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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1067화 (1,067/1,329)

13화

서도훈이 감탄을 터트리고 말았다.

‘정말 빠르고 정확하다.’

“종양 상부 쪽 담도 자르기 전에 공장부터 확보하자.”

김지훈이 소장의 일부인 공장을 끌어와 연결해야 할 부분에 가져갔다. 연결 후 소장에 가해지는 긴장이 강하면 붙지 않을 수 있었고, 너무 여유가 많으면 공장이 다른 장기 사이에 끼어들어 일종의 복강 내 탈장을 유발하게 된다.

적정한 부분에서 적절한 길이를 확보하는 것이 문합술을 성공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서도훈 선생, 이 부분과 이어 주면 될까?”

“적당해 보입니다.”

굳이 묻지 않아도 되는 과정이었다. 집도의만이 갖는 선호도와 특징을 알려 수술 팀 전체의 호흡을 빠르게 맞추려는 의도였다.

모를 리 없었다.

실제로 불편함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송진우 선생은?”

“예. 저도 그렇게 판단됩니다.”

힐끗 묘한 눈빛으로 송진우를 본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이제 수술 전 내내 느꼈던 초조함을 넘어선 불안과 마주할 때가 됐다.

종양을 제거한 후 공장과 담도를 연결해야 한다.

개복했어도 수술 부위가 좁고, 이질적인 장기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난이도를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수술 후 연결 부위가 터져 담즙이 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할 정도였다. 그런 수술을 모든 것이 제한된 가늘고 긴 기구를 이용해 시행해야 했다.

어떤 써전이라도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김지훈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가자. 지금은 자신감이 필요한 때다.’

“진행하자. 계획대로 종양을 포함한 담도부터 담낭까지 한꺼번에 절제하자.”

제거해야 할 부분이 담낭관과 연결된 데다 수술 과정상 담낭 자체를 살릴 수도 없었다.

김지훈이 과감하게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가위!”

원하는 기구가 고경아의 손에서 김지훈의 손으로 정확하게 넘겨졌다.

새로운 수술의 시작이었다.

종양 상부에서 담도를 잘랐다.

동시에 마치 하나의 장기인 양 담낭을 통상의 경우와는 다르게 역순으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담낭 동맥 잡습니다. 클립! 거꾸로 절제하니까 담낭관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스윽! 스윽!

담도와 함께 절제한다지만 담도는 이미 박리된 상태였고, 담낭 절제는 수도 없이 한 수술이었다. 순식간에 담낭과 이미 박리된 담도가 종양과 함께 떨어져 나왔다.

“비닐 팩 주세요.”

종물이 포함된 담도 및 절제된 담낭을 비닐 주머니에 담아 우측 복강 내에 위치시켰다.

드디어 이번 수술의 핵심인 문합만이 남았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과정이었다.

이미 소장과 이어지는 담도는 봉합했다.

간에서 나오는 담도만 남았다.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간에 붙여 잘라 남은 담도의 여유가 거의 없었다. 한 번에 연결하지 못하면 다시 이어 줄 담도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떤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공장 준비하자.”

서도훈이 장겸자로 신중하게 ‘Ω’ 모양으로 위치시킨 공장의 하단부를 잡았다. 내용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다.

“보비! 거즈!”

오메가 모양의 공장 최상부를 열었다.

충분한 금식 덕에 내용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소화액이 존재한다. 공장 내부를 최대한 깨끗하게 닦은 후 담도 절단면과 맞췄다.

적절했다.

이제야말로 진짜 시작이었다.

“수처!”

김지훈이 단단하고 탄력이 강한 담도와 물렁물렁한 공장의 이질적인 감촉을 최대한 느끼며 봉합을 시작했다. 서도훈이 공장을 적정한 자리에 위치시켜 과도한 긴장이 가해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석션! 수처!”

담도 옆면에서 시작해 후면을 따라 진행했다.

췌장과 공장을 이었을 때의 느낌과 확연히 달랐다. 장기 자체가 갖는 위험성이 없기에 망정이지, 경험만 믿고 덤벼들었다간 낭패를 면치 못할 수 있었다.

김지훈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매번 마지막 봉합을 하는 것처럼 고도의 집중력과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서서히 담도와 공장이 이어졌다.

수술 부위가 깊숙해지며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간과 바짝 붙은 부분은 바늘이 들어갈 틈조차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한 방울의 땀이 맺혔다.

멈출 수 없었다.

기교 이상의 인내가 필요했다.

“송진우 선생, 잘 안 보인다. 카메라 더 들어와. 서도훈 선생, 공장을 약간 아래로 내려.”

췌장은 조직을 건드리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면 담도는 위치가 상당히 안 좋았다. 특히 시야를 가릴 정도로 거대한 장기인 간이 주는 압박감이 대단했다. 한 바늘을 뜰 때마다 자세를 바꾸고, 카메라와 기구를 다시 조정해야 했다.

“수처! 보비! 타이! 컷!”

출혈은 항상 발생하는 문제였다.

담도 주변으로 주행하는 간문맥, 간동맥의 존재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수술 부위와 시야가 좁은 탓에 소량의 출혈에도 가슴이 섬뜩할 지경이었다.

절반 정도 연결했다.

김지훈이 잠시 손을 멈췄다.

봉합면을 신중하게 살폈다.

“점막 빠진 부분 없지?”

“없습니다.”

“출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거즈에 묻는 정도라면 공장에서 발생하는 출혈이 분명합니다만, 주변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도훈이 빠르게 기구를 조작했다.

미세하지만 송진우와의 차이가 느껴졌다.

서도훈이 보다 능동적이었고, 기구 다루는 솜씨까지 달랐다. 먼저 전문의가 된 덕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이런 팀과 수술하며 실패한다면 누구도 아닌 바로 내 탓이다. 정신 바짝 차리자.’

다만 묵묵히 카메라에만 신경 쓰며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송진우의 수동적인 자세가 아쉬웠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수술 중에는 지적할 수 없는 문제였다.

“진행하자.”

후면부에 이어 전면부를 따라 봉합을 진행했다. 시야가 한결 좋아졌지만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장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점막을 확보하는 것조차 상당한 주의를 요구했다.

서서히 담도 내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마지막 두세 바늘만 남았다.

가장 위험하고 주의해야 할 부위였다.

더구나 한 가지 빠트린 과정이 있었다.

김지훈이 모니터에 눈길을 고정한 채 물었다.

“수술 전에 걱정한 것처럼 T-tube를 넣을 공간이 거의 없네. 지금이라도 넣어야 할까? 안 넣어도 될까? 어떻게 생각해?”

“종양이 발생한 부위를 제외하면 담도 염증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습니다. 담즙도 깨끗해 보이고, 수술도 깔끔하게 됐으니까 드레인만 박아도 될 것 같습니다. 문합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L-tube(코 줄)는 며칠 더 유지하고요.”

“괜찮겠지?”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더 이상 훌륭한 퍼스트는 없었다.

집도의와 다름없을 정도였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송진우에게 눈길을 주고는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수처합니다.”

살짝 누그러졌던 긴장이 치솟았다.

수술의 성패가 담도와 공장을 연결하는 마지막 한 바늘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술 후 가장 잘 새는 부위였고, 허술한 봉합은 곧 재수술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최대한 신중하게 담도를 찔렀다.

‘확실하게 걸었다.’

점막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장을 충분히 잡았다.

부드러운 조직을 뚫고 나온 은색 바늘이 반짝 빛났다. 담도의 여유가 없는 이상 이제 타이를 하면 다시 시도할 기회는 없었다.

‘이런 감각이면 됐어.’

과감하게 타이를 했다.

육안으로 볼 때는 완벽하게 이어졌다.

그동안 쌓은 경험을 믿는 것과 동시에 수술 팀의 의견을 구해야 할 때였다.

“어때? 괜찮겠어?”

“문제없어 보입니다. 끝내시죠.”

서도훈의 목소리에 확신이 차 있었다.

“오케이! 정리하자.”

마무리만 남았다.

다시 한 번 수술 부위를 철저히 확인했다.

어떤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드레인을 넣은 후 비닐 팩에 넣은 종양과 담낭을 배꼽 부분을 통해 빼냈다. 절개창이 커졌지만 환자의 고통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전문의 세 명으로 이루어진 수술 팀이었다.

집도의는 물론 전문의들이 다닥다닥 모여 복부 봉합까지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힐끗 고경철을 본 김지훈이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송진우 선생, 고경철 선생이 마무리하는 거 잘 봐. 서도훈 선생, 우린 빠지자.”

수술실에서 나간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서도훈과 함께 담도 속 종양을 관찰하며 나직한 대화를 이어 갔다. 검사 소견상 양성으로 보인 종양이 실제로 어떤 양상을 띠는지 아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역시 반들반들하고 경계가 뚜렷하네.”

“만에 하나 악성이라고 판정했어도, 이런 경우가 또 보이면 반드시 수술 중 임시 조직 검사를 의뢰해야 하겠죠?”

“맞는 말인데, 악성이라고 판정된 종양이 양성으로 나와도 문제야. 수술 전 검사 소견이 악성이라고 말하는데 종양만 제거하고 마음이 놓일까?”

“최종 결과가 다시 악성으로 나오면 재수술을 해야죠. 보호자나 환자 모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항의도 이만저만 아니겠지만 다른 선택이 없잖아요?”

딜레마임은 분명했다.

선뜻 어떤 결정이 최선인지 고민하던 김지훈이 혀를 찼다. 덧 가운 속이 온통 땀투성이였다. 긴장을 해도 단단히 했던 모양이었다.

‘하루 이틀 땀 흘리는 것이 아니지만 정말 편한 수술이 없네. 하하! 땀으로 목욕을 해도 좋으니까 아무리 어려운 수술이라도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하물며 아뻬 수술조차 문제를 일으키는데, 100퍼센트 성공이라니 목표이자 바람일 뿐 현실이 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실력, 능력만이 아니라 운도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스승님 당부대로 항상 겸손해야 한다.’

그때 환자의 나직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잘 깨어났다.

김진호 교수가 웃었다.

“김 과장, 오늘도 한 발 더 나갔네. 축하해. 이 정도면 국제 학회에 논문 내야 하는 거 아니야? 케이스가 적으면 증례 보고라도 하는 게 어때?”

“그럴까요?”

“농담 아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 자! 환자 옮깁시다.”

그동안 생각해 온 일이었다.

국제 학회의 논문 심사가 얼마나 엄격한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췌장과 담도를 복강경으로 수술한 증례만으로도 학회지에 게재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욕심이 안 나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수술 팀 모두 회복실을 떠나지 않았다.

서도훈이나 송진우에게 환자를 맡겨도 되는 김지훈 역시 환자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환자가 나직한 신음을 터트렸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다른 환자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드레인을 확인했다.

배 속을 씻어 낸 물이 흘러나와 거즈가 흠뻑 젖었지만 출혈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담즙 유출 여부만 주의 깊게 지켜보면 될 것이다.

김지훈이 뿌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음이 놓였다.

슬슬 수술을 성공했다는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상상의 나래가 이어져 제출은커녕 쓰지도 않았건만 국제 학회지에 게재된 논문까지 보였다.

‘김진호 선생님 말씀대로 이젠 국제 학회에 이름을 올릴 때가 됐어. 차근차근 준비해서 적어도 이 년 안에 논문을 게재하자.’

서도훈이 은근한 욕심에 불을 질렀다.

“선생님, 이번 수술로 다른 병원도 상당한 자극을 받지 않을까요? 특히 진충기 선생님인가요? 그 선생님에겐 충격일 겁니다.”

“네가 진충기 선생님을 어떻게 알아?”

“선생님과 같은 파트인데 모르면 간첩이죠. 도진이하고 호석이도 다 알고 있습니다.”

간담췌 분야에 국한한다면 진충기 교수가 일생일대의 라이벌임은 분명했다. 충격을 받았을 것이란 말 때문인지 목에 힘까지 들어갔다.

씨익 입가를 말던 김지훈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네. 차차 생각하고 일단.’

“서도훈 선생, 환자 부탁해. 송진우 선생은 나 좀 보자.”

까딱까딱 손가락이 휴게실을 가리켰다.

송진우는 물론 익히 휴게실의 악명을 잘 알고 있는 서도훈까지 눈만 껌벅거렸다. 차트 정리를 하고 있던 고경철은 아예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수술 잘 끝났다.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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