.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감성 충만해져 카르페 디엠을 외치고도 남을 수술을 성공해 놓고도 만세를 부르지 못했다. 하지만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도훈과 송진우의 욕심과 열정까지 더해진다면 머지않아 최종 목표인 복강경을 이용한 휘플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랐다.

김지훈이 휘휘 목을 돌렸다.

예리한 눈으로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카르페 디엠!’

아무도 없을 때 할 일을 해야 했다.

이제야 입가가 쭉 찢어졌다.

오후는 팡팡 놀게 생겼다.

장풍연 환자를 볼 겸 병동으로 올라간 김지훈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담도 담석 환자 두 명 모두 입원했다. 게다가 이준영 교수는 간암 환자를, 송재덕 교수는 서울 병원에서 수술했던 환자를 입원시켰다.

‘드디어 시작인가?’

이 정도로 후련해지면 김지훈이 아니었다.

결정타는 윤석진이 낸 컨설트였다.

(36세, 남자 환자로 십여 년 전 간 전체에 발생한 다발성 낭종 병변으로 입원한 환자입니다. 현재 간 기능이 빠르게 악화되는 상태로 생체 간 이식 여부에 대해 의뢰드립니다.)

‘드디어 첫 간 이식 환자가 왔구나.’

심장이 벌렁벌렁 격렬하게 뛰었다.

만세를 부르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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